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학교 다닐 때, 저희 학교에도 어느 대학교 비교해도 많은 제일교포가 많았습니다. 1학년 1학기 복학하니, 구내 식당, 카페, 학교 구석구석에서 자기네들끼리 일본말로 얘기하는 사람들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물어보니, 재일교포 유학생들이라고. 그때 교포란 놈들이 우리말도 못하고 한국에서까지 일본말 쓴다고 욕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과 그들의 삶을 알게 되었고, 그나마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얼마나 고통스런 선택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 내면에 너무나 부끄러운 경험이었습니다
힘들게 살아오신 우리나라 사람들을 한국에서도 모르고 살아온게 죄송스럽고 일본에서 그 많은 차별에도 국적을 유지해오신 분들이 자랑스러운데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오신분이 소설을 쓰시고 미국자본으로 현실을 이제서야 알리게 되었네요!! 이렇게라도 알려지고 일제의 만행을 알리게 되었네요!!
@@kaykim9644 추성훈씨 보면 그건 아닌거 같네요. 일본 유학갔다 온 사람들도 그런소리 안하고 주변에 일본 이민간 사람도 그런말 안함. 일본 여행가서 차별받는 느낌 단 한번도 받은 적 없음. 오히려 추성훈씨는 재일교포라고 대한민국에서 차별받음 맨날 일본 욕만할게 아니라 자신을 돌아봐야지
항상 선생님 영상과 고견 보면서 매일 반성하는 흔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이번 영상과 관련해서 십수년전 기억이 나 댓글 좀 남겨봅니다. 2000년대 중반 즈음, 대학교 신입생으로 입학을 했고 같은 학번보다 2년 늦게 들어간 탓에 메인 스트림에 속할 수는 없었습니다. 개중에 조용히 지내려고 하는 친구 중 하나가 엄청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90년대 말~2000년대 초 일본에서 유행하던 스타일이었습니다. (비닐가죽 소재, 호일펌, 각종 장신구 등) 처음 봤을 때 외톨이처럼 지내는 것 같아 말을 걸었는데, 한국말이 많이 서툴렀었습니다. 그 친구는 당시 국내 대학에서 유치하던 외국인 전형으로 왔던 친구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엔 요즘처럼 중국인이 대다수인 시기가 아니었고, 한 과에 1~2명 정도 정말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이 많았었습니다) 한국말을 잘 못했고, 일본어와 일본 발음을 섞어서 말하길래 단순히 재일교포겠거니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친구는 한국 문화에는 많이 서투른 듯 했습니다. 한국어도 많이 서툴렀었죠. 한 학기 정도를 같이 지내면서 알게된 것은 그 친구는 본인 스스로를 '자이니치'라고 소개했고, 일본식 이름이 아닌 한국식 이름을 사용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는 듯 했습니다. 본인의 목표는 학위를 따서 일본으로 돌아가 큰 사업을 하고 싶다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한번은 술을 먹고 그 친구와 함께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본인이 이렇게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자이니치'로 살아가는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태어나서 한국은 그저 말로만 듣던 나라일 뿐이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본의 문화와 관습이 배어있지만 뿌리와 근본은 한국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버지의 가르침 혹은 강요라고 하더군요. 그 친구의 부모님은 하루 하루 일상생활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많이 바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 말라고 강조를 하셨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친구는 실제 피부로 와닿게 한국을 느낀 적은 없던 것 같습니다. '자이니치'로 살았지만 다행히 일본 내 사회속에 큰 아픔은 겪지 않으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제가 그 친구를 봤을 땐 본인도 정체성에 많은 혼란을 느꼈던 것 같았고, 고심끝에 츠요이 캉코구진(강한 한국인)이라는 표현을 했었습니다. 