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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강의 사무라이 이도류의 창시자 무사시(만화 배가본드 주인공)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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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시 #이천일류 #이도류 #미야모토무사시 #역사 #일본역사 #사무라이 #오륜서 #간류지마결투
#당신이몰랐던이야기 #당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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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무사시,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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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сен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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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698   
@user-hh8ej1ym8s
@user-hh8ej1ym8s 2 года назад
배가본즈를 읽어보기 전에 무사시에 대해 알고싶어 검색하다 우연히 보게됐습니다~ 영상의 구성, 전환, 설명, 자막 등 너무 깔끔하고 가독성도 좋아서 이해하고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편하게 볼 수 있었던 영상이었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myeonghakkim1868
@myeonghakkim1868 2 года назад
베가본즈 작가님 공부하신다고 도중에 그리는거 멈추셨는데 아직도 안돌아오셔서 결말을 포기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user-uq5fu2ch7c
@user-uq5fu2ch7c Год назад
다시 오신다고 합니다 작가분
@outerheaven4570
@outerheaven4570 Год назад
@@user-uq5fu2ch7c 슬램텅크는 잘만 그리던데,
@user-bo7zt5gk1z
@user-bo7zt5gk1z Год назад
무사시의 최고능력은 칼싸움이나 전략 예술이아닌 자기 자신을 상품화하는 마케팅능력임
@감나무-x9h
@감나무-x9h 3 месяца назад
마케팅이 뛰어났으면 쇼군 검술사범 했을듯 쇼군이 미야모토 무사시는 대단은 하나 저건 다른사람이 익히기에는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신나서 오바 한걸로 생각됨 쇼군이 바로 밴때림 마케팅을 잘하는건 야규고 미야모토 무사시는 50살 먹을때 까지 병법 한우물만 판듯 그걸 증명하듯이 노후에 아주 잠깐 반짝 좋은 대접을 받았지 그전 까지는 그냥 백수 건달 이었음 오륜서가 유명해 진것도 무사시가 마케팅을 잘했다기 보다는 일본 유명 기업들이 손자병법이나 오륜서를 많이 등용해서 사업을 했는데 어? 오륜서 쓸만한데? 이래서 유명해짐 실제로 오륜서 읽어 보면 손자병법에는 없는 심리전 마음가짐 등등 대표적으로 바위같은 마음 이라던지 검짓밟기 등등 상대를 쓰러뜨리는 법이 많이나옴 우리가 게임한판 할때 느끼는 심리전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음 뭐 이런거 다떠나서 이름 딱 세글자 "최" "배" "달"로 오륜서가 증명됨 그에 반해 야규가 마케팅을 잘하는게 오륜서는 모두에게 공개 되었지만 야규는 무슨 오의서 이딴게 특정인물에게만 전수된다는 무슨 낭만있는 개구라를침 아직도 오의 전수 받을라고 야규 도장 찾는 젊은이가 많음
@qwertyuiopa-b8h
@qwertyuiopa-b8h Месяц назад
노래방 출근하는 너네 어머니처럼?
@user-xi8dp2pr1c
@user-xi8dp2pr1c 8 дней назад
​@@qwertyuiopa-b8h맞는 말인데 왜 화남?
@cardiyred
@cardiyred 3 года назад
배가본드로 무사시를 처음 알았는데, 작가가 더 이상 안 그려서 너무 아쉬움
@user-qg3wc1ws9x
@user-qg3wc1ws9x 3 года назад
고등 학창 시절 봤던 배가본드가 완결은 커녕 아직 휴재 중인데 그때 학생들은 머머리가 되구 남은 머리엔 흰머리가 나구 배 나온 아재가 되었네요
@johnchoi3021
@johnchoi3021 3 года назад
고3, 20살때 배가본드 그림체가 맘에 들어 재밌게 보고 따라 그렸었는데 어느덧 20년이상이 지나갔네요...
@user-bw6hj8qx5v
@user-bw6hj8qx5v 3 года назад
베가본드 존잼이었는데... 그걸로 무사시 입문했지
@kanghyunyoo6690
@kanghyunyoo6690 3 года назад
아이고....
@ypj5275
@ypj5275 3 года назад
배가본드는 그래도 역사물이고 무사시 관련 서적이 많아 결론이라도 알죠. 베르세르크는 작가님이 돌아가셔서 결론을 못봅니다. ㅜㅜ
@goyangi2014
@goyangi2014 3 года назад
아재요…
@otatryu2943
@otatryu2943 3 года назад
일본에서도 논란이 있기는 하나 최강검사 10인 안에는 꼭 들죠. 일전에 묘를 다녀왔는데 명성에 비해 초라하더군요.(쿠마모토와 분골하여 두 군데 입니다). 딴 걸 떠나 칼을 두 자루쓰고 무패에 예술까지 조명되는 이런 캐릭터 자체가 부럽습니다.
@Yui-Myon
@Yui-Myon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게 일뽕 이미지 메이킹인거임. 닌자도 원래 개좆밥 심부름꾼 집단인데 그걸 나루토로 멋있게 만든거. 최강이라는 거는 대체 어딜 봐서 최강이라는 건지 모르겠네여. 쇼군한테 공식으로 인증 받은것도 아니고 당대에 강했던 검사들을 찾아가며 싸워서 죽였다면 역사서에 이름이 남았을텐데 그런 것도 없구요.
@user-rr8xf4qv3d
@user-rr8xf4qv3d Год назад
댓글들 보면 느끼는게 이나라 사람들은 자국의 역사든 남의 역사든 까는거 겁나게 좋아함.
@user-vo9wx3le5g
@user-vo9wx3le5g Месяц назад
검술은 아마 일본 사무라이가 세계 최고일듯
@김인수-k2w
@김인수-k2w Год назад
무사시의 오륜서는 전투환경에 따른 유리한 무구선택 등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한 무사시 개인의 신념이 들어간 책인데 이게 높은 사람들한테 이력서 처럼 자기 써달라고 올리기 위해 쓴 것이라서 막 거창하진 않음 게다가 무사시가 죽기 직전까지 중요한 중책을 맡은 적도 없고 말년이 되어서야 현 한국으로 치면 9급 공무원 혹은 청소년 복지센터 취직 급의 매우 낮은 직책을 얻었음 그래도 제자들이 꽤 있었고 수많은 피래미를 가지고 논 건 맞으니 동네반달 대장쯤이라고 보면 된다
@user-nj5uz7ec1s
@user-nj5uz7ec1s Месяц назад
이런사람들은 좀 안타깝네 ㅠ
@김용훈-m8x
@김용훈-m8x 2 года назад
교토에는 무로마치 라는 검도장이 있었습니다. 교토에서 유일무이한 권위를 지닌 검도장이였었습니다. 요시오카 집안은 대대로 아시카가 가문의 검술 사범을 맡고 있었으며 아시카가 가문의 15대 후손인 요시아키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추방당한 뒤로부터 요시오카 집안도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오다와 도요토미 양정권의 군주들은 검술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검술의 가치를 인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거부했습니다. 요시오카 집안은 당시 유서 깊은 가문으로, 집안의 주인들은 대대로 겐포라는 이름을 물려받았습니다. 요시오카는 별도의 염색업을 통해 수입을 얻고 있었으며 특히 검정 염색법에 대해 각별한 비법을 지니고 있어서 검술보다도 염색업 쪽이 크게 번창했다고 합니다. 무사시는 이런 집안에 도전장을 던진것이죠. 요시오카 집안의 검법 닉네임은 교류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교토의 검법 중 하나로써 동작과 몸놀림이 굉장히 화려했던 검법이였습니다. 요시오카 집안은 교토에서 정직한 겐포로 알려져 있었으며 대대로 정직을 가훈으로 삼아온 이 집안의 당대 주인은 요시오카 세이주로 였습니다. 간몬해엽에서 장검을 쓰는 코지로와의 후나지마 섬에서 벌인 결투 보다 . 무사시가 무명 검객에서 이름을 날린 검호가 되고 훗날 남길 그의 명예를 결정지은 것이 바로 이치조 사 결투였습니다. 에도 시대 당시 무사시는 전국 지방을 떠도는 낭인출신의 무사였고 , 가타기누를 입었습니다. ( 카타기누 , 천민이 입는 옷 ) 옷을 통하여 당시 살벌한 사무라이 계급 사회를 알수 있죠 옷에서 부터 무사의 계급은 이미 티가 났으니까요. dvd나 소설 , 만화에선 시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사시를 중심적으로 상당히 과장된 픽션을 많이 넣었죠 일전 이천기와 무공전도 읽어봤는 데 시대적으로 그렇고 무사시에 대해 많은 부분을 미화시켰더라구요.. 이제 이치조 사 결투의 실제 역사 흔적을 찾아가봅시다. 이치조 사 마을은 교토의 산조 대교에서 약2리쯤 떨어진 곳이며 언제나 안개가 자욱한 곳입니다. 그 안개는 우류 산 이라는 곳에서 피어오릅니다. 교토의 히가시 산 부쪽으로 이어진 고지대로써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에이 산이라는 곳과 만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치조 사 마을은 우류 산의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곳 입니다. 실제로 가보시면 이곳에 무사시와 요시오카 결투의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요시오카 측에서는 조총부대와 궁수를 포함하여 총 100명의 문하생들을 배치 시켰습니다. 무사시가 정문으로 올것을 대비하여 이치조 사 삼거리로 이어진 길가에 인원을 대부분 매복 시켰습니다. 무사시는 이 대결에 만전을 기하였고 요시오카 측은 자신들의 수가 많은 것만 믿고 방심하여 이번엔 모두가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하에 니시노토인 이라는 요시오카의 저택에 머물러 있었는 데 이치조 사 삼거리 가장 위쪽 정문 방향 가장 위쪽 멀리 떨어진 대장기가 있는 후방을 어두운 새벽 시간에 기습하여 대장을 포함 15명이 즉사 하게 되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요시오카 측에선 무사시가 사라진 뒤에야 사태를 파악 할 수 있었고 무사시는 산길로 교토를 무사히 빠져나가게 됩니다. 영화나 dvd에서는 해가 떠 있는 대 낮에 싸우는 데 벌건 대 낮에 눈이 띄일 정도로 대놓고 싸우진 않겠죠 그래서 검은 색 하오리 가마를 맞춰 입고 몸이 몹시 힘들고 졸립고 느슨한 새벽 시간에 기습을 한 것입니다. 이치조 사 대결 이후 에도로 갈적에 무사시는 이 결투 내용을 만천하에 공개하였고 100명이 넘는 요시오카와 싸워 이겼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대장을 베면 싸움에서 이긴 것이라는 전통이 존재하는 한 무사시의 주장은 그르지 않게 됩니다. 무능한 것만큼 참혹한 것은 없으리라.. 요시오카는 그 이후 검술도장의 간판을 내리고 염색업을 주업으로 바꾸게 됩니다. 전쟁 역사를 보면 다수의 인원과 소수의 인원이 싸울때 대부분 다수의 인원이 이긴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오히려 실제 역사에서는 소수의 인원이 다수의 군대를 제압한 전쟁도 많은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꺼라위키 , 혹은 쉽게 취득할 수 있는 자료보다는 본래 기록 보존 되어있는 현장답사를 통하여 몰랐던 사실에 대해 아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쓴 책은 오륜서 외에도 , 검도경 , 오방짓태도 , 병법삼십오관조등 다양항 자필 책을 수필로 써서 남겼습니다.
