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군다나 월드컵최종예선.요즘 아시아지역 티켓이4.5장되고 일본과 한국이 같은 탑시드라 같은조가 안되서 그렇지 만약최종예선에서 만난다면 피튀길듯.98년 본선참가국32개국되고 아시아출전티켓이 늘기전까지 일본은 번번히 최종예선에서 우리에게 밟히고 월드컵 단한번도 출전못함. 94년예선은 우리를 1대0으로 이겼지만 도하의기적으로 좌절되고 일본이 괜히 한국축구를 싫어하는게 아님.이해해줘야함
97년 9월의 도쿄대첩은 역대 한일전 가운데 가장 양국 국민들의 관심과 열기가 집중되었던 최고의 한일전이 아니었나 싶음. 이 경기 이전의 한일전은 사실 한국이 어느정도 우위에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붙었던 경기였고 일본도 한수 위의 한국에게 도전하는 면이 강했음.. 하지만 90년대 이후 일본축구가 급속히 발전하고 월드컵 유치 등으로 라이벌 의식이 불붙으며 97년의 최종예선전은 양국간의 어마어마한 긴장감과 관심 속에서 진행되었고 진짜 이 경기는 양팀의 진정한 단두대 매치였음 영상에서도 느껴지지만 일단 경기장 분위기부터가 장난아니었음. 이경기에서 패한 후유증으로 일본은 탈락위기까지 몰리면서 감독이 경질되는 등 홍역을 치뤘고 한국은 이후 승승장구하며 월드컵본선을 조기 확정짓고 차범근 사단은 영웅이 되었음 이후에도 수많은 한일전을 치렀지만 이날의 한일전 처럼 양팀이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다 싶었던 열기는 없었음
이 경기 생생히 기억한다 아마 죽을때까지 잊지 않을듯...군대 상병 이었는데...후반전 30분까지 지고 있는 상화에서 갑자기 병장놈들이 소각장으로 작업을 시켰다 지들 축구보려고...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기억인데...도저히 나머지 경기를 포기하고 작업할수는 없었다 이게 어떤 경기인데...더더군다나 한일전인데...소대에서 나와서 다른 소대로 갔다 나는 3소대였는데 화기소대로 갔다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는 모른다 소각장 간다고 하고는 화기소대 tv로 어깨너머 경기를 봤다 서정원의 동점골 넣었을땐 얼싸안고 환호를 했다 그 이후 그 유명한 이~민성 그 골...진짜 목이 터져라 소리질렀다 화기소대 사람들은 내가 그 시간 소각장에 있어야함을 모르기에 맘껏 소리지르며 그 짜릿한 역전승을 즐겼다 그리고는 소각장으로 가서도 나 혼자 산에 대고 만세를 몇번이나 외쳤는지...ㅋㅋ 소각장에서 캔 짓누르고 쓰레기 태우면서 정말 군생활중 가장 기분좋게 작업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92년 다이너스티컵 승부차기 패배(A매치) 93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 0대1패(A매치)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8강 3대2승(A매치)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아시아예선 결승 2대1 승(올대) 대충 이런 스토리에서 98년 월드컵 예선에서 같은 조에서 붙은거임. 일본은 94년 월드컵에서 도하의 비극으로 한국한테 밀려서 본선에 못나간 상태였고. 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진출을 위해서 한국 타도를 외치던 상황. 그 상황에서 벌어진게 도쿄대첩이었고 결과는 보시다시피. 최근 30년 내 최고의 한일전 TOP1경기.
