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다시 보니.. 마한이라는 존재가 대단히 중요해지네여,, 백제는 지배층이고 마한은 백제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일본열도에 정착한 한반도인들이란거,, 이들이 일본열도에 정착한 가운데에서 백제가 지배계급으로 등장하는거 같네여 마한의 맹주인 나주지역 묘지에서나온 금관모의 모양이 일본 전통의례시 쓰는 관모와 아주 똑같습니다.
강의 내용을 접하면서 여기서 지역주의 정치 놀음 하려는 분들 보세요. 제국신라 이후 고려 조선을 거치며 팔도가 어우러 지며 천년을 보냈습니다. 각종 성씨들이 조선팔도에 흩어지며 지역에 어우러져 살아 왔는데 정작 일본에서 정착한 귀족들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현재까지 어우러지지 못했으니 적대적인 입장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라도니 경상도니 지역주의 놀음은 과거 처럼 먹고 사는데 급급한 시절 기득권에 혹세무민 할 때나 할 수 있는 관점 입니다. 이렇게 좋은 선생님이 생각과 관점을 나아지게 하는 강의를 시청 하고 있는데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 합시다.
일본은 자신들의 뿌리가 백제와 가야라는걸 왜 애써부정하는지 알수가 없다. 그들의 역사왜곡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시기인 메이지유신 부터 시작되었고 강대한국력으로 조선을 침략하여 온갖만행을 저지르고 지금까지 사과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문화를 전해준 나라에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런 나라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일본의 천황과 백제의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한국인과 천황가의 관계는 없다. 한국인의 조상인 신라가 한반도 백제왕족을 모두 죽였기 때문이다. 백제는 한국인의 조상이 아니다. 백제문화는 일본문화의 일부이지만 한국 문화는 아니다. 당신은 조선인이 청국에도 러시아에도 일본에도 거짓말을 하고, 일청전쟁과 러일전쟁의 원인을 만들어, 일본이 승리하면 순종이 일본에 병합을 간청한 역사의 사실을 모르는지 ? 당신은, 조선은 청국의 속국인 채, 성 노예의 헌상을 계속하는 편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어 조선인은 시베리아에 보내지는 편이 좋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병합 35년간 한반도 인구는 두 배로 늘었다. 조선인은 일본의 보호를 받고 잘 먹고 섹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인이 전장에서 총을 쏠 때 조선인은 잠자리에서 정자를 쳤다. 일본인 여성이 눈물을 흘려 욱일기를 흔들었을 때 조선인의 여자는 타액을 흘려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이 사실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일본은 각국에 배상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암네스티 조항에 따라 전범은 면책되었다. 따라서 일본은 전범국이 아니다. 독일은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과를 계속하고 있다. 한편 한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학살이나 강간 등의 전쟁 범죄를 많이 범했지만 배상하지 않고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에도 전쟁범죄가 면책되지 않고 남아 있다. 한국인은 무지이므로 이 국제법상의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야말로 전범국이며, 태극기는 전범기이다.
4~6세기경을 생생하게 기록한 학술자료가 많지는 않아서 양측국가가 발언하는 바는 주장과 가설에 불과하지만, 백제와 왜나라의 영토에서 출토되는 동일한 백제의 철, 갑옷 그리고 복식 기술력이 왜나라의 문명에 얼마나 강한 영향력을 끼쳤는지 정도만 알려져 있는 상태이죠. 물론 자세한 사항은 추후에 밝혀지리라 예상됩니다.