@user-lv7so1wj3j
@user-lv7so1wj3j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전문가 ㅇㅈ 합니다
@Yui-Myon
@Yui-Myon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래서 요시오카 가문은 대체 누가 죽은건가요? 그냥 세이주로만 죽고 끝난거에요? 동생인 덴시치로와 또 그의 아들은 살아서 염색업을 했던건가요 결국 뭐 100인이랑 다 싸운건 아니네요 ㅋㅋ 기습해서 혼란한 틈에 킬딸치고 ㅌㅌ
@user-lj6md9el1x
@user-lj6md9el1x 3 года назад
간류지마 전투때 굉장히 추운겨울날이라 그걸 안 무사시가 일부로 늦게간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렸을때 이 말 듣고 싸움은 전략적으로 하는거다라고 생각했는데
@Yui-Myon
@Yui-Myon 5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럼 애초에 싸우자고 해놓고 아예 사람들 풀어서 죽이면 그것도 싸움이니까 상관없겠네요? 검을 들고 싸우면 검으로 승부를 봐야지 대체 그게 무슨 짓꺼리 입니까 전략적으로 1:1하는데 활쏘거나 총 쏘고 창들고 창도 던지고 뭐 돌도 던지고 이러고 이기기만 하면 끝인가요 ㅋㅋ 먼저 대결 장소에 와서 뭐 함정이라도 판다음에 그쪽으로 몰아가거나 쫓기는 척하면서 함정에 빠뜨려서 쉽게 이기는것도 전략이구요? 검으로 얘기하던 시대에 저런 짓꺼리를 해대며 산다고 깝쳐댔으니 참 신기한 인물이긴 해요
@LetMeBliJu
@LetMeBliJu 3 месяца назад
일부러러러럴러ㅓㅓㄹ러러러러러
@robert707075
@robert707075 3 года назад
어느 일본학자가 연구조사해 발표한바로는 무사시와 코지로는 동시대 인물이 아니라서 싸울래야 싸울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즉 무사시의 신화는 후세인들의 창작물이었으며 실제로는 구라가 심한 그저 평범한 사무라이 였었다고.....
@김용훈-m8x
@김용훈-m8x 2 года назад
무공전과 이천기가 시대를 잘못 지필하였죠 아주 잘못된 픽션이 많고 미화를 많이 시켰습니다. 실제 역사로는 무사시는 1584년 3월 생이며 간몬해엽 후나지마섬 결투가 1612년 4월에 시노모세키 부근 섬에서 치루어졌으니 시대를 따라 계산해봐도 당시 무사시의 나이는 29살이였고 에이치 젠 출신인 장검 유파 한국 검법 닉네임으론 호절도를 사용하신 사사키 코지로는그 보다 4살 아래인 25살이였습니다. (에이치 젠은 단검술의 대가 도다 세이겐이 이후 죽고나서 그의 제자들이 다시 힘을 합쳐 그의 단검술을 전파한 지방이기도 합니다. ) 사사키 코지로는 그때의 동시대 뿐만 아니라 지금 일본 사람들 조차도 사사키 코지로가 도다 세이겐의 제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도다 세이겐이 사사키 코지로의 제자라면 실제 나이가 70이 아니라 80이 넘은 노인이여야 합니다. 시대적 배경도 그렇고 , 모든게 잘못되었습니다. 각각 유파의 명칭 잘못된 부분들이 많습니다. 도다 세이겐이라는 사람은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를 정권 잡던 시절의 인물로 단검술의 대가 였습니다. 에도시대에서 활약했던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코지로와는 그 시대가 엄연히 다른 인물입니다. 그래서 무사시의 무공전, 이천기는 실제 사료가 될수 없고 역사학자겸 , 현지답사를 통하여 시대적 소설을 쓰시는 사바료타료와 추리 소설 작가겸 역사 학자도 사사자와 시호 씨도 그 부분에선 시대상을 명확히 밝혀냈습니다. (시바료타료 , 미야모토 무사시의 업적을 읽어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무사시가 사망한 나이는 1645년경 5월 19일에 사망합니다. 무사시가 사망하신 당시 나이는 62세 였습니다. 무사시의 정확한 출생년도는 1584년 3월 출생일 입니다. 무사시의 시대적 배경과 , 그가 걸어온 인생이 백포 구라라면 당시 도쿠가와 2대 쇼군의 검술사범이였던 야규 가문이나 야규 무네노리 조차도 구라로 인지해야합니다.
@user-pr7wy5cn5c
@user-pr7wy5cn5c Год назад
척준경도 그냥 좀 쌘정도죠ㅎㅎ 실제로는 그냥 중상위 장수였던...
@장가장가
@장가장가 Год назад
@@user-pr7wy5cn5c 그건 아닐껄요? 적진 한가운데서 적장 목을 날려버린 정사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arilim281
@arilim281 Год назад
무슨 개소리야?
@user-tm6bp2mv7v
@user-tm6bp2mv7v Год назад
@@user-pr7wy5cn5c 반란을 일으킨 자를 정사에 남길 정도라면 가짜는 아니죠! 도리어 그의 무공을 축소해서 기록했다는 게 옳은 생각일 겁니다.
@ohmalub
@ohmalub 3 месяца назад
제임스 본드 -007 배가 본드-무사시 (K-1격투기 선수)
@user-vs4qy4bv8v
@user-vs4qy4bv8v Год назад
와 이 영상 하나만으로도 정체성 다 튀어나오네요 잘봤어요
@ESSAY_J
@ESSAY_J 3 года назад
땅,불,바람,물,마음 다섯가지 기운이 하나로 모여서 오륜서가 됐구만
@TV-ro6qd
@TV-ro6qd 3 года назад
아재요 캡틴플레닛을 아시나요?
@ESSAY_J
@ESSAY_J 3 года назад
@@TV-ro6qd 알고있죠 아바타보다 먼저 있던 피부퍼런 지구지킴이
@user-xx1kx6ym3r
@user-xx1kx6ym3r 3 года назад
캡틴 플래닛 캡틴 플래닛~
@NESWAR네스워
@NESWAR네스워 Год назад
전국무쌍의 플레이캐릭터, 용과같이 켄잔의 주인공, 페이트그랜드오더 서번트 등 여러 매체에서 등장하죠 ㅎㅎ
@dlwogur5462
@dlwogur5462 3 года назад
전쟁에서 누구편에 싸웠는지도 논란이 있는 인물이 최강이라고? 그냥 쌉거품덩어리 인데 차라리 오다 노부가다를 최강이라 하는데 더 적절함
@user-nl6sh7in5o
@user-nl6sh7in5o 3 года назад
그쵸. 세세한 과정이야 어쨌든 그 정도의 인물이 어느 진영이었느냐로 논란이 생긴다는 자체가 말이 안되니까요. 그 자체로 무사시라는 인물의 일대기가 구라일 확률이 올라간다고 보여지네요.
