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 함락은 바로 지척에 있는 오스만투르크의 메흐메트2세가 엄청난 대군과 철저한 준비를 하고 당시 최첨단 무기를 들고 가서 겨우 함락시킬 수 있었는데, 그보다 200년전 유럽을 휩쓸던 몽골군은 소규모 유격대에 가깝고 무기기술도 200년이나 딸리고, 만반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기반도 없어서 함락은 불가능했을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당시 몽골군은 함락이 불가능해 보이면 그냥 포기하고 다른데 쳤습니다. 콘스탄티노플 앞까지 갔더라도 성벽 보고 그냥 다른데 치러 갔을겁니다.
저는 반대로 함락 당시의 철옹성이었던 콘스탄티노플이 200년 전이라면 조금 더 허점이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 자체가 잘못 되었음을 알고 가네요ㅋ 5중이든 3중이든 지금에 칭송받는 성벽이 200년 만큼은 덜 만들어졌으니 가능하지 않았나 싶었는데, 포위를 통한 보급의 차단이 안 되니 징기스칸의 전법으로는 이빨이 먹히지 않는 상대였겠다 싶습니다.
@@jaeminryou9831 칭기즈칸 때부터 몽골이 러시아를 침공할 당시에는 콘스탄티노플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도자 엔리코 단돌로가 베네치아의 강력한 해군을 앞세운 기습으로 동로마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을 빼앗고 건설한 라틴 제국의 소유였고 이슬람에게 빼앗기기 수백년도 전이었음.
징기스칸의 전술을 생각해보면 콘스탄티노플이 방어에 성공한다 해도 내부 충격은 장난이 아니겠지. 몽골군이 일부러 풀어준 자국민들이 도시 내에 혼란을 유발하고, 잡힌 자국민이 해자에 밀어넣어지거나 쏴죽여야 하고. 많은 피난민들이 콘스탄티노플에 몰리면 식량만으로는 부족하니 배를 통해서 피난민들을 탈출시킨다던가 하는 방법도 구상할테고.
그럴수밖에 없어요. 요새의 방점을 찍은 성형요새도 가보면 진짜 별거 없거든요. 별로 높지도 않은 둔덕을 고단차로 올라오는걸 막고 별로 길지도 않은 성문진입을 최대한 꼬아서 만들고. 근데 천천히 걸어도 시작점에서 성문까지 5분거리도 안 걸리거든요. 게다가 단차도 2미터도 채 안됩니다. 근데 이 요새가 성형요새의 제일 대표적인 요새라고 하더라구요.
제 생각에는 징기스칸이라면 콘스탇티노플에 아예 공격을 안하고 아나톨리아나 발칸반도를 그냥 쓸어버리는 방식을 택했겠죠..몽골이 우리나라를 공격할 때와 버마를 공격할 때 보면 삼면바다 이런 곳은 그 주변을 다 쓸어버려서 도시를 고립시켜서 항복을 받아내니까요..이렇게되면 보급로라는 개념도 타지에서 물류수송에 의미가 있는데 그럴 중간기점을 공략하면 되는지라 콘스탄티노플 자체는 공격 안 할 듯.. 직접 공격하는 거 자체가 몽골답지 않는 거 같습니다.
@@purealex100 그니까 아예 거길 치지도 않고 주변부 다 점령하고 항복할 때까지 몇년이고 기다릴 거라는 얘기입니다. 당시 금나라 연경도 수도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다 휩쓸면서 십여년 가까운 세월로 정복하거든요. 콘스탄티노플이 자급자족을 해도 나름 규모가 큰 대제국이니 가능했던 건데, 국가 규모 자체를 소규모로 만들면서 뭘 어떻게 하게하질 못했으니까 금나라도 서서히 말라죽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도 무리하게 공성을 거는 것이 아니라 도시국가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방식으로 했을 거라는 얘기이요.
허준형님 항상 질 좋은 컨테츠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토전사도 다봤는데 무득! 궁금한게 있습니다. 만약에 조선이 상인과 장인들에게도 관직도주고 무역사회였다면 군사적,일본의관계,영토는 어디까지 점령 했고, 조선인들이 한족화는 안됐을지 박사님과 이야기 해주시면 안될까요?
예전 80년대만 해도 자유여행이 허용되지 않던 시절이라 외국에 나갈수 있는건 상용여권으로 회사에서 해외출장을 가는 수밖에 없었고 나가기전에 경찰의 신원조회도 거쳐야하고 안기부의 교육도 받아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으니 그시절은 해외 한번 나가는게 가문의 영광 같은 정도 였으니 지금보면 웃기는 시절이었던것 같네요
공명은 군사가 아닌 내정 전문가였습니다. 삼국지이 기록된 제갈량은 단 한번의 전투도 이긴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즉, 제갈량이 형주에 갔다고 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형주는 북방공략을 하고 있던 촉나라의 전략상 텅텅 비어 있어서 제갈량이 아니라 초패왕 항우가 지킨다고 해도 지킬수가 없었죠.
