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스e - 임용한의 '전쟁사: 임진왜란'》 전체 강의 보기: classe.ebs.co.... 패전 이후, 조선군의 반격이 시작된다. 이순신 장군을 필두로 조선 수군은 용맹하게 싸워 승리한다. 한산해전의 과정과 나아가 승리의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전쟁사 전문가 임용한에게 듣는다. ✔ 프로그램명: 클래스e - 임용한의 《전쟁사: 임진왜란》 제3강 전쟁의 운명을 바꾸다. 한산해전 ✔ 방송 일자: 2020.12.16
정변이나 쿠데타는 전국민이 반대하는것도 아니고 , 지지하는 국민도 항상 절반은되고 민주주의로 투표해서 대통령을 뽑아도, 국민 100%가 지지하는법은 없다 , 항상 50%의 국민은 반대하고 싫어하지만 , 반대하는국민들 강제승복시켜서 어떻게든 대통령해먹으면서 , 왜 정변이나 쿠데타는 , 독재라고 항상 욕을하고 부정하는지 모르겠다
@@임다듀것으 원균이 이름난 장수라는 근거좀..제발ㅋㅋ 근거를 가지고 와서 그런 개소리를 하세요.. 차라리 원균 동생 원연이 이름난 장수죠. 원연은 전공도 세우고, 목민관으로서 한 고을도 전란중에 잘 다스려서 백성들로부터 존경도 받는 위인이었어요. 대체 원균이 무슨 이름난 장수라는거에요?
@@임다듀것으 임진왜란(1592)발발 당시 경상 우수사를 역임했으며 전쟁이 발발하자 자신 휘하의 병사 1만을 모두 해산시키고 판옥선을 4척만 남겨두고 나머지 약 70척을 모두 불태우고 바다에 수장시킨 뒤 도망치면서 경상도 제해권을 모두 적에게 넘겨줘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다. 1592년 임진년 7월 8일 한산대첩을 치른 뒤 왜적 400명이 한산도에 상륙하였는데 원균이 휘하의 경상우수군을 이끌고 한산도를 4면으로 포위하고 적을 모두 섬멸한 뒤 보고하겠다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약속하였으나 적이 많이 몰려온다는 소문을 들은 원균이 포위를 풀고 도망침으로써 한산도의 왜적 400명이 모두 거제도 방면으로 달아났다. 이것 역시 원균의 실책이다. 1593년 계사년 2월 22일 웅포 해전 당시 원균과 그 휘하의 경상우수영 장수들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함부로 함대를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해 들어가다가 통선 2척이 전복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모든 일 역시 원균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웅포 해전이 끝난 뒤 원균을 몹시 꾸짖었다고 한다. (난중일기에 기록이나온다.) 이게 나무위키에 나온 내용인데, 나무위키라고 신빙성없다고 하지마시고 이미 위 내용은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빙산의 극히 일부죠. 이게 이름난 장수입니까?
임진왜란 당시 고성, 통영 사천에서 의병활동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은 수군이 활약했던 남해안 지역으로 최균, 최강 형제가 의병장으로 수군과 연합해서 전투했었습니다. 임박사님의 강의에서 잠시 등장했던 목동 김 모는 그 지역 의병일 것이라고 추정되네요. 제가 최균장군의 13대 후손이라서 우리 집안 내력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ㄹㅇ임 일본입장에서 바라본 어이없는 임진왜란에 대한 조선은 의병의 계념에 충격(일본은 영주끼리 전투를할때 농민이나 시민은 절대 안건들고 전투는 군인만 하는 계념이라 이러한 상황이 충격) 선조가 빤스런함(한 나라의 왕이 수도버리고 튀었다는거에 도요토미가 충격먹음) 선조 빤스런하고 민심 나락가서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에 붙어서 싸우는 아이러니한 상황 약탈해서 식량문제 해결하고자 갔는데 막상 쳐들어가보니 조선이 너무가난했음. 오히려 조선인들이 밥달라고 구걸함. 정유재란끝나고 통신사파견해서 조선인 포로들 데리러갔는데 조선가면 개취급받는다고 일본이 살기좋다고 안오는 조선인포로들 곰곰히 생각해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윗대가리들이 사람귀한줄 몰랐음.
