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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지금 10]_이대로 저대로 

Samil Seon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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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선원 - 선불장(選佛場)
[영원한 지금 10]_이대로 저대로
2023년 7월 16일 선재 박준수 선생님의 조사선 법문입니다.
*법회 장소 : 서초동 서울변호사회관
*법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 12시
*야단 법석 : 법회 후 오후 1시 ~ 3시
*교재 : 『영원한 지금 - 마음을 밝히다』, 선재 박준수 저, 좋은땅 펴냄(2023), (p77~81)
제3장 소를 찾다(見牛) 22.견성(見性) 23.이해(理解)와 증득(證得)

Опубликовано:

 

4 окт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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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17   
@명인행
@명인행 Год назад
🙏🙏🙏💜
@user-nz6pz6fu6k
@user-nz6pz6fu6k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현존하는 일념! 현존하는 일각! 동해바다는 넓구나! 바로 지금 생명이 드러나는 각! 뿐이군요 놀라운 가르치심에 감사 합니다
@강태화-e9d
@강태화-e9d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성법행
@성법행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
@일체지
@일체지 Год назад
선생님 귀한 법문 감사합니다 🙏
@보월-c9k
@보월-c9k Год назад
선생님 감사합니다🙏🙏🙏
@lemonade871
@lemonade871 Год назад
이미지가 하는 게 아니다... 🙏
@오기남古月
@오기남古月 Год назад
2023년 7월 16일 [영원한 지금 10] 선재 박준수 선생님 법문 ‘이대로 저대로’입니다. (2) 그거 외에 따로 있어요? “하..늘..이.. 맑..구..나..” “동..해..바..다..는.. 넓..구..나..” “바..람..이.. 차..갑..구..나..” 이것 외에 또 있어요? 하늘이나 바람이나 동해바다라고 한다면 이미지라요. 그렇지 않아요? 여기서 지금 “동해바다는 넓다.”는 이미지이지. 여기서 동해바다는 이미지로 떠오르는 것이지. 막상 동해에 가서 동해바다를 보면은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서는 둘이 아니야. 동해바다하고 보는 자리하고 보여지는 자리하고 둘이 아니야. 생각이 일어날 때 참으로 “동..해..바..다..는.. 넓..구..나..” 그게 여기 일이잖아요. 그러니 달리 한 물건도 따로 없어. ’너 없는 나‘의 일이고, ’둘이 아닌 자리‘의 일이고, 그 자리가 만물이 하나로 돌아가는 자리입니다. 만법귀일(萬法歸一) 그래. 그렇게 물으니까, 조주는 “우주 전체가 뭡니까?” “존재가 뭡니까?” “나는 누구입니까?” 그러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한 거예요. “하늘이 맑습니다.” 한 거야. 그 외에는 달리 전할 길이 없지. 色卽是空 空卽是色(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러잖아요. 그게 그거야 바로. 영상과 거울이 둘이 아니라는 얘기야. 영상이 生滅門(생멸문)이야 거울의, 거울은 眞如門(진여문)이라고 그래. 거울은 변하지 않아. 영원해. 그런데 영상은 늘 왔다가 가고 늘 변하죠. 色(색) 색깔의 세상은 생멸문이야. 마음의 세상은 진여문이야. 여기서 마음은 분별심이 아니라 근본적인 우리 마음은 진여문이야 변하지를 않아. 그러니 우리가 인식하는 이 세상은 生滅門(생멸문)이, 거울과 영상 중에 영상이 투영된 세상입니다. 그 그림자지. 영상이 생각을 통해서 투영한 만들어낸 세상이지. 그러니 그것을 두고 如夢幻泡影(여몽환포영)이라 하지. 꿈같고 그림자 같다. 우리가 인식하는 이 세상은 꿈같은 것입니다. 그 너머는 알 수가 없어. 우리가 아는 것은 이미지밖에 몰라요. 우리가 아는 이 세상은 如夢幻泡影(여몽환포영)이야. 그러니 그것이 시간과 공간이고. 시간과 공간에 의지한 만물의 세상입니다. 우리 생각이 만들어 낸 것들이에요. 그것이 거울과 영상 중에 영상이 투영된 세상이야. 世間(세간)인 망상 역시 出世間(출세간)인 보리여서 나눌 수가 없다. 사실은 그래요. 꿈속 세상이 꿈을 꾸는 자를 떠나서 따로 존재할 수가 없어. 그것을 따로따로 보는 것이 망상일 뿐이지, 언제나 거울과 영상은 둘이 아니라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 망상이 나눠볼 뿐이야 그러니 어때요? 늘 하는 얘기지만, 出世間(출세간)의 眼目(안목)으로 둘이 아닌 안목으로 둘인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 그것은 나눠질 수가 없어서. 그러니 세간을 살면서 다 生老病死(생노병사)를 하고 그렇잖아요. 다 成住壞空(성주괴공)하고 生住異滅(생주이멸해)해. 거기에 따라서 喜怒哀樂(희노애락)을 해. 살아가면서 분노하기도 하고 욕심내기도 해. 