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기는 전후반 4대1로 이겼지만 루마니아 브라질에 연패 조별리그 탈락,, 아시아 예선겸 아시아 대회 예선과 결승에서 우리한테 1대 4 ,, 0대3으로 두번 다 패하고 아시아 대표로 같이 나간 카타르가 준결에서 브라질을 3대2로 꺽고 결승 진출 후 서독에게 0대4 패하고 준우승 함 그리고 다음 대회 예선 겸 82 아시아 청소년 대회에서 한국은 북한한테 3대5로 진뒤 탈락했는데,, 같은 해 11월 뉴델리 아시안 게임 축구 쿠웨이트전 1대2로 지던 북한 성인팀이 폭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청소년팀까지 2년간 각종 국제대회 출전 정지,, 대타로 83 멕시코 세계 대회에 나선 한국이 멕시코 호주 우루과이를 제치고 4강 진출함,,, 월드컵 4강에 들었던 2002년 언저리까지 신화라 불렀던 세계 청소년 4강 이전 같은 아시아 카타르는 결승 진출 했었는데 다 쓰고보니 나 할아재 같음,,
이 경기... 최순호 2골 2도움... ㄷㄷㄷㄷ.... 역대 대한민국 축구사에 최고의 테크니션... 참고로 박창선의 월드컵 1호골의 도움이 최순호였음... 마지막 이탈리아전에서는 1골 1도움.. 94 미국 월드컵까지(당시 32세 ) 국대했으면 대한민국이.. 그때 이미.. 진짜... 16강 갔을 지도...
이 경기에 나온 선수중 유일하게 최순호만이 훗날 우리나라 대스타가 됨. 골키퍼 최인영은 90, 94 월드컵에 나오지만 기량 저하로 비판을 많이 받았고 김석원, 김삼수, 곽성호, 전종선 정도가 훗날 약간씩 이름을 드러냈음. 김삼수는 83 청소년 대회에도 좋은 활약을 펼쳐 86월드컵 대표로도 뽑혔으나 허정무 박창선 조광래 등에 밀려 월드컵 본선에 출전은 못했고 개인기로 유명한 김석원은 성인 국대에서 별 활약없이 프로생활만 이어감. 전종선은 84 올림픽 예선에서는 좋은 활약을 했으나 본선 진출 실패로 그후 월드컵 대표에는 뽑히지 못했고 곽성호도 잠시 조금 활약하는 정도였음. 그밖의 다른 선수는 이 경기에서만 이름을 들어본 선수들임. 그러니 청소년 대표 선수가 훗날 성인 무대에서도 대스타가 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수 있다.
이경기에서 4대1로 이기고도 예선탈락..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때 카타르가 준우승 했는데 아시아 예선에서 한국에게 7대1로 대패한 수준의 팀이었고 이당시에는 중동축구가 그리 강하지 않은 시기였음 즉. 2000년 전까지의 세계청소년 축구대회는 축구 선진국에서는 크게 관심도 없었고 체면상(?) 출전해주는 그런 분위기였음 물론 마라도나 같은 훌륭한 선수가 출전하기도 했지만.. 83년도 한국의 4강신화(?)도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때 신화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이대회에서도 증명이 되었지만 최순호의 기술축구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후에 박종환 밑에서는 박의 무대포적인 체력훈련 혹은 로보트축구 스타일에 반기를 들고 기술축구를 주장하다가 박으로부터 짤리기도 했던 한국축구의 선각자 이기도 했다.최순호가
저때의 중동 축구가 오히려 더 강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이라크 카타르는 요즘의 전력에 비해 비교적 약했지만 사우디와 쿠웨이트는 오일 머니를 통한 전력 강화에 올인했던 시절 우리나라가 쿠웨이트에게는 0대4 0대3 사우디에게는 4대5로 지면서 월드컵이나 올림픽길이 막히던 시절였죠 우리가 60년 넘게 우승 못하고 있는 아시안컵을 64년 이스라엘 우승후 68년부터 88년까지 20년간 휩쓸던 팀들이 이란 사우디 쿠웨이트등 중동팀들이었어요, 79년 80년 언저리쯤 중동 축구에 자신감을 잃은 한국팀은 A대표팀 화랑은 메르데카나 태국 킹스컵 출전하고 비슷한 기간 치러진 아시안컵에 국가대표지만 2진급인 충무나 군인 대표인 충의팀을 보낸적도 있어요 그리고 서유럽은 청소년 대회에 그때나 지금이나 풀전력을 짜서 보내지 않지만 남미나 동유럽 팀들은 선수 구성에 신경 꽤나 씁니다 서유럽이 신경을 덜 쓰는 청소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5번 아르헨티나는 6번이나 우승합니다
골 안나오는 축구 때문에 재미가 너무 없어서 세계 축구계 위기. 그 절정기가 90년 이태리 월드컵. 그래서 룰을 대폭 개정했는데 골키퍼 백패스 금지, 동일선상 오프사이드 폐지, 백태클 금지, 이기면 승점 2점에서 3점으로 변경, 퇴장 당하면 2게임 출장정지 등등. 드로우인도 킥인으로 바꾸려고 했는데 그건 바뀌지 않고 현상유지.
저당시 군면제 혜택 선수는 5년 해외진출규정이 있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년인가? 차범근선수도 27세에 겨우 분데스리가에 갈수 있었습니다. 유벤투스의 최순호 상상만해도 멋진데...권위주의 정부시절 우물안 개구리. 된장 마이 묵고 투지 살리면 된다고 하던 시절 이었습니다.
많은 축구인들이 이 당시 감독이 박종환이란 것을 숨기고 있다. 자료화면을 보면 이태리 감독은 두번이나 나오지만 한국감독은 보이지도 않고 자막에도 틀린 자막을 일부러 내보네고 있다. 이런 미스터리는 차범근신봉자들이 멕시코월드컵에 차범근이 출전한 것을 숨기는 이유와 같다. 축구계는 엘리트외에는 모조리 지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