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그냥 동네 스님이랑 신부님인줄 알았는데... 역시 배움이 다르시네요 두 종교인들이 만나서 분쟁없이 이런 대화도 나눌 수 있다는게 그저 신기하면서도 대단하네요. 각자 모시는 분이 달라도 그분들이 원하는게 이런 화합이 아닐까요? 서로 공통점도 존재하고 차이점을 이해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우스겟소리로 한 권만 읽는다하셨는데 제일무서운사람이 다독한 사람이 아니라 한권만 파고든 사람이라고 하는 게 생각남 +ㅋㅋ 아 여기 멍청이들 개 많네.. 말하나 재해석해서 글다니까 벌때 처럼ㅋㅋㄱ 그래서 저 스님이 한 권만읽고 그게 진리인냥 떠드냐고 ㄲㅋㅋㄱ 멍청이 냄새나니까 좀자제좀 이게 뭐라고
그 책이 제대로된 책이더라도 한 권만 판 사람들은 다독한 사람들을 못이김. 억지논리로 이기자면 이길수 있겠지. 가령 다독한 사람들이 읽은 책들이 진짜 전~부다 그 한권보다도 못한 병신같은 책을 읽었다라던가 아님 한권만 읽은 사람이 그 사람이 읽은 책들을 전부 다 병신같은 책으로 모는 일들이 있겠지. 다만 웃긴건 첫째로 제시한 예시인 그 책들이 전~부 다 병신같은 책인건 진~짜 드문인이고, 오히려 한권만 읽은 사람이 병신같은 신념을 가지고 다독을 한 사람들의 의견을 병신같은 의견으로 모는 일들이 꽤 있지ㅋㅋ 왜 이런일이 생기는가? 아무리 제대로된 한권이더라도 인간문명의 모든 지성과 지혜가 집대성된 그런 현실에 존재할수가 없는 책이 아닌 이상에서야 한권만 판 사람들은 편향된 시각을 가질 가능성이 다독을 한 사람들에 비해 훨~씬더 높거든. 그리고 만약 그 한권이 그런 책이라 하더라도, 지식과 지혜는 정체하는것이 아닌 계속해서 발전하는 것이기에 단 한권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추가되고 바뀌어 가는 정보와 지식들을 받아들일수가 없지. 그렇기에 시대에 뒤쳐질수밖에 없고. 성경이나 불경처럼 정체되있는 지식이 아닌이상 성립이 될수가 없는 맥락임. 그리고 애초에, 성경과 불경도 현대인들이 새로이 해석하는 본들이 있는만큼, 전에 해석되었던 부분이 있더라도 새로이 해석되는 내용들이 생겨나기에 단 한권만 읽은 사람들은.,.ㅋㅋ 고로 한권 파고든 사람들이 무섭다는 소리는 진짜 병신들끼리 도토리 키재가 수준의 지식비교가 아닌이상 성립할수가 읎다. 책좀 읽으라고 하는 소리임ㅋㅋ
종교는 약자를 도우니 약자가 모이고 약자를 인도하기에도 약자를 착취하기에도 최고의 환경이죠. 영웅이 되려는 자가 아니라 실제 착취를 위한 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양심과 교리에 맞게 이끌면 그것이 인도고 사심과 주관에 맞게 이끌면 그것이 착취입니다. 무엇이 양심이고 무엇이 사심인지를 종교지도자는 매번 고민해야하고 무엇이 교리인지 무엇이 주관인지를 매번 깨우쳐야합니다. 말과 행동의 뿌리가 교리에서 오도록 언제나 갈고닦아야하죠.
얼마전에 대형마트에 갔는데 큰 절에서 나온 젊은 스님 두분이 장을 보고 계시더라구요. 채소류를 카트에 담더니 빵 코너로 가서 식빵이랑 잼을 고르는걸 봤습니다. 선임(?) 스님이 복음자리 딸기잼을 담으니까 후임(?) 스님이 그건 기독교 계열에서 나온건데 사도 되냐고 묻자.. 선임(?) 스님의 답변.. "뭐 어때? 맛있으면 됐지." 어느 종교든 이런 모습을 자주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에 보시면 이런 구절이 있지요. "예수와 부처가 한 자리에 마주보고 앉아있으면 무엇을 했을까? 내 생각에는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었을 것 같다. 그들의 시야는 영원에 닿아 있기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독교지만 할머니는 불교셨기 때문에 이 영상이 특히 더 와닿네요.
@@크라쿠로쿠직스 아 단순한 사람은 아닙니다. 카스트 계급사회에서 태어난 부처가, 모든 인간이 동등하고 심지어 동물과도 동등하다 라는 사상. 신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회에 태어나, 인간은 신의 자녀라고 했던 예수. 당시 세계관과 아득히 먼 주장을 했고, 그 주장을 수많은 사람에게 납득시켰는데, 이런 일을 가능케 한 사람은 역사적으로 그 2명 뿐입니다.