그렇게 살지만은 둘이 아닌 안목으로는 우스운 일이라요. 그러나 두 세상을 살 수밖에 없어. 그러니 어떻게 말을 해요? 시간과 공간의 일이 전부 여기 일이잖아. 시간과 공간으로 나누어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전부 지금 여기 일이야. 시간과 공간 속에서는 가고 오고 하죠. 그러나 둘이 아닌 입장에서는 가되 간 바가 없고 오되 온 바가 없어요. 그러니 부정될 일이 하나도 없어요. 왜 깨달은 사람이 둘인 안목으로 희노에락을 살고 탐진치 계정혜 이런 것이 어떻게 여전하냐? 아니야. 둘인 세상에서는 그렇게 살아. 둘이 아닌 안목으로는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喜怒哀樂(희노애락) 하되 희노애락 한 바가 없고, 五慾七情(오욕칠정)을 하되 오욕칠정을 한 바 없고, 육바라밀을 하되 육바라밀을 한 바 없습니다. 그러니까 취사하면서 늘 우리는 살잖아요. 취사 안 하고 어떻게 살아? 둘이 아니다 해서 취사하지 않는다면은 그게 취사하는 거야. 아 둘이 아닌데, 왜 깨끗한 옷을 입고 나갈 필요도 없고, 밥 먹을 필요도 없고, 살아야 될 필요도 없잖아. 生死(생사)가 둘이 아니라 하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살아야 되고 밥은 먹어야 되고 또 걸어가야 하고 또 애들한테 착한 사람이 되라고 하고 그러잖아요. 그러면서도 그 삶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안목에서는 그놈들이 둘이 아니라요. 그러니 취사하되 취사한 바 없다. 이런 안목으로 살 수 있는 것. 그러니 우리 삶 그대로가, 희노애락하고 오욕칠정의 삶 그대로가, 그냥 여래의 일이야. 그냥. 그러니까 다만 우리가 선악 시비 귀천 등으로 나누어서 분별할 뿐이라요. 분별하되 분별한 바 없는 삶을 사는 거야, 분별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그러니까 이대로 저대로 살아. 이대로. 그냥 이대로. 우리 삶을 하나도 바꿔서 시비할 문제가 아니야. 욕심 났으면 욕심나고 희노애락이 있었으면 희노애락 하는데, 둘이 아닌 안목에서는 희노애락 한 바가 없는 거예요. 깨달음은 그러니까 정의를 하자면, 깨달음은 정의를 할 수가 없어 깨달음은. 있는 그대로에 대해서 눈을 얻는 거야. 있는 그대로, 아 이것은 둘이 아니다 하는 눈을 얻는 거야.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나를 아는 것이 내가 나를 보는 것이야. 내가 나를 알아. 그렇게 말할 수가 있지. 그런데 내가 나를 알 수가 있어요? 대상이 아닌데. 내가 나를 볼 수가 있을까? 대상이 아닌데. 그런데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거야. 깨달음은 무엇이냐? 내가 나를 아는 것이고, 내가 나를 보는 것이다.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라. 깨달음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부처가 부처를 서로 볼 수가 없다고 그래. 부처가 부처를 서로 볼 수 없다. 佛佛而不相見(불불이불상견)이다. ’너 없는 나‘ 그것이 實在(실재)라요.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 분명하잖아요. 내가 부정될 수 있어요? 여러분들 “나는 없습디다.” 이럴 수 있어요? “나는 실재하지 않습니다.” 이럴 수 있어요? “나는 그림자입니다.” 이럴 수 있어요? “나..는.. 그..림..자..입..니..다..”가 실재인데. 그렇죠? 아무리 나를 부정을 해도, 나는 이미지일 뿐이고 그림자다 해도, “그..림..자..다..” 하는 놈이 있잖아요. 그게 여래라요. 그것 외에는 한 물건도 따로 없어. 그러니 우리 일상이 전부 지금 여기 생명의 일이야. 둘이 아닌 자리의 일이야. 見聞覺知 語默動靜 行住坐臥(견문각지 어묵동정 행주좌와) 하는 일상이 여기 일이라요. 여..기.. 그러니 시간과 공간 너머의 지금 여기 일이야. 시간과 공간하고 무관해. 그것은 이미지라요. 살아있는 자리는 시간과 공간하고는 관계가 없어. 그래서 말씀이라고 하고 여래라고 하고 하느님이라고 그래. 그렇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선생님 감사합니다. 🙏
@오기남古月
@오기남古月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삼일선원 - 선불장(選佛場) 선재 박준수 선생님의 조사선 법문입니다. *법회 장소 : 서초동 서울변호사회관 *법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 12시 *야단 법석 : 법회 후 오후 1시 ~ 3시 *교재 : 『영원한 지금 - 마음을 밝히다』, 선재 박준수 저, 좋은땅 펴냄(2023). *『영원한 지금』 법문집은 온라인 서점에서 또는 동네 서점에서 미리 주문하시면 구하실 수 있습니다.
@user-ms60yu8uj54
@user-ms60yu8uj54 Год назад
🙏🙏🙏💙
@여래심-f9w
@여래심-f9w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
@반야행-n3z
@반야행-n3z Год назад
🙏🙏🙏💗
@무연-i5d
@무연-i5d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 🙏🏻 🙏🏻
@성법행
@성법행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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