그당시 감독의선택이 나빴다고 생각치는 않는데 결과가 안좋으니 언론의 뭇매를 맞았죠.우리에게 홈에서패하고 멘탈이 무너져 이후 카자흐,우주백전도 안좋은 경기결과가 나왔고 결국은 경질.우리가 그때 홈경기 비기거나 이겼으면 아랍에메이트가 조2위하는거였는데 그냥 죽기살기로 이겨버렸어야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쉬워요
아직도 기억난다. 차붐이 선수로는 최고였으나 감독으로써는 별로였음. 저 때 멤버가 윙에 서정원 고정운이라는 역대급 야생마 두명에 원톱에는 아시아 한정 공중볼 다 따내는 독수리 최용수가 있었고 무려 홍명보 유상철이 전성기 시절이라 선수빨로 버틴거지, 전술 진짜 이상했음. 3-6-1이 뭐냐. 거기다 하석주 윙백은 공격에 미쳐가지고 수비보다 공격가담을 더하려고 함. 그래서 그 뒷공간 계속 뚫리고
tim jane 그건아니고 90년대축구 잘 아는데 당시 중국은 그냥 쩌리였고 한국,사우디,이란, 일본 걍 4강체재였고 가끔 이라크, 쿠웨이트가 복병이었고 특히 한국이 쿠웨이트한테 약했음. 승보다 패배가 많았던 국가가 쿠웨이트. 일본은 80년대까지는 축구지원 없어서 쩌리였는데 90년대와서 j리그창설되고 졸라 발전했지, 그리고 무슨 그때 한국축구지원이없음? 오히려 일본이 축구지원이 더 없었음. 90년대와서나 지원한거지. 90년대 이후부턴 그 누구도 승리를 장담못함. 이겨도 한골차 승부였고 져도 한골차 승부, 그에비해 중국은.. 말안해도 알거임.
이경기전까지 90년대이후 전적은 정확히 호각이었음.90년대들어 일본은 아시안컵우승으로 자신감이 절정이었고 심지어 이전 94최종예선에서 우리가0대1로 패배했음.지금은 2002~2010이 우리축구 최고전성기라 90년대이후 전적도 근소하지만 앞서고있죠.그리고 우리는 압박형 선굵은축구고 일본은 패스축구인데 몸싸움을 아주싫어해서 상성상 우리에게 약합니다.스타로치면 테란대저그라고 생각하면됩니다
Japan has come a long way - '98 World Cup was the first one they ever qualified for. Of course, it was already the 5th one for Korea and thanks to Korean football sharing its international experience to its Asian neighbours that football in up-and-coming countries like Japan could develop to a decent level of today.
화질이 제일 좋은 영상이네요. 일본 소마 나나미의 지독한 좌우돌파로 많이 흔들리기도 했지요. 적토마 고정운 볼 트래핑 하나로 역적이 된 상황에서 서정원 이민성이 고정운을 살렸습니다. 두고두고 고맙다 해야할듯 ㅋㅋ 이후에 잠실에서 2대0으로 패한건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되는 경기.
dontshotforinside 서정원 프랑스에서 활약했던시기아닌가요? 그건 프랑스월드컵이후였나?? 검색해보니까 맞네요. 92년에 바르셀로나, 레버쿠젠으로부터 영입제의 있었는데 군대문제하고 당시 소속구단 LG가 거절해서 무산, 그리고 이경기 당시 97년 벤피카에서 영입제의 있었으나 대한축구협회에서 미움받아서 못갔다고하는데 자세한 서막은 모르겠네요.
아... 정말 감동이었어요 이날 ㅠㅠ 아마 일요일이었던걸로 기억해요. 하필 시험기간이라 일요일에도 학원에 있었는데 학생중 한명이 워크맨/라디오 들고와서 걔가 점수 스코어 이야기 해주고 그랬었는데 첨에는 지고 있어서 다들 침울해서 공부 못하다가 마지막에 폭풍 역전에 흥분되서 공부 안됐었음 ㅋㅋ 그날 시험 공부 하는둥마는둥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정말 뉴스마다 난리었었지. 계속 게임 하이라아트 보여주고 티비 앞에 앉아서 본거 또 보고 본거 또 보고 본거 또 보고 또또또또 봐도 계속 감동의 연속이었었음 ㅠㅠ 그게 10년도 더된 일이라니 ㅠㅠ 아련하다.....다시 이 장면 볼수 있어서 좋아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