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의식과 관련된 내용인데요. 우리의 의식은 어떻게 성장하는지, 의식이 성장하는 사람과 의식 성장이 멈춘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볼게요. 도서명 : 배움에서 깨달음까지 그림/만화 : 김채연 출판사 : 학이사 작가 증정도서. 광고비 없음. 문의 : ootans@gmail.com #배움에서깨달음까지 #의식 #전체의식
자신만의 의식수준이라...저는 왜 이런걸까요...내면을 더 다스리고 아프지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해지고 마음이 단단해지고 싶습니다. 여러분 노후를 멀리 있다고 생각지마시고 꼼꼼하게 준비하세요. 노후준비는 자녀와 가족과 우리를 위함입니다. 건강도 본인부터 챙기세요. 스스로 챙기십시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세상에는 부모님을 간병하고 또는 가족을 간병하게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초고령사회로 앞으로는 더 많아질테구요. 문제는 간병도 힘들지만 그 이후입니다. 저는 독박간병을 하고 홀로 남아 샐프부양을 준비중인 절실하게 건강하고 싶은 1인가구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제 허리띠를 더 졸라메야 할 것 같습니다. 건강악화로 퇴사까지 하게되어 더 절실한것 같습니다. 건강악화에 퇴사, 이제 생활비 걱정까지 언제까지 안절부절하며 살아야 할까요. 살고싶은데..살아야하는데 왜 자꾸 무너지는걸까요..저는 폭력가정에서 자란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효녀라서 간병을 했던것 같지는 않습니다. 책임감이 컷었던것 같습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치매와 치매에 파킨슨까지 걸리셔서 직장도 그만두고 오랜시간 혼자 대,소변 갈아가며 간병을 해야했던 무남독녀입니다. 작년에 두 분이 3개월 차이로 돌아가셨습니다.저는 큰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제게 남은건 병든 몸과 마음뿐이었습니다. 저는 뇌동맥류시술을 받았고 아직 두개의 뇌동맥류가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또 다른 혈관질환도 생겼고요. 간과 신장 기능저하, 갑상선저하증까지 와서 15kg이 갑자기 쪄버렸고 걷는것도 움직이는것도 힘이 듭니다. 그리고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불면증을 아직도 치료중입니다. 저는 아직은 치료중이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프지만 공유하고 소통하고싶어 용기를 내어 유튜브도 시작하고 산책도하고 여행도 가보았습니다. 이제 저는 건강하고 싶습니다. 저를 챙기고 싶습니다. 고독사란 말만 들어도 무섭습니다. 뇌동맥류를 가지고 후유증이 많은 저에게는 남일 같지가 않습니다. 건강하게 홀로 서고 싶습니다. 건강을 잃으면 인생이 없어집니다. 치료를 받는데도 자꾸만 무너지는 마음입니다. 상처입니다
만약 내가 이런 인생설계를 해서 여기왔다면 나는 왜 이런 인생설계를 한것인가 한번 생각해보세요 타인을 보듬고 착하게 사는것이 옳다는 생각의 관념적 가치기준과 그것은 너무 무겁고 힘든 과정이었다라는 현실의 온도차에 대해 생각해볼 시점입니다 그 가치관은 나를 압박하고 힘들게했지만 한편으론 내 존재의 자부심으로 놓질못했다면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타인의 불행을 보살피는것을 우선적으로 하는 "착하지만 오만함"에대한 시험일수있게습니다. 인간은 나에게 없는것을 타인에게 줄수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시 되지않은 책임과 의무역할은 결국 고통과 자기비하로 도움을 주고받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질않습니다 카르마는 생각에서나오지 행동으로 진행되지않기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세요 있는 그대로 사랑하세요 우울하고 비참하고 무능력해보이는 자신을 먼저 온전히.받아들이는것부터 시작해야합니다
"새옹의 이야기는 새옹이 생각한대로 외부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단적인 예이다." 상황의 뒷면에서 작동하는 법과 원리를 알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어떤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머리 속에서 그렸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들이 새옹의 눈앞에 펼쳐지게 된 것이다. 좋은 일을 좋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쁜 상황을 머리속에서 계속 그렸기 때문에 그런 나쁜 상황이 새옹앞에 나타난 것이고, 좋은 상황을 그렸기 때문에 좋은 상황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마치 새옹이 무슨 세상의 이치를 알아서 일이 그렇게 펼쳐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책의 이야기가 앞뒤가 안맞다. 논리적이지 못하다. 이유는 저자 본인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어진 현실, 외부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생각한 것들을 현실에 투사해서 보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원효대사가 만일 해골바가지 물을 전날 밤에 먹고 아침에 해골 바가지에 있는 물임을 알지 못하고 길을 나섰다면? 그런데 원효대사가 물을 마실때 그것이 해골바가지 물임을 다른 이가 보고 있었다면? 실제는 해골바가지 물인데, 원효가 착각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가? 즉, 실제 현실에는 해골바가지의 물이 있는데, 그것을 원효대사가 몰랐다고 봐야 하는가? 아니다. 원효대사가 바라보는 원효대사의 현실에는 해골바가지의 물은 없다. 목마름을 달래줄 달콤한 물만 있었을 뿐이다. 원효대사가 바라보는 원효대사의 세상에는 그 어디에도 해골바가지의 물은 없다는 뜻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해골바가지의 물을 바라본 다른 이의 세상에는 그 물은 해골바가지의 물이다. 즉, 우리는 서로가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만의 세상을 살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이 세상의 물질을 쪼개고 조개면 양자스프, 양자장이 있을뿐이고, 그 장에서 우리 의식이 바라보는 세상이 3차원으로 구성되어 보이는 것뿐이다. 그 3차원을 3차원으로 구성하고 인식하기 위해 우리 몸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너무도 굳건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세계는 마치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듯 보인다. 평생을 그렇게 굳어져 살아왔다. 명심하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내 관념이 투사되어 바라보는 나만의 세상임을. 그러한 투사가 없다면 오롯이 내 의식만 존재할 것이고, 그 의식은 결국 전체와 하나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소위 말하는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아야한다. 의식의 전체만 침묵 속에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