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불교 신자도 아니고 아는 것도 없지만 스님께서 무엇을 말씀 하시는지 알겠는데 불자 시면서 아시는 것도 많은 듯 한데 그것이 오히려 화근인가 봅니다 진실에 눈을 가린 듯 하여 안타깝습니다 이 댓글을 달면서도 스님 갸릋침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싶어 망설이다 아직 애송이라 용기냈습니다. 옳고 그름도 없다 모든 것이 분별이란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무례하다 느끼시면 죄송합니다만 60년 염불만 하시고 제자 신도들한테 실상염불을 적극 권장하신 청화큰스님 말씀과 다른 말씀을 하셔서 울컥했습니다. 염불을 짧게 하라니.. 그분은 수시로 염불과 함께 하라 하셨는데.. 기복적인 염불이 아니라 실상염불은 일체중생이 모두 부처다, 는 자기암시를 바탕으로 하는거라 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불교에 기웃거리는 정도의 일반인 입니다만 두 분의 스님이 설법 하시는데 사용하는 도구(Tool)가 다를 뿐, 말씀의 핵심(core)은 같다고 생각됩니다 ‘’..일체중생이 부처다..‘라고 적으셨듯 말입니다. 이 세상 누구나 자기 자신이 부처임..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네요. 견지망월見指亡月 견월망지見月亡指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각자 성불하시기를 바래봅니다. ^^
음, 평가절하..라는 가치판단은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난 생각일 수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큰스님께서 답하신말씀은 아니니까요. 내 안에서 일어난 마음이지. 그게 진실은 아닌것 같아서요.. 듣기에 따라서는 불편하실 수도 있을거 같기도 하단 생각을 해봅니다. 언어학에서 이야기하기를 언어는 어떤 ’개념‘에 대한 ‘정의’ 를 하지 않고서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이해하는 의미의 범주가 다르기 때문에 대화 시작에 앞서 개념 정의를 명확히 설정 해야한다고 해요. 곱씹어볼 지점인 것 같네요. 결국 이르고자 하는 길은 평안함 속에서 생생하고 생동감있게 삶을 잘 살아내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이 이끄는 방식으로 수행하시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남은 하루 평안하세요.
저는 제 3자이고 법상스님을 좋아하는 일반인 입니다. 법상스님이 일부 다른 수행법을 평가 절하하는 뉘앙스로 말한다 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더 좋은 방식, 더 나쁜 방식은 없고 자신의 업에 맞게 와닿는 인연의 시기, 또 변화하는 인연의 시기가 있는게 아닌가 싶네요~~ 법상스님의 말씀은 그냥 다양한 의견중 하나 정도로만 받아들이심이 마음이 가벼워 지실거 같네요~ ^^ 좋은 하루 보내셔요~~
옛날 어떤 이가 육조 혜능선사께 묻기를, 염불에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선사께서 답하시기를,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를 부르는 것이야말로 만세(萬世)토록 세간(出世)을 벗어나는 묘도(妙道)요 부처를 이루고 祖師가 되는 정인(正因)이요 삼계(三界) 인천(人天)의 안목(眼目)이요 마음을 밝히고 자성(自性)을 보는 혜등(慧燈)요 지옥을 깨부수는 맹장(猛將)이요 사악한 것들을 베는 보검(寶劍)이요 오천대장五千大臧의 골수(骨髓)요 팔만총지(八萬總持)의 중요한 관문(關門)이요 시방허공이 멀고 아득하여 끝이 없음이요 광대한 일성(一性)의 원명(圓明)이요 흑암(黑暗)을 여의는 명등(明燈)이요 생사를 벗어나는 뛰어난 방편이요 고해를 건너는 배요 삼계三界를 뛰어넘는 지름길이다. 이것이 자성미타요, 유심정토이며, 이것이 본사(本師)이고, 화불(化佛)이다. 최존(最尊) 최상(最上)의 묘문(妙門)이고 헤아릴 수도 없고 끝도 없는 공덕(功德)이자 위대하고 훌륭한 믿음(信)이니라. 오직 이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를 마음속에 품어서 늘 잃지 말아야 한다. 생각 생각마다 늘 앞에 나나타고, 항상 마음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일이 없어도 이와 같이 염불하고, 일이 있어도 이와 같이 염불하며, 안락할 때도 이와 같이 염불하고, 병고病苦가 있을 때도 이와 같이 염불하며, 살았을 때도 이렇게 염불하고, 죽어서도 이렇게 염불하여, 이와 같이 한 생각이 분명하면 무엇을 다시 남에게 물어서 갈 길을 찾으랴. 이른바 오직 아미타불만 생각하면서 다른 생각 없으면 손가락 튕길 수고도 없이 서방극락 세계에 가느니라(육조스님은 "禪淨雙修集要"에서 염불공덕 찬송을 자세히 법문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