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재의 첩과 큰 무수리 한 상궁 등이 저에게 ‘지금의 중전을 죽이고, 희빈을 다시 중전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축원해 달라.’라고 하였으므로, 제가 과연 그 말에 의해서 축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중전을 향하여 궁시를 쏘았는데, 곁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일제히 축수하면서 ‘원하옵건대, 희빈을 다시 중전으로 만들어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방 안에서 몰래 축수한 일은, 저와 한 상궁·장희재의 첩과 큰 무수리 등이 같이 축원하면서 말하기를, ‘지금의 중전을 죽이고, 희빈이 다시 중전이 되게 해 주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shp3695 숙종은 숙청의 왕이라서 본인한테 충성하는 신하는 물론이고 사랑한 왕비,후궁까지 제거했죠 근데 희빈장씨 장옥정도 왕비의꿈만 버렸어도 숙종 이 다시 남인들을 조정에 복귀시켜서 일이라도 시켰죠 근데 장희빈이 왕비의꿈 안버리고 욕심부리다가 남인 들이 또한번 숙종의 손에 숙청당하죠 그리고 남인들은 지방에서 살다가 나중에 영조,정조때 채제공을 중심으 로 남인 시파 정조 지지세력으로 등장하지 인현왕후, 숙빈최씨,영조를 등에 업은 노론은 노론벽파로 성장 하고 인원왕후와 경종은 소론이죠
@@user-ft3vb3iq5b 터무니 없는 주장이 아니고 신당을 차리고 무당을 불러들여 무속행위를 한 증거가 다 나왔어요 각시형상의 인형 7개가 나왔어요 뼈도 묻혀 있었고요 장희빈은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그런성격이니 중전이 될 수 있었던것입니다 장희빈은 인현왕후가 투병중에도 몇년간 문병을 가지 않았고 중전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민씨라고 불렀다네요 숙종이 제일 잘못한것이지만 숙종은 장희빈은 6년간 찾지 않다가 저주하는지 확인하려고 취선당을 찾았다네요 숙종이 찾지 않는사이에 더욱 더 질투가 불타 올라서 신당을 차리고 저주를 하게 된것이죠 인현왕후와는 상반된 행보를 보인거죠 인현왕후는 폐비가 되었을때 절에서 불공을 드리고 자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 그리고 제목은 ' *영수 왕자를 저주 하다* ' 로 바꾸셔야 해요 이유는 *연잉군* 은 훗날 *영조* 가 될 인물이기에 저때, 죽은 숙빈의 아들은 ' *영수 왕자* ' 입니다 게다가 *영수 왕자* 는 *연잉군* 과 다른 인물이고, 똑같은 숙빈의 아들 즉 친형제입니다
지난해 7, 8월 사이에 순흥의 어미가 한 상궁(韓尙宮) 【한시영(韓時英)이다.】 과 차씨(車氏) 성의 궁인(宮人) 【차축생(車丑生)이다.】 과 함께 자주 신사를 설행하였는데, 매번 신사 때마다 순흥의 어미가 활과 화살을 차고 풍악을 울리며 ‘내가 장차 민 중전(閔中殿)을 잡아서 쇠 그물 속에 넣겠다.’라고 하고, 이어서 화살을 마구 쏘면서 벽력(霹靂) 같은 큰 소리로 부르짖기를, ‘내가 민 중전(閔中殿)을 쏘아서 이미 우물 가운데 던져 넣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장 중전(張中殿)이 미구에 복위(復位)할 것이고 사도(使道)도 미구에 바다를 건너서 올 것이다.’ 하였는데, 이른바 사도란 곧 장희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이달 그믐 사이에 중전을 죽이지 못하면 다음달 그믐 사이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