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대 하면 많은 교육학교들이 모여서 장교와 병사들의 교육이 이뤄졌던 곳입니다 설렘반 기대반으로 군대에 필요한 실전 기술을 익혔던 호국 간성의 요람 상무대에 다녀왔습니다 광주에 있던 상무대가 장성으로 옮긴 지도 30년이 되어가는 지금 추억을 찾아 떠납니다 #상무대#상무지구#후반기교육#장성상무대#고성균
고교 까마득한 후배이자 상무대에서 군생활한 구독자 입니다. 저는 포병학교 조교러 군생활을 했습니다. 94-96년도 26개월 복무했는데. 제가 논산에서 후반기교욱을 광주 치평동에 있는 상무대로 가서 포병측지병 교육을 받는 도중 지금의 장성으로 이전했습니다. 95년도 초에 이사를 했는데 이런 대규모 이사 때문에 교육이 1주 늘어났습니다. 그 늘어난 1주일은 이삿짐 나르고 연병장에 잔디를 심고 등의 작업 때문에요. 그 이후 조교로 남게 되어 포병 실사격 포대인 298대대에서 복무했습니다. 강릉이 고향이라 휴가에도 집에 오기가 여간 어려웠던 게 기억납니다. 좋은 영상으로 추억이 새록새록 나서 감사드립니다.
육군 병들도 해공군 병들처럼 병과 불문 철저히 후반기 교육을 심도 있게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복무기간 짧아졌다고 교육기간 줄이거나 폐지하거나 하는데, 이들은 현역 18개월 하고 끝이 아니라, 전역 후 최대 8년까지 예비군으로 언제든 수백만이 동원될 수 있는 자원임을 간과한 조치라 봅니다. 실 복무기간이 짧다 해도 체계적인 교육훈련을 통해 2~3년 걸려 숙달할 거 1년이면 숙달할 수 있고, 이들이 전시에 숙련도 높은 예비군으로 소집되면 매우 든든한 전력이 됩니다.
몇년전 귀한 분께서 저를 보자고 연락해오셔서 송정리역까지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분은 28사단장과 포병학교장을 역임하신 김은상장군님이십니다. 촌구석에 박혀서 살고있는 저를 지금의 상무지구에 있는 어느 한정식 식당에서 대접해주셨지요. 637포병대대에서 5~6년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 인연으로... 지금은 변해있는 상무지구가 제가 현역으로 근무할 당시에는 얼마나 컸을까 추측만 해봤습니다. 장성군으로 옮겨간 상무대가... 과거의 모습을 헤아려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언제나 좋은 방송 응원도 열심히 영원하게 하겠습니다. 행 복/^^*
10:21 꼭 생긴 게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중동 유니시티하고 비슷해 보이네요! 지금은 옆 동네인 함안으로 옮겨진지 9년 됐습니다. 군 생활 당시에 현재 유니시티 자리에 제39보병사단이 존재했습니다. 광주 상무지구와는 분위기가 조금은 다르겠지만 창원과 비교했을 때 도시화가 많이 됐다는 느낌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장군님 덕에 군 생활을 잠시 추억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86년 1월군번입니다. 논산훈련소 수료후 광주 치평동 상무대 기갑학교 장갑병으로 역시 후반기 수료했지요. 자충이 되어 전투병과학교 기갑학교 광주 비아 11전차에서 조교를 했었습니다. 이년전쯤 광주에 들릴일이 있어 방문했는데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많이 놀랬었습니다. 세월에 두께보다 더 변해버린 느낌...^^ 얼마전 구글 항공사진으로도 근무했던 부대를 둘러 봤지만 흔적은 당연히 찿을수 없었습니다. 알수없는 알고리즘으로 장군님에 이영상이 그래서 더 반가웠던것 같습니다...^^ 거의 40년전에 추억을 또렸하게 돌아보게 해주신 장군님에 영상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길...^^
장군님 제 군생활중 초군반과 고군반 그리고 사격지휘심화과정이라는 3번의 발령을 받고 저의 청춘을 보낸 상무대를 보니 너무 가슴이 져머옵니다. 입구에있는 군장점은 아직도 변함이 없군요. 상무대는 저 뿐만아니라 수많은 장교들이 거처간 고향과도 같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지금의 상무지역에 31사단의 사령부등 호남에 있는 여러 군부대를 통합해 캠프화를 했으면 현대화나 관리등이 편해 간부들의 복무 여건이나 자녀들 교육에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캠프화가 되면 장교와 부사관 간부들의 계급에 의한 위계질서가 자유시간과 가족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있어 반드시 좋다고만 보기도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치평동 시절 남광병원이 정문앞에 있고 옆에는 호남대학교가 있었고 북쪽엔 영산강 지류인 극락강이 있고 상무대 안은 보병학교가 가장 넓었고 포병학교 그리고 기갑학교가 있었고 화학학교가 있었는데 화학학교가 규모가 가장 작았던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학부라고 불리다 89년 말 학교라는 이름을 바꾸었던 것 같습니다. 