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상무님. 이 글을 읽으실지 모르겠지만,, 오늘(금)라이브를 보니 다른분들이 빌드업이 너무 길다고 한분들이 계신것 같은데,, 저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알상무님의 통찰력있는 내용이 좋아서 알상무님 내용만 몇번이고 다시 듣습니다. 처음 들어도 몇번 들어도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입니다. 이 영상에서 말씀하신대로 일본의 역사를 알아야 일본은행의 향후 방향을 알 수 있고 대응을 할 수 있다고봅니다. 모든 일의 겉면만 보지않고, 그 역사와 배경까지도 알고자하는 지적인 힘과 그리고 그 내용을 전달해주시는 통찰력이 너무 좋습니다. 정말 어디서도 들을 수 없어요. 유튜브라는 공간이 항상 짧고 쉬운 내용만 원하는 곳이긴 하지만 알상무님의 처음 그 모습 그대로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해주세요. 정말 팬입니다. ^^
이분이 하신 말씀들을 들으면 엉뚱한데 큰 증권회사에서 안 잘리고 일하신 이유를 알겠네 이런 분석은 천재 아니면 하기 어렵다. 누구나 할수 있는게 아닌 이면에 숨은 다른 시각으로 볼수 있는분 참고로 아베총리 선조가 한국계라는 얘기가 있음 그래서 이를 부정하기 위해 더 일본스럽게 통치했다는 썰이 있음
슈카님도 식빵님 방송에서 마구 지르셨잖아요 ㅎㅎㅎㅎ 다 똑같은겨 ㅋㅋㅋ 지르는 알상무님 화이팅!!! ㅋㅋㅋㅋㅋㅋ 참고로 대망 진짜 재밌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내내 군고구마 까먹으면서 봤던 대망... 덕분에 아주 살이 토실토실 올랐었지요 나는 책은 못읽겠다. 그러면 도쿠가와 막부 편은 토크멘터리전쟁사 일본편, 일본 근현대 경제사 보고 싶으시면 언더스탠딩 일본정독 추천이요~
재밌게 들었습니다만 몇 가지만 보충? 하자면.... 0. 일본의 근대사 이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은 강력한 중앙 집권체제를 가져보지 않고 근대화한 유일한 나라" 라는 점을 전제에 깔고 가야 합니다.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가져본 나라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일본만의 특수성은 다 여기서 비롯되거든요. 이건 역사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하다못해 대인관계에까지 영향을 주는 점입니다... 1. 교토를 사이에 둔 동서의 대립 구도 자체는 후어어어얼씬 이전인 겐페이 전쟁 시기부터 내려오는 일본의 전ㅡ통입니다. 시코쿠 규슈 거점의 헤이씨(타이라) 가 간토를 거점으로 둔 겐씨(미나모토)한테 대판 깨져서 성립된 게 막부라는 이원 체제입죠. 이때 겐씨가 이겨서 막부의 쇼군(=일본의 실권자)는 미나모토씨 라는 전통이 생깁니다. 그래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우리가 미나모토 후손이제! 라고 했던 거고. 2. 그런 맥락에서 보면 삿쵸 동맹 이후부터의 흐름은 천년동안 지속되던 간토 세력의 주도권이 교토 서쪽으로 넘어간 겁니다. 유신 초기에 형성된 한바츠가 죄다 사츠마 쵸슈 출신인 것도, 얘들이 군부, 입법부, 행정부를 장악하면서 간토 파벌(친막파)을 싸그리 밀어버린 것도 알고보면 천년 동안 묵혀왔던 원한 같은 그런 것입죠. 3. 아실테지만 에도 막부 시절의 사츠마랑 쵸슈는 둘 다 세키가하라 합전 이후에 형성된 도자마 다이묘들이라 전국시대 때랑은 좀 사이가 다릅죠. 노부나가의 야망이나 토탈워 쇼군 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츠마 번은 시마즈가 대대로 영주하는 동네였고 쵸슈는 원래 모리 가문이 다스리던 땅을 둘로 쪼개서 쵸슈를 모리 주고 히로시마는 히데요시 마누라의 친정인 아사노 가문에 주는 식으로 쪼갰죠. 