@m880912
@m880912 5 месяцев назад
뭐랄까 순수한 검객이라기 보다는 병법자, 전술가이자 투사라고 보는편이 많긴하거 같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싸움꾼. 싸운 기록들 보면 순수 검술이 아니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이긴적도 많고.. 무사라 하기에는 그렇게 높은 봉록의 벼슬길에 든적은 또 없어서.. 오히려 양자인 이오리가 2500석정도 받은거 생각하면.. 명성에 비해서 좀 한미하게 지낸게 대부분.. 그가 부와 명예를 안따라간거다 하기에는 무사시 이전의 야규 무네노리나 카미이즈미 노부츠나 같은 검성들은 모두 꽤 높은 봉록도 받고 살았음.
@BLACK-hh6ih
@BLACK-hh6ih 2 года назад
사무라이는 너무 미화되었다
@userr7300
@userr7300 Год назад
브랜드화의 좋은 예
@bravo9423
@bravo9423 Год назад
한국만 빼액해봤자지ㅋ
@지뉴-h4o
@지뉴-h4o Год назад
+닌자
@j-type2112
@j-type2112 Год назад
일본만이 아닙니다. 모든 나라에 미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도
@user-hc5iq7gk1k
@user-hc5iq7gk1k Год назад
미화가 뭔 상관임 ㅋㅋㅋㅋㅋ 돈 많이 벌면 장땡이지 사무라이,닌자 이미지로 돈을 얼마나 쓸어담는데 안하는게 더 이상한거임
@bangdoll4500
@bangdoll4500 3 года назад
미야모토 무사시는 전혀 인기 없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인물 이었는데, 1920년대, 일본의 소설가, 요시카와 에이지가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대하소설을 썼고, 이게 어마어마한 히트를 치면서, 그당시… 군국주의로 미쳐 돌아가던 일제시대의 사회상과 맞물려 유명해졌고, 이게, 2차대전 패망 후에, 여러번 드라마화 되면서, 대중적인 인물이 되고, 오륜서도, 1960년대부터, 일본의 경제가 급성장 하면서, 일본의 어느 대기업 총수가, 경영학 지침서로 권장 하면서 유명해진 겁니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개인전술을 “병법”이라고 칭하고, 군대전략을 “군략”이라고 하는데, 이런 명칭혼란 때문에, 오륜서가 무슨 세계 3대 병법서니 하는건, 순진히 개소리 입니다. 오륜서의 내용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어떻게 하면, 가장 비겁하게 상대방을 죽이는가.” 입니다. 무사시라는 인물이… 생전에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증거는… 변변한 관직에 한번도 오르지 못했고, 50너머, 다 늙어서, 겨우 호소카와 가문에 들어간 보수가, 겨우 1년에 50석 말단이 끝이었음. 생전에 그렇게 유명했다면, 적어도 다이묘의 검술사범 정도는 되야 했는데, 그게 아니었고, 생전에 무사시의 평판이 어땠는지 알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증거. 여기서 또 유추 되는건… 무사시가 오륜서에 기록한 60결투 무패도, 이 봉록 50석을 보면 말도 안되는 구라임. 그리고, 전쟁에서의 전공이 제로. 결국 정리하면…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인물은… 1. 세키가하라 전투에 무사시가 참전했건 안했건간에, 여기서 아무런 전공이 없었고. 2. 그리고, 도쿠가와 막부 평화시대에, 자신을 알릴려고, 결투와 도장깨기를 하고다닌 망나니. 3. 망해가는 검술사범집안 요시오카 가문에, 아무런 원한없이 싸움을 걸어, 멸문 시킨게… 무사시 본인이 꼽는 최대 업적 이라지만… 정작 당대 이 업적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으며, 무사시가 정말, 평화시대 칼부림으로 유명해지고 싶었다면, 망해가던 요시오카가 아니라, 토쿠가와 쇼군의 공식 검술사범인… 야규 집안에 싸움 걸었으면 되었던 일. 참고 : 당대 기록중에는… 무사시가 간류에 싸움을 걸어, 1:1신청을 해놓고, 정작 간류지마에서, 무사시는 제자 4명과 함께, 사사키 고지로를 다굴쳐서 죽였다는 기록도 있음.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의문은… 무사시가 정말 간류지마에서 사사키 고지로에게 명예로운 승리를 했다면… 왜, 섬 이름이 무사시지마가 아니라, 아직도 간류지마 인가? 무사시가 실제로,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이나, 배가본드에서처럼… 그렇게 젊을때, 짧은 기간동안 폭풍 성장해서 명성이 자자한 라이징썬 이었다면, 요시오카 가문을 박살 냈을때… 전국의 내노라는 2,3만석 다이묘들이 무사시를 모셔가야 했는데, 실제론… 무사시는 50넘을땨까지 낭인신분 이었다가, 겨우 들어간게, 호소카와 50석 이었음. 결론 : 일본에 흔히 있는… 소설가의 역사왜곡으로 시작된… 부풀려진 사무라이 신화 이고, 오륜서 읽어보시면 별거 없고, 정말 야비하게 뒤통수 치는 방법이 자세하게 적혀 있음. 소설 구라와, 실제 역사를 혼동하면 안됩니다.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혼동하면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 입니다. 사무라이를 그렇게 신봉하고 싶으면… 구라로 점철된 무사시 보다, 차라리 가토 기요마사가 100배는 더 낫습니다,
@Ds-qn8tx
@Ds-qn8tx 3 года назад
그러게요. 요도도노와 히데요시 아들이 이에야스에 대항하며 전국의 낭인들을 불러모을때 실직자인 무사시도 왔었다고하는데 단지 왔었다 말고는 아무 전공이 없네요. 와서 해자만 매우다 갔나봐요. 무사시가 번의 검술사범이나 가신으로 취직하려고해도 검술이나 병법이 뛰어난게 아니라 무사시 특유의 운빨과 피지컬때문에 몸값에 거품이 낀거라며 다들 깠다고들었어요.
@wookyh4232
@wookyh4232 3 года назад
본영상만큼 흥미로운 댓글이네요 필력이 좋으십니다
@user-tf7ox6zf7f
@user-tf7ox6zf7f 3 года назад
그건 무사시를 비하하는 편 주장 그대로 배낀거죠. 요시오카에이지 소설 이전에 민간 구전 설화 노래 등에 무사시에 대한 내용 집대성 한게 그 소설입니다. 완전 허구 창작 판타지 물이 아니란 소리죠
@MrNimaKIN
@MrNimaKIN 3 года назад
진짜 웃기는건 가문의 명예를 위해 결투에 나선 요시오카 가문의 장남 나이는 여덟살이었습니다.
@흰둥이-b6q
@흰둥이-b6q 3 года назад
역시 항상 궁금했던점이 풀어지네. 그렇게 유명한 인물이 왜 관직이던 기록이던 없다시피했을까 했는데 구라였군요
@user-go6by9cc1m
@user-go6by9cc1m 3 года назад
7:55 쿠마코토? 이런 지명이 있나 싶어검색치니 라이쿠..마코토 라는 만화가가 나옴 ㅋㅋㅋ 뒤에는 잘 말한거 같고만 쿠마모토 겠죠? 녹음은 신중하게
@moonjae246
@moonjae246 2 года назад
근접 냉병기중엔 창이 제일인데 검을 신성시해서 창보다 검이 위에 있는거 같음 전쟁통밥 좀 있는 창든 아시가루랑 칼든 무사랑 싸우면 무조건 창이이기지
@삶의아름다움
@삶의아름다움 2 года назад
어떤 무기를 들던 쎈놈이 쎈거지~~
@katabatic_no1
@katabatic_no1 3 месяца назад
보통 검술3단=창술1단 2단 정도 차이로 보면 맞다함
@clouxerokim
@clouxerokim Год назад
"목숨을 소중히 하라, 일생을 동반할 한번의 결투를 위해" - 오륜서 중 ㅋㅋㅋ 걍 쫄리면 튀란 얘기임 그리고 진짜 튀었던 적도 여러번 있음
@user-zs9cp4ho3n
@user-zs9cp4ho3n 2 месяца назад
불리한 싸움을 피하는 것도 전술이긴 하죠
@PPongPong
@PPongPong 3 года назад
중국에서 쿵푸 판타지 만드는 거랑 비슷한 게 미야모토 무사시에요..
