#매불쇼 #최욱 #한국사 우리만 말하는 한국사 : 정재환 X 배기성 ---------------------------------------------------------------- 광고 문의 : ad@podbbang.com / 02-6903-9392 출연, 사연 등 기타 문의 : mbshow@podbbang.com 또는 인스타그램 @maebulshow 메시지 주세요 :)
엄상섭은! 1907년 전라남도 광양군 진상면 섬거리#에서 태어났다. 전남공립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1926년부터 1928년까지 비아보통학교에 부임한 것을 시작으로, 1930년 옥룡보통학교, 1931년 송학보통학교, 1934년부터 1936년까지 영암보통학교 및 영암심상고등소학교 등지에서 훈도를 지내며 교원생활을 하였다. 이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경성지방법원 및 산하 검사국에서 수습생활을 하다가#, 1939년 5월부터 1940년까지 광주지방법원 사법관시보에 임명되어 근무하였으며, 1941년 조선총독부 검사에 임명되어# 1942년부터 1943년까지 함흥지방법원검사국에서 검사로 근무하는 등 일제강점기 말기 사법계 관료로 근무하였다.# 8.15 광복 후 미군정기 하에서도 검사로 근무하며 대검찰청 차장검사까지 지냈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8년 다른 동료 검사 일부와 일괄 사표를 제출하면서 성명서를 발표해 민족정기 양양을 위해 퇴진한다고 밝혔다. 이후 회고록을 통해 애국지사들에게 면목이 없다면서 "왜제통치에 협력하였다는 것만은 아무리 사과를 해도 모자랄 것"이라고 말하였다.# 한편 대한민국 형법 초안 작업에 깊은 관여를 하였고 한국 형법학의 기초를 다졌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광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가 다시 탈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정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5년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인권옹호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자유당 남송학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제4대 국회의원 임기 중이던 1960년, 내각 책임제 개헌기초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5월 3일 개헌을 위한 토론회 중 졸도하여 돌연사로 사망하였다.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사법 부문에 포함되었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가 대표적인 친일 전력 반성 사례 중 하나로 언급했다 국회의원 선거 이력(당락) .실시년도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1950년 총선 2대 국회의원 전남 광양군 무소속 10,852표 31.25% 1위 당 선 초선 1954년 총선 3대 국회의원 전남 광양군 무소속 14,482표 47.97% 2위 낙선 1958년 총선 4대 국회의원 서울 용산구 갑 민주당 26,511표 69.83% 1위 당선 재선 한글 띄어쓰기, 그 주인공은 영국의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 띄어쓰기가 적용된 최초의 한글 문헌이 1877년 존로스가 펴낸 ‘조선어 첫걸음 Corean Primer)’이기 때문이다. 한글 문장을 영어식으로 띄어 쓰고, 여기에 영어 단어로 발음을 표기했다. 한글로 쓰여진 출판물 가운데 처음으로 띄어쓰기가 도입된 문헌이 있다. 그것은 바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스(1841∼1915) 선교사가 쓴 한국어 교재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이다. ‘조선어 첫걸음’을 보면 한글 문장이 먼저 나오고, 그 아래에 발음과 영어 단어를 차례로 대응시켜 놓았고 가로쓰기가 보인다. 그 이후에는 1896년 서재필, 주시경, 그리고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 등이 만든 ‘독립신문’이 간행물로는 최초로 한글 띄어쓰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신문’은 2012년 10월 17일, 등록문화재 제506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연세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다. ‘독립신문’ 창간호인 4월 7일자, 1면 논설에서 한글 띄어쓰기에 대한 내용이 잘 표현돼 있다. “모두 언문으로 쓰는 것은 남녀 상하귀천이 모두 보게 함이오, 또 구절을 띄어 쓰는 것은 알아보기 쉽도록 함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33년 조선어학회가 만든 ‘한글맞춤법통일안’이 나오면서 한글 띄어쓰기가 더 보편화 되었다. 한글 연구와 보급에 헌신을 다한 외국인 선교사 ‘한글운동의 선구자’이자 감리교인이었던 주시경 선생의 한글 사랑은 배재학당과 상동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이 밑거름이 됐다. 