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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발견] 동학농민혁명 1부 폭정의 세월 2017.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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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발견 #동학농민혁명 #민주주의

Опубликовано:

 

8 сен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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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51   
@user-wz1qx2xi6k
@user-wz1qx2xi6k 5 лет назад
고부봉기와 사발통문은 동학혁명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사발통문과 고부봉기가 동학농민혁명에 있어 결정적이었다는 주장에 반대합니다 사발통문은 당시 주모자를 알 수 없도록 하면서 연락을 취하는 보편적 방식입니다 고부봉기때 쓰인 사발통문은 일반적 통문 형식에 맞지 않아 사실 여부를 두고 지금까지도 학계에서 논쟁이 뜨겁습니다 또한 우매한 농민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여러 상소에서 앞장서기를 마지않았던 전봉준의 살아온 행적과 공초 기록과도 일치하지 않아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할려고 해도 전봉준이라는 인물이 큰 혁명을 앞두고 주모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뒤로 숨었다는 것은 상상되지 않습니다 사발통문이 사실이다 가정하더라도 세상에 포고문을 선포한다는 것은 죽기를 각오하고 주모자 이름과 대의를 대내외에 발표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주모자를 감추는 지도부가 어떠한 자격이 있어 일반 대중을 결집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불성설입니다 또한 고부지역민들은 고부봉기 이후 조병갑 후임 박원명의 회유에 의해 지역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고 해산해 버리는 시대적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볼 때 고부봉기는 1862년 진주민란 이후 30여년 동안 일어난 100여건의 민란 중 하나일 뿐입니다 반면 안핵사 이용태 탄압을 피해 고창으로 피신한 전봉준은 손화중 김개남 그리고 지역주민 4000여명(전봉준 공초에 여러 전투에서 자주 거론되는 농민군 숫자임)과 함께 무장 기포지에서 만천하에 대의를 떳떳이 선포하였습니다 고부민란과는 달리 고창 무장 기포후 부안 백산과 정읍 고부로 진격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부 의식의 좀더 나은 성숙과 지역주민들의 높은 시대의식 수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당시 그 많은 수가 반역이라는 의식을 뒤엎고 지역을 벗어나 혁명의 기치를 내걸고 나아갔으니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며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 우리도 일어나 참여하여야 한다는 각성을 심어주는데 있어 황토현 전투 승리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민중의 위대함을 드러낸 역사적인 날입니다 싸움에서는 질 수도 이길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일본군과 관군이 연발총을 가지고 있는 반면 죽창을 들고 나서는 동학군에 있어서는 더욱 결과는 의미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민중이 평등한 세상, 정의로운 민주주의 사회 실현을 위해 자기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 조상이 싸움 잘 했다는 황토현전승일을 백의민족의 후손인 우리가 기념일로 계속 삼고 기려야 하는지... 전봉준과 조병갑 중 한 사람이라도 출연하지 않으면 최대 40만명의 동학농민군의 희생으로 쓰여진 동학농민혁명사는 왜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는지... 군사정권이 지어낸 막장드라마에 매몰되어 있는 지금의 우리가 참으로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우리 후손들이 동학농민혁명을 지금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참여 조상들의 정신을 두 번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때라고 봅니다
@user-mm6dd7sv2v
@user-mm6dd7sv2v Год назад
정신나간 역적 일베충 댓글
@user-wz1qx2xi6k
@user-wz1qx2xi6k 4 года назад
사발통문과 고부봉기에 역사 왜곡이 있어 안타까움이 큽니다 ○ 고부봉기때 쓰였다고 하는 사발통문은 원본이 아닙니다 20명 서명자 모두 한 사람 필체이기 때문입니다 명단에는 전봉준과 함께 3대 거두라 일컬어지는 손화중, 김개남이 빠져 있고, 역시 동학교도이자 고부민란 당시 장두의 한명이었던 장익서의 이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20대가 1명도 없는 반면, 당시 14세였던 송국섭 등 10대가 2명이나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사발통문은 일반 통문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고 있으며, 결의 4개 항목 중 2개 항목이 고부민란 당시의 상황과 맞지도 않아 진위 여부를 두고 학계에서 많은 논쟁이 일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당시 사회에서 주동자를 알 수 없게 하기 위해 쓰였던 사발통문은 전봉준의 그동안 행적(앞장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음)과 공초(심문 조서)에서 보이는 정황들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 