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아들을 버리고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아들이 아비를 구하지 못한 그 상황은 누가 무엇 이라고 하고 말해도 신경쇠약과 결벽 그리고 분노조절 장애가 있어던 영조의 탓 이라고 봅니다. 한중록을 읽어보면 암묵적 공범인 혜경궁 홍씨가 운명과 미신을 핑게로 죄책감을 느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정조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고 천명한 부분도 결국 어떤 이유로든 자신도 아버지의 죽음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해했다는 것 으로 보입니디.
Yeongjo was an abusive jerk father to crown prince Sado. Also he caused demise of Joseon by not executing his teenage evil queen. It would have been better if he died when crown prince Sado turned 16.
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RJNAyYJ5Mtw.html 박근혜를 엮었다고 자뱍한 윤석열을 즉각 구속하라ㅡ 서울의 소리 클릭하여 윤석열의 파렴치한 녹취 파일을 둘어 보세요.. 또한 대장동 몸통 윤석열 1805억 조우형이룰 석방한 원흉 입니다.' 공유 부탁드립니다.ㅡ.ㅣ
자식이 죽어가는 현장에 있었다는 영조 멘탈이 이해가 안가네요..사람이 먼저다.. 사실 영조 본인의 자식양육에 대한 반성이 먼저여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편애를 일상적으로 하는 아비로써 목숨걸고 자식의 허물을 고쳐야겠다는 생각부터 했어야 했고 그게 어려웠다쳐도 뒤주에 갇혀 참혹하게 죽이는게 최선이었을까? 아쉬움은 크게 남네요.. 사료에 충실한 깊이있는 상황 설명 황샘 영상 잘봤습니다
@@user-cm9sz7np3d이미 죽은지 200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치료하겄어요만은 요즘에도 자식 죽이는 부모도 있으니..부모죽이는 자녀도 있고..제정신 아니게 사는 인간들이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나봐요.임금이란 자가 저랬으니.. 태평성대 탕평책으로 평가를 받는 임금이 영조라 수많은 백성들을 사랑하긴 했을까 싶죠..
영조본인이 살려면 뒤주가 최선이었음 이미 사도가 미쳐서 영조한테 칼들고 대들었음 한중록에 보면 나옵니다 한중록에 읽어보면 사도가 참 불쌍합니다. 분명 혜경궁홍씨는 사도와 영조욕을 이빠이로 적어놨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사도세자의 죽음에는 홍씨가 상당히 관여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정조만큼은 지키기위한 홍씨의 모성과 그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사도와 영조의 모습이 둘다 애처롭게 읽혀졌던 한중록이었습니다. 홍씨가 얼마나 사도와 영조욕을 해놨던지 40년전에 읽었던 책이라 기억은 가물한데 그느낌이 분명 사도와 영조욕이고 아들을 지키려던 홍씨가 불쌍해야하는데 읽는 저한테는 남편을 적으로 여기고 영조한테 사사건건 고자질하는 홍씨의 모습만 비춰서 부모한테도 사랑못받는데 와이프조차 외면한 사도가 안돼보였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영조로써는 사도가 자기를 죽이려 하니 어쩔수가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부부사이가 좋았으면 사도의 운명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중록을 읽으면서 40년전에 느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한중록 읽어보세요 이책에서는 안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혜경궁홍씨가 살기위해 어쩔수 없이 저질렀던 일들에 대해 욕도 못하지만 가장 안타까웠던게 부부사이가 갈데까지가서 홍씨의 배경없이 혼자 영조를 맞아야 했기때문에 사도가 그리간게 아닌가 하는생각이 많이 드는 책입니다. 이책읽고나면 이런생각이 들겁니다. 정조는 홍씨가 없었으면 결코 왕이 되지 못했다.
상 중에 어린 궁녀를 후궁으로 들이고 아들 죽이고...정쟁에 희생양 치고는 영조 자체가 정상적인 사람은 아나였던듯 저런 아버지 아래서는 정상인도 미쳐거릴듯..실제로는 사도세자가 엄청난 현군감이 였다는게 맞지 않을까요? 견제세력들이 누명씌워 역사적으로 매장시킨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조 자체가 왕이 되는 과정에서 태생적 흠결(왕의 적손이 아니라 후궁 태생) 있어서 자격지심과 열등감이 있었기 때문에 노론 집권층과 정통성을 놓고 첨예한 갈등관계에 있었는데, 아들인 세자가 불리한 요소로 작용해서 왕통이 바뀔 수 있는 반정의 조짐이 끊이지 않았음. 그때도 민심이 작용한 듯. 반정일어나서 영조가 폐위되면 방계로 왕통이 바뀌니까 그것에 히스테리가 있었지.
