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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지금 12]_세상이 나를 떠나는가? 내가 세상을 떠나는가? 

Samil Seon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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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선원 - 선불장(選佛場)
[영원한 지금 12]_세상이 나를 떠나는가? 내가 세상을 떠나는가?
2023년 8월 13일 선재 박준수 선생님의 조사선 법문입니다.
*법회 장소 : 서초동 서울변호사회관
*법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 12시
*야단 법석 : 법회 후 오후 1시 ~ 3시
*교재 : 『영원한 지금 - 마음을 밝히다』, 선재 박준수 저, 좋은땅 펴냄(2023), (p89~92)
제4장 소를 얻다(得牛) 26.지금 여기 내 일뿐이다 27.기적(奇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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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окт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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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17   
@GC8528GC
@GC8528GC Месяц назад
💚👏
@김승경-v3g
@김승경-v3g 9 месяцев назад
감사드립니다🌸🙏👍
@mm77206
@mm77206 Год назад
감사합니다❤
@jaehojeon869
@jaehojeon869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최고의 직지법문 입니다 감사합니다 😊
@반야행-n3z
@반야행-n3z Год назад
선생님 감사합니다🙏🙏🙏💗
@ji-seonyun
@ji-seonyun Год назад
7년을 투병하신 아버님께서 둘이 아닌 자리로 떠나셨습니다. 그 모든 순간을 이해하고 지킬수 있게 해주신 부처님, 그리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텅빈공간
@텅빈공간 Год назад
세상이 나를떠나는거죠
@행자-y1n
@행자-y1n Год назад
🙏
@user-ms60yu8uj54
@user-ms60yu8uj54 Год назад
🙏🙏🙏☕️
@명인행
@명인행 Год назад
🙏🙏🙏🍨
@오기남古月
@오기남古月 Год назад
2023년 8월 13일 선재 박준수 선생님 [영원한 지금 12] 법문 도입부입니다. (2) 어젯밤 꿈이 나를 떠난 걸까? 내가 깊은 잠을 떠난 것인가? 깊은 잠이 나를 떠난 것인가? 우리가 욕계 색계 무색계 하면서 낮과 밤과 꿈을 나눠보잖아요. 그것도 엄연한 하나의 세계야. 꿈의 세계가 있고, 낮의 세계가 있고, 꿈도 낮도 아닌 꿈꾸지 않는 밤의 세계가 있잖아요. 그것을 삼계를 윤회한다고 봐. 그 세계를 그대로 인정하면 윤회한다고 봐야지. 그렇지? 윤회한 바가 없어. 나는 윤회한 바가 없어. 꿈과 낮과 밤이 차례로 나를 찾아왔다 떠나는 것이지, 나는 늘 여여한 존재라요. 그러니까 어때요? 내가 욕계 색계 무색계를 윤회한다고 볼까? 아니면 욕계 색계 무색계가 차례로 나한테 왔다가 떠나고 그러는 것일까? 나는 不變(불변)하는 眞如門(진여문)이고, 욕계 색계 무색계는 변해가는 生滅門(생멸문)입니다. 거울은 여여한데 영상은 자꾸만 바뀌어. 그것이 우리가 파악하는 세상이라요. 영상은 혼자만 있지를 않잖아, 늘 세상하고 같이 있지. 죽음은 慾界 色界 無色界(욕계 색계 무색계)가 나를 떠나는 거라요. 죽음이라는 것이 욕계 색계 무색계가 나를 떠나는 거야. 태어나면 욕계 색계 무색계가 나를 찾아오는 거야. 찾아오면은 내가 태어난 것이 되고. 그 영상이 사라지면 죽은 거라. 우리 그렇게 파악하고 있어요. 六道輪迴(육도윤회)도 마찬가지라요. 근본 나는, 지금 여기 실재하는 내 본래 얼굴은 죽는 바도 없고 태어나는 바도 없어.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이나 지옥이 찾아왔다 떠나고 찾아왔다 떠나는 것이지, 우리가 지옥을 떠나서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요. 