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가을, 대만 항일 영웅이라고 불리는 원주민 모나 루데오(Mona Rudao)는 반란을 주도했으며, 그의 전사들은 학교에서 일본 시민을 공격하고 일본군 부대와 친일 원주민에 대한 공격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패배가 불가피해졌을 때, 모나 루데오의 부하 대부분은 항복보다는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대만 원주민인 고산족이고 한족출신인 외성인과는 다르죠. 한일관계보다는 영국과 구르카 관계랑 비슷한면이 있음. 영국이 구르카족을 토벌하고 그들의 전투력에 놀라 용병으로 채용했듯 일본군에도 대만 고산족 특수부대가 있었다고 함. 우서사건이란게 초등학교 운동회에 모인 일본인 남녀노소를 무차별 학살한 것인데 가급적 일본 민간인은 건드리지 않았던 우리 독립운동과 비교하는 것도 어불성설임.
@@dorianfa4209 너같은 인간이 많으니 우리나라가 어찌 될런지. 일본이 조선 저항이 그렇게 우스워서 간도참변, 연해도 참변이 일어났나 보구나. 그렇게 저항이 약한데 왜 남의 나라 땅까지 기어들어가서 조선인을 골라서 수천명씩 학살하냐? 그렇게 만만해서 중일전쟁 대륙까지 쳐들어가서 그깟 조선놈 한 명한테 현상금을 100만원씩 거니?
@@___whoops 우가키 군축으로 육군을 감축하는데도 조선과 만주에 17개 사단 가운데 5개가 주둔하고 있었다. 니가 지껄인 저항 격렬한 대만엔 1개 연대도 주둔하지 않았어. 일본이 비융신이라 고분고분한 조선과 만주에 5개 사단을 붙박이로 박아놨을까? 대만하곤 달리 조선은 고분고분하지가 않아서 2개 사단 말고, 무장 경찰 대부분이 붙박이로 붙어 있었다. 현재까지 정치적 파워를 떨치는 윤석렬을 필두로 하는 토왜 매국노의 본산인 만주 특설대를 왜 창설했겠냐? 조선인이 고분고분하고, 별 거 없었다며? 그런데 왜 만주 특설대롤 설치했을까? 그것도 자기네가 만주국 세우고 집어 삼킨지 20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말이다? 그렇게 고분고분해서 치안 유지 난이도가 말랑말랑했다며? 반박할 수 있어? ㅋㅋ
오늘날 대만인과 저 사람들 민족이 다릅니다. 대한 인구중에 본성인(국부천대 이전에 대만에 살고 있던 중국계 및 동화된 원주민) 83% 외성인 (본토 패배후 대만으로 들어온 국민당계의 후손) 15% 영화속 야만족 2% 참고로 영화속 주인공은 인체 표본이 되어서 80년대말까지 대만 국립 박물관에 구경거리로 전시됩니다. 대만인 주류에게는 그냥 야만인 추장이었던 거죠
워워 오해마시길. 저들은 원래 대만인들과도 어울리지 않은 진짜 원주민들이고 중국계 대만인들은 일본지배 환영했음. 그냥 보호구역에서 미국에 저항하고 차별받던 인디언이 일본군 상륙하자 너히들도 같이 꺼져 하는 영화임. 그걸 나중에 미국의 전쟁영웅 뭐 이렇게 포장한거라고 하면 이해하려나.
영화 워리어스 레인보우 : 시디크 발리에 출연한 남자 영화 배우들과 여자 영화 배우들과 엑스트라들과 보조 출연 아르바이트들 자체가 모든 부문에서 퍼펙트 스코어(PERFECT SCORE = 100점(點) 만점(滿點)) 이기 때문에 퍼펙트 스코어(PERFECT SCORE = 100점(點) 만점(滿點))를 추천(推薦) 합니다.
크게보면 의미가 있을수도 있긴 한데 실제로 원주민들이 노린건 일본군이나 경찰이 아니라 대부분 운동회에 모인 일본인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살육행위를 했고 일본군 사상자 대부분은 이후 토벌전에서 발생함. 애초에 10만 일본군이라는데 실제로 작전에 동원된 일본군 병력은 2천여명이라 사실하곤 좀 다름. 게다가 일본군이 동원한 병력 상당수도 일본군이 아니라 세디크족과 원한관계가 있던 대만 한인들이나 다른 대만 원주민들이라 최강?전사인지는 잘 모르겠고. 이후 세디크족의 행보 역시 거시적인 관점에서 항일 대만독립을 주장한 것이라기엔 너무 우발적인 행동들이 대부분이라 장기적 비전을 가진 독립운동이라기보단 부족간 및 식민당국과의 분쟁이 우발적으로 확대된 사건으로 보는게 맞긴 함.