제가 읽었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영조 편)에서는 세손인 정조에게 후사를 잇게 하기 위해 세자를 제거했다는 쪽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영화 (사도)의 스토리도 이와 비슷한 형태를 그리고 있는데요. 임오화변은 조선 왕조 역사상 큰 비극 중에 하나였습니다만,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대왕이 조선 왕조의 뛰어난 성군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황 선생님의 이번 강의 영상 잘봤습니다. 편안하고 안전한 그리고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현제라고 틀리지 않습니다 지금 현제 국민들은 코로나로 인해 국민 대다수는 힘들지만 참고 이겨네고 있는데 300명의 국회의원들 그들은 지금 무었을 하고 있을까요 각종 범죄와 우우죽순 처럼 일어나고 법의 판결이 엉망인걸 느끼는 시간을 돌아보며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무었을 하고 있는걸까 그들이 일은 하는걸까 걱정이 됩니다 잘 들었습니다
뒤주에 가두고 아들이 죽어가는 걸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이중메세지와 비난을 일삼는 영조의 태도때문에 사도세자는 정신분열증에 걸렸던 거 같고, 살인도 망상으로 인한 결과 같네요ᆢ그런 아들을 왕으로 올릴순 없었겠지만 그래도 그 방법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영조의 인간됨을 의심하게 됩니다. 열정넘치는 강의 잘 듣고 있고요,감사한 마음으로 댓글 함 달아봅니다^^ 이순신해 병행표기 서명했습니다~~
태평성대를 이룬 영조가 천재였던 아들을 칭찬하지 않고 뒤주에 가둬죽인게 정말 이해가 안됬는데... 인성이 안좋았던 사도가 왕이 됬을때의 나라 걱정과 인성까지 갖춘 이산이 왕이 되기 힘든 요건을 제거 해야하는 대의를 실현하고 정조도 할아버지의 의도를 알았다면 백성의 안위를 걱정했던 영•정조는 통함이 있었겠네요 이해가 되니 너무 행복합니다 황현필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치적인 의견 대립과 그밖의 갈등으로 인해, 왕이 아들을 죽이는 일은 세계사에도 꽤 있었던 일이라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만, 죽이는 방법에 있어서만큼은 도저히 이해가 안됩니다. 단연코, 전 세계 역사상 가장 엽기적인 사형 방법 중 순위에 들만큼 지독히 잔인했다 생각되고요, 솔직히, 영조가 사이코패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정말 끔찍하죠 ㅡㅡ. 듸주에 가둬 천천히 죽게 하다니 ㅡㅡ. 사실 영조가 자결하라고 칼을 주니 시도하다 사도가 못하죠. 처형을 시키면 손자인 정조는 죄인의 아들이 되니 왕위에 오르는 명분을 못갖게 되서 자진을 시키는게 젤 좋았지만 . 결국 장인이 가져온 뒤주에 비참하게 죽죠 ㅠㅠ. 사도는 첨에 갇힐당시 아마 며칠뒤에 풀어줄지 알았죠.
@@user-pm9pn4li4i 그렇군요..황현필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셨지만서도, 그 부분을 잠깐 언급하고 강하게 주장하지 않으신 듯 하여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네요. 그 시대 상황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 때의 법과 제도하에 영조가 다음 왕위 계승자로 정조를 올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이제 조금은 이해가 가는 듯 합니다.
영조. 탕평책,탕평비,균역법,악형금지,신문고제도,속대전편찬,세금제도 개편. 정조. 규장각건립,규장전운 반포,수원성 건축.. 역사 시간에 노래로 해서 불렀는데 까져 먹었네요.. 역사를 역사답게 배우지 못하고 그저 암기 과목으로 취급했던 옛날이 많이 후회가 됩니다.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치려고 노력하신 선생님들은 빨갱이, 또는 골수 전교조 취급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에라도 황현필선생님같은 분이 많이 나와서 일제의 식민사관을 떨쳐버리고 중원을 호령하던 대 고구려의 웅장했던 우리 조상들의 위대함을 일깨워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황선생님께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는 선조와 광해군, 인조와 소현세자의 대립의 집합체 같네요... 솔직히 영조도 선조처럼 출신 컴플렉스가 있었던거 같아요... 그래서 더더욱 정조같은 완전체를 원했던거 같고, 거기다 인조와 소현세자의 청나라에 대한 의견 차이처럼 당쟁에 대한 의견 차이가 비슷해 보이네요... 어찌보면 진짜 영, 정조 시대가 조선 후기의 중흥기로 칭해지지 않았다면 과연 영조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지네요...
그보다는 왕권강화를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 이였을 거에여 왕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면 외척들과 조광조 같이 똑똑흔 조정대신들이 성리학으로 국가를 이끌어 갈려구 했을테니까여 영조의 탄탄한 왕권강화가 있었기때문에 손자인 정조가 조선을 잘 이끌수 있었죠 정조의 알수없는 죽음또한 왕권강화를 더이상 볼수 없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