그 육도윤회 여섯 가지 세상이 나를 떠나는 것이 죽음이고, 여섯 가지 세상이 나를 찾아옴이 태어남이야. 그래요. 나는 늘 여여해. 태어난다는 것은 연기하는 한 세상이 찾아오는 거야. 죽음도 연기하는 한 세상이 떠나는 거라요. 나는 늘 여여해. 그러니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하는 그게 나이지. 그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그 자리가 어떻게 생사가 있겠어요? 나는 오고 감이 없어 여여하다. 죽음과 태어남은 실체가 없어 이미지일 뿐인 낮과 밤과 꿈이 오고 감이고 실체가 없는 천국과 지옥이 오고 감이라요. 나는 늘 여여해. 오고 감이 끊긴 나는 出世間(출세간)이고, 오고 가는 이 세상은 世間(세간)이라고 우리가 얘기를 합니다. 오고 가는 세상은 세간이고, 오고 감이 끊긴 세상은 출세간이야. 거울과 영상과 같아. 오고 감이 끊긴 진여문은 거울이고, 오고 가는 세상인 영상은 우리 세간입니다. 그런데 거울과 영상을 나눌 수가 없잖아. 세간이 출세간이고, 출세간이 세간이야. 거울이 영상이고, 영상이 거울이야. 그 나눌 수가 없어. 둘이 아닌 나와 욕계 색계 무색계를 역시 나눌 수 없고, 둘이 아닌 나와 육도윤회의 세상을 나눌 수가 없어. 항상 여여한 자리는 나야. 세상은 바뀌어 가도. 출세간이 세간이고 세간이 출세간이라요. 나눌 수가 없어. 그러니까 영상으로 보면 오고 가잖아. 거울로 보면 오고 간 바가 없어. 그러니 生老病死(생노병사)하되, 생노병사는 거울에 영상의 일이야. 거울은 생노병사 한 바가 없어.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것이 生老病死하되 생노병사한 바가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喜怒哀樂(희노애락)하되 희노애락한 바가 없어. 그래요. 그것은 영상의 일이야. 세상 모든 일은 비춰진 영상의 일이라요. 그 영상의 일이라 하고 거울하고 나눌 수가 없잖아. 世間(세간)하고 出世間(출세간)하고 나눌 수가 없어. 그러니까 모든 일을 다 하되 한 바가 없어. 五慾七情(오욕칠정) 그런 것을 다 하는데 그런 적이 없어. 그게 둘이 아닌 자리에 눈을 떴을 때 보여지는 세상입니다. 그렇게 파악되는. 그러니 더이상 뭐 할 말이 이제 없어. (16분 30초) 어때요? 우리가 언제나 主客合一(주객합일) 아니에요? 언제나 거울과 영상 사이 아니었어? 언제나 그래요. 언제나. 단지 우리가 생각을 보태 가지고 영상에다 이름을 지어지면서 따로따로 존재하는 물건으로 만드는 거예요. 영상에다가 이름을 붙여. 저것은 하늘이다 하면은 하늘이 태어나버렸어. 따로따로 존재하게 되었어. 저것은 산이다 하니 산이 따로 존재하게 되었고. 바다다 하니까 바다가 따로 존재하게 되었고. 나다 하니까 나가 따로 존재하고 네가 따로 존재하게 되었거든. 그게 그러니까 如夢幻泡影(여몽환포영)이다 그러죠. 실체가 없는 이름뿐이고 이미지일 뿐이다. 그런 거예요. 그러니 거기에 머물지 말라고 석가께서 하시는 것 아니에요? 거기 머물면 이름뿐이고 이미지일 뿐이다.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 머물지 말라고 석가께서 말씀하는 것 아니에요? 거기 머물면 갈등하는 세상을 맞이하고 머물지 않으면 열반이다 하는 거야. 그냥. 苦海(고해)가 그렇기 때문에 오잖아요. 영상에다가 이름을 붙여서 모든 만물이 따로따로 존재한다고 보니까, 그만 비교하게 되고, 비교는 갈등을 낳고, 그 갈등이라는 것이 苦海라요. 사바세계라. 그러니까 다른 방법이 없어. 이것이 苦海(고해)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게. 苦集滅道(고집멸도). 그러잖아요. 苦(고)의 원인이 무엇이냐? 세상을 둘로 만물로 보는 것이 원인이다. 그 集(집)이라요. 苦集(고집). 그러니까 苦(고)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集(집)을 부숴버리는 일밖에 없지. 둘이 아닌 것으로 보는 눈을 얻는 거라요. 우리 공부가 그거라요. 둘이 아닌 눈으로 보는 것. 그것이 苦集滅(고집멸)이라요. 둘로 보는 안목을 둘이 아닌 안목으로 바꾸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여태까지 공부해 왔듯이 둘이 아니잖아요. 전부 지금 여기 일이잖아요. 전..부.. 지..금.. 여..기.. 일..이..야.. 이 공부가 대단한 공부라는 것이 우리를 한갓 피조물에서 창조주로 주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공부라요. 이 공부가 없으면은 항상 피조된 자리야. 수동적인 자리라요. 