그의 제자이면서 한글학회 핵심 멤버였던 최현배 장로는 평소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거룩한 뜻이 기독교에서 실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힐버트는 주시경과 함께 맞춤법과 한글을 연구하였고, 그 과정에서 띄어쓰기와 점찍기를 도입했다. 하지만 힐버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최초의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만들어 냈다. 이렇게 끊임없이 연구하며 노력한 결과, 놀랍게도 한국에 온지 3년 여 만에 헐버트는 ‘선비와 백성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의 ‘사민필지’를 편찬한 것이다. ‘사민필지’는 1891년 발간되었으며 초판으로 2천부를 찍었다고 한다. 이 책은 세계 여러 나라의 자연과 환경, 정치, 학문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는 순 한글로 만들어진 조선 최초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민요 아리랑을 악보로 제작해 보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어려운 한자보다 한글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그는 한글을 사랑했다. “한글은 대중 언어 매체로서 영어보다 더 우수하다.” 누구보다 우리말을 사랑했던 헐버트. 미국 버몬트주의 명문가 자제였던 헐버트 박사는 1886년에 조선에 영어 교사를 파견해달라는 소식을 듣고 우리 땅에 왔다. 헐버트(Homer Hulbert 1863~1949) 박사는 미국 다트머스 대학과 유니온 신학교를 졸업했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름만 알고 있었던 그는 1886년 7월, 인천 제물포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때 그의 나이 23살 때였다. 그는 고종황제가 조선의 청년들에게 영어 및 서양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설립했던 육영공원(Royal English School)에서 5년간 학생들에게 영어와 역사 등을 가르쳤다. 미국인이면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일상에서 조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3년 만에 한국어를 익힌 헐버트 박사는 띄어쓰기, 쉼표, 마침표 같은 점찍기를 최초로 제안, 도입했다. 고종에게 건의해 국문연구소를 만들도록 했다. 그 노력이 어느 정도였냐면 자신의 저서 ‘대한제국 멸망사 The Passing of Korea. 1906년’에서 “중국인들이 익히기 어려운 한자를 버리고 한글을 채택해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주장을 했을 정도였다. 출처 : 서울로컬뉴스(www.slnews.co.kr)
정재환 교수님~~ 넘 오랫만에 뵙습니다!!! 반갑고 보고싶어요!!! 대한민국 최교의 찐역사가 역사독립군 배기성 님을 또한 존경합니다!!!❤❤❤ 우리의 한글은 세계가 알아주는 최고의 과학적인 언어임을 알아야 합니다~ 현대 AI에 적응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언어로서 향후 전세계가 우러러볼 날도 머지 않았음을 예측해 봅니다!!!
정재환님은 예전에 매불쇼에 한글날 특집때 나오셨었는데 오랜만인데도 여전히 멋있으세요😊 한글날이 아니어도 한글에 대한 이야기 좀 자주 들었으면 좋겠어요. 자주 나와주세요🙏 오늘 이야기를 들으니 한글날을 그냥 휴일로만 생각했던 게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는데도 우리말을 지켜주신 게 너무 감사하네요. 그리고 배기성님 빠마가 너무 잘어울려요😁
쌍리을 ㄹㄹ을 인정하고 영어 R 과 대응하여 사용했으면 합니다. (ㄹ은 L, ㄹㄹ은 R) 순경음 ㅍ을 인정하고 영어 F에 대응하여 사용했으면 합니다. (ㅍ은 P, 순경음 ㅍ은 F) 순경음 ㅂ을 인정하고 영어 V에 대응하여 사용했으면 합니다. (ㅂ은 b, 순경음 ㅂ은 V)
이런 위대한 선조들의 목숨을 담보한 활동이 없었다면 한글이 지켜지고 민족성이 남아났을까? 이런 역사를 상기시켜준 두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매국노들의 어처구니 없는 득세와 노골적인 친일 행태에 치가 떨리지만 두분같은 지식인들이 이나라를 꼭 지켜내리라는 믿음에 위안을 받고 희망을 품어봅니다.
오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한글을 지켜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네요.. _()_ 시간이 짧아서 다른 분의 이야기를 다루지 못한 것 같았는데 시간이 되면 '간송 전형필' 선생님 이야기도 다루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저잣거리에서 나돌던 '훈민정음 혜례본'을 구해서 해방 이후까지 보관해주신 분이셔서요.
여기 미국입니다. 마침 어제도 직장에서 미국인 동료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는데…1. 배워보니 너무 쉽게 배울수 있으니까 놀라고 2 그러한 한글의 위대함에 놀라고 3 글자의 발명시기와 발명자와 발명이유가 명확한사실에 소스라치게 넘어가고 4. 그것을 아는 내 해박함(?}에 존경과 경외의 눈빛에 내어깨가 하늘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