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어렸을때 일어난 사건인데 그 죽어가던 여자분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었어요. 국민학교 저학년이었던거 같은데 독극물을 마신 여자가 낙엽 위에 누워 진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괴로와 하던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사진 속의 그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해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입니다.
@@cassie5647 안믿겨지시죠? 신문 한면의 절반이나 되는 면적에 죽어가는 과정의 사진을 이쁘게 잘 겹쳐서 놓았더라구요. 범인의 사진이랑 같이요. 사진도 제법 크게 들어갔어요. 제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옛날이니까 그랬을거에요. 지금 시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면 소름이 돋고 그럽니다.
@@customs3189 필름도 발려진 감광물질 입자 크기와 갯수의 한계가 있어서 해상력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해상력이 필요한 사진은 애초에 더 큰 필름으로 촬영하죠. 해상력으로만 따지면 이제는 디지털이 필름 따라잡았죠. 기술이 좋아지면서 센서의 DR이나 감도, 색정보값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오히려 디지털이 더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예림-z2d4v 그건 빛 에너지... 빛 자체는 저장이 안되죠. 필름이든, 센서든 빛에 반응한 물질이 남는거지... 빛은 저장할 수 없어요. 태양광 패널도 빛을 에너지로 전환시키는데, 그걸 빛 자체로 부르기엔 애매한 거 같아요. 빛은 (광자가 있지만) 결국 파동이라... 파동 정보를 읽어서 기록하거나 그 파동 에너지를 다른 에너지로 전환하거나 할 뿐...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선천적인 공감능력의 부족 혹은 타인이 파괴되는것을 봄으로서 자신이 우월해졌다고 생각하는 쾌감을 위해 타인을 착취하는거 아닐까요 전자는 사이코패스 후자는 소시오패스 어떤것도 예술이라고 변명될수없는 이기주의적 행태이죠. 예술이 혼자서 즐기는거였으면 집구석에서숨어서 혼자하는 자.위도 예술이겠죠
당시 해외토픽으로 뜨는 바람에;; 나라망신이라고 시끌시끌 했는데.. 반전으로 여러나라 돈많은 수집가들이 '죽음을 담은 작품, 죽음과 맞바꾼 예술'이라며 소장하고 싶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다가 여러단체랑 여론에서 난리나고... 그래서 외국에서 더 이슈됐던...ㅡㅡ;; 저걸 예술의 일부로 보고 소장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는게 신기했음
예술은 따로따로 떨어진 것을 종합해서 가치있는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행위인데, 그 행위의 토대 자체가 예술이기도 합니다. 예술의 능력이 모든 인간을 아우른다는 믿음이 없이는 예술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예술의 능력은 다름 아닌 인간의 영적인 자유이며 영적인 자유는 필연적으로 신성성과 결부되고 그 신성성 안에서 모든 생명이 존엄합니다. 따라서 재미를 위해 생명을 해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예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저 사람은 사진작가 아닙니다. 그냥 사진 찍는 살인자입니다.
이 정도로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면 세상이 발칵 뒤집힐 정도의 파장이 일어나야 하는데 정말 유야무야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 외에도 명백한 여죄가 여러 건 있었는데 더는 조사하지 않은 채 얼른 선고하고 얼른 사형 집행한 걸 보면 높으신 분이 더 파헤치지 말고 덮으라 압력을 넣은 게 확실해 보임. 그때 다 수사해서 다른 죄까지 몽땅 밝혀냈더라면 한국판 맨슨이 등장할 뻔......ㄷㄷ
사진작가 겸 보일러 배관공으로 살던 이동식(李東植, 당시42세)이었는데 1940년 경상북도 대구부(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6살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숙부 집으로 보내져 국민학교 과정을 마쳤으며 14세 때 서울로 상경하여 15년 동안 폐지와 고철 등을 주우면서 넝마주이로 살아가다가 몇 차례 특수절도 혐의로 콩밥을 먹고 출소한 후 사진에 취미를 붙여 이것저것 사진을 찍으면서 살았다. 사진가로서의 재능은 출중해서 한국사진작가협회의 회원이 되었고 사진 공모전에서 10여 차례 입상한 경력도 가지고 있으며 개인 전시회까지 열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