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세기에 세계 역사에서 500권의 책을 쓴 사람은 정다산이 유일함. 요즘으로 치면 IQ가 300이 넘는 사람이었음. 수원사는 직장동료들이 강진과 정다산을 이야기하니 그게 뭐라고 별거아니라고 말함에 기겁했음. 지네 동네 화성도 다산 정약용 작품인데 무지가 하늘을 찌를 줄이야
조선 실학을 집대성했다는 관용적 표현은 근거가 없는 미사여구에 불과합니다. 실학이란 게 무엇입니까? 정약용이 그 표현을 사용했습니까? 다산이 실학을 집대성했다고 했을 때 실학은 적어도 조선시대 내내 유학자들이 사용하던 실학과는 다른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명치유신 때 사용하기 시작한 실학이라는 이름을 1930년 대 조선학 주창자들이 일본에만 실학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내놓은 게 조선 실학임. 이 개념은 1960년 대 박종홍 등을 비롯한 박정희교 창시자들이 유행시키기 시작하여 우리 머리 속에 박혀있는 말이다. 이제 좀 제대로 쓰자. 정다산은 그냥 주자학에서 벗어나 공자의 원래 사상을 배우고 익히자고 주장했을 뿐이다.
다산은 여러 방면에 다재다능한 위대한 분이시지만 중화사대 사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우리의 고대사를 한반도에 국한시키는 오류를 지질렀습니다. 그 분의 잘못된 역사인식과 해석의 폐해가 다른 유학자들의 사서 편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식민사관 확립에 아주 좋은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는 통설이란 이름의 역사를 확립하고 주창하고 있는 소위 주류라는 강단사학자들의 고대사 논리도 100여년전 일제총독부가 교육지침으로 하달한 식민지 사관과 여전히 동일하고, 그중에서도 다산의 역사논리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고대 중세 영토 강역을 대폭 축소시켜버린 다산의 역사기술은 정말 안타깝고 유감입니다.
다산 정약용과 실학편! 정조와 다산의 관계성에 의문점이 있어서 댓글을 단다. 정조는 다산을 귀히 여긴 군주로 미디어상 표현되고 있으며, 다산의 사회적 진출의 급성장을 경계하면서 무르익은 성숙한 자가 되길 빌며 사회적 진출의 급성장을 오히려 막은 군주의 뜻을 볼 수 있었다. 이 대목이 본인의 사고관과 다른 점 이다. 조선은 시대적 정황이 사대외교의 한계의 국가였다. 학문이든,산업의 혁신이나 국방의 강화이든,정치사들의 개입의 작용성 여부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고,군주로써 조선의 통치의 독립적이고,자주성 강화에 대한 심중의 뜻이 늘상 외교적 경계의 영향성들에 의식적 반영에 거추장 스러운것이 있었을 것이다. 정조는 다산을 큰 인물로 만들기 위해 그의 시대적 성장에 인위적 제약 설계를 했다. 사람이 깊히와 넓이 그리고 세상을 보는 안목들이 복합적 사고관들이 두루두루 잘 형성되길 바라는 의도가 아니였을까? 정조의 심중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학자이든,정치인 이든,산업계 상공인 이든, 그러한 조선의 큰 영향권을 보호하고 의식층 성장과 경험적 확장력 그리고 그 인물이 담고 있는 사유의 발산적 무한함에 인위적인 군왕의 사고인식의 제약성이 미쳤다는 것이다. 조선은 신분제의 사회이며,왕의 결정은 하늘의 뜻 처럼 인식될 만한 영향력이 매우 큰 중대함을 내포한다. 그러나 시대적 인물은 공시적,통시적 한계에 재조명 되는 긴 안목들을 고려해 볼 때, 왕의 사고관이 인간의 인식 확장과 질적인 도약 그리고 역량들의 축척 과 발산들에 제약을 준것은 완전 오버센스 한 것이다. 군왕이 모든것을 다아는것이 아니며,군왕 이라하더라도 한 시대 천재성 이나 신계급의 인간 신인의 성장과 역량 축척을 막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 아래 서로 다른 영향력에 의해 성장하는 인간의 정체성 형성과 확장의 고도 의식 공학적 성장 발달의 제약을 둔것이 잘 못 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서 창조적 인물이나 혁신적 인물은 후대의 인류에게 재조명을 받고,인류의 지적,창조적 산물과 사유들은 그 시대적 각 분야의 인재들에게 정신적,지적 계승과 발전 및 확장성들에 미치게 된다 즉) 인간의 시,공간계는 제약된 한계의 생물학적인 특징을 지녔고,시대의 혁신가나 창조적 아웃싸이더들은 세계를 바꿀만한 착상 이나 사고관 그리고 그 영향력이 국가 나 인류를 혁신적으로 도약시킬 문명의 사고 인식을 지닐 수 있는 자들이 있다. 인간의 양적 측면과 질적 고도화는 한 인간이 시대와 세계에 미칠 영항적 파급성들이 하늘과 땅 차이 만큼 그 사고인식의 혁신성과 질의 고도의식층 그리고 세계관의 의식 확장성들이 매우 복합적이고,종합적 인식을 하고 있다는것이다. 인간의 성장제약을 군왕이 하던 신분제를 초월한 정조의 사고 고도화 인물 이였다면, 정조는 치세를 통치자의 면모의 한계를 초월한 시대를 앞지르는 초월자적인 인간을 보는 안목을 지닌 인간 신인급으로 평가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 나라에서 성장하더라도 시,공간계의 공시성과 통시성을 관조해 볼 때, 인간을 평가하거나 정신이나 지식,전인격적 인격성,혁신적 역량,기타등등은 인간의 성장과 정체성 확장들에 제약을 두지 않는 시대 초월적 사고를 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사람을 짓밟거나 인간의 고도 질적 의식 성장을 제약하는것은 인간 신인급 성장형 인물들이 안 나오게 하는 인류적 범죄에 해당한다. 왕이 높은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간 신인급들이 높다는것을 알기 바란다. 신분제 시대의 한계가 인간의 천재성과 인간 신인급 인재들을 제약하는 안타까움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느 시대를 살든, 인간 신입급들은 인류와 세계사에 큰 혁신과 영향력을 미치게 되어 있고. 그러한 인물은 수 없이 많은 인류의 양적 생과 사 와는 동일시 될 수 없는 질적 고도화 인간성장과 관계가 매우 깊다. 본명 변상규 1973년생 도인임 정조가 다산 정약용을 인간의 성장적 측면을 깊게 이해했다면,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자로 역사적 재조명을 받을 수도 있다는걸 알길 바란다. 그것도 인간 신인급 인재형 성장 과정들에 쳐해진 다산을 보는 안목있는 군왕으로 비추워 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