한반도 남서부에 현재도 존재하는 수십 m 크기의 일본식 고분군은 백제에 일본인의 지배자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한편 일본에 남아있는 백제인의 무덤은 닭장과 같은 사당이다. 닭장은 몇 명으로 1개월 정도 건축할 수 있지만, 고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100명이 1년 이상 일해야 한다. 지배 관계는 분명하다. 덧붙여 한반도의 백제왕족은 신라에 의해 전원살해되었기 때문에 백제인은 현재 한국인의 조상이 아니다. 백제인은 일본인의 조상의 일부이며 백제문화는 일본문화의 일부이지만 한국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조선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史記'이지만 그 때부터 이미 '燕'에 지배되고 있었다. 이후 수천년간 한반도는 중국의 속국이었다. 중국 연호를 사용하여 정기적으로 미녀를 선발하고 성노예로 중국에 헌상했다. 「공녀」라고 부른다. 때로는 중국 사신이 선택한 '공녀'는 모두 추악하다고 불평을 했기 때문에 재선발도 있었다. 조선은 일청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처음으로 독립했다. 서울독립문을 기념해 일본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식민지 압력이 높아지면서 조선은 일본에 보호를 요청했다. 그것은 1910년 한일 병합이다. 일본은 조선의 노예를 해방하고, 철도와 학교를 만들고, 음식을 충분히 유통시켰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자고 먹고 섹스를 했다. 그 결과 한반도 인구는 35년 동안 두배로 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일본 인구는 300만 명 줄었지만 조선 인구는 계속 늘었다. 일본인이 싸우고 있는 동안 조선인은 섹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에서도 위안부를 모집했다. 현재 가치로 1월 3000만원의 고급이었기 때문에 모집에 따른 위안부는 많았지만 조선인 브로커도 이에 주목해 시골 소녀를 속였다. 일본 경찰은 악덕 브로커를 체포하고 많은 소녀를 구출했다. 그러나 불행한 경험을 한 소녀도 있었다. 이 위안부 문제의 원인이다. 한국은 4.3사건으로 제주도 주민 6만명 학살하는 등 공산세력을 무차별로 탄압했다. 그러자 북한이 38도선을 넘어 남쪽으로 공격해갔다. 한국 부산까지 패주했지만 김석원 장군 등 일본군 조선인 병사의 참여와 일본 무기 공급으로 역전했다. 이때 한국은 자국의 소녀를 강제연행해 아군과 미군의 성노예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오해하고 있지만 위안부의 비극 대부분은 이때 생겼다. 일본은 한국의 국가예산의 2년분을 넘는 5억 달러를 지불하는 한일조약을 맺어 합병시대의 청산을 마치고 국민의 개인배상은 한국이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국과 합의했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빈곤 때문에 일본은 1997년까지 무상자금과 기술공여만 1조원이 넘는 원조를 실시했다. 또한 2009년에는 700억 달러의 통화 스왑에 응하고 있다. 이런 경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일본의 은혜를 잊어 청산이 끝난 징용공과 위안부 문제를 재제시하고 있다. 한국 부끄러움이지만, 한국의 많은 사람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
일본 지도를 보니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임진왜란때 일본이 중국 가려면 우리나라 통해서 중국 가는 것보다 사할린 서쪽에 있는 연해주를 통해서 만주를 가면 중국 명나라로 더 빨리 갈수도 있는데 ㅠ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 말도 안되는 한반도로 들어 와서 임진왜란을 일으켰는지? 아직도 의문이 들어요. 한반도 보다 사할린 통해서 서쪽으로 직진하면 중국 명나라 인데 ㅠㅠ 이렇게 되면 한반도를 통해서 만주 가는것 보다 더 쉬웠을 텐데요.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원래 중국이라는 땅은 한족이 왕조가생겨서 망하고 한 역사가 아니라 북방민족이 세우고 만들어낸 역사에요 모택동이 문화대혁명때 북방민족역사 파괴하고 그 흔적을 지워서 그런거지 오늘날 천문기록이 그걸 발목잡을줄 몰랐겠지 결국 하늘은 거짓말은 안 하는데 인간들이 그짓말하지 걍 공부나 더 하세요 이상한소리 하지마시고
중국은 솔직히 북방민족 선비족왕조가 많긴함 그냥 넓게보면 동아시아 역사는 흉노vs선비와의 싸움 흉노가대장 고구려고 연나라,북위,수,당 이런왕조들은 선비족이고 부용국이 천자국을 무너뜨리는 그런 역사였음 고구려가 북방민족 대장 여기서 중요한건 북방민족과의 싸움이였지 중국 한나라 한족이 어디있음???
처음엔 공산당이 한나라 한 을 계승했고 난 한족의자손이다 그렇게 주장해왔는데 왠걸 조사해보니 한나라한이 아니라 고대왕조 조차 북방민족의역사지 한나라 한의역사가 아니였다는걸 모택동이 알아버린거임 그리고나서 문화대혁명 하고 북방민족역사 왠만한거 다 파괴했지만 결국 천문기록과 끊임없이 나오는 유물들때문에 이제 더 이상 거짓말을 못하게 됬음 중국애들 한국유물 숨기는게 얼마나 많은줄 아시나 ㅋㅋㅋㅋ 애초에 실제역사가 밝혀지면 중국의정통성이 흔들리고 존속하기 힘드니까.. 진나라도 여진족,투르크족,몽골족(북방민족)의역사 였다는데 지나(차이나)라는 이름도 잘못지어진 짝퉁국가임 그니까 계속 살기위해 조작하고 거짓말 하는거에여
이게 맞아요. 원래 백제가 일본이에요. 잘모르시는분들은 발끈하실수있는데 일본이란 이름은 우리꺼였습니다. 왜라고 불린 지역이 일본을 계승하고자 일본으로 바꾼것일뿐. 백제=일본입니다. 지금의 일본꺼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해들 하지마세요. 하지만 많은 부분을 지금의 일본이 계승했다는것도 부정할수없네요.