@user-sx5jm8dndm2
@user-sx5jm8dndm2 3 года назад
일본검술은 그옛날 조선에서 실전성인정받았습니다
@user-mv1kd7cq3z
@user-mv1kd7cq3z 3 года назад
@@user-sx5jm8dndm2 실전성은 이미 총이 등장한상황에서는..
@user-mv1kd7cq3z
@user-mv1kd7cq3z 3 года назад
@자동차 날아라 베가본드에서도 검술이라는게 시대에 맞지않다고 묘사는 되어 있더라구여..
@user-kj9df7zx3j
@user-kj9df7zx3j 3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 보단 나을듯
@user-vt8tm2wd1c
@user-vt8tm2wd1c 3 года назад
@@user-kj9df7zx3j ㅂㅅ ㅉㅉ
@dgl5243
@dgl5243 3 года назад
오륜서 특) 군략서적이 아니라 사무라이식 자기계발서 필사본 내용이 상이한게 많아 본인이 쓴게 맞는지도 불명
@김용훈-m8x
@김용훈-m8x 2 года назад
실제 오륜서보다 많은 사람들이 번역본에서 상당히 순화시켜서 퍼졌죠 그리고 오륜서에는 무사시의 니텐이치류 실제 다섯가지 카타 동작과 더불어 기술 이름이 상세하게 적혀있습니다.
@jhh8320
@jhh8320 13 дней назад
미야 오륜서 사서 읽었는데 별 내용이 없어 괜히 삿다고 하면서 버렸음. 참고로 검도만 20년. 했음. 대한검도도 했고요. 잘 봤어요
@uncensoredanunnaki3629
@uncensoredanunnaki3629 Год назад
무사시는 세키가하라 총탄소리에 무서워서 숨어 벌벌 떠는 걸 드라마에서 봤는데, 코지로를 이건 것도 해를 등지고 서서 이긴 것이고, 쌍칼까지 봤을때, 정정당당하기보다는 살기 위해선 온갖 편법을 다 쓴 거 같다.
@promax2638
@promax2638 Год назад
무사시와 조선시대 마당쇠가 붙으면 무사시 안될걸 키차이도 크지만 먹는양이 마당쇠가 열 배는 더 먹고 하루종일 무거운거들고 걷는 마당쇠의 다리는 무사시의 몸통만 했을거다
@user-ne6lh6lr9h
@user-ne6lh6lr9h 3 года назад
와 이런 사람은 처음알았는데 신기하네염
@study_rck
@study_rck Год назад
서군에서 싸운것때문에 도쿠가와 막부 다이묘 밑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설은 그럼 가짜인가요?
@user-ov5zm5rz3v
@user-ov5zm5rz3v 3 года назад
1.많은 이들의 오해가 있는데 중국이나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 병법서兵法書라면 곧 검술서를 뜻하는 것임. 그 까닭은 일본에서 병기는 오로지 사무라이의 칼과 활을 뜻했고 활은 사무라이 개인의 수신修身이라면 칼은 사무라이 개인의 기술을 뜻하므로 병법=병기술이 되는 것임. 단, 사무라이는 개인적으로 전사이지만 전투에서는 지휘관 역할도 하므로 칼을 대하는것이 곳 병사를 대하는 것이라는 통념도 존재함. 2.하지만 이러한 주류와는 이질적이게도 무사시의 오륜서는 중국의 육도, 삼략, 삼십육계, 손오병법 같은 정통의 병법서임. 바로 그때문에 '만약 무사시가 알려진 사실과 다른 인물이라면 그가 대륙의 인물 일 수도 있다' 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함. 3. 무사시의 시대는 검술이 사람을 베어죽이는 실용을 떠나 사무라이들의 자기단련을 위한 스포츠화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었음 그 말 많은 '요시오카 도장'도 실은 정통 사무라이가 아닌 도시 직인 출신의 개조가 기술을 고안해 도장의 문을 연 경우임. 때문에 대결이니 결투니 하는 것은 급증햇지만 실제로 칼들고 사람베어죽이는 일은 드물어지면서 검술이 스포츠화의 수순을 밟기 시작함. 4.이런 상황에서 미야모두 무사시라는 캐릭터로서의 존재는 일본이 전국시대로 대표되는 전란의 시대를 지나 평온기에 접어들면서 어떻게 사무라이의 성격이 변해 가는지를 적확히 보여주는 상징적 캐릭터임. 5.그리고 이 시기 미야모도 무사시는 자신의 성취를 알리기 위해 일개 사무라이로서는 건방지게도 검술서가 아닌 진짜 병법서를 써내려 간 것임...
@sunfllower78
@sunfllower78 3 года назад
내가 알고있는 무사시 이야기는 만화도 만화지만 가끔 인터넷에 올라왔던 글을 보면 그때 당시 무사시는 당시 일본인들 보다 덩치가 좀 좋은편 이라고 들었음 그리고 임기 응변이 좋아서 무조건 한길뿐이 모르는 일반적인 사무라이를 상대 할때 임기응변을 사용해서 이겼다는 설이 있음 사사키 코지로랑 싸울때도 일부로 늦게가서 초조하게 만들고 자기가 쓰는 칼보다 코지로가 쓰는 칼이 더 긴걸 알고 패를 젖는 노로 때려 죽였다고 그런 임기 응변이 다른 성주에게 좋게보여서 한자리 얻어서 오륜서도 쓰고 그랬다고 그리고 사사키 코지로랑 싸워서 이긴후 다른 무사들이 걸어오는 싸움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피했다고 들었음 무사시 보다 더 유명한 사무라이는 그 제자인지 조카인지 여하튼 그중에 하나가 있다고 들었음
@Sexymin988
@Sexymin988 9 месяцев назад
ㅇㅇ 근데 코지로 이후에도 대결하긴했음
@Yui-Myon
@Yui-Myon 5 месяцев назад
한자리 얻은게 고작 객장임. 전설적인 인물에 대한 대우가 겨우 그정도였다면 말 다 했죠. 개거품. 무사시보다 더 유명한 제자는 없구요. 스승 자체도 개거품인데 무슨.. 그나마 이름 알려진건 양자인 이오리 정도죠 이건 그냥 아들이라고 알려진거고 검으로 유명한건 아니니까요.
@ted3267
@ted3267 3 года назад
무사시 이야기는 구라가 9할이라고 알고 있는데.. 무사시가 그렇게 유명한 사무라이였다면 막부나 다이묘에 속해 많은 급여를 받았을 것이나 그렇지 않았죠.. 간류지마 결투도 무사시가 제자들을 끌고 가서 혼자 결투장에 기다리던 코지로를 다구리쳤다는게 정설입니다.
@내가너좋아하면안되냐
@내가너좋아하면안되냐 2 года назад
모든 사람이 돈만 밝히는 건 아니죠~ 시라소니도 재산이나 조직권력에 대한 욕심 없이 그냥 싸움을 즐긴 사람이었던 것 처럼 무사시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삶의아름다움
@삶의아름다움 2 года наза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죠
@user-qo1wm6cb1p
@user-qo1wm6cb1p 2 года назад
@@내가너좋아하면안되냐 시라소니는 동생들 삥뜯던 양아치 였음.
@user-ev2ih2oh8e
@user-ev2ih2oh8e 2 года назад
@@삶의아름다움 이말이맞는듯
@단신깡통
@단신깡통 2 года назад
@@삶의아름다움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기엔 둘이 다른 시대 사람이라...만난 적이 없음
@서서호근
@서서호근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진짜 가오 잡고있는건 박군수님 아닐까 사무라이는 일본이 많지 그리고 먼저 엽총도 받아오고 아무튼 섬나라가 돈이랑 까루님이 뭐라 그러셧는데
@rln202
@rln202 3 года назад
당몰이님 다음에는 유도 부탁드려도 되나요?
@user-ye2ts8ll1b
@user-ye2ts8ll1b Год назад
고ㅜ들 끼리의 검싸움은 결국 결투자 모두가 죽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승자가 조금 나중에 출혈로 죽게되고 패배자는 즉시 죽습니다.다만 기습에 의한것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user-of4wm9jv9q
@user-of4wm9jv9q Год назад
바람의 검심에 나오는 겐신의 스승인 히코 세이쥬로가 최강검객인 동시에 도예가라는 설정인데 왠지 미야모토 무사시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느낌임
@jhh8320
@jhh8320 13 дней назад
진검과 목검의 싸움에서 진검의 경우 무겁다. 1kg 이상, 노의 목검 가볍다 진검 공격 속도의 전환이 느리다. 목검 빠르다. 머리 맞는 경우 둘다 치명적이다
@이나-l7x
@이나-l7x 3 года назад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역사학자들은 무사시가 대단한 사무라이가 아니였을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를 통해서 다양한 매체에서 무사시라는 캐릭터성이 검성으로 소개되지만 역사적인 기록에서는 그당시 유명 사무라이에게는 기록에도 남고 다이묘?에게 벼슬을 받아 그의 검으로 활동했던걸로 알고있네요. 관심있으신분들은 조금더 찾아보시면 금방 나올거에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무사시는 그의 제자가 소설같이 남겨둔걸로 알고있습니다.
