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공격수 계보의 꼭짓점에 있는 한 선수 이회택을 추적해보겠습니다. "모든 선수는 땀 흘린만큼 성장한다. 그렇지만 스트라이커는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스트라이커는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 이회택 - '좋아요' 와 '구독' ! :) 이메일 : ck.room000@gmail.com 이회택 스토리, 이회택 이야기 #한국축구 #K리그 #포항스틸러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인가요?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0-2로 지고난 다음에, "압박 축구 처음 봤다"는 말로 유명하신 분이죠.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이라면서 , 세계축구의 대세였던 압박축구를 모르고 있었다니... 세계 축구의 흐름도 모르고.....그때 완전히 사라졌어야 했는데, 축구협 부회장까지 하면서 종전의 커리어 다 까먹었다는...
이회택,박이천,박수덕,정강지,정기풍,김호,김정남,이세연. 큰 문화꺼리가 없던 시절 축구중계는 진짜 못 참던 시절! 벤피카 유세비오, 산토스 펠레 경기 관람이 어렵풋이 기억납니다. 젤 안타까왓던 기억은 월드컵 최종전에서 이스라엘을 이기고 호주와 0-0, 2-2. 비기고 홍콩에서 재경기 0-1로 석패 햇을때가 ㅜㅜ
아니 운동선수가 술 .담배에 사고치고 다니는게 웬말이냐 ? 운동만 신경써도 될까 말까 하는판에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훅 가는건 금방이다 대표적으로 호나우지뉴 봐라 괴물적인 재능을 가지고도 기깟 2~3년 최정상급에 있다가 노력 안하는까 나락으로 떨어지는거봐라 하물며 이희택 정도라면 말 할 필요도 없지
50년 전을 돌아보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내용인데 옥의 티 하나가 있네요. 5분 50초에 나오는 자막과 영상에 '역대급'이라는 잘못된 말 입니다. '역대 최고, 최강, 최저, 최악 ...' 그 정도를 나타내는 글자는 빠져버리고 언재부터인가 '역대급'이란 괴상(?)한 걸 듣고 보고 있습니다. '역대급'이라는 걸 억지로라도 한 번 해석(?)해 볼까요? '역대(歷代)'는 '예전 부터 지금까지 이어내려오는'이라는 뜻이고, '급(級, 차례 급)으로 '등급이나 높낮이 수준'을 뜻하는 글자 입니다. 둘(역대+급)을 합쳐보면 '옛날부터 지금까지 늘상 있어오는 그 정도'라는, 다시 말하면 '평범한 수준'이라는 말. 그러면 표현하고자 했던 [지금까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가 태어났다]는 뜻과는 정반대의 말이 되어버렸지요? '역대급'이라는 엉터리 표현을 남이 쓴다고 무조건 따라쓰는 일은 앞으로 하지 말아야겠지요?
우리나라에 천재가 너무많다 줄이자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안정환을 제외한.. 진짜 천재들은 개인적으로 최순호 랑 고종수 생각함.. 최순호 세대가 아니여서 차는거 한 번도 못봤지만.. 과거영상 보고 깜짝 놀랬음.. 저 당시에 어떻게 공을 저렇게 찼지 스피드. 드리블.. 슛.패스 센스가 대단했다는거에 깜짝.. 6년동안 유벤투스가 스카웃 할려고 했다는게 이해가감
이회택! 우리 시대의 영웅이 맞습니다. 첨언하자면, 이 시절에는 여기 실린 사실처럼 선수 관리가 엉망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선수들이 20세가 넘은 선수들도 있었고, 전 해에 2학년이 다음 해에도 2학년, 또 다음 해도 2학년이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동북고등학교 선수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냐하면 제 친구가 같은 학교 친구라며 자랑을 많이 해서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1969년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월드컵 예선전은 호주와의 경기였는데, 승리하면 다시 한번 더 맞붙어서 싸우는 그런 경기였습니다. 그 시절 신문을 보시게 되면 연승에 희망 걸고! 