상무대 앞엔 군장점이 많아 전방부대가기전에 옷도 맞추고 두루말이 상황판도 만들어 갔었지요. 장성군으로 옮기고 신시가지가 생겼는데 치평동시절엔 상무대를 구보하는 것이 일상이었습이다. 여름엔 덥고 겨울되면 강바람이 불고 평동에 있은 제병협동훈련장에 교육을 가고 어등산엔 사격장이 있어 포탄사격을 하는데 밤에 들으면 소름이 돋았었지요. 호남지역에서 가장 병력밀도가 가장 높고 시설이 잘되어 있는 곳이 아닐까? 합니다. 예전에는 상무대 내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분이 계셔서 개인사진도 찍고 세탁소에 옷을 맡기면 줄도 잡아주었지요. 무각사는 일요일날 종교활동을 하러갔고 근처 유명한 장군 동상도 있었지요. 치평동 터는 원래 일본군이 주둔하던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투병과학교 시절 마지막 가사가 아아! 상무대 길이 빛나라! 자랑스런 우리 육군 전투병과학교로 끝나는 데 앞의 가사는 잃어버렸습니다. 자대 가면 아아! 상무대 출신 나와라! 하면서 선임들이 천국에서 왔다고 많이 혼냈습니다. 그리고 초급장교들은 당시 월급통장을 광주의 농협인가 우체국으로 개설을 해서 임지에 가서 현금인출에 문제가 생겨 공론화된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옛모습을 전혀 찾지 못하듯이 고 장군님이 소위계급장 달고 신고했으리라 생각되는 옛 50보병사단은 이제 아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요. 그 부근에는 군 부대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답니다. 사당사령부에서 조금 떨어진 공병대 자리는 학교가 들어 서 있답니다. 앞으로도 좋은 영상 부탁합니다.
99년 군번으로 상무대 후문에 위치한 1군수지원단(현 51군수지원단) 예비역 병장입니다. 살면서 처음 가본 광주와 장성, 사창리의 첫 기억이 생생하네요. 특히나 전방보다 더 많이 내리는 눈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본부소대에서 경리업무도 하며 상무회관 국민은행에 다녔던 추억과 제대날 장성역에서 삼겹살과 소주를 마시고 TMO를 타고 서울역으로 오던 기억까지... 그리운 추억을 다시 생각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군님.
요즘 장군님 채널보고 군대생각 많이 나서 쉬는날마다 예전 군생활 하던 곳, 훈련장 가던 길 한번씩 지나보곤 합니다.. 이번영상보니 현역때 상무대 혼자 가는 길, 부대복귀 하던 길이 생각나내요.. 이번 휴일은 상무대근처가서 밥이나 먹고 오려구요 ㅎㅎ 항상 좋은 영상 많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쪼록 편안한 주말 되십쇼!😀😀
나무판에 가족사진 붙어놓고 그 뒤에 세면대 장구류 등등 넣었던 기억이 나네요 신 막사 들어가기전 제가 제대하기 몇달전부터 컨테이너박스 들어오고 신 막사 준비할 무렴 후임들이 한숨쉬던데 여기서 어떻게 자고 생활 어떻게하지 했던 기억이 남고 전 다행이 컨테이너 박스 들어가기전 전역했던 기억이 남네요😅😅😅😅
쌍촌의 기갑학교, 미군식 막사와 대학교 같았던 교육. 참좋았던 기억의 장소인데 지금은 그 흔적들을 찾아볼 수 없게 바뀌어 도심이 되었네요. 언덕배기에 있던 유격장 위치도 가능하기 힘들고, 충혼탑 아래쪽의 격납고 자리엔 518 기념관이 들어서서 유일하게 그 위치를 가늠할 수 있네요.
여기 버스 운전병으로 복무했었죠 여러 훈련장을 간접적으로 다 볼수가 있어서 군생활 하는 내내 새로운게 계속 튀어나와서 신기했습니다. 생각보다 부지가 넓어서 신병때 지도 외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훈련 지원 나왔다고 친절하게 대해주셨던 교관, 장교님들이나 신임장교님들이 기억에 남네요 교육 지원이 몰릴때는 상당히 바쁘기도 했었지만요 ㅋㅋㅋ.. 상무대 참 좋은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뜀걸음 할때는 너무 넓어서 조금 힘들었습니다 ㅋㅋ...
상무대가 광주에서 장성으로 이전할 당시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병학교 교도대대장이셨어요...저는 당시 화정동 백일아파트에서 살다가 장성에 있는 아파트도 놀러가고 부대에도 가보고 그랬었지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저도 초군반과정을 장성에서 보냈었지요... 유뷰브 계정은 딸이 사용하느데 추억에 글 남겨 봅니다. 감사합니다.