@dudyu2343
@dudyu2343 3 года назад
그렇다면 무사시가 매체에서 유명해진이유가뭘까요? 캐릭터가 좋아서인가
@이나-l7x
@이나-l7x 3 года назад
@@dudyu2343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무사시를 지금의 캐릭터화 한건 그제자들의 기록에서 그를 마치 시대의 무사처럼 표현한 내용이 많아서 그런거 같습니다. 물론 그가 직접쓴 책이 조금은 다양한 시각에서 무술이 아닌 싸움에 대해 관찰하지만 전설적인 무인은 아니였을거라고 하네요. 한국의 홍길동 역시 우리가 흔히아는 선한 모습과는 반대로 실존인물이 존재한다고 하네요. 이런걸 생각하면 아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지 의문이 드네요. 격투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모두 한번씩 이야기하는 부르스 리가 과연 무도가로써 실전성이 있는 레전드였을까? 라는 주제로 이야기하면 다양한 주장들이 나오듯이 사실 그냥 썰로 생각하시면 좋을거 같네요.
@내가너좋아하면안되냐
@내가너좋아하면안되냐 2 года назад
@@이나-l7x 진검으로 싸우다 죽거나 병신되는 시대에서 수많은 싸움을 하다 환갑이 넘게 멀쩡히 살고 늙어 죽었으면 실력자 아닌가? 살아남은 자가 진정한..
@user-oe3yq1do7m
@user-oe3yq1do7m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사무라이는 딜러계의 원탑간지인듯 특히 무사시는 노부나가와 함께 일본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
@chicherova7013
@chicherova7013 3 года назад
그리고 그 400년 뒤 무사시는 어떤 씹덕애니 회사에 의해 다시 되살아나는데....
@theheavendiver
@theheavendiver 3 года назад
그리고 할머니 뽀뽀를 받고 다시 가버림..;;
@user-zf4tc9pn5c
@user-zf4tc9pn5c 3 года назад
다른 세상 사람이라지만 우동이나 먹어대는 페도가 되어있었다
@user-jd6lf3dp8u
@user-jd6lf3dp8u 2 года назад
썸네일로 사용하신 이미지 파일 출처가 알고 싶습니다.
@Mabil25
@Mabil25 3 года назад
한요한이 이 영상을 좋아합니다
@user-jx1yh9vd3p
@user-jx1yh9vd3p Год назад
무사시는 유명하기로는 최고가 맞지만 검술은 카미이즈미 노부츠나가 최강임 무사시보다 강한 검술가로 츠카하라 보쿠텐, 아이스 이코자이, 마루메 나가요시, 야규 무네요시 및 야규가 2인 이상 추가 등등 최소 열명이 훌쩍 넘을 것이고 이름없는 고수들까지 하면 답 안나옴
@user-ov7zd3cs1x
@user-ov7zd3cs1x 3 года назад
8:02 이오리?? 야이~ 야바레~~
@victoriaalexandrina9839
@victoriaalexandrina9839 3 года назад
0:21 무사시.....소코?
@bkjjjjkkjjjjbbb
@bkjjjjkkjjjjbbb 3 года назад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한거죠ㅋ
@user-nt5xe3ce5b
@user-nt5xe3ce5b Год назад
따라서 무사시의 이도류는 이어지긴 했으나 후대에 이를 진짜로 한 사람이 없었다는..
@서한규-g4y
@서한규-g4y Год назад
신맨 타케조의 모티브가 무사시가 아니라 무사시의 본명이 신맨 타케조입니다.
@RapierDuello
@RapierDuello 3 года назад
이도류는 못참지
@INFJ7
@INFJ7 3 месяца назад
근데 24반 무예 배우면서 쌍검 왜도 쌍수도 배우면서 느낀건데 등패들고 싸우던가 양손으로 쌍검들고 싸우는게 어렵긴 해도 이기기 쉬울 것 같긴 함. 속도감 자체도 다르고 일단 배우고 연습하다보면 한손으로 싸우는것보다 두손으로 연속으로 싸우는게 훨씬 이득이 많더라
@ccobra2448
@ccobra2448 3 месяца назад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대망-미야모토 무사시편)의 인기 때문에 역대 최고의 검객으로 신격화 된 인물. 현재는 일본 내에서도 연구자들의 검증에 의해 검신에서 평범한 검객으로 레벨이 많이 다운 되었음.
@paiknak3165
@paiknak3165 3 года назад
오륜서가 3대 병법서는 오류같습니다. 미국에 사는데 손자병법은 서점에서도 쉽게 살수 있습니다. 오륜서는 본적이 없습니다.
@jun8569
@jun8569 2 года назад
The book of five rings라고 쉽게 구할수있는데요..
@paiknak3165
@paiknak3165 2 года назад
@@jun8569 얼마나 팔리죠? 구할라면 구하겠죠. 누가 보냐는 거지.
@hunhj827
@hunhj827 Год назад
@@paiknak3165 걍 본적도 없다길래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건데. 갑자기 뭐가 더 팔리는지 경쟁하고 앉았노
@goat-qc8kg
@goat-qc8kg Год назад
@@paiknak3165 ㅉㅉ
@chanlee2620
@chanlee2620 Год назад
사카모토 료마의 이야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2024GOTYBlackMythWuKong
@2024GOTYBlackMythWuKong Год назад
세계최강의 이도류 미야모토 무사시
@Knight_of_cydonia
@Knight_of_cydonia 3 года назад
간류지마 결투도 무사시가 제자들 이끌고 사사키 다구리 쳤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나저나 그림 상당히 잘 그리네.
@user-fu9rb1xf8y
@user-fu9rb1xf8y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바지랑대를 쓰는 사사키 고지로; 대결장(간류섬)에 가는 동안 무사시는 배 안에서 즉흥적으로 노를 깎아서 목검을 만들었고, 그걸 들고 배에서 내려왔다, 기다리던 사사키 고지로는 무사시가 채 땅을 밟기도 전에 물가에서 해치우려고 덤벼들었다, 그는 왜 목숨을 건 칼싸움에서 목검을 만들어 냈을까? 그렇다, 목검은 칼집이 필요없다. 당시 사사키는 칼집에서 칼(바지랑대)을 뽑고는 칼집을 물 속에 던져버렸다, 그걸 보는 순간 무사시의 비수와 같은 말이 사사키의 가슴에 꽂힌다 "고지로, 그대는 졌도다, 칼집이 필요없다는 말이지?" 이것은 사즉생의 심리전이었다, 무사시는 a. 일부러 몇 시간이나 늦게 나타났다, 고지로가 (사생결단 싸움에)기다리며 지치게 했다, b. 칼 집을 버렸다는 것은 더 이상 칼이 필요없다는 뜻이다! 이 한 마디 말로 상대의 기(氣:정신통일)를 흔들어 놓았다, 대꾸할 말이 없었고, 화나게 만들었다, 네 놈의 개수작은 익히 알고 있느니라! 가뜩이나 흥분하고 신경이 곤두서 있는 고지로...순간 머릿 속이 휭~ 했으리라. 테니스 황제, 페더러는 뭐라고 했나. 테니스는 멘탈(mental)게임이다 라고. 또, 골프는 99%가 멘탈이고, 나머지 1%도 멘탈이란 말도! 고수들끼리의 기술차이는 그야말로 의미없는 차이다. 무사시는 멘탈을 잡아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실행한 것이다.
@wjddngk
@wjddngk Год назад
이길 수 있는 상대와만 싸운다. 이길 수 있는 상태에서만 싸운다. 질 것 같으면 싸우지 않는다. 부상을 입을 것 같으면 싸우지 않는다. 미야모도 무사시의 검론은 내 인생의 모토가 됨..
@user-hf3hx5uf3s
@user-hf3hx5uf3s 3 года назад
5:28 달마도사님.....???
@user-nc9sn1zy7v
@user-nc9sn1zy7v Год назад
무사시는. 소설미화인물
@user-nx8jc1se9s
@user-nx8jc1se9s Год назад
미야모토무사시 는 얍샵한 놈임 다시말해서 그것도 머리가 좋으니 할수 없겠지만 일체 예의 법도 의리 같은건 찾아볼수 없습니다, 심지어 사사키고지로 의 전쟁터 에서 업적이 더 대단하고 명성높은 가문에 쓰임 받았습니다, 미야모토는 일생을 좋은 큰다이묘 밑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나도 높은꿈이 였습니다.
@shh3543
@shh3543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사무라이 평균 신장 140cm 칼두자루 차는 이유는 칼이 무뎌서 비상용으로 한자루 더 가지고 다님 최강사무라이고 뭐고 조선징수 밥 입니다. 임진왜란은 조총때문에 밀린거에요.
