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데 며느리가 딸이 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대서 그장면에서 뿜었습니다. 정확하게 나에게 무례한 행동, 공격을 하는 사람(시모)에게 그에 맞는 거절과 반격을 할 수 없어서 울분이 쌓이는겁니다. 갑질하는 환자가 간호원 멱살을 잡아요. 그런데 간호원이 환자를 때릴수는 없으니까 참아요. 그 시점에 생기는 바로 그 억울한 감정이 그 며느리의 감정과 동일한겁니다.
나도 그랬어요 시어머니 친시어머니 아닌데 난 시아버지 남편형제들 동서들 7남매 때문에 많이 울었지요 지금 60중반인데 난 며느리한테 절대로 그리 안합니다 주변에서 또래들이 며느리 교육 그렇게 시키면 안되다고 말들 하는데 무슨 교육을 시키라는건지 기가 차네요 지들도 며늘였을때 반도 못하고 안했으면서 지금 시어머니 되니 벼슬인줄 알드라구요 잘하는건 없지만 잘할려고 노력하고 존중 합니다 편한지 주말마다 애델고 오고 반찬들고 가고 자고 가고 아들은 외국 있는데 불편한고 힘들지만 나름 행복합니다 너무 예쁘고 생일선물해주고 용돈도 주고 줄수 있을때 해주렵니다 정을 줘야 정도 오는거지요 내아들이랑 행복하게 잘사는건 시부모가 스트레스 안줘야된다 앞으로도 지금처름만 하고 살았음 좋겠다는 생각뿐인걸요
착한며느리로 살다가 시부모님의 행동을 보고 착하게 살기싫어졌어요. 시부모는 제부족함을 지적하기보다는 저희친정집얘기를 일부러 상처주려 작정하듯 해댔습니다. 그중에 가장 큰 상처는 아직도 용서하기가 힘들어요.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편찮으셔 병원으로 같이 가는길에 제게 툭 던지듯 니 아빠는 왜 아픈거냐? 담배를 피워서 그러지?하며 비웃듯 지나가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해대던 일. 그때 병원가신후 아빠는 돌아가셨고ㅠ 그때는 저도 왜아프신지 몰랐지만 후에 가습가살균제가 원인이라는걸 알았어요. 7년만에 임신해 출산후 한약지어주며 니집에서는 이런것도 안해주디?라고 툭 던지던 시아버님의 말들..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있는지 알고나니 솔직히 정이 떨어집니다. 어머님은 제가 직장생활하는게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 힘들다했더니 하시는말. 그럼 뭐 막노동할래? 지금은 이 두분에게 존경심이나 어른으로 대접하고싶은 생각이 1도 생기지 않습니다. 남편의 부모이고 아이들 조부모이니 어쩔수없이 기본적인 예의만 갖추고있어요. 전 우리 아이들이 이런 시부모 만날까봐 걱정도 됩니다. 며느리면 뭔가부족해도 사랑스럽고 가르쳐주고싶지 않나요? 저는 남들 보기엔 뭐가부족해서 그런말을 듣느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솔직히 어느것 하나 빠지지 않습니다... 너무 순하고 고분고분하니 오히려 더 공격하는거같기도해요..그래서 더이상 착한며느리 안하기로했습니다..