임용한 박사님 강의는 빠짐없이 다 듣고 있습니다. 수많은 관련 서적이 있고 다들 열씨미 연구들 하셨지만 임용한 박사님의 탁견과 추정은 정말 독보적이라 늘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줍니다. 문득 든 생각이 지난 수십년 세월, 정부와 지자체에서 적지않은 수의 판옥선과 거북선을 실물 크기부터 모형까지 다양하게 만들었지만 항해 성능을 실증하는 레플리카는 없었던것 같은데 임난 시절의 제원대로 충실하게 복원하여 당시 그대로 돛과 노를 가지고 실제 남해 바다를 항해하면서 선박의 항해 특성을 실측 데이타로 얻으면 역사 고증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복원력 테스트나 선박 선회 능력도 이때 시험해 볼 수 있겠죠.
마지막 말씀이 와 닿네요. 조선 수군은 이길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었다. 이순신 이라는 엄청난 영웅도 있었지만 시스템도 한 몫 했다는 것. 영웅에 대한 칭송도 중요하지만 시스템을 만드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국방, 정치 시스템 등등 모든 분야에서 인물에만 너무 매달리지말고 시스템을 잘 만드는 노력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전쟁과 전투는 정말 시스템이고 준비가 잘되어있어야 한다는게 나혼자 잘나서 되는게 아니라 좋은리더와 그를 따르는 좋은 부하들도 있어야 된다는것 리더는 좋은전략으로 이기는 전략을 펼치고 좋은전투는 잘훈련된 일개장수와 병사들이 하는거라서 아귀가 잘맞아 떨어진거죠~ 임진왜란이 좋은 학습자료가 되는게 같은수군이지만 이순신 리더의 전투와 원균리더의 전투가 정말 달랐다는게 보여지죠
평저선이라고 완전 평면은 아닙니다.약간의 v자 형을 이루고 있어요.어릴적 한노를 저어다니는 낙동강 나룻배를 모라본 저로서는 선회력은 정말 뛰어납니다.조선시대 배가아니라 똑같은지는 모르지만 완만한 v자를 이루고 있었죠.물이 빠질때는 진흙바닥에 정박해두어도 약간의 기울기만 있고 배가 넘어지질 않았죠,밀물때면 다시 물위에 아무이상없이 떠 있었죠.
제가 아는 내용과 좀 다른게 많아서 적어 봅니다. 한산도 대첩의 업적이나 전투활약 보단 그 동안 당연시 되었던 부분을 중점으로 다루셨는데. 판옥선이 평저선이라 회전을 했을거 같지만 아닐 수 있다? 평저선이 아닌 경우에도 조류에 휘말리면 배가 돕니다. 평저선은 도는것보다 회오리 치는 조류의 바다에서 곧바로 직진 하는게 더 어려워요. 그리고 회전 하는게 안해 봤지만 안될수 있다 하시는데. 현재 판옥선 재현 해서 진직도 재현 못하고 있습니다. 그 무게의 배를 격노꾼이 아무리 해도 속도가 안나요. 그런 이순신 당시 수군의 배운용 방식을 이해 못해면서 현재에서 머리로써 그냥 돌지 못했을거 판단 하시는건 무리 입니다. 그럼 제자리에서 쉽게 돌지 못하면서 그 전과를 낼 수 있는 이유를 같이 설명 해주서야 할거 같습니다. 결과를 놓고 한부분이 부정되면 다른 부분으로 그결과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학익진은 기본이다? 이걸 해전에 썼다는게 중요 합니다. 이순신이 사전에 학익진을 배웠을지 , 아니면 창안 했을지는 모릅니다. 이걸 해전에 썼다는게 중요합니다. 그럼 해전에 쓴게 뭐 중요하냐? 학익진은 수 많은 연습과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이건 한두번 해서는 안되고 바다에서 수십번해야 될까 말까 하는게 이런 전술 입니다. 그냥 흔히 쓰는 전술을 썼으니 별거 아니다 생각하면 짧은 생각이겠죠. 바다에서 하나로 통일 되어 일사천리 조류를 견디며 대열을 만들게 했다는 자체가 대단한겁니다. 전술이 기존에 있었냐 없었냐가 중요한게 아니에요. 목을 베기 힘들었다? 수장 된 일본군 병사가 일본기록에도 수천 입니다. 그럼 바다에 파선된 배 잔해. 시체 , 물 반반반 입니다. 그냥 떠 다니느거 건져도 수급이 됩니다. 수급할 시간보다 적을 베는 시간이 중요한건. 