고부봉기는 1800년대 전국에서 일어난 100여 사건 중 하나에 속하는 민란입니다 민란을 입증하는 증거는 많은 대중을 결집할려면 지도부가 죽기를 각오하고 떳떳이 이름을 밝혀 대의를 선포하는 것이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그러나 위와는 반대로 주모자를 알 수 없게 비밀리에 추진하는 사발통문(실제 존재했다 가정할 경우)을 사용한 것은 아직까지는 지도부의 의식이 민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 지역 주민들이 조병갑의 익산군수로의 전임과 고부군수로의 잉임 여부에 따라 해산과 결집을 하였고, 후임으로 온 군수 박원명의 회유에 의해 지역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고 해산해버렸다는 점도 들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여러 민란과 마찬가지로 시대적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고부민란 이후 안핵사 이용태의 탄압을 피해 고창으로 피신하여 온 전봉준이 손화중, 김개남, 지역주민 4000명(전봉준 공초 기록에 여러 싸움에서 자주 언급되는 농민군 숫자임)과 함께 고창 무장 기포지에서 한 지역을 뛰어넘어 전국화를 선언한 포고문을 최초로 발표하였습니다
@user-gt9op6ri4i
@user-gt9op6ri4i 3 года назад
동학농민혁명 민초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민주가 있다
@user-ij1cn1xv2u
@user-ij1cn1xv2u Год назад
진정한리내펀사사이엇군요
@user-ij1cn1xv2u
@user-ij1cn1xv2u Год назад
존셩합이다
@user-ik8qh7gx9g
@user-ik8qh7gx9g 5 лет назад
감사해요
@user-tx8vv3fz9o
@user-tx8vv3fz9o 5 лет назад
感謝합니다
@user-cl3gw6uk2v
@user-cl3gw6uk2v 3 года назад
*전 세계에 모든 종교는 선천시대에 종교이며 외래종교이고 후천개벽시대(2013년부터)에 종교는 유일한 동학천도교이며 민족종교랍니다 작금의 시기가 젤 쇠운시대라 이 시기가 끝나면 반드시 성운시대가 찾아올 것이니 다함께 인내하면서 살아갑시다🍀🍀
@user-mb3wh8ig7x
@user-mb3wh8ig7x 3 года назад
동학농민혁명은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감사합니다~~
@teasankim9715
@teasankim9715 6 лет назад
중앙이 섞었는데 팔다리를 자른다고 되나 대가리가 섞었는데
@user-ij1cn1xv2u
@user-ij1cn1xv2u Год назад
푀대민족사의서사시,됴선의 인민해발혁며이엇군요
@user-ij1cn1xv2u
@user-ij1cn1xv2u Год назад
린닝잭서읗즤걸이삐빠눈항갷의 주사까호조눈게 정사란 자본주릐헌한의바극이도나
@user-ij1cn1xv2u
@user-ij1cn1xv2u Год назад
혁명하라,패게베라 , 큐바 이기잭의ㅘㄴ굿사상롱리구아 박현채의옹민과 셩제
@user-bg1yg2ok8p
@user-bg1yg2ok8p 5 лет назад
전라도라 호남지방. 어느 지방보다도 피와 눈물과한이서려있는 역사가있는곳.최초 민주주의를 꽃피운 동학혁명.
@user-ij1cn1xv2u
@user-ij1cn1xv2u Год назад
1894년의폭정섴조의눈물피가나를감싸네
@user-kn3qv4se9y
@user-kn3qv4se9y 5 лет назад
과거사에 동학농민들에대한 보상도 문정부가 처리해야되는것아닌가.이때도 일본정부에의해 죽은 민족운동아니던가.518만 민주운동이든가 동학농민운동이야말로 민주운동아니던가 후손들에게 국가적으로 서훈하여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여 후세에 표본이 되어야한다.과거사에 얽매어 앞으로 전진하지못하는 문정부는 과거사에 국가로인해 희생하신분들께 유공자로 인정하는것이 당연하다생각한다.
@ybpark345
@ybpark345 4 года назад
왜 임진왜란 의병들도 보상하지 ㅋㅋㅋㅋㅋ
@user-cy7dm9uk5q
@user-cy7dm9uk5q 5 лет назад
민국에 역사는 호남으로부터이군요
@user-ij1cn1xv2u
@user-ij1cn1xv2u Год назад
항굿쏙의한국
@user-ij1cn1xv2u
@user-ij1cn1xv2u Год назад
한구교ㅗㄱ의한국한국속의 한국 한국속의한국,한국쏙의 한국,
@moonjakim1647
@moonjakim1647 4 года назад
조병갑 부관참시하자
@user-ij1cn1xv2u
@user-ij1cn1xv2u Год назад
사우스파츠오브코리엉패난슈라라흘폿파햐하 잔두량번르ㅏ소향 주농새눈 열ㄹ구새의 까락잘까고 개닷니의 송까학잘까고 잔주 촉썩루에 놈을던졋지
@user-ij1cn1xv2u
@user-ij1cn1xv2u Год назад
맹작의 4댜상현싸의펑새청의 오ㅑ눔의갸가라리 뱜자어를 까부셔라
@user-ij1cn1xv2u
@user-ij1cn1xv2u Год назад
민조4최대서사시
@user-ui9ul9te9e
@user-ui9ul9te9e 3 года назад
만고의 역적 조 병갑 군수의 명을 받고 부임한 조 병갑의 학정과 약탈 삼정의 문란 전정 군정 환곡
@user-lt5ep2il8c
@user-lt5ep2il8c 5 лет назад
아, 전라도, 아, 호남... 엄마의 땅이여, 아들의 땅이여.
@user-bn4og8dh7u
@user-bn4og8dh7u 5 лет назад
어자피 저들은 일진회가 됩니다 ㅎㅎㅎ 대한민국 살면 조선은 좀 스킵하시죠 역사는 그냥 큰 줄기로 이해하고 끝내라구요
@user-ls3bg8kb4j
@user-ls3bg8kb4j 5 лет назад
너는 뿌리도 스킵합니까? 왜 너님 조상님도 스킵하지요?
@Wjj777
@Wjj777 4 года назад
뇌가?
@user-vf6un8qr1q
@user-vf6un8qr1q 5 лет назад
허허 이때도 명박이 같은 놈들이 있었네 확실히 역사는 반복 되는 가
@user-kn3qv4se9y
@user-kn3qv4se9y 5 лет назад
동학운동이야말로 3.1만세운동의 시초가된것이다.문정부는 국가유공자로 자정하여 후손들에게 국가적으로 보상해주어라.
@user-bw5wz6mp2k
@user-bw5wz6mp2k 3 года назад
조병갑이 후손한테 받아라
Далее
Will A Guitar Boat Hold My W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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