이번 영상을 통해 아주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자이니치와 조총련이라는 새로운 집단 혹은 소수민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어떤 영향으로도 그들을 바꾸거나 삶의 온전성을 얻는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 무기력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현재 그 세대는 원하던 것이 아닌데 그런 삶을 살았고 이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 아픈 역사에 의한 불가항력적인 것이라 마음이 아팠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친구는 꿋꿋이 이겨나가야겠다는 뉘앙스가 아니라, 나는 그냥 나일 뿐이야 라는 생각에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오고 갔었습니다. 그 이후로 한참의 시간이 지나 이충성(리 타다나리), 추성훈(아키야마 요시히로) 등의 인물들이 주목 받으면서 그들의 아픔과 여정을 이해하려고 노렸했었습니다. 아무쪼록 아픈 역사의 결과물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 스스로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 것을 기억하고 이해하려는게 또 하나의 view를 늘리는 것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다시 한국으로 오고자 한다면, 다시 국적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결혼이주민 등을 받는것도 좋지만, 우리의 역사로 인해 퍼져 나간, 자발 비자발적인 국적포기 후손들을 인구정책의 측면에서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해외입양아가 23만인가 하는데, 이제 그들의 후손이 벌써, 3세대까지 있습니다. 그들의 국적도, 러시아쪽으로 간 해외로 떠날수 밖에 없던, 그들의후손들을 제대로 입국시키고, 국적회복하는 길이, 우리의 인구를 지키는데도 좋은 거 같습니다. 어짜피 뿌리가 같기에, 입국하는 세대는 어렵겠지만 적응과 한국화가...그 후손인 2세들은 바로 한국인으로 커나갈 것입니다. 해야할 일입니다. 이 부분을 좀 주장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심용환교수님.
한국 국적이면 당연히 외국인 대우를 받는게 당연한거고, 차별이라면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드물지 않나요? 1세대 2세대 분들이 살아온 시대배경을 고려하면 조선적을 고수하는 것이 이해되지만 북한으로부터 원조받는 그 후대 조선적은 충분히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할 방안도 있는데 이해되지 않네요...
@@David-Davis- 자이니치 역사 잘 알지는 못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80만명이 다 북한과 연루된 범죄에 가담한 것도 아니고 그로 인해 혐오 여론이 생겼다면 일부를 가지고 수십만명을 싸잡아 욕하는 일본인들이 잘못된건데 그걸 당연한 결과라고 하는 님이야말로 진짜 이상한데유ㅋㅋ
영어본으로 파친콜 펼쳤으나 페이지 넘기기가 쉽지 않았어요, 많이 울었어요 디프레스도 같이 찾아온 관계로 세월만 보냈었어요,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 분단까지 그리고 아엠에프,,,민족이 그리고 우리 나라가 겪어야했던 모든 아픔이 느껴져서 정말 혼났어요, 쟈이니치 및 세계에 퍼져있는 디아스포라 한국인,,,, 근대와 동남아 걸쳐있는 모든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어요, 파친코 정말 잘 만들어진 드라마더라고요,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정신똑띠 열정 뿜뿜!
과거 재일교포는 부라쿠민과 똑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초기에 사라졌던 향소부곡의 하층민과 같은 것이 바로 부라쿠민입니다. 일본은 여전히 부라쿠민의 리스트가 돌아다니며 차별을 하고 있습니다. 재일교포는 그나마 한국의 지위가 올라가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곱창등은 먹기꺼려하며 음식마저 비하했었는데, 요즘은 일본인들이 호르몬이라고 부르며 미칩니다. 수 많은 세월을 차별을 받았고, 귀화를 할 경우 완전히 일본인이 되었는데도, 재일교포들은 귀하를 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한국에서의 차별에 실망해서 차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충성이라는 사람은 재일교포로 한국의 청소년 국가대표로 뽑혀 한국으로 갔으나 같은 동료들이 '반쪽발이'라는 비하를 들으며 충격에 결국 귀하를 선택합니다. 저는 왜 그런 분들을 존경하지는 못할 망정 차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재일교포에 대한 글을 썼더니, 어떤 분은 대부분은 조총련이라며 뜬금없는 댓글을 함부로 쓰는 분이 있더군요. 여전히 그 분들에 대한 이유 없는 차별의식이 우리에게도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드니 안타깝더군요.