수군에게 정신 상태 교육을 한거고. 맘만 먹으면 적군 죽이면서도 수급 수백두를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수 많은 시체에서 비단옷을 입고 떠 있는걸 준사가 저게 마다시 해서 건져 올렸죠. 그렇게 조선수군 배 근처에 왜군시체가 가득 이었습니다. 전투가 끝나도 그런 시체를 두고 돌아 간겁니다. 수급 할시간에 한명 더 죽이는건 당연하고 , 그말을 본 뜻은 수급에 유혹에 빠질 수군에 정신 상태를 다져 준겁니다. 왜군침략때문에 수군이 강한건 당연하다? 일본 왜국은 게릴라 입니다. 어둠에 몰래 왔다가 약탈하고 빠져요. 소규모도 있고 대규모도 있지만. 이걸 예비군 수군이 잡기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긴해안선에 왜군이 왔다는 말 들어도 배타는 시간에 다 약탈하고 빠집니다. 멀면 몇시간 노를 저야애 해고 겨우 도착해도 세끼부네 같은 첨저선을 타고 가는 배를 쫓아 갈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해도 그걸 바다에서 잡는건 효율이 매우 떨어 집니다. 불가능에 가깝죠. 여기서 그래도 열심히 준비한 해군이냐. 그렇지 않은 해군이냐에 따라 조선 수영의 능력이 갈렸지 그 환경으로 인해 각 수영의 능력이 다 출중 했다는건 무리라 봅니다.
장군의 전술은 거의 진법운용입지요. 명중률이 낮아 진을 이루어 탄착점에 쏟아부어야 하는데, 견내량은 넓은 진을 형성하기가 어렵겠지요. 조류에 대한 걱정은 명량의 필사즉생의 전법이 있듯 해볼만 하겠으나, 말씀하시대로 육지에서의 공격도 염두에 두시고, 상륙도 막는 방법을 선택하기에는 한산도로의 유인이 적절한 전술이라 봅니다.
단순히 수군의 우수성으로 평가하기에는 원균의 경상 우수군의 사례가 있어서 적합하지 않다고 봅니다. 실제로 이순신장군은 부임 이후 훈련을 빡세게 하기도 했고요. 또한 지금의 배와는 다르게 당시의 배는 좌우에서 노를 저어서 운행하기때문에 제자리에서 도는게 무조건 가능합니다. 평저선이라 유리한것도 사실이구요.
이순신장군의 위대함은 철저하게 이길수 있게 준비하고 이길수있는 전투만 했던 장군이라서 더위대합니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은 잘싸웠다 만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문제인데 이유는 생명이 오고가는 현장에서 이겨야 하고 생명을 보존해야만 그뒤도있고 끝도 있는 현실이기때문에 전쟁은 무슨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합니다. 축구 같은 스포츠는 다음에 또하면 되지만 전쟁의 패배는 그즉시 생명과 맞닿아 있기에
평저선은 제자리에서 돌 수 있습니다. 우리 노꾼들은 서양의 갤리선 처럼 앉아서 노를 젖는 방식이 아니라, 서서 노를 수직 아래로 밀면서 방향 전환을 합니다. 나루배의 노꾼을 보셔서 알겠지만, 나루배도 거의 제자리 턴을 하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힐들어서 안할 뿐이지) 제자리턴 사격연습의 기록은 난중일기에도 있습니다. 배들이 북소리에 맞추어 제자를 돌면서 사격을 하는 모습이 마치 출을 추는듯 했다고 하지요.
완전 제자리 선회는 불가능하겠죠. 자기들은 제자리 선회를 했다고 여겨도 드론 띄워서 영상찍어보면 제자리 선회가 아니라 조류따라 이동하면서 선회하는걸로 나올걸요. 첨저선에 비해서 좀 더 회전각을 확보할 수 있었다 즉 첨저선보다 좀 더 빠르게 선회할 수 있다 라는 상대적인 개념이지 완전 제자리선회는 판타지 개념인듯요
스타크래프트 해보면 알겠지만 전투를 할때 사거리를 가진 전투단은 최대한 빨리 넓게 산개를 해야 됨 좁은 곳은 방어쪽에는 천국이거나 공격쪽에는 지옥임...그래야 모든 병력의 화력 투사가 가능함,... 빨리 산개를 못하고 일렬로 대열을 유지하는 병력은 순차적으로 소모되고 어느 시점부터는 순삭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