주동적인 놈이 못되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지. 여기에 눈을 못 뜨고는 아무리 세상을 좋은 세상을 만들고 바꾸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해. 둘로 보는 한은 苦(고)를 떠날 수가 없어. 그러니까 얼마나 간단한 얘기야. 苦集滅道(고집멸도). 세상이 왜 苦(고)이냐? 集(집)이다. 둘로 만물로 보는 네 눈 때문에 그렇다. 그러면 비교하고 갈등하게 된다. 이것을 없애는 길은 滅(멸)이다. 만물을 실체가 없다고 보고 둘이 아닌 눈을 떠야 된다 그래요. 그러면 바로 道(도) 열반이다. 더이상 공부할 일이 없어. 그 스님들이 법상에 올라가지고 “탁 탁” 이러고 내려가시잖아요. 사실은 그것 외에는 전할 일이 없어. 손가락 하나 드는 일 외에는 전할 일이 없어. 다 여기 일이잖아요. 전부 여기 일이야. 그것만이 긴요한 우리가 터득해야 될 깨달아야 될 문제지. (20분 41초)
@여래심-f9w
@여래심-f9w Год назад
🙏🙏🙏🪻
@오기남古月
@오기남古月 Год назад
2023년 8월 13일 선재 박준수 선생님 [영원한 지금 12] 법문 도입부입니다. (1) 이제 죽음도 생각할 나이 같아서, 죽음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때요. 제가 질문을 하나 던졌는데. 세상이 나를 떠나가는 걸까? 내가 세상을 떠나는 걸까? 어떨까? 우리는 보통 내가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을 했지. 세상이 나를 떠나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누가 헤르만 헤세의 시를 이렇게 노래로 부르는 것을 듣고, 어 저것은 아닌데 싶어. 그냥 그래서 제가 죽음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하고 써보았습니다. 어때요? 내가 세상을 품고 있을까? 세상이 나를 품고 있을까? 그렇게 말을 하죠. 제가 50대 그때 접한 책에서는 우리의 착각이라는 거야. 내가 세상을 품고 있지. 세상이 나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니다는 거야. 그때 굉장히 신선했어요. 내 안에 세상이 있지, 세상 안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래. 그렇잖아요? 우리가 봐도. 거울이 영상을 품고 있듯이 내가 세상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거울과 영상이 나눌 수가 없잖아. 그런데 영상이 거울을 품고 있다고 말은 안 하지. 거울이 영상을 품고 있지. 영상은 늘 바뀌는 데 거울은 여여해. 그 거울 자리를 나라고 본다면 내가 세상을 품고 있는 것이지. 죽음이라는 것은 세상이 나를 떠나가는 것이지. 세상 안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세상이 있는 것이다. 우리 여태까지 공부해 온 것이 이거예요. 내 품 안에 세상이 있다가, 죽음이라는 것은 세상이 나를 떠나는 거야. 마치 꿈속 세상에 있다가 깨어나잖아요. 꿈에서 내가 빠져나온 것일까? 꿈속 세상이 나를 떠난 것일까? 꼭 그렇잖아요.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꿈이라고 하면, 이 세상이 나를 떠난 것이고 딴 세상이 나를 찾아오는 게 우리는 윤회다 거듭난다 그러죠. 나뿐이야. 나..뿐..이..야.. 보고 듣고 앉고 서고 생각하고 말하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노여워하고 즐거워하고 욕심내고 그런 일이 다 어디 일일까요? 지금 여기 일이야. 우리 일상이 다 여기 일 아니었어요? 보는 것 듣는 것, 앉고 서는 것, 생각하고 말하는 것,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 노여워하고 즐거워하는 것, 욕심내는 것. 그 누구의 일일까? 내 일이지. 지금 여기 일이지. 너와 나를 나누어 본 그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일이죠. 지..금.. 여..기.. 일.. 그 외에는 한 물건도 없어.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이다 그러잖아요. 본래 한 물건도 없어. 그런데도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욕심내잖아요. 그게 지금 여기 일이야. 지금 여기 일. 그것 외에는 한 물건도 따로 없어. 