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꿈! 오길남의 마지막 편지] - 독일에서 촉망받던 경제학 박사, 오길남에게 뻗친 검은 손길? 온 가족의 운명을 바꾼 불행의 서막! - 北의 기막힌 경제학 박사 사용법?! 북한에서 마주한 차디찬 현실은? - 북한에서 보낸 가족사진 속 숨겨진 사실! 사진 속 장소의 정체는?! -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얼굴, 北에 남겨진 딸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매주(일) 밤 11시 방송
너무 불행한 한국사 입니다. 우리 부모 님께 단 한가지 감사 한건 그 때는 몰랐지만 빨갱이들 혐오했던 것이다. 여기서 오길남 의 상황은 이해가 되나 신 숙자씨는 목숨울걸고 애들 이라도 붙들고 북으로 안 갔어야 했다. 저도 그 당시 서독으로 3,년 계약 으로 갔다 온 사람인데 가기전 소양교육을 어주 철저히 받는데 그 걸 잊은거 같다. 그 게 더 화가 난다 선 무당 사람 잡는 다고 온 시간을 다 받쳐 박사가 된 나이가 너무 오래 걸리고 그걸 쓸 수 있는 나라가 빨갱이 북한 이런거 때문에 자기는 그렇다 손 치 더라 도 죄 없는 가족은 왜 이런 형벌을 받아야 하는가 말이다 구랴서 바보같은 오길남 과 결단성 없었던 신 숙자가밉다. 이 가족은 이미 쏟아진 물 정도가 아니라 희망이 없어진 상황이다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이 런 비극은 절대 일어 나서는 안 될것이다 우리 나라에 현재 기 승을 부리고 갸 지랄을 떠는 빨갱이 새끼 들 너의 자식들 북한에 보내면 어떻겠나?
잘못 선택으로 생각지않은 인생을 사신 분이군요. 80 년도에 저도 독일 유학 중 이였는데 이해가 안가는 점이 많아요. 우선 파독 간호사가 유학생과 만나게 되는 경우는 드문 일이지요. 또 근무하던 중 간염에 걸렸는데 치료비가 부담이됐다? 독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 입니다. 책을 자비로 3000권을 샀다? 독일 책값은 매우 비쌉니다. 당시 한국과 비교도 할 수 없이 비쌌습니다.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배우자에게 강요 함은 오만입니다.자녀들에게 그리움 보다 원망을 가슴가득 새긴 허무한 인생 이야기 입니다.
오길남씨는 비겁하고 어리석은 자다. 그 이상도 아무것도 아니다. 가장으로서 독일에서 15년을 공부만 했었다면 아내의 노동에 빨대 꽂고 산거고 아무 준비도 안된 무책임한 아버지고 가장이라고 말 할 수밖에.. 학위후에 어떤 일을 할 건지 아무 대책도 없었다는게 이해가 안간다. 그냥 쉬운 월북이라는 선택지는 택한 오길남씨는 잔신의 이기적인 생각과 탐욕을 쫓아 가족 전체를 불구덩이에 몰아 넣은거다.
