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부 장관 월북 사건’ - 2019 월북 사건의 진실! “나는 공화국에 살고 싶다!” - 3대째 이어진 월북, 이에 숨겨진 출생의 비밀? -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북한에 충성을 맹세한 사연은?! - 역대 최고위직 월북자! 北에서 받은 특급 대우의 전말!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매주(일) 밤 11시 방송
벅정희가 최덕신 후배라는 얼토당토한 예기를 늘어놓는 걸 보면서 참 한심하구나, "선배님!" 그러면서 어쩌구 저쩌구 했다는 말을 늘어 놓는걸 보면 역사적 고증은 아예 하지도 않고 그저 흥미 위주로 떠벌리고 있는 걸 보면서 이 프로를 진행하는 프로듀서나 관계자들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박정희가 최덕신 보다 더 선배라는걸 아시기를 ..........
박대통령이 육사 2기이고, 최덕신이 육사 3기인건 맞지만, 육사 1,2,3기는 대부분 군경력자들을 대상으로 한 3개월짜리 특별반 교육이라서 한 기수 빠르다고 딱히 선배라고 보기는 애매합니다. 실질적으로는 최덕신이 나이도 더 많고, 군경력도 더 길고, 진급도 더 빨랐기에 (박통이 5.16때 소장이었는데, 최덕신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군단장-육사 교장까지 역임하고 중장으로 전역했죠) 박통보다 군 선배였다는게 아주 틀린말은 아닙니다. 물론 둘 사이에 "선배님!" 그랬다는 주장은 출처가 어딘지를 몰라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최덕신의 친북 행위는 욕먹어도 싸죠.
@@ryongzzang 선배는 선배지 무슨 논리인지 .... 박정희 대통령은 나이는 정릴권과는 동갑이지만 생일은 몇 달 빠르지만 만주 군관학교의 선배인 정일권을 깍듯이 선배 대접을 했고 호칭도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까지는 "각하" 혹은 "선배님"으로 대접했다. 박통은 공부를 무척 잘해서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본육사를 자동 편입했을 정도로 엘리트였다. 송요찬 같은 용맹은 하나 무식한 소위 말하는 "똥별" 같은 무식하고 부패한 장군이 아니였기에 후배나 육사 제자들의 존경을 받아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첨언하면 역명 당시의 육군 참모총장은 장도영 중장이었는데, 장총장은 일본학도병출신에 나이도 박통보다 한참 어렸지만 "각하"라고 깍듯이 대접했고 혁명당시에도 아무공로도 없었지만 혁명군 사령관으로 모셨다. 여기에 댓글을 달거나 제작하거나 소위 패널이란 작자들은 도대체 프로정신이 있는지 의문이다. 잘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한다. 자꾸 왜곡을하면 또 다른 역사왜곡으로 이어질 것이다.
@@simonkim33 제가 설명했는데 이해 못하셨어요? 제가 뭐 박정희 대통령을 까내리거나 최덕신이를 옹호하는게 아니잖아요. 당시 남조선경비학교 1기, 2기, 3기 (훗날 육사 1기, 2기, 3기)는 대부분 군경력자들을 대상으로 했고 기간도 3개월로 짧았어요. 그래서 물론 서류상으로는 선배지만, 군 경력이 훨씬 짧은 경우도 있었고요. 그래서 졸업하자마자 소령으로 특별진급했고 1950년말에 이미 사단장을 맡을 정도로 박대통령보다도 진급이 훨씬 빨랐다고 그냥 팩트만 말한겁니다.
몇번이나 지적을 했지만 이만갑은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과 너무 차이가 납니다. 최덕신은 1914년 생으로 박정희보다 3실위입니다만 군 서열로 봐서는 박정희가 조선경비사관 2기로 1947년 벌써 대위이며 최덕신은 이때 이제 육사2기로 입학합니다. 어떻게 이런 관계에서 박정희가 최덕신을 형님으로 부르며 한일 청구금 문제는 박정희집권이후에 시작한 것이 아니고 이승만 그리고 4.19혁명이후 민주당집권 때도 계속되었으며 5.16이후 때는 청구금액도 어느 정도 접점에 도달하였던 문제입니다. 너무 골빈 젊은 애들을 위한 재미를 위주로 하다보니 내용이 너무 엉망입니다. 지금 이만갑에서 하는 말은 역사적 사실과는 너무나 먼 일방적인 이야기입니다.
육군사관학교의 효시는 "군사영어학교"에서 시작해서 조선경비사관하교로 개칭했다가 독립 후에 육군사관학교로 또 개칭했고 전란 중 육사 11기, 즉 전두환, 노태우 때부터 4년재 정식학사 과정을 문교부로부터 인정받았다. 당시 육사 학생처장 이었던 박태준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즉 조선경비사관학교가 육사인 것이다. 조선경비학교 1ㅣ가 자동적으로 육사 1기가 된 것이다.
최인국님의 일가친척과 가까운 친지, 친구의 가족들까지 다 보내드립시다. 까마귀는 까마귀끼리, 돼지는 돼지끼리 모인다던데..... 본인은 갔는데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여기서 뭔가 꽤할 일이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돼지는 돼지농장으로 보내는 것인 최선입니다. 물론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이니까 본인의사가 최선. 거짓말한 댓가는 만배쯤....
우리 할머니 거창 사람인데 집에 숨어 있으면 인민군들이 주방에서 살림 뒤져서 밥 해먹고 아침에 떠나고 그랬다고 하더라 ㅠㅠ 다행히 공격하거나 그러진 않았다고… 그거 말고도 거창 양민학살때도 생존자 찾으러 갔다가 진짜 시체더미에 깔린 생존자 손이 쑥-하고 튀어나와 살려달라고 발목잡고 그랬다고 했음. 그리고 진짜 인민군이 남자들 손 만져보고 부드러운 사람은 바로 다 끌고 가서 처X했다고 했음.
"양민학살" 이 꼭 제주 4.3 사건 과 아주 같슴니다. "이승만 "때 입니다. 제주에 아이가 말 발꿈에 채인 사건으로 혼란일때 "이승만" 의 선거를 제주에서는 (백길 였기에)) . 모른채 있었는데(연락을 못 받음) "제주에 빨갱이들이 있다" 하고는 군인들을 보내 (이승만 반대하는 제주도라 여기고) "빨갱이를 도와줬다고? 9살 머슴아이들 부터 모두 잡아다 합동 총살과 집마다 물을 질러 다 남자들은 그때 전멸? 이였답니다. 옆에 "최"장군의 입김이 군대들이 내려와 이 짓들이였나 봅니다. 처음에 전라도에 있는 대대군사들에게 제주를 가서 전멸 시키는걸 사단장이 거부 했답니다. 그런데 다시 군인들을 보낸건 이제 알고보니 "최덕수 " 입김 일이란걸 지금 알게 됩니다.(무조건 북한 군인들 도와 줬다는것때문) 또한 이승만의 투표에 전혀 없는 상태 였기에. (우리 한아버지 7형제는 불지른 집에서 모두 불에타서 시체가 누구인지 구멸이 안되어 치아로 확인도 했다함) 같은날 제사가 하루에 2세, 3세는 지금도 밤샘을 하는 편이랍니다. 감사 합니다. 희미한 국가의 긍정을 더 역사가 깃든 내용이라.....아...아. "최만길" 인한 탈부으로 조잡한 역사에 또 치를 떨어 봅니다. 이 모든 자세한 역사는 이렇게 연관된 시실은 더 기록리 안되여 있는데...... "제주 4.3 사건 단체에서 알아야 합니다." 댕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