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선생 김봉두 (Teacher Mr. Kim, 2003)' 입니다. 예전 추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정말 따뜻한 영화입니다. 요즘 일상이 힘겨우신 분들이 꼭 한 번 보시면 좋을 작품입니다. [미들뻔 인스타 팔로우하기] -> instagram.com/middlefun_/
제작비 수 백억 쏟아부은 할리우드물이어야만 열광하시는 분들은 욕하겠지만서도.. 차승원 씨가 김상진 감독의 페르소나로 함께 했던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귀신이 산다 그외 라이터를 켜라, 선생 김봉두, 이장과 군수... 개인적으로 제 2000년도 초~중반 시절은 어려운 형편에 희망도 없이 살았지만 차승원표 코믹영화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13년차 비보이, 댄스팀 단장인데 보면서 눈물 정말 많이 흘렸네요. 저도 근 몇년간 돈을 벌기 위해서 춤을 정말 많이 추다가 시골아이들을 만나고 난뒤 돈과 관계없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배움을 주는 진정한 의미로의 선생님이 되가는 영화속 주인공을 보면서 느끼는게 참많네요. 시골부모님들이 돈을줘야하나 고민하는 장면에서 자존심상하고, 어떻게보면 가슴아픈 장면인데 그렇게해서라도 자기아이들 아끼고, 생각하는 부모님 마음도 느껴지고.. 감사합니다
저도 초등학교 1학년때 아버지가 건축가라는 이유만으로 선생님이 이유없이 오후5시까지남기고, 종아리와 뺨을 때리셨죠 나중에 사태파악한 어머니가 직접 돈 봉투 쥐어주고 나서야 그 짓은 멈췄구요 이미경선생님 당신같은 선생은 다시는 없길바랍니다 한국의 새싹이될 아이들의 걸림돌이 될겁니다
나도 전교다 합쳐서 50명이 안되는 시골 초등학교 출신이에요ㅎㅎ 은사님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 분은 초등학교 2학때 강인한 선생님입니다. 늘 얼굴에 미소를 띠며 저에게 가르쳤던 가르침 잊지않고 있어요. 2교시 끝나고 우유시간이 되면 늘 건빵을 주셨던거 기억합니다. 아직도 건빵보면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이 리뷰를 보고, 넷플릭스에 검색해서 보았습니다. 눈물이 너무 많이 흐르네요. 시골에서 자란 제 어릴쩍 생각도 하면서, 이젠 제 인생이 너무 멀리 와버린 생각이 드네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지만, 왜 슬픈걸까요. 학교 운동장도 그립고,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도 그립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멀리 와버린걸까요. 돌아갈 수 없기에 너무 슬픕니다. 또 보면서 느낀점은 현재를 즐겁게 살고, 충실해야 제 어린시절이 즐거웠듯, 더 시간이 지났을때도 즐거울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이 영화 중학교때 본건데도 계속.. 종종 생각나서 다시 꺼내보곤 함. 조연들의 소소한 에피소드들까지 풀어내면서 내용도 알차고 그래서 마지막에 학교가 없어지지 않고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하는 전개없이 현실적으로 엔딩까지 가는 게 참 좋았음.. 억지로 끼워맞춘다는 느낌없이 물흐르듯 자연스러웠던 대사와 전개, 배우들의 연기. 완벽..ㅜㅜ
이 영화 예전에 넘나 재밌게 봤는데 이걸로 다시봤네요. 이거 보면서 느낀게 난 참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난거같아요.. 돌이켜보면 막 촌지요구 안하시고 차별 안하시고.. 학생 그 자체로 예뻐해준 쌤들이 많이 계셨어요. 대학가서도 한동안 찾아뵀었는데 지금은 소식이 다 끊겼지만 영화보니까 그 쌤들 몇분생각나네요.
