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도 동룡이도 자신한테 없는걸 부러워하는것. 보라는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면서 컸기때문에 동룡이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수없고 동룡이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대신 가정의 따스함을 많이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족한것의 어려움을 모름. 옆에서 보는거랑 직접겪는건 다르니까. 그래서 다른 종류의 고민이라는 거. 그래도 보라는 동룡이를 부러워하면서도 동생 친구고 애정이 있으니 나름대로 생각해서 조언해주는 것. 여기서 보라의 어른스러움이 드러남. 난 동룡이의 고민은 뭔가 흥미 위주로 많이 비춰져서 아쉬워서 쓴글인데 내가 무슨 보라 욕한거마냥ㅋㅋㅋ 사람들 재밌네여
그래도 고작 18살밖에 안된애가..7년동안 보험왕이면 11살? 때부터 생일날 미역국도 못먹었다는거 아니야..ㅜㅜㅜㅠㅠㅠㅠ나같아도 서러울듯..맨날 혼다 도시락도 없고 짜짜로니 이런거 싸오고..근데도 잘 자란거 보면 진짜 동룡이가 엄청 착함....난 엄청 반항했을텐데..크흡
가난하지만 3남매와 정많은 부모가 있는 덕선이네, 아부지는 없지만 늘 부족하지않게 뒷바라지해주는 엄마와 귀여운 진주가 있는 선우네, 똑부러지는 치타여사와 정많은 아버지, 그리고 착한 형이 있는 정환이네, 단 둘이지만 서로를 끔찍히 여기는 부자지간인 택이네... 모든것이 부러웠던 동룡이지만 그럼에도 후에 동룡이 다쳤을때 한달음에 달려와준 엄마의 마음을 알게되죠 나중에
ㅋㅋㅋㅋ근데 집에서도 관심 적고 애정이 필요해도.. 잘컸다. 진짜 눈치 빠르고 센스 있고, 어린 나이임에도 성숙하게 친구들 부모님 마음을 헤아릴 감성도 있어서, 솔직히 부모님이 걱정되거나 효도하고 싶은 정환이나 다른 친구들 다 동룡이 덕봤다고 생각함ㅋㅋㅋㅋ....다른 친구들도 물론 다들 최고로 멋지고 훌륭하지만 동룡이가 옆에서 작은 힌트나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치타여사의 갱년기 등)개개별의 가족사를 이렇게 사랑스럽게 넘길 수 있지 않았을거 같음 ㅋㅋㅋ진짜 다 좋지만 동룡이같은 친구 사귀고 싶고, 나도 저런 사람 되고 싶다ㅋㅋㅋㅋ
제가 딱 저 세대입니다. 그래서 응답하라 시리즈중 유일하게 애청한 1988 입니다. 저 당시 우리사회의 보편적 가치관은 지금과는 좀 달랐습니다. 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부모님의 따뜻한 관심(?) 보다는 경제적인 풍요가 더 간절했습니다. 부모님뿐 아니라, 학생들의 바램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부 특수한 계층을 제외하곤요. 오히려, 과도한 입시 스트레스와 부모들의 일방적인 인서울4년제 지향주의는 학생들을 자살로 내몰아 사회문제로 대두되었고, 후진적 교육시스템과, 부담스러운 사교육환경은 경제적 여건이 힘든 서민들에겐 암울한 현실이었습니다... 지금은 평생교육 개념으로, 대학뿐만 아니라 유학 졸업 취직 승진 결혼 재테크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경쟁의 연속이지만, 저때는 중학교부터 달리기 시작하여 대학교 입시까지 모든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 결승선을 끊고나면, 그후에는 주저않아 맥이 빠져버리는 100미터 달리기 같은 삶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부모님의 맞벌이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동룡이의 가출은 배부른 투정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수 없는겁니다. 주변사람들에겐.