영상은 보지 않은 상태로 댓글만 쭉 읽어가는데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손이 떨리네요. 격하게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반성되는 부분도 있어서… 말이 칼보다 무서워질 때가 가족간 주고 받는 모난 말인 것 같아요. 혈연관계없이 가족으로 묶인 사람들끼리는 더 조심하고, 더 존중해야 한다는걸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남자가 잘하면 여자들은 시댁에 더 잘하고 싶어지고 시댁가고싶지ㆍ 힘들게하거나 듣기싫은 말하면 멀리하고 싶을것이고 ᆢ 나도 며느리가 곧 생기는데 아들편보단 며느리편이 되려고 다짐합니다ㆍ내생각만으로 너무 친하게 지내려하지않고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며느리를 존중하며 우리식구가 된것만으로도 고마워하며 살고 ~ 며느리가 책임으로 시댁을 오지말고 너무 보고싶어서 만나자고 할때만 보고 ~그것도 맛집 예약해서 만나고 (집에오면 내가 음식 준비하면 며느리가 편히 앉아 먹을수 없을테니까~)~이런 나의 생각인 거리속도와 며느리가 잘 맞기를 기도합니다ㆍ
지금 저희 시어머님이 그러시는데 정말 좋습니다. 시댁에 간 적도 결혼 15년동안 두 번정도이고 그나마 결혼 전 인사드릴 때 뿐,, 결혼 후는 늘 외식으로 밥 사주시고 용돈 주십니다. 세뱃돈도 오히려 아직도 저희를 주십니다. 가끔 친정부모님보다 좋을 때도 있습니다^^. 남편보다 전 시부모님이 더 좋습니다^^
어휴 참...올해 94세된 시어머니는 저랑 41세 차이 나는데 저는 결혼 후 계속 살찌고 남편은 점점 더 말라서 신경 쓰였는데요 어머니께서 쟤는 원래 말라서 살이 안 쪄 이 말씀 하시는데 어찌나 고마운지..제가 아무리 살 쪄도 지금 딱 보기 좋다고 하셨던 어머니...너무 살 많이 쪄서 살 뺐더니 얼굴 안돼 보인다고 걱정 하셨는데 어머니께 말 하는 법 많이 배웠어요 전 아들 둘인데 따라 하려구요
난 4대가에서 셋제며느리로 치매환자 시조부모 시부모와 살았다 시어머니 혈기분노 악마같은 얼굴을 하고 나에게 악을쓰고 소리지르고 정말 난 날마다 듣기싫고 보기싫고 불안해서 살수가 없엇다 지금도 그 시어머니 모시고있다 치매까지 걸려서 힘든생활을 지금도 하고있다 남편은 일도 도움 안되고 밖으로 만 나돌고 남들에겐 엄청 친절하게 대하고ㅡ내게 홧병을 주는 사람이다 난 화를 안내고 어설프게 착한사람ᆢ 어려서부터 늘 양보하고 참고 그러던 습성이 오늘날 내모습 진짜 싫다
저는 첫째 둘째 낳기 일주일 전까지 일했던 워킹맘입니다.둘째 낳기 이틀전에 시어머니가 피임 수술을 아이낳을 때 저보고 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그 말이18년이 지난 지금도 아픔니다...가족 계획은 저희 부부가 하는건데 무슨 권리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는지...인격적인 대우를 못 받는게 정말 힘들었던것 같아요.
경제적 인 여유도 없으면서 혼자살겠다고한 시어매도 있읍니다 당신혼자 편하게 살겠다고 하며 결국 자식등골 빨어먹는거죠 돌아가셨지만 울시어매 혼자있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만 4개월있다 갔네요 가고난뒤 남편이 처음으로 속내을 털어놓는데 순간 남편이 불쌍하게 느껴졌어요 이기적인 시어메
미움의 씨앗은 시모가 먼저 뿌리는거다. 단순히 아들을 뺏겼다는 미움과 질투로부터 비롯된 미움의 씨앗. 뿌린대로 거두는법. 늙은 시모가 뉘우치고 반성하지 않는한 아들은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미움의 씨앗을 뿌리는 시모들의 특징은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유아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사랑을 줘, 관심갖고 예뻐해줘 ' 현명한 시모는 자기 아들이 아내와 행복하게 잘 사는것만으로도 감사함과 뿌듯함을 느낀다.
신혼때 오랜 우울증이 있으셨던 시어머님께서 아버님과 싸우시고 새벽에 신랑에게 전화해서 네아버지를 데려가라고 하신적이 있었어요. 이런 화풀이를 일방적으로 겪는 일들이 쌓였던 결혼 6년차때 시어머님께서 저에게 전화하시며 또 해대시길래 어머님 아들 데려가라고 하고 마구 싸웠습니다. 어디서 배운거냐 네집에서 그리 가르쳤냐 그러시길래 네, 그렇게 배웠습니다. 전화를 끊고나니 시어머님 부재중 전화가 29통이 넘게 오는데 안받았습니다. 몸은 떨고 있지만 너무 속이 시원했습니다. 내안에 다른 힘을 키울수 있겠더라고요. 저도 독박육아로 죽어라죽어라 우울증이 오려했었는데 내면의 힘을 키워버린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뒤 저는 시댁가서 무릎꿇고 사과를 합니다. 어머니가 우울증이 힘드시다고하여... 그래도 화를 낼수 있었던 날이 있어 아직 살고 있습니다.
