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군주임이 분명하지만, 오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안스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평생을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고, 살아 남아 왕까지 되었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강한 모습을 유지해서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싸움이 외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조선 전기 역사는 공부 안하셨나봐요 ㅋ 한민족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는한 한글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쉬운 문자 한글을 창제하여 백성의 불편함을 해소하려 한 이 한가지만으로도,,,, 농업이 근간인 농서(농사직설)과 의학서 편찬한 것, 노비에게도 출산 휴가를 준 것, 조세 개혁을 하며 여론 조사를 한 것, 생활을 편하게 하는 해시계등 과학 기기를 발명하게 한 것, 6진을 개척하여 영토를 확장한 것, 관리들은 엄청 힘들게 부려 먹은 것 등 이외에도 더 많을 겁니다 우리 민족에게 세종같은 지도자가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요? 세종은 스스로 나 잘났다 안해도 잘 난 사람!
아버지 미치고 외가는 아버지 죽이려고 노략질에 엄마는 친정편..싸이코같은 할아버지 변덕에 암살위험까지..그런데도 저리 훌륭한 임금으로 사셨다니 그 속을 어찌 다 알까요? 게다가 저리 사랑한 여인을 강제로 취하지않고 조선 역사상 유례없는 사랑에..세종대왕은 그저 대단하고 존경스러운데 정조는 존경과 사랑과 짠함이 느껴지고 인간으로서 좋네요
정조는 나쁜 왕입니다. 저는 조선 역사상 최악의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조는 유교 탈레반이에요. 문체반정(1791년)으로 모든 서양서적과 청나라 기술서적을 모아서 불태웠는데요. 일본은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1720년 기존 금서 목록에서 과학기술 서적을 제외함으로써 지식인 사회에 서구의 신지식이 유입되는 전기를 마련하는데, 정조는 문체반정을 선언하고 한 달 뒤인 11월 12일 정조는 홍문관과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된 서양 서적을 태워버리라 명했습니다.(1791년 11월 12일 ‘정조실록’) 심지어 수입도 막았습니다. 저는 정조 때문에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봅니다. 고려말 신진사대부처럼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개화된 지식인 계층의 성장을 막은 것입니다. 조선에서 서양서적을 다시 수입하게 되는건 고종때입니다. 중국 정부의 양무운동(1861-1874)과 재중 서양선교사의 서학지식 보급운동을 배경으로 중국에서 대번역시대 생성되었으며, 이것이 고종때 개항 이후 조선 정부의 개화정책을 배경으로 조선으로 수입됩니다.
정조는 나쁜 왕입니다. 저는 조선 역사상 최악의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조는 유교 탈레반이에요. 문체반정(1791년)으로 모든 서양서적과 청나라 기술서적을 모아서 불태웠는데요. 일본은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1720년 기존 금서 목록에서 과학기술 서적을 제외함으로써 지식인 사회에 서구의 신지식이 유입되는 전기를 마련하는데, 정조는 문체반정을 선언하고 한 달 뒤인 11월 12일 정조는 홍문관과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된 서양 서적을 태워버리라 명했습니다.(1791년 11월 12일 ‘정조실록’) 심지어 수입도 막았습니다. 저는 정조 때문에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봅니다. 고려말 신진사대부처럼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개화된 지식인 계층의 성장을 막은 것입니다. 조선에서 서양서적을 다시 수입하게 되는건 고종때입니다. 중국 정부의 양무운동(1861-1874)과 재중 서양선교사의 서학지식 보급운동을 배경으로 중국에서 대번역시대 생성되었으며, 이것이 고종때 개항 이후 조선 정부의 개화정책을 배경으로 조선으로 수입됩니다.
@@jeinkim30 정조는 나쁜 왕입니다. 저는 조선 역사상 최악의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조는 유교 탈레반이에요. 문체반정(1791년)으로 모든 서양서적과 청나라 기술서적을 모아서 불태웠는데요. 일본은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1720년 기존 금서 목록에서 과학기술 서적을 제외함으로써 지식인 사회에 서구의 신지식이 유입되는 전기를 마련하는데, 정조는 문체반정을 선언하고 한 달 뒤인 11월 12일 정조는 홍문관과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된 서양 서적을 태워버리라 명했습니다.(1791년 11월 12일 ‘정조실록’) 심지어 수입도 막았습니다. 저는 정조 때문에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봅니다. 고려말 신진사대부처럼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개화된 지식인 계층의 성장을 막은 것입니다. 조선에서 서양서적을 다시 수입하게 되는건 고종때입니다. 중국 정부의 양무운동(1861-1874)과 재중 서양선교사의 서학지식 보급운동을 배경으로 중국에서 대번역시대 생성되었으며, 이것이 고종때 개항 이후 조선 정부의 개화정책을 배경으로 조선으로 수입됩니다.