@kingking-dm2jp
@kingking-dm2jp 3 месяца назад
풉ㅋㅋ두자루가지고다닌게 그이유가 아닙니다.상황에 맞게 쓰기위함임 영화 미디어처럼 칼막고 방어하고 그럴수없음 그냥 원샷 원킬임 조선역사책에도나옵니다 일본검술 엄청나다고ㅋ
@user-vp2pq5rm3x
@user-vp2pq5rm3x 2 года назад
총, 활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최강의 사나이가 아니었을까...
@user-cf5yi3lg5u
@user-cf5yi3lg5u 2 месяца назад
기존사무라이:검은 하나로 족하고 두개는 거추장스럽다 미야모토무사시:그게 뭔상관 이기면 장땡
@microcube3382
@microcube3382 3 года назад
요시오카 형제의 후손들은 무사시가 굉장히 비겁했고 즈그 조상들을 절대 이기지 않았다고 주장함.
@JH-jx1bk
@JH-jx1bk 3 года назад
일본학계에서도 무사시의 검도 실력은 현재로 따지면 약 3단정도
@김용훈-m8x
@김용훈-m8x 2 года назад
목숨을 두고 결투를 벌이는 실제 진검시합은 단으로 통용되는 게 아닐 텐데 ... 그것도 학자가 그런 말을 했다고?? 실력이 있는 검객도 자칫 방심하다간 실력 낮은 검객이 그날 운이 너무나 좋아서 실력이 높은 검객일지라도 한순간에 뒤질 수도 있는 게 진검시합인데 ?? 현대 검도 처럼 안전을 보장하는 결투가 아닌 그런 전사들의 싸움에 일본학계 어느 소속 어떤 학자가 무사시에게 검도 3단을 운운했다고 하는 건지??ㅎㅎ 어떤 사실을 근거로한 자료를 참고했는 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 그딴 기록 없음. 꺼무위키는 예외 일 수 있겠지만
@JH-jx1bk
@JH-jx1bk 2 года назад
일본인작가가 편찬한 미야모토 무사시 일대기 처음 작가의 말에 나와있습니다. 10년은 더 된 책이긴 하나 고향집에 있으니 확인하면 알려드릴께요 ㅋㅋ 없기는 ㅋㅋㅋㅋㅋㅋ 알아보고 댓글좀 다시길 바랄께요 ㅋㅋ
@pageuup
@pageuup 2 года назад
@@JH-jx1bk 그건 그냥 작가 뇌피셜 아님? 꺼무위키랑 뭐가달라 ㅋㅋㅋㅋㅋㅋ 근거도없고 무사시는 검도3단정도이다. 이걸 뭐라고해야하냐
@user-sx5jm8dndm2
@user-sx5jm8dndm2 2 года назад
@@JH-jx1bk 그래도 떠돌이로 칼밥먹은 양반인데 죽도로 타격만하던 사람들이 상대가 되겠냐?
@moonjae246
@moonjae246 2 года назад
@@JH-jx1bk ㅋㅋㅋㅋㅋㅋㅋ그니까 일본인작가가 뇌피셜로 싸지른말이자나ㅋㅋ나무위키맞네 뭘 알아보고 댓글을달라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TV-py9os
@TV-py9os 3 года назад
제가 알기론 미야모도 무사시는 소설에서 만들어진 인물이 아닌가 합니다. 저도 실존 인물이라고 오래 생각했었는데, 정확한 역사적 근거가 없고, 실존 자체에 대해서 논란이 많습니다. 제가 틀릴 수도 있는데, 다같이 조사해 보고 따져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김용훈-m8x
@김용훈-m8x 2 года назад
소설로 만든 인물이라면 에도 동시대의 사람들 즉 제일 유명한 야규 가문이나 천하통일을 이룬 도쿠가와 가문 사람들 혹은 야규 무네노리 같은 사람들도 모두다 소설로 만들어진 인물로 받아 들여야합니다. 사사키 코지로나 미야모토 무사시 같은 사람들은 모두 에도시대에서 활약했던 무사들이였으니까요 간몬해엽의 후나지마섬 결투가 1612년 , 4월에 일어났으니 무사시의 출생은 1584년도 사람으로써 무사시가 정확히 29살 되던 해에 치뤄진 것입니다. 무사시의 오륜서 번역본은 실제로 해외 여러 방면이나 한국어로 번역 되면서 상당히 여러 부분을 순화 시킨것이 많습니다. 실제 오륜서에는 무사시가 만든 다섯가지 니텐이치류 자세의 카타가 등장하며 실제로 싸웠던 유파 이름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사시가 진검시합에서 썼던 상대를 기만한 수법이라든지 , (즉 비겁한 수법 ) 혹은 그의 잔혹성 또한 상당히 잘 기제 되어 있습니다. 어떤 병법가를 상대했고 누구를 죽였는 지 , 병법가가들의 검술 특징 , 또한 이름도 상당히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사시가 17세가 되는 해에 이른 나이에 무사 수행을 떠나고 가문 즉 (한)에서 떨어진 무사를 뜻하는 '로닌 신분'이 됩니다. 무사시는 원래 무사 가문이였으나 무사시의 아버지는 2번의 재혼과 이혼을 반복하여 가문의 맥을 잊지 못한채로 돌아가십니다. 그래서 무사시는 굉장히 낮은 신분의 위치에 있게 되고 가타기누를 입은 낭인이였습니다. (가타기누 : 당시 천민신분이 입는 옷) 당시 사무라이 계급은 옷에서 티가 나기 때문에 그 당시 에도는 상당히 엄중했던 계급사회임을 알수 있습니다. 왜 야규 가문과 싸우지 않았나.. 왜 오노 타다야키랑 겨뤄보지 않았나 하는 말들은 멍청한 말들로 그들 모두 도쿠가와 가문의 2대 쇼군의 검술사범이였습니다. 가타기누를 입은 계급의 무사시와는 상당히 다른 위치에 있었습니다. 야규 무네노리는 호족 출신이며 이토 이토사이의 인가장을 받아 도쿠가와 가문을 섬기게된 오노타다야키 또한 2대 쇼군의 검술 사범을 맞은 호족 출신이 됩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훗날 말년까지도 손님 신분으로 밖에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런 냉혹한 신분계급의 시대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30살이 되던 해에 참전한 오사카 여름 , 겨울 전투 이후 또다시 패배를 맞본 무사시는 단지 검술싸움으로만 모든 싸움을 정렵할 수 없다는 철학을 깨닭게 되고 결국 무사시는 검술 보다는 군사학 공부에 매진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무사시의 낮은 신분으로 인해 나름 요시오카와의 결투랄지 간몬해엽의 후나지마 결투등 무사시의 커리어에도 상당수 등용 부분에서 제외 되게 됩니다. 무사시는 상급무사가 받을 수 있는 감장이나 , 녹봉은 받을 수 없던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 구마모토의 영주와 오시가와라 가문에서 하급 신분인 무사시의 병법을 인정해주었고 극진히 대접합니다. 손수 사비를 들여서 무사시의 병법개발에 힘 쓸 수 있도록 지원해줍니다. 특히 구마모토에서는 당시 구마모토 영주가 직접 무사시에게 하사하였던 넓은 생가를 직접 보실수 있습니다. 저는 28살에 구마모토 미야모토 유적지를 직접가 보았고 손목 치기 달인이였던 니시무라 씨에게 자필 싸인까지 받았습니다. 구마모토에선 미야모토 무사시를 많이 동경하던 검도가들도 많더군요 만석의 녹봉을 받은 야규 가문의 사람들 보단 부족하겠지만 낮은 계급의 신분 치곤 이룰수 없는 대단한 업적이라 생각됩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검술 이외에도 투검술 , 직타법의 상당한 고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륜서 이외에도 , 검도경 , 오방짓태도 , 병법삼십오조관등 상황 따라 다양한 무기를썼던 무사시의 자필 책이 있습니다.
@WT-ej1zt
@WT-ej1zt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김용훈-m8x ㅇㅇ 무사시 빨고 싶은건 알겠는데 만들어진 이미지는 맞음. 좆밥은 아닌데 무슨 최강 사무라이 이딴건 절대 아님
@가츠-w9q
@가츠-w9q 3 года назад
척준경이 무사시랑 싸웠으면 어찌 됐을까???
@goodmanwoong
@goodmanwoong 2 года назад
저도 그런 상상하는데 ㅎㅎ 척준경 승리 예상합니다만 ㅋ
@삶의아름다움
@삶의아름다움 2 года назад
척준경이 걍 발라버림
@danger556
@danger556 Год назад
척준경이나 무사시나 ㅋㅋㅋ 다 후세에서 구라 펌핑90%이상 한 인물들 ㅋㅋ
@AsQer-q7t
@AsQer-q7t 4 месяца назад
160도 안되는 난쟁이라 괴수 척준경한테 ㅈ털릴듯
@루루애오-j3s
@루루애오-j3s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8:07 아니 피규어나 각종 인형도 잘 만드는 나라가 무사시를 왜 이따구로ㅋㅋㅋㅋㅋ
@굉장허네-y6z
@굉장허네-y6z 3 года назад
베가본드보면 사사키 코지로가 귀머거리에 말 못하는걸로 나오는데 실제 그런가요??