결혼하고 깨달은게 있다 우리부모님 맨날 싸우셔서 한심해보였는데 화를 표현하는 말만 하셨을 뿐 조롱비아냥은 안하셨던것같다 홀시어머니..하..조롱비아냥 고수다..내가 왜 이런 이상한 집에와서 조롱을 들어야하나 내가 결혼하자했나? 내가 당신이랑 사나? 화병이 암이 되었네..교묘한 악마다 다시는 안보기로 다짐했다 안볼순 없지만 마음에서 인류애를 지웠다...
저도 착한아이 컴플렉스가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해서 그걸 해결하느냐고 몸고생 마음고생을 합니다. 그렇게 해준다고 고마워하는것도 아니고 잘못되면 욕먹고, 욕안먹으려고 꾹참고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장난 아닙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자꾸만 사람과의 관계를 넓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의 엄마는 덕선이 부모님과 다르게 저런 주장을 할수 없게 했던 분이 였습니다 오늘 강의 재밌게 들었네요
갑자기 20살이 되었다고 해서 완전히 독립이 되긴 어렵죠..~ 미국 처럼 고등학생 때 부터 파트타임으로 알바를 하는 것이 한국엔 보편화가 되지 않았으니 (한국 고등학생들은 알바한다 그러면 엄마들이 혼내죠. 공부해야하니까요) 20살이 되어 처음으로 일이라는 것도 해보고 월급도 받아보잖아요. 그럼 거기서 예산을 세워서 원하는 것을 사보기도 하고 저축해보기도 하고 돈이 없어서 아껴써보기도 하고 하는 과정이 다 준비과정이죠. 학비는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더라도, 자취하면서 집 청소도 해보고 요리도 해보고 하는 과정이 모여서 20대 후반이 되면서 직장을 가지게 되면 자연스러워질 듯하네요. 미국에 대학생들도 학비 기숙사 부모에게 지원받는 아이들 대부분이예요~ 점차 독립해나가는거죠
출근전 아침밥 먹으면서 강의 듣다가 울었어요. 55세 되는 지금까지 착한딸, 착한친구, 착한 며느리,착한 아내. 저를 대표하는 말이 착하다 인데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늘 삼키고 가슴 앓이 많이 했어요. 버림받을까봐 나를 없애고 늘 다른사람에게 맞추며 살았네요. 강의 잘 들었습니다.
답글을 달았지만 화병날거같아 댓글을 달아봅니다 동서가 있지만 바쁘다며 시댁에 잘 오지않아 저는 엄청 멀리 살지만 큰며느리가 해야된다는 시부모 ~ 그래서 차례.제사 혼자 다 했구요 어머니 아프면 저희집에 모셨어요 같은 여자입장에서 짠하고 마음이 아팠거든요 몇달전 또 수술하고 저희집에 한달정도 모시면서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네요 오래전 친정엄마 장례식에 결혼한시누.시동생등 거리가 멀다고 시어머니가 못가게 했고 부의금도 못내게 했다는(저는 정신건강상 잊고지냈어요) 얘기를 아파서 요양하는 저희집에서 또 말을 하네요ㅜ 또 딸낳고 백일도 안되 시댁 가니 아들 안고 안올거면 시댁에 오지말라는등등 하ㅜㅜ 지금 생각하니 참 어의없고 바보로 살았습니다 생각하니 눈물만 나네요 이걸 어떻게 풀어야 될까요 ??? 결혼 23년차입니다
많이 속상하시겠어요 님과 같은 상황을 겪은 대한 민국의 며느리들이 참 많습니다 저 역시 그랬구요 그 업보는 당신들에게 다 돌아갑니다 몇년전에 저도 겪었는데 몇년동안 매일 눈물로 세월을 보냈네요 결론은 내려 놓는겁니다 착한며느리 버리고 그래 나는 나쁜 며느리로살겠다 하니까 맘 편해져요 애써 잘 하려고도 말고 나 자신만 돌보며 살 기로했습니다 화병 공황장애까지 왔었지만 내가나를 돌봐주니 천천히 회복되더라구요 남 일 같지 않아 장문의 글이 되었네요 힘내세요 저는 명상이 도움이 되었어요
ㅎ 격세지감입니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란 말이 며느리는 백녀손님이 되었네요. 자녀도 남편도 사위도 며느리도 부모님도 모두 백년손님이라 여기고 예의를 갖추면 모두 평안합니다. 실수할 일이 줄어들지요.... 저는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존대말을 썼습니다. 언어를 순화하면 마음도 좀 쉽게 제어가 되더군요.
