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은 기록을 보면 스타일이 대체로 조조나 사마의처럼 현장각보고 빠르게 결정하는 속전속결의 군재가 있다고 보임. 제갈+오호장군 하나를 남겨 형주 수성하고, 법정 방통을 필두로 나머지 유비 올스타 조합으로 쭉쭉 밀고 올라갔으면 장안도 꿈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 입촉 시기 유비군은 정군산에서 하후연 장합 등 위 1티어들을 우습게 따버렸던 저력이 있었으니, 조조가 허도로 돌아간 후 장안을 쳐서 점령하고 왼쪽 옹양을 물 흐르듯이 촉의 영토로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렇게 되면 오가 위협을 느껴 위오 연합군이 형주를 쳤겠지만, 제갈이 형주에 상주하며 오와 관계를 유지하고 오히려 촉오연합을 짜서 양양과 합비를 동시 타격했다면. 참 재미있는 상상이지
차라리 제갈량 보다는 방통이 더 났지 않을까 싶은게 방통도 제갈량 못지 않게 형주 카르텔이었고 더구나 오나라의 중요 인물들과도 관계형성이 되어 있는데다 군의 전략과 모사로서의 활약은 방통이 좀더 전문적이라 방통이 있었다면 오의 뒷치기를 받고 형주가 무너지지는 않거나 최대한 형주 전선을 유지하면서 제갈량의 내정능력을 통한 촉에서의 펌핑으로 북벌로 치고 나가지 않았을까 싶음
애초에 1군 안데리고 2군급 신예장수 참모진으로 정벌 간것에서 알 수 있다싶이 형주를 제갈 및 1군 장수진 참모진으로 관리하고 촉땅을 2군 합류장수,참모 및 기존 촉세력들로 촉을 관리하려 했을 겁니다. 기존 1군 라인업에 관우 장비 조운 쓰리톱에 제갈량 보좌까지 생각한다면 위오동맹군도 힘들지 않았을까요
방통 법정 중에 한명이라도 오래 살았더라면 제갈량도 과로사로 일찍 죽지도 않았을텐데 그게 참 촉나라로써 아쉬운 대목입니다 ㅜㅜ 전예 진등 또한 유비가 서주목때 함께했던 인재들이였는데 끝까지 가지 못하고 조조한테 넘어간것도 너무너무 아쉬웠습니다 전예는 진짜 1티어급 장수인데 ㅠㅠ
봉추는 유비에게 임관한 문관 중 임관 당시 가장 명성이 높고 인맥이 넓었다고 봅니다. 사람을 평가한다는 건... 그걸 역사서에 남길 수 있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만한 분이라는 거죠. 인재를 쓰고 권모술수를 부릴 수 있는 건 촉한에서는 유비를 제외하면 봉추가 유일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수도 높게 평가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법정 방통만 살았어도 제갈량이 형주에 남아서 관우를 컨트롤 했을테니 후에 일어날 이릉대전을 포함한 수 많은 사건이 없던일이 되면서 엄청난 스노우볼이.. 유비 관우 장비 마량이 죽지 않고 황권도 촉에 남고 맹달 미방 부사인의 배신도 위연의 반란도 없고 가정에 마속 배치도 없고 ㅋㅋ 위연 왕평 장비 트리오가 한중에서 출진해 장합 조진 곽회 카운터로 활약하는 상상만 해도 흐뭇 ㅋㅋ
유비의 운은 방통의 비명횡사로 다한셈. 방통이 죽지 않았으면 방통과 제갈량 둘을 가지고 형주를 잃어버릴 일도 없고 양주에 국한된 오따위는 시간문제. 익주와 형주 양주를 장악하고 제갈량과 방통이 양쪽에서 협공하였다면 조조가 죽기전 이미 북벌통일했을거고 사마의는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죽었을것. 방통의 허무한 죽음으로 유비의 운이 이미 다한셈.
방통은 베트남인임. 친부친과 친모친이 베트남인으로 중국인인 양부모가 입양함. 화살에 맞아 죽은것이 아니라 식인을 하는 습성을 못버리고 전쟁터에서 죽은 적 병사의 간을 생으로 먹고 병걸려서 죽었죠. 방통이 추남이라고 한건 중국인이 봤을때 베트남인의 생김세는 당시 관점에서는 흉해보였고 그래서 추남이라고 되어있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