한 구절만 잘 읽어도 다 읽는다고 하신 표현이, 참 마음에 와닿네요. 제가 군대에서 일요일에 종교행사 가느라고 법당에 들어서니, 방석 가져다 앉으니까 말씀 직전에 무슨 코팅된 글을 주셨어요. 다같이 소리내어 읽으라고 하셨는데, 대부분 뜻을 모르거나 큰 감명 없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어느 한 구절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는, 아주 크게 깨달음을 얻은 듯 했어요. 선악은 마음 따라 일어난다는 말이었는데, 정말 제가 생각하기에 아주 맞는 말이었어요. 이미 전부터 선과악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답을 못 내리고 있었는데, 이 한 문장으로 마음이 환해지고 맑아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조금 자만스럽다고 볼 수 있겠지만, 불교의 가르침은 거의 배웠거나 큰 가르침 한 가지는 배웠다고 당당해요!!
@붸재현 그것보단 기독교 특히 신약성경을 보면 초기 불교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다고 제 개인적으로는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불교가 먼저 만들어졌고 일부 학자중엔 예수의 알려지지 않은 시기에 상인들을 따라 인도쪽을 돌았을 거라고 보는 견해도 있구요 전반적인 이념이 아니라 비유를 한 설법들중 각 에피소드가 아주 비슷한 것들이 많아요 불경중 특히 아함경이요 다만 예수님의 활동 기간이 부처님에 비해 많이 짧아서 양이 적어서 그렇지만 성경을 먼저 공부하고 불경을 본 저로써는 아주 흥미로웠어요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채널입니다 이전 영상에서 신부님은 마음에 평안이 있으면 어디에 있든 그곳이 천국이라 하셨고 스님께선 선한 행위, 지혜(마음)가 중요하다고 하셨고 또 공자의 가르침중에는 생각(마음)이 변하면 말이변하고 말은 행동을 변화시키고 이는 인생을 바꾼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왜 괜히 고전이나 경전이 많은 이들에게 아직까지 가르침을 주고 울림을 주는 지 한번 더 배우는 좋은 영상이었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부처님이 정말 멋진게 살아계실때 내 말을 받아적거나 하지 말라고, 그걸 숭배하라고 하지 말라고 하셨음 너는 너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고 하셨음 역시 인류 최초의 선지자... 예수님은 삼위일체지. 저는 사도 도마를 가장 좋아합니다. 저라도 그랬을겁니다. 주님의 손과 허리에 손을 넣어봤을 겁니다. 제가 의심하는건, 믿기 위해서 그러니까요. 맹목적인 믿음은 돌아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믿는것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저는 우연한 계기로 주님을 만났습니다. 저를 이렇게 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모두에게 평화가 오기를. 저의 법명은 심산이고 세례명은 비오10세입니다
나는 군대에서 하느님을 우연찮게 뵙고 가톨릭의 어린양이 되었는데 그러고 학교 교양에서 불교강의를 들으니까 이게 세상에. 예수님과 부처님이 말씀하시는게 이렇게 같을수가. 우리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같이 가자 할때 더 가주고 이 믿음을 의심하지 말고 자신을 등불로 삼아야 합니다. 인류 최고의 선지자 두 분이 똑같이 말씀하신 내용... 어? 두분 다 황제라고? 황금 옥좌에 앉아계신 그분이라고? ㄷㄷ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수양은 자신의 의지, 파토스를 내려놓고 신의 뜻에 따라서 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라라는 식으로 얘기하지 않습니다. 불교 역시 무아론이고 다. 초창기 불경인 수타니파타 사비야의 물음(진정한 수행자란 무엇입니까?)에 대한 답변에 '이 미망의 세계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자'라고 말합니다.
@@kimhogngng 그 말도 맞을 것 같습니다. 세속인 나를 버리고 신앙에 투신하는 것을 나를 버리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신념을 유지하는 것인지, 단지 관점의 차이일 것일테고, 그 관점의 차이는 옛날 경전이 쓰여졌던 당시와 그걸 보는 현재는 다르게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것 또한 자신의 신념을 가지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들도, 평신도들도, 혹은 단지 그 가르침을 차용(?)해서 살아가는 일반인들도 그 사상에 영향을 받아 자기 스스로가 그 생각대로, 주체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키에르케고어의 유명한 말, 신 앞에 선 단독자라는 말이나 중세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생, 신학자들의 역할, 불교에서의 깨달음, 돈오점수의 가르침에서 볼 수 있듯, 결국 신앙이나 영향을 받은 생각들은 결국 개인적인 체험인 경험이 바탕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도, 앞에서 말씀드렸듯 세속의 자신을 끊고 신앙에 투신하는 것도 결국 자신의 주관을 바탕으로 한 신념을 가진 자아가 주체라고 저는 봤기 때문입니다.
불경은 부처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고, 구약에서는 자유, 책임, 의무를 느낄 수 있음. 신약에서는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고... 참 신기한 것은 이 모든 책에서 얘기하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들임. 그래서 한 구절씩 틈틈히 읽어보라, 단 한 권 만이라도 좋으니 깊게 파보라 하는 두 분의 말이 깊이 이해가 됨.