몽골군은 공성전도 참 잘한 군대임. 그리스의 불은 물을 뿌려도 꺼지지 않고 더 불길이 강렬해지는 동로마제국의 비밀무기로 암. 당기 해전에서 이보다 더 좋은 무기가 없었음. 쇠에도 불이 붙는 엽기적 무기로 몸에 붙으면 바로 살까지 녹여 버림. 물이 아니라 식초로 꺼진다고 암.
음...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법이란 말이 진리인건가요? 중학생때 수원 화성을 가보고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당시 역사스페셜에서 수원화성의 방어력이 어떻고 여기 총구에서 어쩌고 하면서 엄청 대단하다고 말해서 가봤는데 막상 보니까 응? 왜? 뭐? 장난해? 딱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약 5년 전에 다시 가보니까 달라보이더라구요. 왜 중학생때 본 역사스페셜에서 수원 화성이 화약무기가 발명된 이후 지어진 성중에 최고라고 한 이유가 느껴지더라구요.
그 당시에 전투 방식과 또 성의 이용 방법을 알고 보는것과 그냥 보는건 정말 다르죠 ㅋㅋㅋ 보통 그냥 보면 대부분 이거 그냥 이러저러 하게 하면 금방 뚫리겠는데? 뭘 이걸 못 뚫었어서 그렇게 난리였던거야? 싶겠지만 막상 그 당시의 상황을 알고 또 성의 이용 방법과 기타등등 요소가 더 해질때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 할수 있게 되는거죠
그렇긴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은 사실상 당대 기술력으로는 함락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였어요 결국 전략적으로 공략해야 하는데 그 전략이란게 거의 회유의 형태로 해야 공략이 될수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 됩니다 그게 아니고서는 아무리 징기스칸의 몽골 군대라 해도 정면으로는 무리 였을거에요 다만 그 당시 몽골군의 악명을 이용하면 살기 위해 협력 하는 사람들이 나왔을지도 모르죠 근데 그러저러한 몽골군에게 유리한 수를 주면 객관적인 평가라 보기 어려우니까요
@@whrqh123 그냥 역사공부 하기쉽게 정리한 그런분류 일 뿐 이고! 지금도! 현지인 한테~ 물어보면 콘스탄티노플 이라고 부르기도하고 이웃끼리 도시이름 부르는거 가지고 싸우기도 한다고! 지인 이 그러더군요! 아예!~ 콘스탄티누스폴리스 라고 하는사람 도 목격한적 있다고 합니다!(그러니까 그 지인 이!)
허튜브, 토전사, 임용한 박사님 채널 항상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특히 IF 너무 좋아하는 컨텐츠인데 삼국지 컨텐츠 하시면서 IF 더 해주실 생각 없으신가요? 예를들면, 이릉대전 때 조비가 손권을 치자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더라면? 조조가 한중을 정벌한 후 사마의, 유엽의 말대로 촉으로 그대로 쳐들어갔더라면? 촉의 1차북벌 때 위연의 말대로 자오곡으로 기습해 들어갔거나 혹은 마속이 가정에서 위군을 막아냈었다면? 이런 흥미있는 IF를 더 만들어주시길 바라봅니다. 여러 컨텐츠 항상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칭기즈칸 이후의 몽골군은 공성전에서도 전세계 최강이였음. 중국과 아랍 기술자들이 참여해 배운 화약, 와일드 파이어(그리스의 불),트레뷰세등을 이용한 최신식 군대였음. 근데 칭기즈칸 시절은 아직 초원의 군대라 공성전이 좀 딸리지 않았을까? 아무리 칭기즈칸이라도 오버 테크놀러지 소리 듣는 콘스탄티노플 방벽은 좀 무리일듯. 대포가 없잖아?
메메드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건 기술의 진보 또한 받혀줬기 때문 같습니다 화포 없는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머릿속에 안그려지네요. 어 근데 몽골이면 기동함락으로 콘스탄티노플만 고립 시킬 수도 있었겠는데 그러고 보니 콘스탄티노플에 쌓아둔 식량도 어마어마했고 근데 또 콘스탄티노플이 예전같진 않아 비축량이 적었던 시대기도 하고 아 모르겠다... 토탈워하러 갑니다 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