그리고 이걸 대만독립운동으로 보면 안되죠. 원주민들은 네덜란드나 중국세력이 왔을때도 저렇게 저항했습니다. 그래서 한족들과 안 섞이고 숲에서 살았죠. 그냥 대만원주민들의 항쟁정도입니다. 저들은 애시당초 일본이고 대만이고 중국이고 국가자체를 인정안했어요. 한인들 주축인 대만인들은 대만총독부를 그저 정권교체 정도로 여겼고, 한족들은 오히려 일본지배에 긍정적이었습니다. 청나라 조정이 워낙 못살게 굴었기에.
현재 대만은 중국에서 넘어온 대륙인이 대분일듯.. 원주민은 살짝 동남아시아 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듯 하며, 대만 가도 많이 보이질 않던데. . 그래도 일본에 대한 반감은 있을듯 하지만. 현실은 한국에 대한 반한 감정은 더욱 심함. 중국와 외교 수교 하면서 중국의 협박에 대만과 외교를 끊은것이 그 시발점이 된듯... 지금은 친일 성향이 다분한듯.. 대만가서 실험적으로 일본인인척 일본어를 사용해 봣는데. 확실히 그 친절도가 달랐음. .
당시 일본넘들의 군사력이 너무 강했음 다 자국민들을 노예로 부렸던 조선왕조가 문제임 자국민들을 이렇게 노예로 부린 나라가 없음 이래서 차라리 당시 노비에겐 일제시대가 더 좋았단 말이 나오는거임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대단한거고 존경받아야하지만 순응해서 살았다고 지금 시대 사람들이 머라고 할 이유는 없음
역사를 드라마로 배운 사람들이 않아서 문제임. 2~3%에 해당하는 양반들에게 착취 당하며 맞아 죽고 굶어 죽고. 드라마에 나오는 백성들의 집이, 진짜 인줄 앎. 조선도 일본도 아닌 서양인의 기록을 보면 ,하다못해 길에 대변 천지였다고 함.그걸 치우는 유일한 존재가 "개"였음. 일본이 점령하고 가장 먼저 한일이 하수 사업이었음. 일본을 두둔 하지는 않지만 그 당시 백성의 입장을보면 조국은 크게 의미가 없었을거임.
영화로 역사를 배우면 안됩니다. 영화속 야만족들은 대만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존재이고 저런 부족들을 과거에 고산족으로 불렀는데 현대 대만 인구의 2%밖에 안됩니다. 대만은 역사적으로 네덜란드-정성공-청나라-일본-국민당 순서로 지배자가 바뀌었고 피지배층은 중국본토 이주민들이었는데 누가 지배하던 대만은 식민지 였죠. 그 중에서 가장 좋은 지배자가 일본(국민당도 대만에 들어와서 학살) 아무튼 이사건 당시에도 대만 원주민들은 소수 야만족이었기에 중국본토 이주민들의 치안을 위협하는 존재. 즉 현대 대만인 대부분을 차지하는 본성인들 입장이나 일본 입장이나 다를바 없었지요. 저 족장은 80년대까지 인체 표본이 되어 박물관에 전시됩니다. 국민당 철권 통치가 끝나고 민주화되면서 대만 독립 요가 강해지면서 저 우서 사건도 영화화 된건데 원주민들은 현대 대만에서도 별도 거주구역에 주로 거주하고 있고 참정권도 제한 받는등 여전히 차별받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 저런 일이 벌어졌으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저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 일제 강점기에...일제는 우리 한국을 총, 칼을 앞세워 강압으로 대하였으나, 그 반발이 너무 심하여...오히려 일제들에게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고..일제들의 뜻 대로 되지않자, 중국을 지나 대만으로 갈 때에는 유린 정책을 펼쳐 대만 인들로 부터 오히려 칭송을 받았다. 극 중에 나오는 대사.."저들은 우리를 무지함에서 탈출시키고..등....!!~ ~~ " 에서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 저들도 살 수 있었던 것이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대만인 들은 일본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오줄 없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제 조금씩...그들의 역사가 재조명되면서..정말 부끄러워하고 분하다고 하는 대만 인들이 적지 않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더 웃기는 건...대만 인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그냥..300C한 편 보듯 한다는 것이다..자기네 역사고...아픔인 줄...모르면서...~~`~~~~~~~~~~~~`~~~~~```
청산리 봉오동 전투 일본군 3200 명 전사 꼼꼼히 전투일지로 유명한 일본군 문서 독립군 26명전사 일본군 2명전사 이 문서들 본 광복회 멘붕 솔방울을 슈류탄으로 만든 청산리 봉오동의 신화가 깨지는 순간 아직도 교과서에는 청산리 대첩 ㅎㅎㅎ저런 원시 부족도 싸웠는대 우리는 총 한발 안 쏘고 식민지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