며느리든, 아들이든, 딸이든, 시부모, 장모 장인이든 그냥 보면 인간관계인데, 존중과 배려가 있으면 이런 갈등들이 있었을까. 그런데 왜 며느리에게 유독 이런 것들이 고려되지 않을까. 5060대 지금 시어머니들도 본인이 며느리였으면서 이런 류의 이야기를 20년 전에도 하고 있고, 입 아프다.
여기에 댓글 다는 시모들 아직도 진짜 모르는구나... 며느리 괴롭혀봤자 본인들이 물고빠는 아들들만 피곤해진다는걸........ 본인들도 어릴적에 남편들 잡아먹었을거면서 왜 똑같이 되물림하지? 멋진 어른이 될 생각은 왜 안하지;; 며느리가 맘에 안들면 우리 아들은 처가댁에 잘 하고 있나를 먼저 되돌아보는게 사람이다. 진짜 다들 양심을 가져라 아들이 무슨 보물이냐? 딸도 보물이다!!! 에라이 못된마음들 - 그렇게 못되게 구니 똥못가릴때 며느리한테 버림받는거다 에휴.. 다 돌려받는겁니다 본인들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는걸 아직도 모르심; 🎉🎉🎉 며느리한테 마음 안좋은분들은 망한노년이라 생각하심 될듯🎉🎉
딸같이 생각한다하시고 명절이면 본인 딸 올때까지 기다려서 술상 대접하는게 당연하다시는 어머니~! 아들 아파서 죽을 고비 겨우 넘기는데 중환자실 있는 아들두고 나에게 인복없어 아들아프다하시는 어머니~! 좀만 빈정상하시면 오만 막말하시는 분이 며느리 사랑한답니다 과연 진심이 뭘까요~? 난 절대 우리 어머니 같은 시어머니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아직도 기억나에요 제 생일날 전화와서는 남편(자기아들) 한테는 그래 생일날 밖에서 외식하는거지 해놓고는 며느리 바꾸라고 해놓고는 내일 출근하는 샤람(자기아들) 피곤하게 뭐 생일이 대수냐며 일일히 챙기냐고... 그때 차 안 블루투스로 본인 아들이 듣고 있는지도 모르고 막말하던 시모 그 이후로 설날 추석 인연 끊었네요 남편도 충격먹은거죠 설마 자기 엄마가 그런 사람일꺼라 생각도 못했죠 그렇게 애기해도 자기 엄마가 며느리를 얼마나 아끼는데 했던 남편이 먼저 인연읗 끊더라구요
와 난 김치도 안먹고 김장해본적도 없는데 결혼 전부터 김장하러 오라고 그럴때 소오름 ~~~ 그리고 우리 집안 들어오려면 너가 잘해야지 ~~란 말에 소오름 남자친구는 가난해 학비도 없어서 대학도 못갔는데 .. 결혼이 하기싫은 가장 큰 이유들.. 명절에 자꾸 놀러오라는데 가서 진짜 가서 손하나 까닥안코 놀면 어케 반응하실지 ㅋㅋㅋ
재수, 입학, 휴학, 군복무, 복학, 졸업, 취업, 결혼으로 만세 3창 불렀것만 소용 없어, 외동아들 독립의 그 순간부터 내게 아들은 없다 결심했는데 어머니 어머니 뭐가 필요해요, 뭐가 먹고 싶어요 하는데 안 해 줄 수 없어 1년 중, 명절때 손님 대접 받는 며느리, 점심 먹으로 아이랑 가볍게 왔다 가라, 아무 것도 못하게 했어요, 손에 물 묻히지 않게, 가족들 생일때 밖에서 만나고, 전화도 톡도 며느리가 먼저 할때만 받고 집에 놀러 오세요 라 먼저 말할때 가선 , 주방엔 아예 안들어 가 차 한잔 마시고 오는 