@@texaslife7239 오길남 가족은 북한에 도착하지마자, 대남 방송과 다시 유럽에가서 다른 유학생 가족을 포섭을 하라는 지령을 받았습니다. 그 때 부인이 우리가 당한 일을 남에게는 당하게 하지말고, 유럽에 가서, 우리를 위한 구명 운동을 하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부인은 마음이 참으로 올바른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도 오박사가 북한에 가자서 고집을 부리니까, "언제 당신이 크게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라고 했답니다. 차라리 그당시 부인이 나와 우리 애들은 여기 서독에 있든지 대한민국으로 갈것이니, 당신 혼자 북한으로 가라했었어야 했는데..... 지금도 대한민국에는 학력은 높지만, 마음이 삐뜰어져서 종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아비라는 인간이 가족을 지옥으로 끌고가서 혼자만 탈출하고..아픈부인 어린딸 지옥에 던져놓고 .. 진짜 싫다 .내가 그딸이라도 꼴도보기싫을거 같은데 김일성보다 오길남 당신이 더 악마같소 그오랜세월 돌려달란 말만 말고 직접 좀해보시지 다른 탈북자들은 돈벌어서 브로커구하고 북에 남은가족 잘만 데려오더만.당신은 몇십년을 그조차도 안하고 그저 여기저기서 도와주기만 바라고사셨네 한심하다 정말
15년동안 공부만 하면 다른것에 대해서는 사고정지가 됨, 공부하는것밖에 모름. 딸들아, 신랑감 고를때 학력, 집안, 경제력만 보지 말고 나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 내가 존경할수있는 건더기가 있는 사람인지를 심사숙고하라. 그리고 그가 자기의 부모와 동료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를 보면 그의 됨됨이를 충분히 알수 있다. 오길남 박사의 아내는 정말 괘찮은 여자다. 그는 아내로서 남편을 자기의 목숨으로 구했고 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했다. 그녀가 남편을 도망치게 하지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얼마나 더 많은 우리의 젊은 유학생들이 그한테 포섭되고 또 포섭되어 노예로 살고 있었을가? 사모님, 정말 머리숙여 존경을 표합니다. 오길남 박사, 당신의 아내는 자기의 목숨을 걸고 당신을 구했습니다. 당신은 지금이라도 당신의 목숨을 걸고 당신의 아내와 두 딸을 구할 용기가 있습니까?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것!
잔인한 말이지만 15년동안 박사학위를 위한 공부를 했다는 것은 그가 박사학위를 할 만한 능력이 없거나 공부를 하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그런 그가 한국으로 와도 제대로 직장은 있을 수없고 무능력을 감추는 방법은 반정부활동입니다. 자본주의는 잔인한 것입니다. 능력이 있는 자만이 살아 납니다. 그리고 학문은 솔직한 사람이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무능이나 미화된 반정부의 결과로 오박사 당신이 잘못 선택한 결과입니다. 진중권보십시요. 학위도 못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반정부와 잘넌체하는 사회의 경계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부는 못하지만 머리가 있는 사람이 택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사정입니다. 저런 사실을 보고도 북한을 미화하는 인간.... 박정희나 전두환독재정권 운운하는 자들이 아직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botl214 박사님 한텐 정말 죄송 하지만, 그분은 자기 자신이 빨갱이인지, 파랭이인지, 그것도 아니면은 노랭이 이신지... 알지를 못하는것 같습니다. 독일에 망명 했다가는, 북한으로 가서 김일성이에 충성 맹세 하고는...한국이 싫어서 망명 했던 분이 이제는 한국에 살면서, 내 딸과 나를 교환 하자는 헛소릴 하고 계시니... 부인과 자식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어리석은 우리 독일 박사님 떼문에 가족들은 인생의 나락으로 속잘없이...
통영이 낳은 위대한 김일성의 전사 윤이상에 대해서는 말이 없냐? 통영의 딸보다 통영이 낳은 위대한 음악가는 지켜주고 싶었던 거냐? 윤이상의 음악성이 한가족을 몰살시킨 그의 죄악을 눈감아 줄만큼 위대해 보이더냐? 오염된 심장을 가진자들이 예술가라 자칭하는 꼴들이 가소롭구나.
맞습니다. 왜 윤이상이가 오길남씨를 적극적으로 북한으로 이끈 얘기는 다루지 않습니까. 통영이서 살고있는 윤이상의 부인과 딸은 버젓이 평양과 통영을 오가며 잘살고 았다지요. 그들에게 찾아간 오길남씨를 윤이상의 부인은 만나주지도 않았지요. 윤이상의 음악지가 통영이서 열린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그는 북의 첩자였습니다,
이영상을 5번째 보면서도 저는 왜 오남길이란자가 가증스럽고 이기적으로 보일까요? 이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북으로 데려간 가족을 두고 혼자 탈출?? 아이고 이 어리석은 양반아.. 박사학위는 어찌 받았는지.. 그 생떼같은 어린 주딸을 북에두고 어찌 사셨소? 그삶 지옥에서 사셨길 바라오..