부모님이 어릴때 이혼하셔서 할아버지랑 살아서 할줄아는게 없었고 친구도 없었는데 초딩3학년때인가 그때 담임선생님이 엄마마냥 챙겨줬던거 생각난다 옷도 사주고 미용실가서 머리도 잘라주고 그때 젊은 여선생이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아직까지 생각난다 아무도 나한테 관심없었는데 처음으로 관심가져준 선생님이셨음
내나이 29살 나 어린시절 초등학교 다닐때 정말 어렵게 자랐음 방과후 학원못다니는 애들 10명정도 모아서 공부시켜주셨음 문제지도 사비인지 몰라도 매달 주셨음 신x초등학교 박묘희, 조옥자, 진은영 선생님 절대 못잊는다 그리고 창x중학교에 제선옥 선생이라고 있었는데 내 사춘기시절 가장 크게 상처줬던 선생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찾아가서 왜그랬냐고 물어보고싶다 공부좀하게 생겼는데 왜 공부못하냐고 뺨을 시원하게 갈기던 선생 시발 내 담임도 아닌데 존나 상처받았다 그 아이는
청주 중학교2학년때 가정형편이 어려워 수학여행을 못가게됐는데 선생님이 반 아이들 몰래 수학여행비를 대신내주셨죠 근데 아버지는 끝까지 수학여행을 안보내시고 출발하는 그날까지 집으로 전화해서 오라했는데 저는 수학여행 가지못했습니다 그렇게 혼자 학교에 가서 자율학습을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그렇게 수학여해을 갔다오고 선생님이 조용히 부르시더니 기념품 이라며 볼폔세트와 손수건을 주시면서 창피해하지말라 괜찮다 하시는데 왜그렇게 서럽고 가슴이 아프던지 어느덧28년이 지낫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나네요
어린시절 보았을 땐 단순 감동있는 영화였는데.. 머리가 조금 크고 보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네요.ㅜㅜ 순수함 옆에 있으면 불편한 나이가 되지 않았나 싶은 마음에 서글프기도 하고, 반대로 저 또한 순수했던 시절이 있기에 지금 이 모습이 될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조만간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 다시 함 봐야겠어요ㅜㅜ..
초등학교 5학년 스승의날때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바쁘시니깐 매리야스집에 가서 스타킹사서 포장해서 선물로 드리라고 주셨다 선생님께 드렸는데 그다음날 선생님은 조회시간에 누구누구야 어제 준 찻잔세트 정말 예쁘더라 누구누구야 향수냄새좋더라 이런식으로 좋고 값비싼 선물을 한 친구들 이름을 호명하며 선물 품평회를 하였고 나처럼 스타킹이나 별 값어치없는 선물은 언급조차 안하셨지 2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기억이다
@@박영규-w2o 차승원 데뷔작부터 2002년도까지 작품들 보세요 연기가 나쁜편이 아니었다니요 연기자가 아니었기에 당연히 좋을순 없었지만 연기자 데뷔후 2,3년간의 연기는 보기 괴로울 정도였습니다. 천사의 키스라는 작품에서 보고 정말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신라의달밤 이후로 연기력이 나아지기 시작했으며 선생 김봉두 이후로 실력이 부쩍 늘어난게 보여서 호감이 간 배우입니다
그런게 잘못된 체벌이라니까요. 애들이 잘못해서 때린거하고 자기 기분대로 감동대로 때리면 되느냐 이겁니다. 옛날에 고2때 영어샘은 수업전부터 어학실의 유리를 도둑맞은 일로 아침부터 교장샘한테 꾸지람을 듣고 오셨다면서 "지금 그래서 노래 부를 기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업은 해야하니까." 하시면서 최대한 인내하시면서 카셋트로 팝송을 틀어주시면서 그날 수업했어요.
제 초등학교때가 썡각 나는 영화죠... 정확히는 역으로 가야한다나... 4학년때는 초반처럼 뭘 안주거나 지 맘에안들면 반에서 따돌림 시키고 그런 선생을 만났는데 2학년때는 진짜 천사같은 선생님을 만났죠...후반처럼 잘못된것이 있으면 엄하게 다스리고 집안사정(그때 저의 집안이 좀 않좋았습니다.) 을 아셔서 일기장을 직접 사다주시기도 했고 필요한 물건도 어느정도 보탬을 해주시기도했고 추운날에는 목도리도 직접 짜주신 고마운 분이셨죠 만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목도리 아직도 보관한다고 전해드리고 싶군요... 4학년 담임년은 ... 한마디하죠. 저는 당신이 교직에서 물러났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아니면 제발 그때랑 똑같은 짓거리 하지마싶시요.
