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이야기
백석 시인의 ‘고향’이라는 시에서 몸이 아파 의원을 찾아갔더니, 의원이 한참 맥을 짚다가 묻습니다. 고향이 어디냐고요.
그리고, 시에는 이런 구절이 이어집니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씨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자신이 아는 고향 사람과 의원이 가까운 사이라는 것 만으로도 의원의 손길이 마치 고향에서 느끼는 그리운 사람들의 온기를 전달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시가 ‘백석’ 시인의 ‘고향’인데요. 이렇게 우리에게 있어서 ‘고향’의 의미는 단지 태어나서 나고 자란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가 있고, 추억이 있고, 정든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그리움의 장소고요. 우리 모두의 고향은 그리움, 잊을 수 없음, 타향에서 곧장 갈 수 없는 안타까움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고향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우리들은 ‘고향’에 대한 심정이 각별했는데요. 태어난 고향땅을 떠나지 않고 대대로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어쩔 수 없이 타국으로 징용을 가거나, 독립운동을 위해 고향의 가족들과 이별하는 일들이 생겨났고요. 이후, 광복을 맞아서 다시 고국의 고향땅을 밟았지만, 다시 6.25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낯선 타향에서 객지살이, 타향살이, 타국살이가 고단하면 고단할수록 포근한 고향은 더 아름답게 느껴지고, 부모형제와 선산이 있는 고향땅이 더 그리워질 수밖에 없고요. 자연스럽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절절하게 그려낸 노래들이 우리 가요에 주를 이뤘는데요. 1953년, 발표된 ‘박재홍’ 선배님의 ‘향수(鄕愁)’ 역시 전쟁으로 헤어진 이산가족들의 아픔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한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부모 형제 이별하고 낯설은 타관에서
어머님의 자장가를 노래하던 그 시절이
슬픔 속에 눈물 속에 흘러갑니다
기적소리 울 적마다 기적소리 울 적마다
그리운 내 고향
고향 산천 이별하고 차디찬 타관에서
어머님의 사랑 속에 자라나던 그 시절이
구름 속에 바람 속에 흘러갑니다
쌍고동이 울 적마다 쌍고동이 울 적마다
그리운 내 고향“
박재홍 선배님의 ‘향수(鄕愁)’는 한국의 슈베르트라고 불렸던 이재호 선생님이 곡을 쓰고, 배석영 선생님이 노랫말을 쓴 아름다운 곡입니다. 경기도에서 태어난 박재홍 선배님은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오케레코드사에서 주최한 신인콩쿨에서 입상을 하면서 가수로 데뷔했구요. ‘울고 넘는 박달재’가 히트하자마자, 6.25 전쟁이 일어나고 부산으로 피난살이를 내려오게 됩니다. 그리고, 피난 내려온 부산에서 ‘경상도 아가씨’를 발표하고, 또 ‘물방아 도는 내력’과 ‘향수’를 발표해서 큰 히트를 기록하는데요. 박재홍 선배님은 가늘고 섬세한 목소리와 호소력 있는 창법으로 실향민들의 아픔과 서민들의 애환을 위로하고 달래주는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중 대표적인 노래가 ‘향수(鄕愁)’입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고 새로 건설하는 단계에서 도시에서는 인력이 급속히 요구되었고요. 자연스럽게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향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1960년대와 70년대에도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습니다. 그리고, 힘들고 외롭고 지칠 때마다 정답고 아름다운 고향의 풍경과 그리운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나게 하는 노래들을 들으며, 시름을 달래고 위로를 받았죠. 객지생활이 힘들수록 고향이 생각나고, 객지생활이 고독할수록 푸근한 고향의 정이 그립고, 고향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마련인데요. 다가오는 추석. 정다운 고향에서 그리운 가족과 정다운 옛친구와 아직도 변치 않고 마을 어귀에서 반겨주는 감나무, 밤나무, 하늘하늘 코스모스와 반가운 재회를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17 сен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