그러니까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 천상천하에 나 홀로다. 그러죠. 나뿐이다. 그 唯一者(유일자)이지. 우리는 唯一者야.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는 존재예요. 그 있는 그대로잖아요. 있는 그대로야. 있는 그대로가 뭘까요?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욕심내는 것이 있는 그대로예요. 지금 여기 내 일이야. 그것 외에는 한 물건도 없어. (5분 5초) 그러니까 이름에 머물지 말라고 그러잖아요. 금강경에 석가께서 應無所住而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 하라. 이름에 머물지 말고 살아라. 그 이름 안 따라가는 거야. 이름 안 따라가면 보는 것 듣는 것 그것이 나이지. 그것 외에는 한 물건도 없어. 이름이 들어서니까 내가 하늘을 본다 하고 나눠보지. 이름만 없어 봐요. 언제나 지금 여기 일이지. 그 우리의 일상이 見聞覺知(견문각지)하고 語默動靜(어묵동정)하는 일상이 모두 ‘너 없는 나’ 둘이 아닌 내 일이라요. 그 외에는 한 물건도 없어. 지금 여기 내 일이지. 우리가 항상 이름에 속아가지고 이름에 머무니까 세상 만물이 공존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만물이라는 것이 이름이 만들어 놓은 것들 아니에요? 하늘이다 땅이다 나다 너다 착하다 악하다. 다 이것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 같은데, 이름이 나눠놓은 것들이라요. 이름 이전에는 언제나 둘이 아니야. 그러니까 알 수가 없어. 그 자리는 알 수가 없어요. 왜 알 수가 없어요? 우리는 이름밖에 모르니까. 비로소 우리는 이름을 만들어내면서 이름으로 파악을 해요. 세상을. 그 이름으로 쪼개져 버린 것이지 세상은. 나누어지기 전에는 언제나 主(주)와 客(객)이 둘이 아니야. 보는 자와 보여지는 대상이 나누어질 수가 없어. 唯一者(유일자)이지. 오직 한 분 뿐이라요. 어때요? 꿈속에서 나 없는 꿈을 꾸어 보았어요? 내가 없는 꿈을 꾸어 보았어요? 그런 일 없었지. 내가 없는 꿈이 있을 수가 없어. 이 세상도 내가 없는 이 세상이 있을 수가 없어. 여기서 내 없는 이 세상이라는 것은 ‘분별식인 나’ 꿈속에서 나 없는 꿈 같은 거야. 나라는 것은 나누어진 나. 나 없는 꿈이 없잖아요. 거기 꿈속에서는 항상 내가 있었지. 이 세상도 항상 내가 있죠. 왜 이 세상이 같이 드러날까? 나하고 세상하고. 그게 유명한 석가께서 밝히신 緣起(연기)라요. 내가 등장하면 세상 만물이 같이 등장해. 연기적 관계이기 때문에 그래요. 국어사전에 모든 단어가 서로 연기해. 그래서 하나가 일어나면 나머지 모든 단어가 다 일어나. 그러니까 이 세상을 구성하는 거라요. 이름뿐인 이 세상을. 이미지일 뿐이 이 세상이 왜 동시에 드러나는가 하면 緣起(연기)이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있어서 네가 있고, 네가 있어서 내가 있는 세상이야 이게. 그러니까 우리는 내가 없는 꿈을 꾸어 본 적이 없지. 내가 사라지면 이 세상도 사라지는 거예요. 우리가 잠이 들면 이 세상이 있을까? 내가 잠속에 푹 빠졌는데, 이 세상도 같이 빠져버린 거라. 이 세상도 같이 떠나버린 거라요. 그러니 나만 잠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도 잠들어 버리는 거야. 잠속에 빠지면은. 잠에서 깨어나면 이 세상이 같이 일어나지. 그중에 나도 있고 너도 있는 세상이지. 그 죽음은 어떤 걸까? 죽음. 내가, 본래의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니야. 영상이 거울을 떠나듯이, 이 세상이 나를 떠나는 거예요. 내 本來面目(본래면목) 본래 얼굴은 둘이 아니거든. 둘인 자리가 떠나는 거야. 그게 죽음이라요. 거울은 죽을 수가 없지. 영상만 왔다 갔다 하지. 어젯밤 꿈을 내가 나왔을까? 꿈속의 세상과 같이 사라졌지. 그게 꿈에서 깨어나는 거라요. (10분 19초)
@시원박-o8k
@시원박-o8k Год назад
좋은 법문 감사합니다🙏법문 중에 이법의 세계에서 는 부처님 몸에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혹시 사법의 세계에서 그러하지않나 여쭈어봅니다🙏
@무연-i5d
@무연-i5d Год назад
선생님 감사합니다 🙏🏻🙏🏻🙏🏻
@보월-c9k
@보월-c9k Год наза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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