저 시대에는 지금보다 대학 입학과 취직이 비교할 수 없을만큼 쉽고 남성 절반이 군면제에 사교육이란건 막 생겨나기 시작한데다 경제는 한국 역사에 유례없는 급성장중이었어서 배곯는 일은 거의 없었던걸로 아는데요?? 차라리 경제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인권과 시민의식이 문제였으면 문제였지..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대학가에 운동하는 학생들도 많은거였구요. 제가 저 세대는 아니지만 기록된 팩트만을 두고 봤을 때 전혀 공감되지 않는 댓글이네요
@@강인호-o1f 후대의 시각으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요. 사람마다 체감하는게 다 다르고 보는 시각도 다르니까요. 당시 언론에서 그런것들만 중점적으로 보도한 점도 문제이고요. 88년 전후로 대기업 위주의 급성장을 이뤄냈지만 서민들의 삶은 그 혜택을 많이 받지 못했던건 제가 몸으로 느꼈습니다. 당시 제가살던 지역은 상계동 변두리지역이라 강남과는 좀 생태계가 달랐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동네가 딱 우리동네 모습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몇년후에는 덕선이네처럼 단칸방으로 쫓겨나는 극적인 사건까지 겪었더렜죠.ㅠㅠ 당시는 지금의 귀족노조와는 다른 생계를 위한 파업이 많았고 독재반대를 외치는학생운동은 노조와 싸잡아서 북괴의 지령을 받는 빨갱이로 몰아 무자비하게 탄압했습니다. 언론도 당연, 지금처럼 훌륭히(?)제 역할을 잘 수행했었고요. 그렇더라도 지금세대의 시각으로 보면 만만한 사회인건 맞습니다. 저조차도 그때의 향수를 느끼며 드라마를 즐겼으니까요. 60,70년대 골목박물관을 보면, 거기에 있는 조잡한 학용품과 연탄난로를 보면 신기하면서 지금의 풍요로움과 비교가 될겁니다. 하지만 그 연탄난로 써보신 분은 알겁니다. 새벽에 잠자다 말고 일어나서 연탄재 갈다가 코속을 쑤시는 까스는 죽을맛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나는건 거기에 구워먹는 떡가래는 무지 맛있다는거 뿐이네요.ㅎㅎ 저도 입시에 실패한 이후로 방황을 많이하고 정신을 가다듬는데 많은 시간을 낭비했네요.. 보는시각에 따라 그 세월이 참 아깝기도하고, 한편으론 지금 삶에 밑거름이 되었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강인호-o1f 아.. 사교육이란 말은 그당시엔 없었고 과외라고 총칭하는 개인교습과 노량진, 당시에는 신설동이 대입학원으로 유명했었습니다. 좀 비싼 학원은 평균 직장인 월급의 절반정도였는데 전 몇달 다니다 수업료 부담때문에 더 싼데로 바꿨지요. 강남에서는 주로 개인과외를 많이 했었는데, 서울대.연,고대 재학생들이 주로 고액과외를 했었고. 이런 폐단을 막기위해 생겨난게 ebs 교육방송이었고.이를 녹화하기위한 vhs 비디오테입 녹화기 구매붐 이었습니다.
@@SUNNYDY_ 사람의 기억이 아니라 기록된 자료를 이야기하는겁니다. 기억은 편향,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크니까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그걸 부정한다면 당신이랑 이야기할 가치가 없네요. 님은 그냥 쥐뿔도 모르는데 그냥 뭔가 기분 나쁘니까 그럴듯한 헛소리 한 마디 던지는 걸로밖에 안느껴져요. 심지어 글쓰신 분도 제가 말한 부분을 인정했는데;
8:04 너무 우리 엄마같다. 우리엄마도 보험회사 보험왕 그런건데 내가 뭐 하나 몇번을 물어보면 못들으면서 회사 사람들이 일 관련된건 추가정보까지 30분동안 알려주면서. 내가 몇번을 불러서 내가 수백번 참다참다 내말은 왜안듣냐고 내말 좀 들어달라 했을땐 제대로 불렀어야지 하면서 되려 뭐라 하는 우리 엄마 같다...
어릴 때 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생일 날 때 미역국 안 먹어본걸 이제야 깨닫네요,,,가정식을 많이 안 먹어봤다 보니, 전 집밥이 제일 맛있고 그러더라구요,,,정말 학교 갔다 와서 엄마가 있는게 얼마나 부럽던지,,늘 따뜻하게 말 한 마디를 안 하시고 험한 말만 하셨는데, 어린 시선에서는 그래도 뭐가 좋다고 엄마가 필요했나봐요,,,이제는 엄마란 존재는 원래부터 없는 것 처럼 살지만, 가끔 이렇게 따뜻한 가족 드라마나 동룡이 같은 애들을 보면, 슬퍼지네요. 가족들한테 꼭 많은 사랑 주세요,, 원래 댓글 잘 안 쓰는데, 너무 슬퍼서,,,
6:07 필요한 나이지... 아직 성인도 아닌데 물질적으로만 잘해주면 뭐 좋은가요 나중은 좋을 수 있어도 길게 보면 부모님이 자상하고 다정해야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아이가 되는 거라 생각함 바빠 죽겠어도 애가 힘들어하고 지치면 옆에서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사랑해주는 부모가 최고지 무조건 맞벌이 하니까 돈 때문에 어쩔 수 없단 생각은 뭐... 좋지는 않은 것 같은데 주변 보면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애는 티가 확 나던데 진짜 부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