테클은 아닙니다.. 다만 생각하시는것 마큼 출발이 꽃길이 아니었어요... 일단 자기 형이 폐세자 되는 것을 눈으로 보아야 했고, 둘째 형은 중으로 들어갔을뿐 아니라, 외가집은 쑥대밭이 되버립니다. 그거 아시나요? 보통 아이들을 외가쪽에서 기른답니다... 그런데 그 삼촌들 4명이 죽어나가고, 민씨 자기 친 어머니도 화병으로 누울뿐 아니라 중전에서 쫒겨났고, 또 세종 아내의 장인어른도 누명쓰고 죽었습니다. 왕 하기 싫어도 해야했어요... 시작 좋은편에 속하지는 않는거 같아요...
얘기 들을수록 참 짠하고 너무 마음 아픈 게..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단 한순간도 잊지 않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두눈으로 목격했고 평생을 잊힐래야 잊힐 수가 없겠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데에 힘 쓴 최측근들만 할아버지, 할머니, 새할머니, 외할아버지, 어머니, 그외 외척들 등등..) 아버지를 굉장히 많이 사랑하고 존경했던 것 같아요.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깊은 효심이 역사 속에 길이길이 남아있을 정도이니 실제론 더 대단했겠죠.
정조대왕의 활솜씨는 거의 신궁의 수준입니다. 150m 과녁을 거의 다 맞히는 실력이었고, 너무 잘 쏘다보니, 과녁 대신에 부채를 갖다 놓고서도 맞추는 실력이었습니다. 150m 거리에 작은 부채를 갖다 놓으면 아마 눈에는 거의 점으로 밖에 보이질 않을 겁니다. 이런 과녁을 쉽게 맞추는 실력이었습니다.
정조대왕이 좀 더 세계적인 안목이 있었더라면....근대화....산업혁명....서구문명을 전적으로 받아들여서 ...식민지 개척을 하였다면 ...영토도 넓히고....조선이라는 틀에 갇혀....60년...100년 뒤의 세상을 읽지 못했네요. 어쩔수 없었겠죠. 신이 아닌 이상...그래서 조선왕조는 차라리 빨리 망했어야 ...백성이 고통을 덜 받았겠죠. 미개한 일본이 산업화 50년이상 집중한 후 식민지로 엄청난 부를 츅척 했으니까요. 그 덕분에 현재의 일본인들이 천박한 칼잽이 자신의 역사도 감추고 배우지도 못하고 처음부터 우수헌 민족인줄 알고 까부는걸 보면....물론 현재 일본은 그 옛날 빤주입고 돌아다니던 그 시절로 회귀 중이지만...ㅋㅋㅋ 제자리 찾아가고....한국도 우수한 대륙 유전자로 응축된 에너지로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가고 있는중..암튼 세종대왕 정조대왕 ...역사적 문화적 힘이 오늘날 찬란하게 대한민국에서 빛을 발하는게 보기 좋네요. 통일도 하고 적폐들 청소하고.. 지도자를 잘뽑아야 할듯....사기군 칠푼이 친일앞잽이 같은 지도자는 아웃!
@@user-sf1mw2fy1f 정조는 나쁜 왕입니다. 저는 조선 역사상 최악의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조는 유교 탈레반이에요. 문체반정(1791년)으로 모든 서양서적과 청나라 기술서적을 모아서 불태웠는데요. 일본은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1720년 기존 금서 목록에서 과학기술 서적을 제외함으로써 지식인 사회에 서구의 신지식이 유입되는 전기를 마련하는데, 정조는 문체반정을 선언하고 한 달 뒤인 11월 12일 정조는 홍문관과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된 서양 서적을 태워버리라 명했습니다.(1791년 11월 12일 ‘정조실록’) 심지어 수입도 막았습니다. 저는 정조 때문에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봅니다. 고려말 신진사대부처럼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개화된 지식인 계층의 성장을 막은 것입니다. 조선에서 서양서적을 다시 수입하게 되는건 고종때입니다. 중국 정부의 양무운동(1861-1874)과 재중 서양선교사의 서학지식 보급운동을 배경으로 중국에서 대번역시대 생성되었으며, 이것이 고종때 개항 이후 조선 정부의 개화정책을 배경으로 조선으로 수입됩니다.
18:00 정조대왕님은 신하들에게 반성문 받는게 취미활동 중 하나이셨던 것 같네요. ㅎㅎ 성덕임한테도 반성문 여러번 고쳐쓰도록 하는 장면이 요즘 하는 드라마에서 나왔는데 박지원 옹은 저 반성문을 몇번이나 고쳐썼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ㅎㅎㅎ 그 엄청난 능력들을 지니신 성군이 한창 나이에 병사하신 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쉽고, 마음아픈 일입니다.
