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야간 통일호타고 묵호역에서 내려 비둘기타고 정동진 들어간 기억이 나네요. 지금이야 열차들이 정차하는 역으로 변했지만, 저 당시 진짜 기차 여행 매니아들만 아는 역으로 여름철만 여객 수송 역으로 열렸던 옥계역도 역앞 해송이 이뻤는데 지금 그것도 없어져 예전이 그리워 집니다.
강릉사람인데 지금도 저기 철로랑 역사 자연환경은 거의 그대로입니다. 물론 관광지 개발이 꽤 되어있어서 호텔이나 새로운 역사도 들어와있는데 바닷가 보면 저때나 지금이나 크게 안다르네요. 저 어릴때 2천년대 말까지도 바다열차 가끔 타고 놀러다녔습니다. 지금은 저 선로 레일바이크 돌리고 있고 옆에서는 화물열차 돌아다닙니다
저희 할아버지세요!! 최근에 할머니께서 계모임 가셨다가 지인분들께 이런 영상이 남아있었다는 걸 전해들으셔서 최근에야 이 영상을 보았어요. 저희 아빠보다 젊으신 할아버지 모습이 신기하고 이렇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 아빠께선 눈물이 핑 돈다고 하시더라고요. 2017년에 돌아가시고 곧 기일이시라 이렇게 또 찾아왔는데 이런 댓글이 보여 답글 남깁니다...🤎 할아버지 뵈러가서 꼭 전해드릴게요!!
@@박서빈-u8w 아, 이런 댓글을 달았던걸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공개적인 장소에 댓글을 달 땐 항상 누군가가 마음을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돌아가신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의 영상을 우연히 지나치다 보게 된다면 얼마나 큰 감정이 몰려올까요. 할아버지가 영상 속에 계시는게 부러워요. 제 할아버지는 한참 옛날분이라 사진도 몇 장 없어서ㅎ 늘 행복한 하루하루 되세요!
92년 10월 말에 제대하고 집에서 뒹글거리다가, 정동진 가면 석쇠에 구운 과메기에 쐬주 한잔이 그만이라는 라디오 방송 듣고, 친구하고 갔다고 과메기 커녕 식당도 없고 춥기는 오질나게 추워서 친구한테 욕한바가지 먹은 기억이...그 망할 모래시계...고현정 소나무? 에라이...정동진역 참...우리 도착한 날 부산가는 사진작가 두명과 담날 부산으로 가는 우리 보고 자기내 한달매출 최고로 올렸다고 좋아라 하던 곳이 참...바닷가 보면서 부산 갈 수 있다고? 뭔 기차가 후진하고 굴만 터럽게 다니더만 깨보니 아침에 탔는데 저녁에 부전역 ㅠㅠㅠ
@@Ai_Music_Storage 625 전쟁나서 철도 90프로가 파괴되고 특수는 일본제국이 다누렸는데? 역사를 공부하든 검색을 하던 ㅋㅋ 그리고 진짜 철도특수를 누릴려면 대륙까지 연결되야지ㅋㅋ 이사람 집 재산 다 약탈당하고 다리부숴뜨려놓은사람이 부목해주면 감사합니다 할사람이네..ㅋㅋ
이 영상을 1989 년에 찍었다는데.. 1965 년에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생 시절 고교동창 몇명이 여름에 정동진 에서 텐트를 치고 일주일 정도 지낸 기억이 새롭다. 지금 생각하면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변모했을 것 같다. 그때만해도 민가 몇채가 있던 작은 어촌이었다. 대학생 시절 청량리역 에서 강릉으로 방학 시절에 오가자면 꼬박 12 시간이 걸렸다. 중앙선을 타고 영주 까지 내려가 영동선을 타고 묵호를 거쳐 강릉으로 갔다. 대학생때 가차를 타면 제천과 영주에 정차할때 역 구내에있는 우동 파는 곳에서 한 그릇사먹던 추억이 새롭다. 대학 4 학년 여름방학때 ROTC 훈련을 마치고 강릉에 있는 집에 가느라 청량리 역에서 밤기차를 탔는데 묵호에 도착할때 까지 꼬박 11 시간동안 서서 갔던 기억이 있다. 8.15 연휴때라 해수욕객들이 몰려서 기차가 만원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동네 친구이자 고교 한해 선배인 친구가 육군 소위로 휴가갈에 함께해서 그리 지루한줄은 몰랐다. 그 친구는 공부를 잘해서 서울 공대를 졸업하고 기술고시도 합격하여 고위 공직자로 은퇴했다고한다. 글을 쓰는 나는 캐나다 어느 구석에서 추억의 기차여행을 하고있다. 지나간 과거는 그립고 또한 늘 아름다운 법이다.
