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이 건의 문제는, 실수가 아니라 무지가 거의 확실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단순 실수였으면 수정 전의 원본 영상에서 두번씩이나 계수나무 계자 를 쓰지 않았겠지요. 문과의 최 극단에 있는 부류 중 하나인 언론사가 이걸 몰라서든 실수이든 어떻게든 문제가 있습니다. 원본 영상에서 계속 닭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걸 보면서도 잘못 적는 것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자격미달입니다. 방송사 영상을 편집하시면서는 상당한 지적 수준이 필요합니다. 가톨릭 신부님들이 왜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지 아십니까? 가장 무지한 사람부터 가장 똑똑한 사람까지 모두를 끌어 안아야하기 때문입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와 소통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방송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쉬운 한자 하나 모른거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다 라는 점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桂林은 중국 지명이고요, 신라 계림은 鷄林입니다 14F는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채널인 것으로 아는데..... 참 대단하네요••••••. 계수나무 계자와 닭 계자를 구분하지 못 하다니••••••. 그리고 사실 신라 계림을 표기 할 때는 닭 계 자도 평소 사용하는 자가 아니라 이체자로 씁니다
곽재식 작가님의 다소 황당한 상상력이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에 재미를 주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봅니다. 난생설화나 편두를 보고 외계인이 내려왔나 같은 상상은 누구나 한 번 쯤은 해볼만한 것들 이고, 곽재식 작가님이 그런 상상을 언급하고 강인욱 교수님이 이에 대해 제대로 정리를 해주는 스토리 진행 방식은 매우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계림 한자만 오류로 지적을 많이 하신 것 같은데, 김알지 탄생 설화에서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닭이 울어 가보니 금궤짝이 있었고 그 안에 아이가 있었다는 내용만 있죠. 큰 알이 있었다거나 달걀에서 태어났다거나 하는 건 닭이 울었다는 것과 연계된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고구려는 고조선 땅에 서울을 두었고, 신라는 고조선 유민들이 세운 나라이고, 마한 여러나라들은 고조선 준왕이 내려와 세운 나라들이고, 결국 부여,고구려,신라,백제,삼한,예맥,옥저 모두 다 한 뿌리 같은 종족이었기에 조류, 닭, 깃, 솟대, 새모양 그릇, 삼족오, 새 그림 등 '새'에 대한 토템이 있었던 것이죠.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을 해서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는데 신라하고 당나라랑 연합을 하려면 작전을 짜야하는데 연락수단이 뭐였는지 부터 밝혀라 그시대는 휴대폰도 전화도 없는데 비들기로 아니면 매로 나라가 한대륙에 있어야 연합이 가능하지 어떻게 대륙에 당나라와 한반도 오른쪽구석의 신라와 어떻게 연락을 주고 받았는지 부터 말해주세요
신라가 왜 당나라와 손을 잡고 백제와 고구리를 공격했는가가 저는 매우 미스터리했었는데, 알고보니 신라와 당나라의 지배층은 같은 선비족 계통이었더라구요. 반면, 같은 계열인 고구리와 백제는 몽골계의 북방민족 계열이었구요. 결국, 같은 출신의 지배층끼리 타 지배층을 치고 합병하려는 전쟁이 그러한 전쟁이었던 것이죠. 물론 말씀하신대로 당시 신라는 대륙 중부의 백제를 그 왼쪽의 당과, 그 밑에 위치한 신라가 합심하여 공격을 했죠. 그 이후로, 통일신라는 몽골계의 북방계의 후예인 발해와도 교류를 하지 않고, 서로 적국으로 여겼던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던 발해가 고려(고리)로 통합되면서 그 고리가 결국 신라까지 합병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고리(고려)가 탄생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육이오 때 함경도에서 피난 오신 여 성분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함경도 여인들은 중국 마 적 행 패를 방어하기 위해 총 칼 활를 가지고 대적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아주머니들은 기골이 크고 목소리도 크고 성격도 활달하여 남성들을 좌지우지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함경도 남성보다 여성이 더 강하였다는 기억이 납니다.
흉노족은 튀르크족입니다. 그리고 더 정확히는 '흉노족'이 아니라 '흉노제국'입니다. 가끔 흉노제국을 막연히 '흉노'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공식 명칭은 흉노가 아니라 '흉노제국(훈누제국, 훈 제국)'입니다. 왜 흉노'제국'인가? 당시 흉노제국은 몽골-튀르크계, 이란계가 전부 연합해서 건국한 세계 대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흉노제국의 후예라고 하는 국가들은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많은데, 대표적으로 중앙아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튀르키예, 헝가리,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튀르크메니스탄 같은 전세계를 점령해있는 몽골계 국가들과 튀르크계 국가들은 모두 흉노제국의 후예라고 생각하시면 되고, "우리들이야말로 흉노제국의 진정한 공식적인 후예다!"라고 강하게 외치는 국가가 바로 튀르키예죠. 튀르키예는 육군 창설일을 대정복자 묵돌선우가 흉노제국을 건국한 기원전 209년으로 표기했을 정도로 흉노제국의 후예들 중 가장 흉노제국을 모범적으로 섬기는 국가입니다. 또한 당시 세계 초강대국인 고대 중국 한나라, 로마보다도 훨씬 군사력이 강했던 흉노제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강국이기도 했죠. 그리고 흉노제국의 상징은 늑대였는데 그래도 세계패권제국 몽골제국의 상징이 말과 늑대였었고, 돌궐제국(튀르크제국)의 상징도 늑대이기도 했습니다.
