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부터 그냥 한국인이시네요!! 부모님과 이전 선조 분들께 감사드려요. 제가 뵌적은 없지만.. 어쨌든 뿌리를 이어가는 분들이라 애국심이든 뭐든 관심없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행복하세요!!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널리 퍼뜨려 달라고 말씀 드리고 싶지만.. 그건 오지랖같고.. 그냥 아버님, 어머님이 해내오신 것처럼 쭉 버텨주세요... 화이팅!! 그리고 한국분과 결혼 하셔도 좋고 일본분과 가정을 이루셔도 좋지만 자녀 분들에게 뿌리를 부담스럽지 않게 상기해주는 정도라면 전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이 프로그램을 만드신 Korean Diaspora KBS 분들과 최불암씨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부모님께서 이 1930년대 18세의 젊은 나이로, 홀로 현해탄을 건너 오사까로 가셨고 또 그와중에도 오로지 교육을 가장 중시하셔서 와세다대학까지 다니면서 온갖 인종차별을 견디시고 해방후에 많은 재산을 모아서 한국으로 금의환향을 하셨읍니다. 그러나 육이오 전쟁과 화폐개혁으로 모든것 잃고 다시 시작하셔서 우리 팔남매를 한국과 미국에서 최고 학부까지 교육시킨 우리 부모님의 스토리 이기 때문입니다. 아버님께서 많은 이야기를 우리 어릴적 부터 들려주셔서 익히는 알고 있었지만 글로 남겨주시지 못하셔서 항상 궁금했는데 근래에 “파찡고” 에서도 쯔루히 사거리와 시장을 직접 사진으로 보면서 우리 부모님께서도 저곳에서 그때 육남매를 키우시면서 고생하시던 바로 그길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좋은 기록영화의 선물에 정말 감사합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에서,🙏🙏🙏
저는 한일혼혈 입니다만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무런 죄 지은 것 없이 식민지배와 수탈을 당하고 , 한반도가 분단되어 수많은 실향민들이 고향 땅도 못 밟고 전세계를 떠돌고.. 정말 눈물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둑질 하지 않고 나쁜 짓 하지 않고 미친 듯이 일하고 공부해서 자식들만은 '더 나은 사람 되라고' 하신 어르신 세대들을 보면 가슴이 뻐근해집니다.
아니 일제가 뭘 수탈했다는건지? 당시 일본에서 거지 조선에 들어온 지원금이 얼마였는지 아나? 하도 거지라서 도로, 병원, 철도, 학교 전부 일본인 세금으로 건설하고, 쌀 한톨 강제로 들고 가거나 돈 안 주고 노동시킨거 없구만 뭘 수탈했다는 거야, 벌거숭이 산에 5억그루이상 나무도 심고, 대학교 만들어 교육시켜 전후에 한강의 기적의 주역이 되고, 공짜로 포철 세워주고 현대자동차 도면주고, 한국이 일본 예능,노래 과장 다 베껴도 저작권 같은거 안 따지고,, 재일 교포들 손정의처럼 재벌 되도록 해주고ㅡㅡ ,, 조선인들이 당시 일본 사회에 가서 더럽고 시끄럽고, 속이고 반도에서 하던 습관처럼 해서 지금 한국의 중국인처럼 다들 싫어하는 존재가 된건 아닌지.. 일본은 전쟁에 져서 돌아가는 조선인들 임금도 공탁 걸어두던 나라임.. 왜 자꾸 피해의식을 부추기나...
개인의 경험상 재일교포들과 조선족들을 만나봤지만 재일교포들은 하나같이 자기 정체성을 한국인이라고 말함. 조선족들은 다 자기는 중국인이라고 함. 축구 응원 누구하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중국이지 이럼. 조선족들은 그냥 한국말 할줄 아는 중국인들임. 재일교포가 한국에 들어와서 살겠다고 하면 당연히 받아야 줘야 함 조선족은 받으면 안됨.