상무대가 "무를 숭상하는 배움의 터전" 이라는 뜻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모셨던 대대장님께서도 상무대의 포병학교 교관으로 근무를 하셨는데, 그때 "1박 2일로 한번 놀러 와라!" 라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끝내 가지 못하고 어느덧 대대장님께서는 2년 전에 전역을 하셨습니다. 그때 가서 뵙지 못한 것이 아직도 후회가 됩니다..대대장님의 마지막 현역시절 모습이었을텐데, 대단히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속의 대대장님의 지휘봉을 들고 1호차를 타시고, 지휘를 하시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아무쪼록 그때 가보지 못하였던 상무대를 보여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덕분에 대대장님을 추억하게 되어 너무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장군님~~^^
15년 11월 상무대로 전입 온 기억이 납니다. 동문 위병소 쪽 통신대대에서 근무했었습니다. 정문 위병소에서 휴가증 보여주고 휴가 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정문 위병소 풍경 여전하군요 ㅎㅎ 상무대 무각사 저기도 기억납니다. 제 종교가 불교였기에 종교활동 자주 갔었습니다. 예전에 기계화학교장님인가 누가 소장으로 진급하셔서 법당에서 축사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연무대에서 기초군사훈련 수료하고 자운대에서 후반기교육 수료하고 상무대에서 남은 군생활 마무리하고 전역했습니다. 세 군데 다 교육부대가 모인 곳으로 가버렸었네요 지금보니깐요 ㅎㅎㅎ
사창리 아파트에 대해서 첨언드리면 예전에 광주에 있을때는 마륵리 아파트, 기갑아파트, 백일아파트로 나누어 져 있던걸 통합하면서 예전 부대옆에 군사보호구역에 있어야할 숙소를 도시계획상 보호구역이 아닌 지역을 택해서 개발을 하게 되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신도시 계획을 하였으나 여러 이해관계 충돌과 여려 문제로 인해서 그냥 사창리 아파트만 남은 상태로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파트를 관통하는 도로를 국도와 연계해서 만들었던 신도시 계획이 존재했습니다.
장군님 안녕하세요 ^^ 광주광역시 애청자입니다 1953년 상무대 입구에 이승만대통령이 쓰신 표석이 3년전 상무대 입구에서 바로 옆 5.18자유공원으로 이전 설치 되었습니다 상무대를 0:24 0:24 0:24 0:24 거쳐 가신분들은 추억이 새록새록 하실듯 합니다 0:24 0:24
아... 이등병의 파라다이스 ㅎㅎㅎ 기갑학교출신입니다 ㅎㅎㅎ 이번 12사단 사건 장군님의 말씀이 많은 사람들에게 언론을 통해 자세한걸 많이 알게됬습니다 역시 좋은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뉴스 영상에서 장군님 현역시절 국방부 브리핑실에 걸어오시는 자료화면 포스가 와우 너무 멋쪄서 몆번 봤습니다 양평20사단 창대리 군인아파트 살때 아파트네 할인점 생각나네요 공산품 식품은 거기서 사고 아버지가 퇴근하실때 야채사오시고 ㅋㅋ 저도 추억이 생각나네요 ㅎㅎ
제가 상무대 기계화학교(기갑학교) 토우병 07-2기 출신입니다. 육군훈련소 신병교육 5주 훈련을 수료하고 후반기 교육에서 기계화학교에 배치되고 기계화학교 C동 막사에 입소하였습니다. 신병교육 5주동안 TV시정도 금지당하고나서 후반기 교육에서 개인정비 시간에 TV시청을 하니까 너무 신기하고 반갑게 느껴졌었습니다. 참고로 훈련소 신병교육5주동안 흡연을 금지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조치라고 느낍니다. 다만 종교활동에 대해서는 종교를 믿지 않는 병사와 간부에게는 종교활동에 대한 의무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군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군생활할 당시에는 종교가 없어도 일요일에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중 하나를 선택해서 종교활동을 의무화했었습니다.
장교육성의 요람이었던 광주 상무대 보병학교를 기준으로 보면..주로 갑종장교후보생(1950~1969)의 양성학교였고, 이후 단기사관후보생(1966~1980), 육군제2사관학교(1968~1972), 학사장교1기(1981) 등 후보생과정과 준사관과정, 소위~대위 OBC, OAC 교육과정이 있었지요. 6.25전쟁초기에는 경기도 시흥에 있었는데 갑종장교양성을 잠시 중단하고 1년간 부산 동래로 후퇴, 육군보병학교와 육군사관학교가 통합되어 육군종합학교로 운영, 육종 1~32기 임관했었죠. 12.12때 진압군인 수경사령관 장태완 소장이 육종11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