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6년이 되었네요. 아직도 이날 하루가 생생하게 기억 나네요. 전역 2개월 조금 남겨 놓고 짧게 포상휴가 가는날;; 전날 분대장으로서 마지막 일직근무로 밤새고 있는데 전화가 올 시간이 아니었는데.. 본부중대에 " 강릉 앞바다 반잠수함 발견 " 진돗개 둘 이었던거 같아요 비상 전화받고 순간 산속에서 왜 잠수함 발견.. 처음엔 어리둥절 짧게 생각하고 .. 급 비상전개..늘 하던대로 했던 기억이 나네요. 휴가 대신.. 인제 일대 한계~ 향로봉 일대 매복 작전 수행 하면서.산속서 전역신고서 작성하고 등등 기억나네요 11월5일 말년휴가 갔더날 버스 시간 기다면서 동기들과 당구장서 시간보내데 TV서 상황종료 뉴스속보를 보고 만세 부르고;; 편하게 휴가 간.. 전역 하러 가는 전날까지 개구리마크 달고 동기들과 위병소 경계근무 했던 기억이 생생나네요. 그나마 전방 경계 지원 나갔던 부대원들 복귀해서 보고 갈 수 있어서 쓸쓸하지 않았던거 같아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던 시간 이었죠. 작전중 아찔한 숨너머갈뻔한 에피소드도 있어서 더 그런듯...
@@Googleaccount31452 기자들도 문제지만 보도 통제를 하지 않은 지휘관들도 문제였죠. 매복진지 뿐만 아니라 아군 배치 현황이 다 표시돼있는 작전 요도를 카메라에 대놓고 보여주면서 아군의 작전 계획은 이렇다고 친히 설명해 주신분도 있었고 매복 진지 까지 기자 및 카메라맨을 친절히 모셔간분도 있지요...여기서 방송 하시라고...
저때는 일반 시민이 통신이 없을때라 잠수함생김새도 모를 때인데 그래도 택시기사분의 판단은 과히 한국인의 많은 피살과 피해를 막았습니다. 저는 저 때 일병갓호봉 달고 초소 사수로 전투식량, 실탄,수류탄지급받고 초코파이 먹으면서 전투태세를 갖췄던 기억이 나네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기 죽은 강민성이 같은부대 출신인데 일병마지막 1년 휴가가는날 출동이되서 휴가도 못가고 출동했다가 사망해서 너무 안타까웠죠 같이있던 분대원들은 강민성 죽인 간첩 수류탄으로 잡고 특진에 대박이 났었는데...안타까운 일이 였죠 하긴 간첩잡은 네명중 실제 대치한 두명은 그일로 정신병원에 갔었는데 병장은 돌아오고 상병은 그 이후모르겠네요 나머지둘은 이등병이였는데 그 두분은 운좋게 간첩잡은 사람이 되서 군생활 완전 로또 맞았었죠
At 9:22 p.m. on March 26, 2010, the PCC-772 Cheonan, a Pohang-class patrol ship, was hit by a torpedo by a North Korean naval submarine while carrying out its patrol mission and sank. After the attack, 58 people were rescued from the scene by PCC-778 Sokcho, a Pohang-class patrol ship operating in a nearby area, and by Chamsuri-class high-speed ships and coast guard ships in Baengnyeongdo Island, and 46 were killed. Later, during the search operation, Han Ju-ho died on March 30 as a diving soldier, and on April 3, a double-choice civilian fishing boat 98 Geumyangho collided with a merchant ship, killing two people and missing seven, resulting in 10 deaths/indirectly.