맞습니다. 재일교포분들은 한국을 위해 엄청난 성금을 보내고 늘 한국을 위해 희생하셨지만 조선족들은 중국에 붙어 동북공정에 앞서고 한국인 사칭해서 범죄 저지르고 한국인들 상대로 보이스피싱 인신매매합니다. 탈북자들 잡아다 중국에 성노예로 파는 것도 조선족입니다 재일교포분들 감사합니다
오키나와 놀러 갔을 때 돌아오던 마지막날 점심을 웬 가게에서 먹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공항 가는 길에 들른 가게였는데 종업원 분께 매운 탕 종류가 있냐고 물으니 메뉴 하나를 추천해줘서 시켰습니다 근데 먹다 보니 순두부찌개랑 너무 비슷했습니다 '일본인이 먹기엔 매울 거 같은데, 아니 애초에 일본도 순두부찌개를 먹나?' 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근처 회사에서 온 듯한 회사원들이 몇 테이블 먹고 있더라구요 사람 입에 맛있는 건 국적이 없는가 보다 하며 맛있게 먹고 계산하려는데 요리사 겸 주인으로 보이는 분께서 한국인이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어케 알아봤는지 신기해 하며 그렇다고 답을 하니 본인이 재일 3세라고 한국어로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제서야 아! 싶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엄청 반가웠습니다 ㅎㅎ 돌아와서 주변인들이 오키나와 간다고 하면 꼭 들르라고 추천하고 있는데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네요 어디에 계시는 분들이든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소수라는 건 어디에서나 서러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오래전 영상이네요. 무언가 안타까움은 물론 과거 한국인의 강인한 생활력과. 명석함 조국을 잊지않고 한국문화를 이어가는 모습등에서 코끝이 찡해옵니다. 가끔 지면이나 뉴스에서 일본을 지탄하고 안되기를 바라는듯한 느낌을 받을때. 지금도 수많은 한국 후손들이 살고 있느@ 일본을 다른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것같은 생각을 해봅니다. 슬픈 역사는 과거로 돌리고... 더욱이. 우리의 자녀들이 일본인과 국제결혼도 많이들 하고있는 세상이되었습니다. 그저 모든나라가 서로 협력하며 다같이 잘살아갔으면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최불암선생님의 오래전 모습도 반가웠고요.
슬픈 역사를 과거로 돌리기엔 글쎄요... 일본은 변하려고 노력을 안하는데 왜 우리만 변하고 받아드려야될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한건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저지른 악행은 독일처럼 지속적으로 사과를 해야된다고 봅니다. 지금 유럽 국가들중에 독일을 원수처럼 바라보는 나라가 있을까요?
@@touchstone8943 독일과 일본을 바라보는 약사의식은 달라야합니다.일본의 식민지배는 우리가 ㅂㅅ같아서 당한것이고 그게 원론적인 문제이지 그건 반성안하고 모든책임까지 일본에 전가하는것은 잘못된것입니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치적 유불리와 식민지배의 사과는 분리되어야합니다.
울딸도 2년째도쿄서 유학중인데 대학들어가니 학교에서 서로 친구하자고 난리였데요 케이팝 가수 자기 넘. 좋아 한다면서 다른나라에서 유학온 친구들도 친구하자고 난리고 대학교수님도 딸하고 이야기 하다가 본인 한국드라마 너무 좋아 한다고 하고 딸이 신기하데요 주변사람들이 자기랑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전 한마디 했어요 넌 우리나라 국가대표다 도울수 있으면 주변 도움주고 친절하게 지내라고^^~
일본 오사카 살고 교포입니다. 요즘은 한창 K팝,한류,한식 붐이라 치즈닭갈비랑 한국식 페스트푸드,중화요리같은 배달음식이 참으로 인기가 많아요. 하지만 제 나이 30도 안 됐지만 가끔 한국에서 먹은 감자탕,김치찌개,된장찌개,돼지or순대 국밥에 소주 먹고 싶어집니다ㅠㅠ 또 일에 쩌들고 코로나 때문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니 더욱 그립네요..