라는 제목의 기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1970년도에 포르트갈에 벤피카(에우세비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유세비오라는 선수로 1966년 월드컵에서 득점왕)가 내한해서 2군이었던 충무팀과 먼저 시합을 했는데 전반전 25분만에 5골을 실점하는 수모를 겪고 5대 0으로 패했습니다. 그 후에 이회택이 속한 양지탐과 시합이 있었는데, 이회택의 골로 1대 1의 스코어로 비겼습니다. 그 후에 펠레가 속한 프로팀이 와서 우리 양지팀과 경기를 했는데 이회택의 골과 다른 선수의 1골로 2대 3으로 패했습니다. 펠레는 심판에게 공정한 심판을 보라고 수차레 항의도 했습니다. 그 당시 심판은 모두 우리나라 심판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펠레가 우리나라 팀과 시합을 하기 전에 1203골이었었는데 구두쇠 골키퍼로 유명한 이세연선수에게서 한 골을 뽑아 내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는 멘트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제 기억과 다른 점이 여럿 있지만 너무 장황한 글이 될 것 같아 적지 않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서울운동장 한 곳만 잔디구장이었다는 사실만 기억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린시절 영웅들을 보는 감회가 새롭습니다. 혹시 현풍고를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던 등번호 10번 발군의 스트라이커 박영조를 기억하시는지요? 고교 3년동안의 짧은 기간에 불과했지만 초등학교 시절 직접 경기를 보기도 했었는데 너무나 기억에 남습니다. 당연히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이회택, 차범근과 같은 선수가되리라 기대했었는데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박용주였습니다. 작은키에도 불구하고 화랑 대표팀에 뽑혔죠 제 기억으로는 자주 기용되지는 못했지만 실력은 인정 등번호도 13번어었을겁니다 1번 김황호ㆍ2번 홍성호 3번 김호곤ㆍ4번 조광래 5번황재만 6번 박성화ㆍ7번신현호 8번조영증 9번 이영무10번박병철 11번 차범근 12번 최종덕13번박용주 ㆍ14번김진국 15번허정무 17번박상인 18번 김성남ㆍ19번김강남 22번 김희천 거의 고정 단골멤버이자 등번호입니다 현풍고ㆍ현풍곽씨 유명했었죠
@@user-vx6he1rc2i :예 스트라이크 아니었죠 그리고 개성이 강했지요 흔히 천재라는 단어를 붙인 축구선수중에는 마산 창신공고 박양하 한일전 결승골 주역 김병수도 있었죠 박양하는 보헤미안기질이 발목을 잡았고 독일 크라머감독이 탐냈던 김병수는 부상이 발목을 잡았죠 멕시코 4강주역 신연호ㆍ김종부도 기대만큼 성장 못한게 아쉽죠 유럽5대리그에 아시아권 선수 모두 합쳐 50여명 비율로는 1% 프리미어 손흥민 득점왕 이건 기적이죠 그이전에 다룸슈타트ㆍ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에서 뛴 당시 세계최고 리그 분데스리가 차범근 98골도 외국인선수 최다골 그 기록이 몇해전에 깨진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히딩크가 아직도 한국 최고는 차범근이라 그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강인도 좋은 재목 꾸준히 기용돼야하는데 텃새로 인한 불규칙한 기용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역대 한국 최고(물론 차붐도 포함 )의 기술축구는 이태호 ,축구를 가장 잘 했던 선수는 이회택 , 하지만 한명은 한쪽눈이 안 보이고 또 한명은 성격이 대쪽같아 맞다고 여기는 일은 협의가 없음 최고의 개인전술을 보유 했음에도 도태 , 차붐 이전에 유럽오더 왔었는데 ,대신 일본의 오쿠테라 영입 ,이회택 ,이태호 진짜 축구 하나는 동양인 같지 않았음 ,차범근이 축구 잘 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위의 두 선수는 아시아 축구경기 1호대상였고 나같이 흑백브라운관으로 한국축구를 봤던 팬들은 앎 진짜 지나치게 잘했음 차붐과 비교하는 것은 호나우드(브라질)와 마라도나를 경쟁시키는 것이다 펠레가 최고라하지만 진짜 축구를 잘하는 자일징요도 잊지말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