중국 남제가 가라(대가야)왕에게 "보국장군 본국왕" 으로책봉한다. [가라국=본국]이라는 뜻이다. 가라국의 식민지 국가가 일본인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국가인 호주.뉴질랜드나, 포르투칼의 식민지 국가가 브라질인 것처럼, 가라국의 식민지 땅이 본국인 것이다. 중국 예군묘지명에서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내용이 발견된다. 예군묘지명 내용중에 백제가 멸망이전부터 일본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당군이 백제를 멸망시키던날 일본은 부상에 거하여 난을 면하였다." 백제와 일본이 같은 나라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일본이라는 어원을 처음으로 국호로 사용한 나라가 어디인가? 상고시대 히노모토(일본: 태양의 근본)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가라국이다. 중국 구당서에 "일본은 과거에는 작은 나라였는데, 왜국의 땅을 병합하였다고 한다". 기록되어있다. 여기서 말하는 작은 나라는 가라를 말하는 것이고, 가라가 왜의 땅을 병탄하면서 사용한 이름이 일본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역사의 하나인 남제서에는 제나라에 조공을 온 가라국왕(대가야국왕) 하지에게 보국장군 '본국'왕이라 칭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임라일본부 는 임라가 주체, 일본은 대상 을 말한다. 다시말하면 임라가 일본에 세운 관청 이란 뜻이다. 일본왕실의 언어가 경상도 방언을 사용하고 있고, 왕실의 옷도 가라후쿠(가야복), 왕실의 조상신도 가라카미(가야신)이다. 일본은 백제도 아니고, 김해도 아닌 고령 대가야를 말한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의문적을 해결할수 없어 의문점에 대한 사항에 대하여 해결을 부탁하고자 합니다. 지금의 서울 일제시대에는 경(서울 경)성이라 불렀습니다. 일본은 동쪽의 서울 동경, 중국은 북경 중경 서경 남경 (4도시 이부분은 확인 요청) 이라는 도시가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한중일 삼국에 주요 도시에 서울경이 들어간 도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중일은 방위를 나타낸느 동서남북등 서울경 앞에 방위를 적었는지?추가로 중국의 한자를 설명하는 설문해자에 대한 내용중 한자의 발음 표기법이 한음절로 소리내라고 한다는데 (유튜브로 들은 내용) 진짜인지 그리고 왜 지금 중국은 그러하지 못하며 오히려 한국이 한자의 음을 정확히 한음절로 소리내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user-jg1cw8ox4p 문자동북공정이라고있어요.글자를 비슷한걸로 바꿔놓으면 전혀 다른뜻이되는게 그걸이용하는거죠.그래서 역사학자는 한자뿐아니라 한자 어원도 공부해야합니다.백=일 같은 뜻이에요.백두산=태양산,백야 해를 뜻하는단어에요.그런식으로 바꿔치기해논대표적단어가 바로 나라이름 韓이죠.우리 한=하늘(天=干)인데 중국 韓으로 바꿔치기해놨죠.모르면 속지요.현재 한국사 80% 내동북공정내용이에요.
@Ganett 해=태양 한자로 曰(낮/月밤)로씁니다.또다른 한자는 白(黑)백야 백두 백제 다 태양의 듯이죠.일본을 왜 나라이름에 白이라는 단어를썻을까요? 성씨를 따르는 픙숩이있죠? 바로 우리후손이기때문이죠.일본지도층 족보보면 99%가 백제에서왔다고 기록되있고 실재로 고려시대 유물을 가보로 숭배합니다.중대한 역사적 근거로 보는데 현재 한국사학계는 그저 조선과 중국만 빱니다. 암기로 뇌해킹된 상태 뇌최면 상태 즉 개돼지 뇌상태가 된 현실과 그 진행형이죠~
@@jesushairstyle /삼한이란 단어는 삼국사기에 첨 나오는데요.현재 한韓으로 조작된 삼한은 원본 삼국사기 아닌 필사본 삼국사기에 등장합니다.즉 본래 삼한의 한汗이 아니라 한韓으로 조작된채 나옵니다.원본 김부식 삼국사기의 삼한 한은 하늘을 뜻하는 天=千=干=汗입니다.이 사실 아는사람들은 참역사회원밖에 없어요.서울대를 나왔다해도 몰라요 왜냐하면 그냥 암기지식이니까요.대학교수들중에 누가 직접연구해서 논문쓰나요? 그냥 남이 써논거 적당해배껴쓰기때문이죠.문자동북공정이라는건데요. 중요글자만 싹 바꿔치기해놓으면 뜻이 완전히 바뀌거든요.그래놓고 한자로 써놓고 이거다~하면 암기 개돼지뇌상태로는 그런가보다 할수밖에 없죠.암기학문은 사람을 개돼지로 만듭니다.