@@은희취향은빨간팬티 그건 당신 생각이시고요.님 같은 사람에게 욕 처먹을 처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욕먹을 일은 아닌거 같고 반대로 생각이 있으신지… 일본 음식이나 한국 음식이나 어느 나라 음식이든 맛있는 것도 있다면 똥토물 같은 것도 있겠죠. 저는 스페인 요리 자격증,일본 음식,한국 음식 조리증 갖고 예전에 요식업에 종사했는데 전 한국 궁중 요리가 참 예뻐보이고요. 물론 국밥 같은 단순에 보이지만 인정(人情)이 넘치는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당신 사고(思考)를 남에게 밀어붙는 언행 하지마세요. 부끄러운 일이에요ㅋㅋ
남에서는 '재일' 북에서는 '째포' 일본에서는 '자이니치'로 불리며 늘 벽을 마주해야했을 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미안합니다. 정작 일본에서는 해방이전의 조선적, 대한민국, 북조선 그리고 귀화한 일본 국적의 동포들이 통일된 사회를 이루고 지낸다는 데 미안하고 맘이 아파요.
@@Tko_Seven H마트는 미국에 있는 한인마트입니다 Crying in Hmart("H마트에서 울다"로 한국어 번역출간) 소설에서 나오는 H마트는 필라델피아에 있습니다 아마 댓글 쓰신 분은 재미교포이신가 봅니다. 윗분 말씀대로 서역이라는 말은 중국사람들이 서쪽을 지칭하는 말인데 서양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이 재미있게 봤습니다 만드신 피디님과 최불암선생님의 잔잔하고 교민들에게 따듯하게 다가가시는 모습이 참 정겨웠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이민 34년을 살고 있는데 너무 할 말이 많아 지금 책을 쓰고 있습니다 언제 한번 피디님과 같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다 생각 합니다
내가 어릴적 국민학교시절인 80년초에 제주는 정말 못사는 동네였다. 당시 재일동포 친척들이 제주를 자주 다녀갔었는데 입고있는 옷들 신발, 카메라 등등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당시 제주에 방문하는 재일동포들은 고향 사람들을 정말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친척들도 돌아갈땐 우리 형제들에게 만엔짜리 한장씩을 주셨는데 그때 마다 학교가는길에 은행에 들려 한국돈으로 바꿔 통장에 꼬박꼬박 저금한 기억이 난다. 만엔이 한국돈으로 3-4만원 정도 했었는데 당시 버스 학생승차권이 80원정도 였으니까 상당히 큰 돈이었다. 당시 재일동포 친척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한국이 많이 발전해서 그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조선학교와 조총련이 북한측이 된것은 한국에 책임이 있는데 뭐 뉴커머가 대단함? 조선학교는 이승만과 박정희에게 학교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해서 대신 북한이 지원해주었다. 한국은 유학생을 간첩이라 고문하고 고향방문도 가지 못해서 동포들이 한국을 싫어하게 되였음. 한국 국정원 관련 우익과 통일교 사람들이 일본에서 재일동포를 혐오하고 차별하고 있다. 부끄러울 줄 알아라.
Quando li toda historia do Japão ocupando a Coreia foi uma grande tristezas, era casada com japonês, e fiquei horrorizada com que eles fizeram, e depois fui ver a historia da ocupação na China e também me horrorizei, agora parei pois não tenho mais condições de ver toas as atrocidades, feitas, os governo deve pedir perdão as nações atingidas por eles. Meu marido nunca mais voltou ele era de Nagasaki nem na comemoração da bomba ele não ia pois não aceitava, Deus tenha misericórdia para que nossos filhos não pague por erros passados.
그 불굴의 의지 때문에 조선인들이 더 많이 박대당했죠. 일본인들은 밟으면 밟히고, 힘으로 안되면 순종하고 복종하는데.. 이 조선것들은 밟아도 일어나고 밟아도 일어나고, 자꾸 각성하고 굴복하지 않는... 나라가 작고 힘들어서 자꾸 공격당하고 고통받았지만, 그 불굴의 의지 덕분에 우리가 아직도 한국인으로서,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었음, 진작에 중국에 먹혔을 수도..
북한 사람 거의 없어요.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네요. 조총련 계열이 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은데, 그거랑 상관없습니다. 재일코리안 올드커머의 98%는 현재 한국지역 출신이에요. 그 중에서도 5~60% 정도는 경상도 제주도 출신이구요. 북한 지역 출신 거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