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21년 11월 mbc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정조대왕님께 입덕한 사람입니다. 여기저기 정조만 들어가면 무조건 클릭하는 병에 걸렸습니다.ㅠㅠ 이미 돌아가신분 덕질하기 힘드네요. 그래도 뒤늦게나마 이렇게 훌륭한 분을 왕으로 두었다는 뿌듯한 마음에 또 다른 영상 찾아 떠납니다.
댓글들을 보니 ,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만든 MBC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고 여기까지 왔다는 글들도 많고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글도 보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를 했어야 했다고 하는 등... 많은 글들을 보고 느낀점은 이렇게 국민들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그리고 사실적으로 접근을 하도록, 비록 그것이 드라마를 통한 작은 관심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공부를 하려고 하고,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역사 관련 드라마를 만들 때 왜곡하지 말고 ,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재미를 위한 어느 정도의 픽션은 필요하겠지요.) 드라마를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펩시-m2z 후사도 후사지만 공자왈 맹자왈 하던 성리학에 묶여 있던 조선의 상황을 볼때 과학과 이성주의의 산물인 서양문물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흡수하기에는 어려웠을거라고 봅니다. 특히나 아편전쟁으로 청이 유럽제국에 의해 박살이 나는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국제정세에 대해 무관심했던 현실을 본다면 그닥 희망적이지 않았던게 사실이죠
@@buckston201거의 대부분 동양국가가 서양문물을 신기하긴하네 수준으로 일부만 받아드렸고 서양에 의한 충격으로 인해 받아드렸음 조선이 성리학이니 유교니 뭐니 그것만 봤다하는 것도 상당히 편견이고 애초에 서양에서 와야지 뭐 충격을 받고 서양문물을 받던가하지 중국 일본 오고 몇십년뒤에 왔는데 당연히 늦지
수원에 살고 있고 문화재에도관심이많아, 아이들과 함께 화성.용주사.융건릉 등등 정조와 관련된 곳에 많이 다니긴 했어도 융건릉에 가면, 많이 알려진 사도세자(장조)의 능인 융릉만 관심있게 보고 그 앞에서 놀고 왔었어요. 이번에 옷소매를 통해 정조대왕님께 반해 지난주말엔 정조대왕님을 뵈러 건릉에 다녀왔어요~ 덕임이가 아닌 중전과 함께 계셔서 마음이 아팠지만ㅜㅜ 이번에 새롭게 정조대왕님을 알게되어 행복한 2021년이었습니다~^-^
옷소매붉은 끝동에 나오는 덕임이 묘소가 서삼릉에 있다고 해서.. 얼마전에 예약을 하고 갔습니다. 정조가 그렇게 애지중지 아끼고 사랑했던 덕임이가 ... 정조와 멀리 떨어져 외로이 홀로 있더군요. 아휴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ㅠㅠ 관리자분이 그곳은 그동안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았는데 어느 날부터 많이 오더랍니다. 그래서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드라마 옷소매를 보고 왔다고들 하더랍니다. 역시 방송 드라마의 영향이 크긴 크구나 생각했죠. 저의 가족도 옷소매 보고 갔으니 말이예요. 저는 정조임금께 반해서 '리더라면 정조처럼' 이란 책을 구입해서 정독을 하고 있답니다.
자신의 아버지는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하고, 그 뒤주에 갇힌 아버지가 안에서 살아계실적에 흔들도록 지시하고, 오줌까지 뉘었던 자가 자신이 왕이 되었을때도 버젓이 벼슬을 받아 있었고 속으론 열불이 난다고 했지만 정치적으로 행동한 정조대왕 정말 너무 대단한 왕이라는 말 밖에는 할말이 없다. 이리도 훌륭한 왕이고, 그가 세계에서 가장 처음으로 노비 제도를 없애고자 했고 마지막 실행만 남았는데 사망했다는 것은 정말 독살이 의심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때 노비제도가 폐지되었다면.. 정조의 인생은 아프고도 그 아픔속에서도 훌륭함이 자라 너무도 놀라울 뿐이다
복지정책, 금난전권 폐지, 노비제 폐지를 위한 장기계획 수립, 등등. 기득권 세력의 이권을 조금씩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려 했으니...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득권세력이 위협을 느꼈고, 노비제 폐지까지 예고되니 더이상 정조를 살려둘 수 없다 판단한 것 같아요.
정조대왕이 신하들을 통솔할 수 있었던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는 그가 학문으로서도 누구보다도 뛰어난 경지에 있었기 때문. 성리학을 신봉하고 수학을 통해 이상적인 군주와 국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당시라면 천재 군주의 말을 따른다는 것은 그가 따를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내면으로부터 샘솟은 존경심의 발현이지는 않았을지. 그러나 만약 독살이 맞다면, 소인배들의 작은 이익을 따라 성군을 시해한 그 죄를 내세에서 그리고 자자손손 벌 받기를 빈다. 진심으로...
심환지가 암살하지는 않았을것같아요. 서찰을 공개하지도, 태우라고 했지만 태우지않고 보관한것이나 서찰을 묘에 같이 뭍은 점을 봤을때 두분은 친밀한 관계였을겁니다. 그것을 가족들도 알았기에 암살했다는 소문이있었을때도 가족들마저도 공개하지 않았을테지요. 먼 미래에라도 발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묘에 같이 편지를 뭍었을까요...
어렸을 때는 그냥 정조대왕하면 왕권강화 이것만 외웠었는데 현 나이 30넘어서 보니 철학이 느껴진다. 이래서 아는만큼보이나보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외우기만 했는데 구체적으로 들으니 참 여러가지 느끼는 바가 크다ㅜㅜ 대한민국은 왜 이렇게 뛰어난 분들이 과거고 현재고 많은지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이 사건은 아무래도 숙고해봐야 할 문제 같습니다. 심환지가 받은 편지들은 정조가 계속하여 없애라고 주문하였던것이라는점 죽을때 심환지는 태우라고 지시한점. 태우지 않고 그의 자손들이 무덤속에 감추었던 점. 또.... 의혹이 많습니다. 음...어쩌면 심환지는..... 그의 가족들과 무리들은.... 파보고 싶어지네요.
소통왕 정조 근데 정조가 소설문체는 싫어해서 문체반정을 일으켰을정도 당시에는 소설을 폐관소설이라고 했는데 이 폐관소설 문체가 유교를 더럽힌다고 보고 쓰지 못하게 함 쓰다가 걸리면 반성문을 써야 하구 근데 드라마 옷소매에서 성덕임이 쓴 반성문이 계속 빠꾸를 먹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그게 실제로도 빠꾸 먹은 신하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함 특히 연암박지원이 고생을 많이 했다고도
저도 그런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독살편도 다시한번 봐야겠습니다.. 이 편지와 얽힌 사건은 아무래도 숙고해봐야 할 문제 같습니다. 심환지가 받은 편지들은 정조가 계속하여 없애라고 주문하였던것이라는점 죽을때 심환지는 태우라고 지시한점. 태우지 않고 그의 자손들이 무덤속에 감추었던 점. 또.... 의혹이 많습니다. 음...어쩌면 심환지는..... 그의 가족들과 무리들은.... 파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