본인이 가족을 데리고 갔다면 끝까지 어떻게서든 가족을 지켰어야죠 가족만 버리고 다시 혼자 탈북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어리석은 결정하나로 식구모두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본인만 살아나왔다는 걸 죽을때까지 잊지말고 사죄하고 살았으면 합니다..
오길남 하나도 안타깝지가 않습니다 . 북으로 돌아갔다가 혼자 돌아오다니 ,,, 그것도 37년동안 따듯한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낼시간에 ,,북에 있는 딸들 아내 배반하였습니다 .. !!!! 아내는 돌아갔겟지만 ,,,, 딸둘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컷을거같아요, 아마 자식을 낳고. 사셧을껏같아요 ,,!! 아마 아버지란 이름도. 엮이기 싫을거같아요 . 누굴위해서 사는건 아니지만 본인에 선택으로 3사람이 인생을 짓밟앗습니다 . 인생은 참 ,,
1978년에 내가 독일에서 대학 생활을 조금아는데 , 간호원 가족은 의료혜택을 받아 치료비 걱정은 않해도 돼었으리라믿음, 그러나 박사학위를 받아도 독일에서 대학에 교수가 되기는 거의북능합니다 왜냐면 그당시독일의 대학 교수는 정원제로 대학이 모두 국립이기 때문에 한사람이 은퇴하거나 그마둬야 자리가 나기때문이었음니다.
최 회장님 감사 합니다. 자식 생각에 그리움만 있던 아버지는 결국 어릴때의 기억만이 있는 "오박사님" 을 요양원으로 돈봐 주심이 얼마나 큰 힘이 되실까요? 젊었을때 책임을 가장 으로꺼써 지킨다는게....북한 실정을 모르신게 비극의 시작이 되였음은.............."깨진 그릇에 후회를 한들 ....악독한 그들의 만행이 알려 질깝하 쉬쉬를 하고 있는 북한 정부요원들. 참말로 어리석기도 ........... 그러나 마지막인 :오길남 박사님의 " 소원을 , 들어 주심 합니다. 사진이든, 녹음된 아이들 목소리든 보내 주신다면 당신들에게 인간애 는 있는 북한이라 하겠읍니다. 이 기회에 세계에 북한 을 알리기도 하십시요. 좋은 기회가 아닌지요. "김"기자님의 수고, 절절한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시려고 "이만감" 을 통해 다시 회상하게 하는 "오 박사님" 의 처지를 호소하는 이 시간 주시는것 갑사 드립니다. "남 희석" 님 열심으로 : 프로 그람을 통해 많은 탈북민 들의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영상 으로 암암리의 북한 실정 보여주심 감사 드립니다. 통일이 빨리 왔음 합니다. "피" 의 호소하는 이 소리가 하늘에 닿기를 기도 하면서.... 댕큐 !
흠 루이제린저 이야기 나오는 바람에 영상중간 끊습니다. 거짓된 삶을 살아 자신의 자식에게도 존경을 못받은 천박한 나치주의자 여인의 삶이 떠올라서요. 작가라는 이름을 빌린 오염된 영혼의 필적이 세상을 얼마나 어지럽히고 얼마나 모순된 스스로의 삶 조차 정리하지 못한채 사라졌는지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이영상을보고 한동안 할말이 없었읍니다. 우선 부인 김순자씨는 아주 정신력과판단력이 강했고 , 북한에서도 강한의지력과 사상으로 딸들도 그렇게 교육되덨다고 믿읍니다. 또 저희들도 같은 시대에 한국에서 철저한 반공교육으로 독일 유학왔기에 부인과딸들의 입장에선 불행한 현실이지만 정신적으론 굽히지않고 강하게 살것입니다. 다만 이걸보면 인생에서 서울대학교, 유학한 박사학위가 얼마나 허무한가 ???? 사람이 정신적으로 확고한 줏대가 없으면.....왜 지금도 문재인, 이재명, 송영길, 김의겸 같은놈이 저렇게 북한에 매달리는지....... 우리는 아직도 이곳독일에서도 당당한 보수우파로 살고있는데....... 대한민국만세. 독일에서 인사드립니다.