것으로, 할머니 자고 가라 붙잡는 손자 덕에 서너번 자고 왔고, 어머니랑 어디 가고 싶다 할때만 여행 가능, 지켜야할 예의와 선 넘지 않고, 지키다 보니 며느리가 별 스트레스 없이 편해, 고로 제 아들도 편해, 온 집안이 평화롭네요, 대신 제가 제 속으로 삶고, 찌고, 볶고 맘에 안들고 미더운 것들, 스스로 다 묻고 나니, 세월이 말해 주네요~~며느리가 예쁘게 보이기 시작, 결혼생활 9년차, 그져 잔잔하게 흘러가길, 3식구 건강하고 별 탈없이 살아가는 동안 나이 더 먹은 제가 귀엽게 봐 주는 것으로요^^
요즘시대는 시엄니가 며는리 눈치보면서 동서 시누만부려먹는 집구석도 있구 제삿날 아들 며느리는 일부러 해외여행보내버리고 명절날도 일부러 늦게 오라하고 동서는 종부리듯 부려먹는 우리형님 근데 지금은 상전대우해줬던 며는리로부터 구박 엄청받음 그냥 서로 있는그대로 진솔하게 하면될뜻
수많은 어록 중에 떠오르는거.. 며늘은 원래 지집이 없단다 시집도 내집 아냐 친정도 내집 아냐 그게 글케 좋아서 싱글벙글 웃으며 말할 일일까.. ** 명절때마다 고정멘트 내가 다 해놨고.. 며늘 길될까봐 한개는 남겨뒀다 시모의 외며늘이라 일할 사람은 고부 둘 뿐인데 이래저래 두 여자가 같이 하면 될것을 내가 참 대단한 시모다 너 그거 알아둬~ 하고 하는 말인가 싶지만 그 하나 남겨둔 일 하는 며늘이 참 고맙다고 감격할까요??
며느리 자식이라 생각하는 일 쉽지 않음 말이쉽지 진정한 자식 수준 될려면 인고의 세월을 겪어야만 자식 비슷한수준으로 인정 받을수 있음 오십생에서 가장 와닿지 않는말 난 너를 딸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것두 아들낳으면 한 구성원 정도로 인정 받을수 있음 정말 저말 정말 모르고 이상향만 가득한 말임 자식으로 인정 받으려면 진짜 자식 이여야 함 결혼전부터 병간호에 모든걸 준 내 경험에서 그말에 속아본 사람으로 저말 진짜 화남
요즘 다양한 매체와 관계로 많은 것을 간접 체험다 보니 좋은 시부모, 며느리역할 어려워요. 서로 상처받고 이겨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30년 넘어 감정 표현했지만 댓글 보니 3년 만에 관계가 소원해 편해졌다고.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내 자식 생각해 잘해주면서도 앞에서 내색은 안해도 속으로 서운할 때 있지요.
보수적이고 이기적이고 남한테 피해안주니 자기들은 양반이라 하시는 시어머니 나한테 정신적으로 피해줬으니 양반이 아닌거지요 딸보다 좋다는 말 부담스러워 사양합니다 같은 한국 이지만 깡촌같은 시골에서 자란 남편과 살고계시는 시어머닌 그어떤 상식으로도 이해시킬수가 없고 문화 조차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가치관과 문화가 틀린사람은 맞춰서 살기도 힘들뿐더러 시도조차 안하는게 행복한 길인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