95년 군번, 27사 통신대 현역 일병으로 작전투입 됐었네요.벌써 25년이 지났네요..지금 생각하면...평생잊지못할 추억이라고 이야기할수 있지만 당시에 딸랑 군복만 입고 작전에 투입되서 야간에는 무지하게 춥기도 많이춥고..밥도 제대로 먹지도못하궁.고생아닌 고생좀했네용. 지금은 어쩌다보니 강릉에 살고있는데..가끔 잠수함 첨 발견된 안인철책옆을 차타고 지나기도하고 안인항에 낚시도 하러가고 해서, 첨에는 여기가 잠수함 나왔던곳이지 하고 생각하고 옛생각도 나고는 했는데 요즘은 그냥 무덤덤 하네요.세월이 많이 흘렀긴 했나봅니다.
무슨 그런소리를 특전사분들이 대단한건 사실이지만 저때 실제 참전한 11사단출신 보병입니다. 저희 13연대3대대에서 야산에서 제일 먼저 한명사살했구요 특전사가 잡은거중 하나는 제가 매복하고 있는 코앞에서 잡았는데 산에서 수색하고 내려와서 배고팠는지 앞면이 있던 저희한테 라면을 얻어서 저희 앞에서 라면 끓여먹고 있었는데 그 옆 수수깡 더미에서 총성이나서 보니까 간첩이 자살을 했더라구요 그걸 인터뷰하는데 보니까 지들이 수색중에 압박을 느낀 간첩이 자살했고 지들이 잡은거 마냥 하던데...그분들이 일반병에 비해 대단한건 맞지만 실제활약은 보병들이 훨씬 컸답니다.
저 당시 상황중에 계급장 모조리 검정색 계급장으로 바느질했습니다. 계급장 자리가 모두 인간의 급소 자리였거든요......공비들 철책 못 넘어가게끔 모든 나무를 팔뚝만하게 톱질했죠.........하필 49일동안 팬티 2장만 챙겨가는 바람에 앞으로 뒤로 뒤집어서 또 앞뒤로 돌려 입었습니다. 끝없이 이동하느라 빨래할 겨를도 없었어요.....실전에서 온갖 특공대들은 다 구경했네요....우리나라에 온갖 특공대가 그리 많은줄 첨 알았어요....
그 당시 전체 60만 군병력에 1/10인 6만명 정도가 작전에 투입 된걸로 아는데 전국 각지에서 투입된 부대들로 인해서 작전 초반 지휘 체계도 통일 되지 못하고 각 투입된 부대별 제 각각 작전을 펼치는 바람에 서로 오인사격으로 사상자도 많이 나오고 무장공비랑 작전중 죽은 인원보다 우리 군끼리 오인사격으로 인해 죽은 인원이 더 많다는 사실은 그 당신 다 은폐가 되었던 기억이 있음..작전 초반엔 정말 다 당나라 부대 같았음 서로 부대 전공 올리려고 칠성산 매복 작전 펼치는데 어느 부대는 산 초입에 매복해 있고 어느 부대는 중간에 어느 부대는 정상부근에서 작전을 펼치다 오밤중 무슨 소리만 나면 서로 총을 갈겨대느라 날이 밝아오면 근처 소나무들이 다 총알이 박혀서 난장판이 되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함..그 당시 무장공비가 쏘는 총에는 한발에 한명씩 나가 떨어지자 이게 무슨 이유인가 싶어서 군장성급 회의 결과 노란 계급장이 원인일거라 판단하고 바로 전육군에 계급장을 바로 검정으로 바꾼 기억도 생생하네요...한마디로 작전 초반에 우리군은 오합지졸 자체였음..
이때 초등학교때였는데 영덕지나니 검문소에 군인들이 짝깔여서 후포리가기전에ㅡ군인들왈 강릉에 공비가나타났다고 후포리까지밖에 못간다고ㅡ 우리집은 전남광양에어ㅡ경북울진까지 큰집에 갓는데ㅡ공비란것을 처음 격어봄 시간이 10여년 흐른후 큰집가서 해안도로가를 타고 드라이브하다가 그때 그 잠수함을 전시해놓은곳이있어서ㅡ그옆이 광개토대왕함?이였나ㅜㅜ 같이 전시되어 보고왔습니다ㅡ그것도 벌써 10몇년 전이네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