@skybluewhale
@skybluewhale 3 года назад
사사키 코지로는 실존인물이 아닙니다.
@kaosis876
@kaosis876 3 года назад
소설에서는 멀쩡하게 나오죠 싸가지없고 실력이 출충하고 악당같이 나옴
@user-nt5xe3ce5b
@user-nt5xe3ce5b Год назад
이도류는 기술이전에 완력이 문제라는. 일본 검술은 두손으로 칼을 잡고 휘두르는 강검인데. 이걸 한손에 든 칼로 막아낸다는게 엄청난 완력이 필요한 거
@kimsungwoo806
@kimsungwoo806 Год назад
존중할 만한 희대의 인물,개인의 절대적승리는 곧 전체의 승리가 될수 있음.진리는 많은 인원이 필요한것이 아님.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인되고 또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의인되리라.
@ClTY-HUNTER
@ClTY-HUNTER Год назад
코지로와의 전투는 무사시가 제자들과 다구리를 쳐서 이겼다는 썰도 유력하다고... 무사시는 정정당당과는 상관 없고 이기는 것에만 중점을 두기 때문임. 그게 무사시식 병법 거기에 70전의 대결에서 당대의 유명인은 없어서 명성에 거품이 많이 꼈다는 말도 많음. 지는 싸움은 안하는거지;
@user-xc5cm3gl6n
@user-xc5cm3gl6n 2 месяца назад
승리를 향한 마음가짐을 알려주는 오륜서 ㅋㅋㅋㅋ
@안변태이자식
@안변태이자식 3 года назад
무사시가 코지로와의 대결에 늦게 나타난 건 일부러 코지로의 화를 돋워 평정심을 잃게 만들고 결투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나-l7x
@이나-l7x 3 года назад
사람마다 해석은 다를수있지만 저도 약간 전략가였다고 이야기하는 부분과 반대로 강함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더 많은거 같더군요.
@brandno5236
@brandno5236 3 года назад
최배달의 책에도 이부분이 나오더군요.. 5분늦게 오는걸로 상대의 감정을 흔드는 최고의 전법....
@user-seojy40
@user-seojy40 3 года назад
무예를 하는 사람이 그정도에 평정심을 잊으면 몸과 맘을 수련하는 무예가가 아니지않나요. 이 이야기를 또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가 아는 일본의 무예란 그정도의 수준이었다란 이야기이고 무사시라는 사람이 소설에서 환타지로 많이 성격된 사람이라에 한표 던지고 싶네요.(그리고 반박글이 올라올 듯 해서 미리 말을 하는데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시대...무예 형평 없었다는 인터넷 댓글들 동감합니다)임진왜란 이후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의 검술부분도 일본의 검술을 많이 참고를 했다고하니.
@user-seojy40
@user-seojy40 3 года назад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으로 조선을 세우고 자신도 그러한 무인들에게 당하지않을까하는 걱정에 조선을 건국하며 무보다는 문을 순상하는 쪽으로 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brandno5236
@brandno5236 3 года назад
@@user-seojy40 그정도라니요 ㅎㅎ 격투기경기를 봐도 밀리다가도 눈찌르고 나면 전세가 바뀌는 경기가 많짆아요.. 즉 승패가 갈리죠.. 5분늦는건 절대 "그정도"가 아니립니다... 코나맥그리거가 끊임없이 경기전에 도발하듯이 ...
@user-wu9ks6bw7d
@user-wu9ks6bw7d 3 месяца назад
소설 읽어보면 좀 깨는 부분이 몇가지 있는데 먼저 미야모토 무사시는 검술이 대단한 사람이 아님. 원래 피지컬이 엄청 대단한 사람임. 일대다에서 승리를 거둔것도 검술로 여럿을 베어버린게 아니라 그냥 도망다니면서 한명씩 때려죽인거.. 이도류를 창시한건 맞는데 이 사람은 원래 힘이 쎄서 한손에 한자루씩 들고 휘두르는게 가능해서 그렇게 한거임. 그것도 나 이도류 하겠다가 아닌 싸우다가 그냥 검하나 더 줒어서 싸우는걸로 나온다고 기억함. 그리고 그 뒤로 계속 이도류를 한것도 아님. 하일라이트인 사사키 고지로와의 대결도 사사키 고지로는 마른장대라고 긴 칼을 썼는데 그거보다 더 긴 목검을 갖고 가서 그걸로 대가리 깨서 죽임. 그니까 사정거리 밖에서...그것도 가는동안 타고 가던 배의 노를 깎아서 만든거임. 소설만 봐서 그게 정사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우리가 상상하는 엄청난 검술의 대가 그런거 아님. 그냥 원래 존나게 피지컬적으로 쎈 사람이 그때 그때 야비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 싸움...ㅋㅋㅋ
@nomogood134
@nomogood134 Год назад
일본의 기록은 그냥 10가지중 2가지말곤 아니 그2가지초차도 완벽하게 검토하고 분석해서 받아드려야함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고대국가 신라와의 전쟁기록들을보면 알수있음ㅋ
@김대희-g6w
@김대희-g6w Год назад
무사시가 진짜 대단한 인물이면, 인재가 귀하던 전국시대에 높이 쓰였을 것이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라면 더욱 더! 군재가 없던 미쓰나리가 시마사콘을 자신의 녹봉 반을 주며 영입한 일화를 보면 알수 있다! 사나다유키무라, 시마즈요시히로 같이 군재가 뛰어난 자들은 결국 사서에 기록 된다! 무사시는 당대에 이름없는 낭인일 뿐이다!
@user-qp8ve3cn3w
@user-qp8ve3cn3w 3 года назад
소설책이 만들어낸 판타지...
@FreePalestine1966
@FreePalestine1966 3 месяца назад
무사시는 배를 젓고온 노 로 상대를 때려 죽임. 장검보다 더 긴 노에 대처를 못한거지
@예수-p8y
@예수-p8y 3 года назад
사사키 목검이 아니라 나무 놋대로 패죽인거 아니었음??? 내가 잘못알고있었구나...
@jmj1716
@jmj1716 3 года назад
와 예수도 사무라이 좋아하는구나...ㅋㅋ
@chakake99
@chakake99 3 года назад
@@jmj1716 아버지께 하나씩 올려보내나이다
@hyuntaean516
@hyuntaean516 3 года назад
아니 맞아요 노를 목검모양으로 배위에서 깍은후에 사사키의 장검보다 존나 더 긴 목검으로 한방에 보내는 거죠 저는 중3때 옆집 이삿짐 정리 도와주다 미야모도 무사시랑 대부 소설책 발견해서 빌려읽은 기억이 나네요 어린 나이에도 졸라 재밌게 읽었음
@예수-p8y
@예수-p8y 3 года назад
@@hyuntaean516 아ㅋㅋ 놋대를 깎은거였군요ㅋ
@미제드론
@미제드론 3 года назад
@@예수-p8y 사사키의 장검(일반적인 일본도보다 길고 직선형 도 였다고 합니다.)보다 더길게 깎았다고 합니다.
@user-sd6wo7mr1m
@user-sd6wo7mr1m Год назад
바키에선 몸만 남아버린 그...