어제 mbc 옷소매 끝동 드라마에서 세자 이산, 활을 쏴 호랑이를 잡던데 진짜로 활을 잘 쏘는 게 사실이었군요. 선생님 강의 많이 듣고 본다면 엄청 좋겠네요. 박지원의 문체는 문학적인 글을 쓰는 산문체이니 다르지요. 호질, 양반전 등은 소설, 열하일기는 중국을 여행하며 쓴 기행수필이니 사서삼경의 경서와는 전혀 다르겠지요. 조선시대 양반들은 경서 만이 책이라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 생각하면 연암은 소설로 조선시대 사회상을 풍자와 해학적으로 양반들의 부조리를 고발한 사람이니까요. 시대를 앞서간 개혁적인 선비겠지요. 또 한편으로는 조선의 근간을 깨는 이단자로 지탄 받을 수 있음을 는치채고 워낙 천재이신 정조가 인재를 아끼는 마음에 쓰지 말라고 하지만 듣지를 않지요. 산골로 들어가 쓰지요.
이른 나이에 개혁을 완성치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아쉬울 따름이나, 치열했던 그 삶을 보면 그럴만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문무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심신의 고통이 따랐을까요. 조금만 자신에게 채운 기준을 낮추고 여유를 가지시고 오래 사셨더라면 하는 아쉬운 바램을 가져 봅니다.
뭔 이렇게 다 가진 인간이 존재했다는 말인가... 왕이 되는 것은 천운까지도 타고 나는 것인데 왕이 되고 20년 넘게 통치하고. 문무에 그리고 의술까지도 통달하고. 아는 면에 넓으면 깊이는 얕은 법인데 깊이까지 극에 달하니 사람 몸뚱아리를 타고 났으되 본디 신선이었나 보다. 보나마나 얼굴도 잘생겼고 키도 훤칠하고 피부도 매끄럽고 몸매도 훌륭했겠지. 나는 울고 갑니다 ㅋㅋ
얼굴 잘생기지 않았대요 우리가 책이나 다큐에서 보는 어진은 화가의 상상화이고 실제는 무사같은 모습이었다네요 준호 같은 세손의 승은을 거절한 게 이해가 안되지만 그건 드라마이고 덕임이가 승은 제안에 쉽게 예스 하지 않은 이유가 그거 아닐까나... ㅋㅋㅋ 그래도 정조가 대단한 것이 일방적으로 취하지 않고 여인의 마음을 얻을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
항상 영상 잘 보고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보기도 하는데요 유익하고 보면서 즐겁기도 하고 모르던 사실을 알아감에 황선생님께 늘 감사합니다. 제가 애한테 질문받고 대답을 못한게 있는데 이 한반도 역사상 본인의 노력에 비해 정말 운칠기삼으로 성공한 역사적 사례가 있을까요? 지식이 짧아 글로나마 여쭤봅니다 ㅎㅎ 항상 승승장구 하세요
정조대왕 진짜 짱이네요!!! 오래 사셨다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ㅠㅜ ..... 한 번 더 아쉬워한다면, 광개토태왕이 10년, 20년 더 사셨다면!!! 장수왕이 있었을 때 반란을 일으킨 맹손같은 개새끼가 없었다면(차라리 장수왕이 그놈과 자기 이익만 챙기던 놈들을 죽였었다면.... ) 한반도 역사가 아예 달라져 있겠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걸 놓고 엄청나게 한숨을 쉴 뿐입니다
정조의 군주도통론은 프랑스에 루이14세 왕정신수론을 떠올리게하네요 성리학에 도통했지만 서학을 박대하지 않고 민초를 생각했다.. 본심은 쓸데없는 논쟁은 본인선에서 정리하고 부국강병만이 그의 목표였을듯 합니다 짧은 생애의 아쉬움과 더불어 후사라도 제대로 남겼다면 어땟을까하는 가정을 다시 생각하게하는 군주입니다.
옷소매붉은끝동 보고 왔어요 준호오빠가 연기 보고 사랑도 성향도 궁금해서 왔어요^^ 이산드라마랑 준호오빠 연기랑 살짝 달라서요 공부를 굉장히 잘하신것 뛰어넘어 학문에 경지에 오르신 능력있는 군주셨군요^^ 근데 무예까지^^ 우와~~~ 8화에서 활 쏘는 장면 나오는데 진짜인가 했는데 어머낫~~~ 외모도 잘생겼겠네요^^ 지금 준호오빠가 연기하는거 오빠랑 비슷하네요^^ 오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