안녕하세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선생님과 채널입니다. 항상 감사 드려요. 오늘도 즐감하다가 오타가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원작 영문 시작 부분 ‘History has (a?) failed us, but no matter’ 에 관사 a 가 잘못 들어가 있더라고요. 그냥… 그렇다고요 :)
조총련계는 북한이랑 연계 되있는 경우가 많아서... 예전에 vox에서 올린 조총련계에 관한 다큐를 봤는데 북한을 찬양하는 모습이나 옹호하는 모습을 보고나니 조총련계를 마냥 옹호만 해줄 수도 없더군요 아무래도 일본사회에서 배척 받다보니 북한에 더 매달리게 되는데 그런 행동때문에 더욱더 배척받게 되는 악순환이 생기는 걸 보니 참 씁쓸하더군요
재미있고 쉽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자이니치를 아직 모르는 일본사람들은 한국국적인데 일본어 잘하네로 알고 있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한때 무국적이었지만 한반도가 나뉘면서 한국과 북조선 중 자이니치는 둘중에 선택을 해야만 했고 아니면 일본귀화도 가능했습니다. 현재는 특별영주권자이므로 일본국적과 거의 동등한 자격으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자이니치는 성공한 부자가 많아서 양국의 좋은 점을 잘 누리며 현재를 사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민가면 미국국적을 취득하는데 자이니치는 굳이 일본국적을 선택하지 않고 특별영주권자로 사는 것도 특징적이죠. 식민지, 전쟁의 역사속에 살아온 🇰🇷 한국정신이 더 강하게 만든것이겠지만, 치열한 경쟁과 속임은 한국 발전의 폐단이기도 하네요. 모든 것에는 음과 양이 있듯이…
저도 심씨인데 반갑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자이니치로 사시는 분들 이제 한국으로 와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요? 미래가 밝아 보이지도 않고, 같은 직종에서 월급도 한국이 앞선게 5년 전쯤이라 보는데.. 일본 시청 공무원이 10년 전에 교환 공무원으로 와서 제 옆에서 같이 일했는데 연봉이 저랑 같더라구요. 그때 일본이 우리보다 잘사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때 외가쪽 친척이 재일교포인데 공업사에서 멸시당하며 일배워서 결국에는 고베에서 자동차 부품공장 회장이 되어서 부산에 공장 지으러 왔던 기억이 납니다. 90세 어머니 생일잔치를 부산에 어느 호텔에서 하는데 상무, 대표이사 이런 일본인들이 행사 중간에 선물 들고 나와서 회장의 90세 어머니 앞에서 굽신거리는 것을 보았지요. 참석자들은 전부 한국에 사는 제 어머니 친척들이었구요. 아마도 그 재일교포 회장의 마음속에 일본 간부들이 한국에 와서 어머니 생신날 한국인들 앞에서 숙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지요. 제가 초등학교때는 완전히 한일 경제적 격차가 큰 시기였는데.. 제 어머니 말로는 다락방에서 밥도 제대로 못먹고 어깨 너머로 일배우며 온갖 차별 다당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공업사에서 모든 일을 다 알게 되고 최고가 되었을때 따로 공업사 차려서 거래처 손님 다 뺏어오고 결국에는 자동차 부품 공장을 세워서 회장이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집념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작가님...제가 이슬람 문화에 관심을 갖게된건 몇달 안됩니다 내기억에 이슬람은 폭력적이고 테러와 잔인하게 살인을하고 전쟁을하며 여성을 핍박하고 억압하는 종교로 각인되어있습니다.지식이부족한 것이겠죠.그런데 어느 자료를 접하고 그옛날 이슬람이 과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인류에 큰 업적을 만들었다는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이것저것 뒤져보는데 ....코란에도 지금 이슬람처럼 여성을 핍박하고 차별하는 말을 없다고하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잔인하게 여성을 대하는건지, 또 다른이슬람 국가에는 여성들이 정치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선거도 하는데 유독 아프칸이나 사우디쪽은 안그러는건지 무척궁금해요 유투브나 여러채널을 찾아봐도 그이야기는 정확한것을 찾지못해서 ...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잘해주시니까 언제한번 알려주십쇼~~~~~~
