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격은 사람은 그렇게 새롭게 들리지가 않네요. 근데 우리 한강 작가님은 너무도 깊이 글을 너무 잘 표현했다는 것이 감명 받습니다. 너무도 힘들고 그때 고2때 우리 힘든 과정이 가슴을 파고 들었죠. 사건을 격고 듣고 성당에서 비디오로 보고 5.18묘지를 다녀오면서 아픈가슴으로 늘 힘들었습니다. 저들의 억마같은 만행 민주주의는 서서히 우리들 마음속에서 녹아 내리는 것 같습니다.
박구용 교수님 사랑합니다....맞습니다. 세계에서 아파하고 전쟁과 폭력의 희생자들과 연대하고 결국에는 평화로운 역사로의 이행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희생당하고 있는 슬픔영혼들과 같이 하고 싶습니다. 다이제스트판으로 한강 작품읽고 아는 척 하시는 분들 얘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될거 같습니다. 이명박이나 정주영 버전이란 좀 사용하기 그렇지만...해봤어..? 읽어봤어?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그래도 똑같은 소리하면 공감능력의 상실에 대해 아파해 주고 싶습니다.
정말 만세를 불러도 기뻐해야 할 책인데, 보수측의 한 단체는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도 있어요. 김규나는 질투를 하고, 한강작의 책은 교수님 말씀처럼 실제로 느끼는 진실된 감성으로 썼다는 것은 거의 다 알고 있지요. 또 역사를 왜곡 되었다고 하는 인간들도 있고, 참 이런 경사스러운 일을 그렇게 비하하면 비열한 인간이 되는거겠죠. 정말 고마운 것은 모든 국민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에 고마움을 느낌니다.
지금도 트라우마처럼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군 제대 후 복학한 뒤 대학 2학년 1학기. 광주 518 직후 전국 계엄령이 발동되어 대학은 휴교령이 떨어진 싯점이었다. 1980년 5월 25일인가? 일요일. 외삼촌이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셨다기에 누님ㆍ형님과 셋이서 오전 11시경 병문안을 갔다. 병원 입구에 들어서는데 군인들이 장총에 검을 꽂은 채 허리 춤에 들고 서 있으면서 신분증 검사를 하며 통제를 하고 있었다. 뭘 이런 병원에서까지 통제를 하는가 싶어, 그들을 쳐다보는 내 눈째가 좀 불량스러웠는가보다. 갑자기 장교처럼 보이는 군발이 놈이 나를 향해 뛰어오면서 저 놈 잡아라 소리친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깜짝 놀랐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할 겨를도 없었다. 본능적으로 뒤돌아 뛰는데 난 내가 그렇게 잘 뛰는지 처음 느꼈다. 발이 허공을 날아 오르는 것 같았다. 뒤에서 들려오는 군화발 소리가 아스라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아마도 500m 정도는 뛰었을 것이다. 혜화동 방향 약간의 언덕길을 달렸는데, 전혀 숨이 차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았다. 그렇게 절제 절명의 위기 의식은 무아지경의 세포상태로 전환되는가 보다. 그 시절 군사 폭력은 그렇게 온 국민들의 뇌리에 공포심를 낙인처럼 찍어대고 있었다. 지금도 국민들 대부분이 그런 비슷한 심리 상태에 놓여 있지 않은가 여겨진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들이 대부분 삭아 있다. 그 전에는 환히 피어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