펌글 1925년 한참 대륙을 석권하던 시절 왜는 동시에 일본열도에 나라를 세우고 있었다. 이때 대규모로 대륙 동부지역 사람들이 유구제국을 그 훨씬 이전 시대에 제압한 것은 일본열도로 들어가기 위함이었고 일본열도 자체가 유구국의 영역에 속하는 땅이었기에 왜제국은 유구국을 합병한 것이다. 이때 당시 유구왕국은 환태평양문화권과 조선의 유교문화가 공존하는 나라였다. 페리제독이 왜에 개항을 요구할 때 먼저 유구국을 거쳤다고 나온다. 당시까지만 해도 유구국은 독립 국가였다고 페리제독은 증언하고 있다. 왜가 지금의 남경에서 가장먼저 한일이 유구국 침공이었다. 그 점령은 곧 일본열도로의 진군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구제도를 이용해 일본열도로 들어가게 되는 통로가 열리고 이때 일본열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토착민들을 포섭 제압하는 과정에서 일본열도의 사무라이 집단과의 전쟁을 묘사한 사건이 ‘라스트 사무라이’의 영화 내용이다. 대륙의 근대화된 왜 제국군과, 아직 활 쏘고 칼 휘두르는 전쟁문화를 가진 일본열도 토착민들을 제압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서 결코 근대화된 왜 제국군은 일본열도에서 자생한 군대가 아니다. 이 왜 제국군들은 복건성 일대에서 발흥하여 대만에서도 호응을 하여 이것이 왜 제국의 근간이 되었고, 이때 산동성의 왜 세력은 없어지게 되었다. 산동성의 왜는 임진왜란 이후 토요토미 가문이 덕천가문에 의해 붕괴되어 왜의 중심지는 남경 덕천가문의 중심지로 옮겨지고 산동성의 왜 세력은 거의 없어지고 조선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덕천가강이 왜 이렇게 했을까? 덕천가강은 조선의 충실한 신하였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도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 자신의 중심지였던 남경을 에도라고 발음하는 것도 현대 일본어이고 당시 강도 江都라 불린 지역이 이 남경이었다. 1912년 지금의 북경에 중화민국이 들어서고 중화민국의 남쪽수도를 남경이라고 지칭할 때 일본열도로 아주 일본이 옮겨졌다. 에도막부의 에도는 오도吳都에서 나왔으며 고또江都와 에도吳都를 같이 썼다. 오나라수도가 에도이며 왜는 오나라를 기반으로 한 나라였고 이들이 역사상의 왜이며 왜였고 왜 지역을 침공한 동아시아 바다를 떠돌아다니던 해적들이 왜구들이었으며 이들을 제압하고 다스리라는 뜻으로 막부에게 평남대장군이라는 직함을 조선에서는 보냈던 것이며, 이 직함 하나로 강호 지역을 평정하게 되니 우리가 중국 무협지에서 강호를 평정했다고 하는 것은 이 일본장군이 그 지역 무사들을 제압하고 우두머리가 되어 조선조정에 충성한 것을 후에 무협지 작가들이 중국의 옷을 입혀서 써낸 소설이다. 강호를 떠돌았다고 하는 무협지의 이야기는 미야모토 무사시 등의 일본무사들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강호의 무사들은 왜 무사들이었고 이것을 일본열도로 옮긴 왜 세력들은 일본열도를 배경으로 새롭게 각색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들이 남색을 즐겼다는 기록이 결국 대륙에서 있었던 남색열풍에 편승한 성 풍조였고 이 왜의 성 풍조는 후에 일본열도로 옮겨져 역사가 된 것이다. 당시 대륙 동남부 사람들은 혼도시를 하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왜 사무라이 머리는 대륙남부 사람들의 풍속이었다. 원래 왜구들은 머리를 산발한 해적들이었다. 그러나 대륙 왜 사람들은 조선의 풍속을 따라서 상투를 틀었고 그것을 투구를 쓰는데 편리하게 변발 비슷한 앞머리를 깎아 낸 것이다. 왜가 대륙에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머리를 했던 것이다. 왜 무사의 그 상투 머리는 대륙의 풍속이었고 상투는 조선의 풍속, 그리고 앞머리를 깎아 버리는 것은 대륙조선 북쪽 올랑해의 풍속이었다. 이들이 이런 상투를 잘라버린 것은 조선을 버리고 서구열강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선언이었으며 메이지 유신 때 상투를 제거하였다. 중국에 새로운 혁명정부가(1911년 신해혁명) 들어서자 메이지정권은 대륙의 일부지역과 대만을 남겨둔 채 일본열도에서 본격적으로 일본시대를 열게 된다. 이 영향으로 대만은 친일국가가 된다. 대만의 1.21사태는 이런 친일토착민들이 대륙의 중국정권에 대해 반기를 든 사건이며 이때 대륙국민당군대는 학살을 하여 전에 왜인이었던 사람을 제압한다.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어서 대만사람들이 비록 대륙식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전에는 왜식 이름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대만은 친일국가이다. 대만은 유구왕국의 일부였으며 장개석이 대륙에서 쫓겨 오기 전까지는 왜 땅이었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미국 주도 하에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이등휘 총통이 퇴임 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했던 것이다.