이 영상을 보니 너무 옛날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인 구가 넘쳐 열차에안에 사람들이 발딛을틈이 없어 복 잡했지만 우리의 이웃들이 정겹게 대화하시는 분들이 우리 아버님 어머님 누나 동생들처럼 느켜졌고 장사하 시는 분들이 오일 장에 물건을 팔러가시기 위해 객실 바닥에 고무대야를 줄줄히 놓은 모습이 선하고 명절 때는 기차를 이용해 고향으로 내려가는 귀성인파가 북 적북적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은 인구 감소로 인해 옛날 완행 열차는 사라지고 KTx로하는 열차가 생겨 그런 아쉬움이 생깁니다. 그리고 예전에 철도에 종사하시는 역무원 선로를 보 수하시는 분들은 고객 이웃들의 안전을 위해 수고하신 분들 너무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얼마 전에 대전 조차장역에서 열차 사고가 있었는데 선행열차가 사고지점을 통과할때 열차에 이상이 생겨 어느 손님이 전화 연락을 통해 점검을 요청했지만 이 상 유무를 제대로 취하지 않아 이런 문제가 생겼습니 다.앞으로 다시는 안전 사고 불감증이 없도록해주셔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열차를 이용하실수 있도록 책임감 을 발휘하시는것이 저와 많은 분들의 바랍입니다. 귀한 영상을 올려주신 강원영동 M.B.C 방송국 직원 여러 분 감사합니다. 저는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는 중앙선이 있는 신녕역이었습니다. 태어났곳은 의성이지만 아버지고향인 신녕에서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를 나왔습니다. 집은 완전동이었지만 할아버지 과수원을 겸한 집이 철도길 옆에 있어서 매일 놀러갔었습니다. 당시 꿈이 기관사 였을 정도로 철도를 좋아했지요 당시에 견학일지로신녕역 탐방을 써서 당시에 금상인가? 은상을 탓는데 그때 당시 통표폐색을 보고 같이 간 친구들과 기차놀이를 하면서 저런 통표폐색과 비슷한 놀이를 한게 기억나네요. 참으로 그립습니다.
@@이기찬-s6z 저는 완전동 살고 있었어요 신녕버스터미널 근처요 할아버지 밭은 매양동 이었구요 . 그래서 매일 까지는 아니라 자주 할아버지 집에 갈려면 철길을 넘어가야 했어요 아마 중앙선은 이제 신녕역이 사라 질것이니 얼마 않있으면 신녕역은 유튜브에서나 볼수 있겠네요.
중앙선 타고 할머니댁(제천) 갈때 신녕역 많이 지났죠, 영천 좀 지나면 신녕일건데.. 화본 우보 뭐 그런역도 생각나네요 어릴 땐 누나랑 중앙선 역 이름 순서대로 외우고 놀았는데... 신녕은 산신령 나오는 역이냐며 웃었던 생각 납니다. 지금은 출장다닌다고 그 근처 고속도로 자주 다니는데 성덕대학이라는 대학이 딱 보이더군요.
엘레베이터걸은 인건비가 싼거라서 가능했던거고 ㅋㅋㅋㅋㅋ 사람들이 기억미화가 되서 그렇지 저당시 우리나라 경제력은 딱 태국 상위호환정도였는데 뭘 걍 저때는 후진국이였으니 나라가 빈부격차가 적고 자산가격이 싸니까 계층이동이 쉬웠던거 말고는 선진국인 지금이 훨씬 살기 좋지 그리고 공장 구인구직은 지금이 더 활발하지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어찌 보면 지금의 전자동 설비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네요...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쇠동전을 단선구간 입구에 두면 그 선로를 통과하는 열차가 가져가서는 그 구간 출구에 두고 다시 다음 구간 코인을 받는 방식.... 그 코인이 없으면 진입을 할 수 없게 된다는....결국 그 구간엔 그 코인을 가진 열차 한대만이 통행을 한다는.. 다소 위험해 보이긴 합니다만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장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