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중기는 이미 알고 있었으나 녹로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궁금증이 생겼는데 설명해 주실분? 거중기는 움직 도르레를 사용하여 필요한 힘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였으나 녹로는 고정 도르레만 사용하여 힘의 작용 방향만 바꾸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당시 기록에 문제가 있었던 건가요 아님 움직 도르레의 원리를 이해 못한 상태로 복붙만 이루어진 대참사인가요. 복원해 놓은 녹로의 예시 바위도 장난없는거 같은데.. 왜 움직 도르레를 녹로에는 안썼을까..
과연 실지로 썼을까? 힘으로 해결했지. 아무리 봐도 저걸 설치하는게 불가능한데 4명이 들어올리면 충분히 들수 있는데 번거롭게 왜 쓸까? 나무로 만들면 쉽게 박살나고 사람이 죽었을땐데 저거 왜 씀? 바보임. 무쇠로 개조했으면 몰라도 딱 봐도 상상속에서나 가능한거지. 저거 실지로 썼으면 사람들 죽어나갔을땐데 시연은 왜 못함? 나무가 바위를 들어올릴거 같냐. 나무 하나 박살나면 차라리 힘으로 하는게 낫지.
기원전 35세기 문명이 막 발돋움하던시기. 메소포타미아에서 크레인 발명. 거중기는 돌을 수레에 위에 올리는게 끝. 크레인은 현장에서 돌을 들어서 올릴 수 있음. 부끄러운 역사현장. 고려시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글라이더 미사일 만들면 뭐합니까. 조선시대와서 더 낙후됬는데. 유일하게 농업기술만 발달
조선시대보다 과학기술력과 수준이 하락하고 춤추고 노래 부르는데에만 열중하다보니 한국의 수준이 급격히 하락하는 안타까운 현상이 발생한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거북선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이다 양반과 상놈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여 양반은 공부와 유흥(그래야 기생이 먹고산다) 에 집중하고 상놈들은 생산에 집중한다면 가장 효율적인 사회체제로 전환되게 될것이다 뽕꾸루들이 뽕꾸루를 채용하고 인재가 많은 국가라며 자평하고 다니는 멍청한 국가가 되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