공감한다. 그러니 임나일본부가 개소리라는건데 왜와 일본을 동일시하니 임나일본부가 정설이 되는게 너무 웃기다. 가야도 시발점도 우리 역사다. 그러니 일본이 가야계라 임나일본부를 놓고싶지않겠지만 그것보다 일본이 한국직계 조상에서 파생된 후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게 빠르고 합리적이다. 제발 그만 애써라 일본놈들아 인정하면 편해 우린 형제야.
Rest assured. With the technology of that time, many people can not be moved beyond the sea. Even after the battle of Baijiangkou, fewer than several thousands of Baekje emigrated to Japan, since there are only about five thousands Baekje people who participated in the battle. This degree of migration is the degree to which there was cultural exchange, and is not enough to discuss the validity of history and ethnicity. Baekje was gone. And Silla became the ancestor of modern Koreans.
오늘 날 일본서기에 나오는 그런 내용을 믿는 학자는 없습니다. 사이비가 아닌 이상이요. 일본서기에 그런 내용을 적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본의 건국 세력은 한반도 도래인이기 때문입니다. 7세기 말, 율령국가 확립을 도모했던 일본 지배층은 일본열도를 하나의 천하로 상정했을 때, 그에 걸맞는 황제적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서는 한반도 諸國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솔직하게 기록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조상이자 야마토 건국의 주축이 한반도로 부터 진출한 도래인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버리면, 황제라는 권위를 가질 명분을 확립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사적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의 지배층은 일본의 건국세력이 처음부터 일본에서 기원했고, 도리어 이곳 일본에서 한반도로 진출하여 그 곳을 정복한 것이라는 식으로 그 관계를 뒤집은 것입니다. 그렇게 황제적 권위에 대한 명분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건국세력이 한반도 도래인이라는 말이 한국인과 일본인이 같은 민족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본에는 더 오래전부터 이주하여 살고 있던 다양한 원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도래인과는 전혀 다른 형질과 문화를 가진 종족으로써, 원주민들과 도래인의 혼합이 곧 일본인이므로, 한국인과 일본인은 다른 정체성을 가진 다른 민족이라고 보는것이 맞는것 입니다.
백제는 신라에 의해 파괴되었다. 백제와 일본의 관계가 있더라도 일본인은 신라의 자손 인 한국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DNA 분석 결과 한국인은 중국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일본인에게는 멀다고합니다. Baekje was destroyed by Shilla. Even if there is a relation between Baekje and Japan, the Japanese has no relation with Koreans who are descendants of Silla. Analysis of DNA shows that Koreans are closely related to Chinese but distant from Japanese.
@露積成海 당신은 바보입니까? 한국어 문법은 일본어에 가까운 중국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의 70 %는 일본어 유래이지만, 이것은 한일 합방 시대에 일본이 서구의 말을 일본어로하고 그것을 한글로 바꾸어 조선인에게 가르친 때문이다. 주의, 민원, 교통, 박사, 윤리, 상상, 문명, 예술, 고전, 강의, 의학, 위생, 봉건, 작용, 전형, 추상, 철학, 사장, 과장 등 모두 일본어이다. 합병 이전의 조선인은 문화 수준이 낮고,이 말의 의미를 갖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에 감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