잘못알고 계시네요 한나라의 실체는 정확히 없습니다. 다만 북방아시아가 당시 최강국이었지만 그 나라가 어느나라인지 모릅니다 전세계에서 발굴되는 오수전 그 주인나라가 세계패권국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게 어느나라인지 모릅니다 중국과 서구역사관에선 한나라로 주장되고 인용되지만 헛점이 많죠 그리고 그 두 세계관 한漢족과 유럽은 그 시대에 주류국이 아닙니다
저당시엔 국경이 지금처럼 명확하거나, 국경감시가 심하지 않았기에 군대정도의 규모만 아니면, 상인, 여럿일족들이 국경을 맘대로 드나 들었습니다. 즉, 중앙,북아시아에서 신라, 백제까지 왕래하는데 고구려와의 정치적 관계는 큰 영향을 받지 못했다는거죠. 지금 미국도 첨단장비와 수십만의 인력을 동원해도 남미 불입국자들을 많이 놓치는데 저당시엔 말하나 마나죠.. 심져 적의 군대가 국경을 한참 넘어 수도인근까지 왔을때 겨우 파악하는경우가 비일비재 했으니깐요.
편두는 잉카에서도 나타남. 신라는 선비족이 내려온 국가인데, 선비족은 스키타이족의 차음이고, 이 북방민족의 근간으로 올라가면 시베리아 지역의 유목민과 이어지는데, 그 시초는 히말라야 산간 지역 민족이라고 생각됨. 대충 히말라야 어디쯤에서 시작된 문화가 산 밑으로 내려와서 중동 쪽과 시베리아, 그리고 한반도, 일본 등으로 이동했고, 일부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갔다고 봄. 이 쪽이 유난히 형질 인류학적인 유사성이 강하게 나타나는데다가 공통된 문화(상징 등)을 가지고 있음. 인류는 크게 새와 뱀을 인간을 초월하는 힘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는 신화, 전설 등 상징을 가지고 있음. 근데 앞서 말한 지역에서는 한결같이 새를 숭상함. 상징의 기본은 태양(궁극적 숭상의 존재), 그것을 인간과 연결하는 매개체인 새, 인간과 연결된 하늘을 의미하는 나무. 대충 이렇게 상징이 확장해나감. 십자가, 오벨리스크, 성당의 뾰족한 첨탑, 솟대 다 비슷한 거임. 반대로 아프리카 쪽부터 남방 해안계는 뱀계인 용을 숭상함. 아... 일단 뭐... 대충 이런 이야기임.
신라는 그래서 새를 숭상, 그래서 알에서 나왔다고 신족 즉 왕의 자질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강조. 근데 왕건은 용족이라고 건국설화에서 말함. ㅎㅎ 뱀계열인데, 이것은 왕건의 혈통적 배경이 중국의 해안가 지역이거나 백제 쪽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거나 그 문화적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음.(신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거라 의도적으로 상대되는 신화적 모티브를 가져온 것일 수도 있음) 여튼 이게 좀 재밌는 부분이긴 함.
@@user-lm4wq5bj7s 신라는 선비족이 내려온게 아니예요 ㅋㅋ선비족은 고조선 에서 떨어저 나온 맥족계열이구요 즉 당도 한족의 나라가 아니죠 원나라 처럼 또 아메리카대륙으로 편두풍습이 있는 동이족들이 또 건너갔다고 하더라구요 일부 원주민들 풍습에 한국의 풍습이 보이죠 그리고 동이족은 용과 새를 숭상했고 사신도 동이족문화 화하족은 뱀을 숭상 했어요 동이족이 화하족을 지배하고 나서 화하족들도 뱀에서 용으로 바뀐거구요 그래서 동이족의 후손 한국에 이무기 전설이 있답니다 고대한국 왕들보고 용의 후손이라고 하구요 청와대보면 봉황이 상징으로 하고있죠 ? 다 조상 동이족의 문화입니다
(당나라의 무역항) 중동 보따리상 : 이것은 쩌어기 비잔티움에서 만든 명품 순금 럭셔리 칼손잡이입니다. 중국 여행 온 신라귀이족 : 오 멋있다. 임금님한테 선물해서 점수 따야지~ (21세기 조선반도) 우와 비잔틴보검이 왜 신라무덤에서?? 완전수수께끼미스테리불가사린데 이거!!!