고모부가 재일교포분이시라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어서 들어보니까 차별이 심했다 고모부가 유도부를 하셨는데 우리 재일교포출신 운동부 애들의 미래는 거의 대부분이 야쿠자 아님 운동선수였다 라고 얘기를 하시더라구여 그래서 지금도 고모부가 파친코 사업하시는데 그 친한 후배분들 대부분이 야쿠자다 라고 하셔서 좀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여기에 플러스로 농담이신지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추성훈 선수도 후배라고 하시더라구여ㅋㅋㅋㅋ 아 그리고 영상보다 놀란게 무국적 얘기하시는거 듣고 놀랐습니다 이역시 고모부한테 우린 국적을 선택해야했다 근데 조총인가 거기에서 선택권준게 남한 과 북한이었고 우리 가족들은 북한국적을 선택했지만 난 남한을 선택했다 라고 얘길 들었거든여
조선족은 거의 중국공산주의에 염색 되어 있어서 한국인인척 하면서 지나치게 중국적이라는게 문제죠 한국적이익만 챙기고 대국인이라고 설쳐서...... 일단 국적을 받으려면 역사의식이 제대로 교육되어야 하겠죠 세계에 흩어진 우리 씨앗들을 다 받아들여서 보듬고 국력도 키워야만 합니다
거기 사는게 더 좋으니까 안온거지 못살겠음 왔지 백퍼 미국사는 한국계들 한국인들 안오는거 똑같은거야 태어나보니미국 아니 살아온 날들이 한국보다 타국에서 많이 오래 살았음 안오는거지 와바야 뭐있어 정치인 시장가서 뭐 먹고 돌아다닐때마냥 사람들이 둘러싸서 오셨네, 이리와서 뭐 드셔보슈 이런 환대를 바라면 그리고 그거 안해줬다고 섭섭하다 하면 이상한놈이지 한국인도 한국에서 그정도 환대 못받는데
재일교포는 전부 야쿠자... 틀린말이지만... 야쿠자 비율이 높은건 사실임... 일본내에서 취직이 어려우니... 공무원, 대기업, 상장기업등은 취업이 안되었고... 한국식 이름을 쓰면 취직이 안되었고.... 결국 자영업, 연예인, 스포츠선수, 고리대금업, 파칭코, 야쿠자등등... 개인의 능력으로 밥벌이가 가능한 업종 또는 일본인이 등한시 하는 업종으로 많은 교포들이.... 오래전 연예인엔 숨겨진 교포 출신이 많았고, 스포츠계도 많았고... 고리대금업... 한국의 대출업자들의 자금이 교포 기업 자금이고... 어쨋든 수많은 차별로 취직 자체가 어려운 시대였고, 취직을 위해서는 귀화를 권고받는 시대였기에...
그 조선왕이 집권 힐때 문화가 꽃피고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나름 태평성대였음. 사람이 잘살면 안일해지고 외부에 눈을 돌려야하는데 우리꺼최고 하고 안주하게 됨. 조선왕조 500년. 즉 5세대 이상 사는 동안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나라가 조선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국제 감각이 뒤떨어져서 나중에 정복을 당하는 거고 거기서 그래도 독립운동가도 있고 엄청난 민족정신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근대사에서 우리보다 한발 빨랐던 일본, 옆나라 조선에서 단물뽑아먹고 경제대국되고 잘나가다가 지금 어찌됨? 국제감각 완전 잃어버리고 다시 조선통신사 행렬 기다리던 그 시절처럼 (한드없이 못살아) 되돌아가고 있지. 역사는 돌고 도는 거임. 실수를 배우고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면 됨. 조선왕조 시대의 신분제 사회 폐해도 있었지만 그 안정적인 시기 덕에 홍익인간 같은 고차원적 민족철학과 민족성 정립도 있을 수 있었던 거지.
ㅡ유투브 검색어 =우리들의 영원한 이야기=. 세계 최고경전 바가바드 기타gita 의 신의 마지막선물. 총 20여편.통역편 ㅡㅡ United Yoga Bhatti. June july 2020 한글자막 ㅡ the 8 spiritual powers. By avyakt parivar (통역) ㅡenglish . ㅡ the story of immortality ㅡ From gita school . 10 classes. ㅡ센터 온라인 강의 진행중 ㅡㅡㅡㅡㅡㅡㅡ ㅡㅡㅡ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