저도 미국에서 살지만 대한민국에서 어찌 오늘날 봐파 빨갱이들이 들끓어 413제주 폭동에 대해 바른말을 한 태영호의원에게 징계를 내리는지 기가 막힙니다. 김구가 김일성에게 이용당핮건 역사적 사실임에도 그런말을 하면 당원들이 뽑은 최고위원 자리도 내어뫃아야 할정도로 나라에 좌파가 판을치는 나라가 되어ㅛ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빨갱이을 곳곳에서 내쳐야 합니다
어릴때 탈북해서 온 신가 자매는 왜 이렇게 자주나오는가? 이만갑이 아니라 신가들 돌림빵 방송이다. 새로운 인물들 나와서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것도 좋고 또한 그 사람들이 여기 출연하고 얼굴이 알려지면 그 인기를 업고 더 정직하게 더 열심히 살아갈것아닌가 나는 이만갑이 이런 방송이되기를 희망한다. 매주 새로운 탈북자 1명이라도 저 신가들 자리에 앉기를 바란다.
70년 대는 몰라도 지금은 해외에 있는 한국 사람들끼리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지요. 해외에 있는 한국 사람들은 다투고 싸우고 우기고 서로를 질투하고 경계하고 심지어 서로 사기까지 칩니다. 미국에서 살고 조국으로 돌아와서 압니다. 아주 냉정한 현실입니다.
@wonholee7789 댁이 공감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지적한 내용은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주 날카롭고 냉정한 현실이지요. 아마 댁은 해외에서 사시는 동안 그런 사건들을 겪지 못하셨거나 듣지 못하신 것 같군요. 하지만 겪지 못했거나 듣지 못했다고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해외에서 살면서 이런 사건을 겪으신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에의 말씀을 들으시면 정말 해외에서 한국 사람들은 다투고 싸우고 우기고 서로를 질투하고 경계하고 서로 사기를 친다는 사실을 아실겁니다. 물론 겪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겪은 사람들도 또한 반드시 있습니다. 왜? 그런 사람들을 제가 많이 만났으니까요. 특히 종교단채에서. 그리고 공감이 되지 않는다는 댁의 그 말씀을 해외에서 같은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한 분들에게 말씀하시면 그분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댁은 어디서 사시는지 모르지만 저는 미국에서 30년 넘게 살았습니다.
그러니까요. 어렸엇겠지만 6.25를 격었고 그 어려운 전후시대를 살며 반공 교육도 받았고 한국에 간첩들이 얼마나 못된짓을 하고 그로인해 육영수 여사도 서거했는데,,,,70년대에 탈북을 했다 해도 한심한데 85년도에 미국 이민이면 몰라도 탈북이라니 진짜 어찌 저리 한치 앞을 못 보는 답답한 가장이 있을까? 북한에남겨진 가족들ㅠㅠ 넘 안타깝네요.
이분 무슨 짓을 저지르신건지, 이렇게 답답할 수가… 딸들 어쩌나요 ㅠ 북한만 탓하면서 이분을 포장할것이 아닌듯한대요. 결정을 한 장본인은 저렇게 살고 있고 아내분과 딸들만 수용소에서 살다 제 명에 못 죽었을듯한데요. 뭐하는 상황 ㅠ 그나마 안 죽여서 다행이니… 사는게 사는것일까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