@@user-vwx2666 뭐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예수님께서는 자만하고 오만하지 않고, 그들의 죄까지 짊어지고 십자가형을 지셨는데.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럽지 않나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겸손한 삶을 지향하는게 아니라 오로지 헐뜯고, 남을 밟아서 군림하고, 잘난듯 설교하는 모습을 보니 그 옛날 예수님을 십자가형을 지게한 유대교인들이 생각나네요.
??? :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헛되다! ??? : 형이 블레셋인 3천명 당나귀뼈로 패죽이고 두 손으로 다곤신전 무너드린 썰푼다. ??? : 형이 바알 사제들이랑 비내리기 시합한 썰푼다. ??? : 형이 형 대머리라고 놀린 시키들한테 곰 푼 썰 푼다. ??? : 내 아버지 집에서 장사질하는 놈들한테 무쌍난무 안겨준 썰 푼다.
제가 비록 무교지만 경전은 가끔읽습니다 가끔씩 힘들때 찾아보기도하구요 스님께서 네비게이션이라는 비유 하셨는데 정말 맞습니다 살아가면서 내가 이렇게 사는게 밎는걸까 어떤게 답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할때 부처님 말씀듣고나면 아! 하고 정답을 찾는건 아니지만 어느방향으로 가야 지혜롭게 사는구나 라는건 느끼더라구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존나 쩌는 방법을 알고 싶어? 누구라도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의 힌트를 줄게. 좀 더 힘을 빼고 편해지는 거야. 고통도 괴로움도 전부 별 거 아닌 환상이니까. 안심해 이 세상은 허무한 거야. 아픔도 슬픔도 처음부터 텅 비어 있던 거야. 이 세상은 변해 가는 거야.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일도 가능하지. 더러워질 때도 있고 안 좋은 일을 떠안게 될 때도 있고. 그렇다면 떠안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도 가능하겠지. 이 세상이 얼마나 별 게 아닌지 알겠어? 괴로움이든 병이든 그런 거에 구애되지 마. 보이는 거에 구애되지 마. 들리는 거에 매달리지 마. 맛이나 냄새가 다양한 것처럼 사람도 다양하잖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 흔들리는 마음에 구애되면 안 돼. 그게 『무』라는 녀석이지.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겠지. 괴로운 일을 겪지 않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런 것들은 거기에 놓고 가. 미래는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 무리해서 비추어 보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 안 보이는 그 자체를 즐기면 되잖아? 그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녀석이지. 올바르게 사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일지도 몰라. 하지만, 명랑하게 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 보살로 살기 위한 노하우가 있어. 괴로워하며 살 필요 같은 건 없어. 즐겁게 사는 보살이 되는 거야. 아무런 두려움도 알지 못한다면 그건 문제가 되지만 말야. 적당한 공포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착각은 하지 마. 무정한 사람이 되라는 소리는 아니야. 꿈이나 공상이나 자비심을 잊지 마. 그걸 할 수 있다면 열반은 어디에나 있어. 사는 방법은 어느것 하나 변하지 않아. 단지 받아 들이는 방법이 변하는 것 뿐이지.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구. 이 반야를 기억해 둬. 짤막한 말이야. 의미 같은 건 몰라도 돼. 사소한 것은 아무렴 어때? 괴로움이 작아진다면 그거면 됐잖아? 거짓말도 터무니 없는 말도 다 받아들이면 괴로움도 사라지지. 그런 거야. 서론은 잊어버려도 돼.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둬. 내키면 한번 읊어 봐. 마음 속에서 읊어도 상관 없어. 알겠어? 귓구멍 열고 잘 들어. 『읊어라. 마음은 사라지고 혼은 고요해지고 모든 것은 여기에 있고, 모든 것을 초월한 자가 될 지어니 』 『깨달음은 그 때 얻게 되겠지. 모든 것은 이 진언으로 성취되리...』 걱정하지 마. 괜찮아.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能除 一切苦 眞實不虛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능제 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卽說呪曰,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세번) 출처: softm.tistory.com/entry/반야심경般若心經-현대어-번역 [알지풍의 코딩 생활 이야기]
설명이 재밌어서 귀에 쏙쏙 들어오네요. 성경의 핵심이 빠스카라고 하셨느데 완전 동의합니다. 빠스카는 그리스어고 이스라엘말로는 페사흐, 영어로는 pass over라고해서 유월절을 나타내죠. 구약의 유월절 신약의 유월절이 성격의 핵심 같아요. 참고로 최후의 만찬 그림이 예수님이 지키시던 유월절 장면이죠.
종교의 공통점은. 옳게 살고. 죄를 저지르지 말고. 남을 도우라. 이거지. 그 세세한 행동은. 그 시대당시의 상황이니, 그 모든걸 똑같이 지킬 필요가 없다 생각합니다. 믿고, 사랑하고, 용서하라. 단, 충과 의리를 져버리 자는 엄히 다르리라. 모든 종교의 내용의 핵심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