이거 개봉한지 얼마 안됐을때 봤었는데 오랜만이네요. 90년대에 초등학생이었습니다만.. 이때도 촌지 주는거 엄청 많았다함. 어릴때라 잘 몰랐는데 부모님이 나중에 얘기해주시더라구요. 부끄럽지만 우리 부모님도 내셨었구요ㅜ.. 근데 웃긴건 담임이 저한테 잘해주거나 특별히 신경쓴거 없었음. 기억 못하는게 아니고 정말로. 반에 왕따가 있는걸 알고있으면서 (심지어 괴롭히는걸 보고도) 모른채하던 교사, 같은 반 아이들인데도 차별하는 교사 등등.. 아이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교사들도 몇 봤지만 그렇지 않은 교사들을 많이 봤어서 그런지 선생님에 대한 즐거운 추억이 별로 없음. 덧글들을 보니 촌지는 사라졌어도 무개념 교사들은 현재진행중인거 같아 씁쓸하네요.
어릴적 부모님이랑 떨어져서 할아버지 집에서 지낼 당시 초등학교 2학년때 담임이 무슨 쪽지를 주면서 부모님한테 뭘 받아오라는걸 반 애들한테 줬었음. 지금에서야 그게 촌지를 받기 위한건줄 어렴풋이 짐작함... 아무튼 당시에 부모님과 떨어져 지낼때라 반 애들중에 나만 못주고 미루고 미루다 결국엔 종례시간에 혼자 앞으로 불려가서 귀싸대기를 맞기 시작함 어린 나이에 몸무게도 얼마 안나갈때라 맞으면 뒤로 날아가듯 넘어지고 일어나 다시 맞고 넘어지고 넘어지고 넘어지면서 칠판앞에서 부터 사물함이 있는 끝까지 밀려날때까지 맞았음.. 꼴에 남자아이라고 자존심은 있어서 반애들앞에선 절대 안울었지만 집에 가면서 정말 서럽게 울었음... 그일 직후에 너무 서럽고 두려운 마음에 다음날 학교를 너무 가기 싫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나이에 부모님 찾아갈려고 혼자 버스타고 기억을 더듬으면서 부모님한테 찾아감... 선생님한테 맞았다는 말은 하지 못했고 그냥 엄마아빠랑 같이 살고싶다고 때만 써서 바로 전학을 감... 그래서 선생 이름이 기억이 안남... 선생 이름만 기억 났어도 지금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그때 그 아무것도 모를 어린아이를 왜 그렇게까지 때렸는지 묻고싶음....내 나이가 이제 서른셋인데... 아직까지 그때 일이 잊혀지지가 않음... 암튼 영주국민학교 1995년 여자 담임 선생이란것만 기억함... 내 짝꿍 이름은 우장미였고
어릴 적 정말 가난하게 살았어요. 6살떄 부모님과 헤어져서 시골 초등학교에 입학했죠.할머니와 같이 살았어요. 할머니는 술을 참 좋아하셨죠.어느 날 선생님이 가정방문이 있다고 하셨고 저는 그게 정말 싫었죠.집에 오면 할머니가 항상 술에 취해 계셨으니까요.결국 그 날 선생님이 집에 오셨고 저는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데...술 취하신 할머니도 당황하셨는지, 아이스 박스에 있는 막걸리와 김치를 꺼내셔서 선생님에게 권해주셨고,선생님은 아무일도 없다는 듯, 맛있게 할머니와 막걸리를 드시고 자전거 타시고 가셨던 뒷 모습이 생각이 나네요.조영환 선생님 감사합니다.86년 황?초등학교 졸업생 제자 올림_
나도 영화처럼 5명 졸업한 시골 초등학교다녔다. 그시골에도 촌지가 심해서 1~2학녁때 엄청 차별 당했다. 거기다 어린 아이들 추행하는 소사아저씨가 미웠다. 3학년때 새로 오신 우리 담임선생님이 졸업할때 까지 가르쳐주셨는데 얼마나 좋은 분이셨는지 자랑하고 싶다. 학생수 없는 학교에 난방지원이 잘않되니 선생님이 손수 따뜻하게 해주시고 3년 내내 아침에 1시간씩 탁구를 가르켜 주셨다. 쉬는날 자가용에 우리 모두 태우고 바다도 보여주셨다. 이때 난 바다 처음보고 여행도 처음가봤다. 그선생님 덕분에 나는 따뜻한 마음을가진 어른이 되었다. 뵙고 싶다.진짜 참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