제발좀 공부좀해요 까막눈양반아 . 황금보검이 뭔지나 알고 이러고 있나요? 황금보검은 박씨가문의 보물이며 박씨가문의 선조 아틸라가 만든 아틸라의 신물입니다. 아틸라가 신라에있는,박씨가문에게 보낸거에여. 그리고 황금보검의 가치가 조 단위에여. 보따리상이 왜나와요. 황금보검은 아틸라의 신물. 황제중에 황제들이나 가질수 있는 신적인 증표에요. 나라하나 만들돈으로 만들었어요. 아틸라가 5세기 유럽에서 만들었어요.
고구려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게 고구려 백제는 허리를 천으로 묶은데 반해서 신라는 벨트를 맸음. 벨트를 증명하는 고고학 유물이 마형대구와 호형대구인데 한반도에서는 마한의 강토에서 최대로 나오고 그 다음이 영남에서 최대로 나옴. 중국에서 그린 사신도를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허리를 묶는 양식이 완전히 다름. 아프로시압 벽화에 그려진 깃털 꽂은 사신의 허리는 벨트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신라 사신임.
신라 사신 맞아요. 신라의 경우에는 아랍과도 교류를 한 고고학적 근거들이 나오고 있고, 페르시아제국의 기록에서도 역시 신라의 존재가 확인이 되죠. 조우관의 경우에는 한반도에 존재했던 모든 국가가 사용한 양식이라 고구려의 전유물이 아니죠. 실제 신라인의 투구중에 깃털을 꽂았던 구멍도 발견이 됐던 바가 있고, 중국 에서 그려진 예빈도에서도 로마의 사신과 함께 있는 신라 사신이 조우관을 쓴 게 그려지기도 했죠. 무엇보다 중요한 근거는 벨트입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벨트를 사용한 바가 없지만 신라는 벨트를 사용을 했거든요.
대륙 동부에 있었던 대륙신라를 알게 된다면, 중국 남동부 바다에 존재했던 '장인국'의 이야기를 알게 될거고, 길 '장'자를 바꿔서 거인국으로 이야기한 부분도 알게 될거예요. 애써서 대륙에 존재했던 신라, 백제, 고구리 등에 대한 부분을 애써 없다고 생각하고 말하니 당연히 신라 동쪽에 일본밖에 없지않냐는 말도 안되는 드립을 치게 되죠.
흉노란 한자는 중국한족이 기록한 글자다 중국한족은 북방민족인 흉노라고 적었는데 그 발음은 이다. 죽, 당시 중국한족은 라고 불리우는 만족에 대해 흉노라고 적은 것이다. 쉬노우 >라고 발음하는 형태는 신라의 초기 국가 라고 적은 한자와 발음이 유사하다. 중국한족식 발음인 , 신라식발음의 한자표가 이 둘 사이에 등장하는 것이 신라문무왕이 조상이라고 밝힌 흉노의 김일제이다. 그런데 신라가 자리잡았던 경상도에서 이같은 발음의 흔적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경상도 말투로 즉 < ㅎ >을 < ㅅ >으로 발음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사례가 바록 그것이다. 흉보다 => 숭보다, 흉내내다 => 숭내내다 , 흉한 일 => 숭한 일 그렇다...흉노의 중국식발음은 와 를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 등의 의미는 다 같은 것으로서 ...........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한족들은 이를 깎아내리려고 한자식으로 라는 뜻을 가진 한자인 를 사용하여 그 발음인 를 표기한 것이다. 이러한 신라는 신라가 망한 후에 만주로 돌아간 이들에 의해 훗날 나라를 세우고 다시 (後)金 = (후)금, ........淸(맑을 청) => 靑(푸를 청, 좌청룡) = 東 (동녘 동) = 새 (순한글로 동쪽을 표기) ........라는 나라를 세우며 그 명맥을 이어간다, 참고로 중국한족이 사용하는 한자 중에 를 의미하는 한자가 무수히 많은데 그 대부분이 등의 의미가 담긴 한자로 이루어져 있으나 유독 < 북흉노, 남만, 서융, 동이> 이 넷에 대해서 만큼은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적어도 중국 한족이 이 넷에 대해서는 자신들과 동급이거나 위에 있었던 세력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으로 사료된다는 점이다.
금관은 뒤에 구멍이 있어 가죽끈으로 연결하므로 머리 크기와 무관하고 쓰고 달려도 벗겨지지 않습니다. 출토된 금관을 보면 가죽끈은 삭아서 없어졌으나 구멍이 닳은 흔적이 보입니다. 3세기 삼국지 동이전의 편두 기록을 쓸 때는 신라의 금관을 쓰던 종족은 아직 신라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금관을 쓰던 종족은 삼국지 동이전보다 약 백 년 후인 343년에 신라에 들어옵니다. 따라서 금관은 편두와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