왜냐면 모리는 세키가하라 때 히데요시 편인데다가 힘도 셌거든요. 근데 시마즈는 세키가하라 때는 히데요시 편(서군)이었지만 깨지고 나서 얼른 수그리고 도쿠가와 집안에 시집도 보내고 해서 에도 막부 내내 대접도 다른 도자마 다이묘에 비하면 괜찮았죠. 4. 약간 시간을 세키가하라 이전으로 되돌리면 모리랑 시마즈도 사이가 안 좋았어요. 큐슈 3강이던 시마즈 입장에서 교토로 진출하려면 주코쿠를 지배하던 모리는 넘어야 할 산이었그덩. 서양과의 무역, 그 이전의 대중 대조선 무역에 있어서도 하카타의 큐슈와 시모노세키의 주코쿠는 계속 경쟁하는 관계였고. 5. 이런 배경이 있어서 삿쵸 동맹 이전에도 쵸슈는 초강경 반막파였던 반면 사츠마는 온건 친막파였습니다. 존황양이론 이전의 공무합체론에 서쪽에서는 사츠마(시마즈 히사미츠)만 올라탄 것도 이런 옛정? 때문인 것도 있고. 심지어 삿쵸 동맹 직전의 1차 쵸슈 정벌 때는 사이고 다카모리의 사쓰마군이 쵸슈로 쳐들어가려고 했는 걸(쵸슈가 미리 항복해서 실제로 쳐들어가진 않았지만. 아마 진짜 쳐들어갔다면 삿쵸동맹은 불가능했을 듯) 다만 사츠마가 돌아서게 된 건 공무합체 버스 타고 우리도 중앙에 좀 비집고 들어가보려 했는데 같은 도자마 다이묘 아이즈만 같은 동쪽이라고 꿀빨고 지들은 결국 막부한테 두들겨 맞아서 맴상한게 큽죠. (산요회의 붕괴) 5. 막부 말기 막부의 통제력은 흑선사건(쿠로부네, 미국이 에도 근처에 증기선 함대 끌고와서 대포 쏜 사건)과 그에 이어 막부 독단으로 맺은 미일수호통상조약으로 인해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죠. 그래서 대정봉환이든 공무합체든 통치 체제 자체를 바꾸는 것은 거스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츠마 같은 도자마 웅번들이 생각하던 공무합체는 도자마 다이묘들이 중앙 정계에 참여하는 거국일체의 제후회의였는데 막부는 어떻게든 기득권을 놓기 싫었기 때문에 대정봉환을 통해 대정위임을 다시 재확인하려고 했었죠. 이런 관점의 차이가 있어서 결국 사츠마의 공무합체 버스가 중간에 전복되고 한때는 쵸슈를 앞장서서 두들겨 팼던 사츠마가 토막파로 돌아서게 되버린 것입죠. 6. 여튼 이러저러해서 결국 사츠마와 쵸슈, 곁다리로 토사까지 손을 잡고 일본 제일 서쪽 꼬다리에 있는 애들이 교토를 점거하고 쿠데타 일으켜서 성공한 게 작게 보면 보신 전쟁, 크게 보면 메이지 유신입죠. 그런 전ㅡ통이 주구장창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일본은 수도는 도쿄지만 그 안에 내용물, 더 정확히는 정치판은 큐슈판이 된 것입니다. 큐슈~츄고쿠가 자민당 초초초초초강세 지역인 것도 그래서 그런 거에요. (재계는 좀 달라요. 장사는 막부 시절부터 오사카, 나고야 상인들이 꽉 잡고 있었그덩) 일단 이정도? 일본 사는 역덕후가 몇 마디 거들어봤습니다.... 여담1. 사카모토 료마가 일본에서 무지 인기가 있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아마도 철천지 원수였던 사츠마와 쵸슈를 이런 시대적 흐름을 정확히 읽고 드라마틱하게 협상을 성사시킨 게 크겠죠. (심지어 하급 무사 주제에!) 여담2. 기시다 후미오가 자민당 내에서 쩌리인 이유는 대대로 정치인 해먹던 집안이 아니고 대대로 장사하던 사업가 집안이었는데 아버지 때부터 정치에 입문한 정치 쪼렙 가문인 게 큽니다. 단순히 히로시마 출신이라 그렇다기 보단.(히로시마에서 나온 총리대신이 기시다까지 네 명임.) 심지어 학벌도 그냥 그렇고.... 꼴랑 2대째 국회의원이면 일본에서는 쪼렙이에요. 3대 4대째 정치인 하는 집구석이 수두룩 빽빽하기 때문에... 외가 친가 처가 합쳐서 국회의원 50선 60선씩 하는 집도 있어요. 고이즈미 총리 집안이 그런 집안입죠... 펀쿨섹좌가 새파랗게 어린데도 자민당 내 핵심에서 빠지지 않는 게 집안이 빵빵해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