@graycat_01
@graycat_01 Год назад
과장된 것도 있고 여러매체에서 환상을 심어준것도 맞는데 베댓 보면 오륜서가 "비겁하게 이기는 방법?" 치졸한 인간이라 묘사 하였던데 참... 어리석어 보입니다. 생사를 건 전투에서 정당한게 따로 있나요? 결국 사람을 죽이는 건데 이것자체가 정당한게 될수 있을까요? 그 일류역사 에서 정당한 대결과 전쟁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일대일 대결에서 규칙과 관습은 어떤 연유를 통해 만들어 졌을지 생각해 보셨나요? 진검승부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몽골군이 당대 유럽최고의 군대라 평가 받는 튜튼 기사단을 격파 한것도 유럽 특유의 전쟁진형과 형식과 관습을 간파하고 그걸 역이용해서 게릴라 전이나 측면 공격을 해서 이긴 겁니다. 유럽군 입장에서는 비겁하겠죠 비겁하게 도망치는 척하면서 되돌아서 다시 공격하고 측면에서 조지니... 근데 죽으면 끝인데 자기와 가족목숨이 달렸는데 비겁하다뇨 ? 스포츠 하나요? 참으로 어리석은 발언입니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야 말로 기존 관습과 통념에 익숙해서 꼰대가 되고 통찰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기존에 관념과 사상을 꽤뚫는 철학적이고도 혁명 적인 방법이 무사시가 추구하는 검술입니다 . 전국시대 통일이후 평화가 도래하였고 사무라이는 이전 전쟁의 공을 내새워 높은관직의 호위무사를 하거나 문파를 만들어 무술을 가르치거나 대부분은 그냥 건달이 되었죠. 문제는 그다음 세대인 2세대 이후터는 전쟁이나 전투를 거의 겪어보지 않는 세대라 사람들에게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한 화려한 동작과 규칙들로 변해가고 쓸데없는 관습과 예절만 생겨 납니다. 부단 실력이 아닌 기성세대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으로 변해갔죠. 이를 꿰뚫어 보고 뿌셔버린게 무사시죠 무사시의 이도류는 폼으로 한게 아니라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병법을구사 합니다. 이게 비겁하게 보이는 건 기존에 관념과 통습에 익숙해져서 그런거죠. 예를들어 흙을 뿌리거나 갑자기 다른 무기를 갑자기 바꿉니다. 또 리치간 긴 칼로 상대의 검을 막거나 제어해서 나머지 짧은칼로 상대의 급소를치는 형식으로 했습니다. 일부러 늦게 약속 장소에 나오는 심리전, 그리고 싸우기전에 명상과 기도의 멘탈관리, 전투전에는 배부리 안먹는 컨디션 관리 등 현대 일류 운동선수에서 볼법한 승리에 대한 투지의 철학이 그시대에 면밀히 적어 놨습니다. 역사서 기록된 건 없지만 자서전인 오륜서의 내용만 봐도 비법하고 철저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수 있죠.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기존 관습과 통념에 너무 벗어난 인간이고 또 혼자 독고다이로 지내왔기에 많은 문파에서 그를 낮추거나 비난하여 철저히 역사에서 배재 하기 노력했을거란 내용이 있죠. 그리고 그는 관직에나 재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재야의 고수같은 외골수 같은 인간형입니다. 그냥 일대일 대결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루고 살아 남고자 하데 삶을 바친 인간이죠 은퇴이후에는 예술가로써 면모도 비범해서 그의 그림은 높은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실제 검술보다 그런 그의 철학과 사상이 현재 많은 스포츠 선수, 그리고 군인, 기업가에게 영감을 줬죠 .
@user-xf2vn3ek5q
@user-xf2vn3ek5q 3 года назад
고딩때 너무 좋아했던 인물이고 그래서 참 많이 알봤는데 서른 좀 넘으니까 그 때 드는 생각은 이도류라던가 수십번의 실전에서 한번도 안졌다는 것이 그당시 일본의 상황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이었다는 것 난 무사시 얘기는 신화같은 거라고 생각함
@TaxLee
@TaxLee 3 года назад
제국주의당시 일본군부쪽에서 유행이되서 신격화 시킨걸로 알고있습니다
@user-uw2ej5qi5r
@user-uw2ej5qi5r 3 года назад
가능함 처음부터 검들고 싸운게 아니라 칼도 던지고 표창도 던지고 반병@ 만든다음 상대보다 긴칼로 찔렀음 한마디로 개싸움에 고수임
@seoungwooklee8395
@seoungwooklee8395 Год назад
전시도 아니고, 시합을 하기로 제안해놓고 기습이나 야습했다는 걸 두고 솔직히 지혜나 병법이라 할 수 있나. ..
@inudexterlive
@inudexterlive 3 года назад
브금 이름좀요...
@ssukung
@ssukung Год назад
'할카스에 재령 당한 사무라이'
@user-bn5uz2ud4v
@user-bn5uz2ud4v 3 года назад
궁금한게 호흡을 내쉬면서 공격하지만 무사시 말대로 여의치 않을때는 숨을 들이쉬면서 공격하라던데 그게 가능할까..
@sancho3156
@sancho3156 5 месяцев назад
한마 유지로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ccpout9210
@ccpout9210 3 года назад
80년대에 일본에서 한 실험이 있습니다. 펜싱과 검도의 대결... 사무라이 검술이 검투 실전에 약하다는 결론이 나왔고 역사적으로도 사무라이 수백과 포르투갈 군인 수십명이 싸워 사무라이가 완패한 기록도 있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레전드가 된 이유도, 사무라이 검술 자체가 뛰어났다기 보단 일본인 답지 않은 피지컬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지요.
@LightofEmpire
@LightofEmpire 3 года назад
그거 자세히 알아보면 패배한 이유가 따로있어요;; 펜싱 검도면 당연히 찌르는 펜싱이 유리한거고
@LightofEmpire
@LightofEmpire 3 года назад
@스이나우매 쳐낼수가있긴한데 검술이라는게 방어보다는 공격이 유리하잖아요 물론 개인역량이 중요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LightofEmpire
@LightofEmpire 3 года назад
@스이나우매 글쎄요 저도 검도배웠지만 머 의견은 다를수있으니..
@Jingjinback
@Jingjinback 3 года назад
그거 실상은 포루투칼인들 칼에 죽은게 아니라 대포로 죽은사람이 대다수라고 나와있음. 그리고 사무라이가 아니라 왜구 아니였나?
@user-ve4mq3kv2x
@user-ve4mq3kv2x 3 года назад
피지컬에공감하네요 하야시패와 싸웠던 김두한도 당시 흔치않은 180cm가 넘는 거구의체격이고 야쿠자패들은 150~160대의 작인체격이구요 일본애들을 많이겪어보면 대체적으로 마르고 작아요 지금으로보면 초등학생 40명하고 건달1명이 싸우는 꼴이니. 그리고 야쿠자패에서 활동하던 김동회씨의 증언을보면 김두한이 야쿠자들의 사무라이칼과 어떻게 대결했냐고 물어보니 발보다 먼저나오는 검은 없기때문에 상대방 발만봐도 움직임이 다 보이기때문에 맨주먹보다 쉽다고 실제인터뷰에서 나온내용이고 이런내용들이 바탕이되어 장군의아들 영화가 탄생했고 실존인물들이 작품에 많이참여했으며 현재까지도 액션배우들에게 교과서로 쓰는 작품입니다
@lilipopo77
@lilipopo77 3 года назад
00:43 싸무라이
@Nickname001
@Nickname001 2 года назад
일본 역사상 최강의 사무라이는 카미이즈미 노부츠나고 무사시는 반이 구라이긴 하나 역대 순위 3위정도 하는 상당히 강한 무사
@김명기-i4u
@김명기-i4u Год назад
무사시가 역대 최강의 사무라이로 평가되지는 않습니다. 그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검술을 검도의 경지로 올렸기때문입니다. 카타나로 상대의 검을 막고 와키자시로 목이나 다른 급소를 찌른 이도류 사용했지요.
@thesithlord4812
@thesithlord4812 2 года назад
카미이즈미 노부츠나: 허허허, 재밌구만. 계속 해보게나. 츠카하라 보쿠텐: 흐음.
@정일랑-d6e
@정일랑-d6e 3 года назад
무사시가 새키가하라의 전투에 참전했다는것도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속 창작이고 행적이나 이런것도 소설로 봐야됨 과연 무사시란 사람이 있었나 하는것도 아직까지 논란이 되는 거고
@user-xp6rz5dh3m
@user-xp6rz5dh3m Год назад
한마 바키에서 나오는 무사시가 ㄹㅇ 찐인데 ㅋㅋㅋ 보이지 않는 에어참격ㅋㅋㅋㅋㅋㅋㅋㅋㅋ
@user-nt5xe3ce5b
@user-nt5xe3ce5b Год назад
야구로 말하믄 한손으로 빠다를 휘둘러서 홈런을 친다는 거와 같다는.. 그런 점에서 일부는 무사시가 허구라고 보기도 하는 거. 인간이 과연 한손에 든 칼로 두손으로 휘두르는 칼을 막을 수 있는가?
@falconkim7818
@falconkim7818 3 года назад
역사상은 누가 정하는거???
@fojeri
@fojeri 3 года назад
근데 배가본드가 무슨 뜻이냐? 이승기 ,수지 나오는 드라마 이름도 베가본드 인데, 사람 이름인가?
@user-ku7zt6he7i
@user-ku7zt6he7i 3 года назад
체구가 작아서 근력에 한계가 있던 일본인이 이도류... 좀 말이안됨 진짜 역도선수급의 괴력이 아니고서야 어중간하게 2자루 들어봤자 자살행위일뿐이라
@YoonDesign
@YoonDesign Год назад
이도류가 효율성이 진짜 안좋아서 약간 무사시에게만 맞는 검법 아니었는지..
@user-cr9ed3sf4i
@user-cr9ed3sf4i 3 года назад
목검 말고 노 아닌가요??? 왜 저는 노 라고 알고 있지...ㅠㅠ
@hyuntaean516
@hyuntaean516 3 года назад
노 맞아요 배위에서 노를 목검모양으로 깍았음
Дале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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