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교회의 실권을 틀어쥐고 교황청의 이권을 가로채면서 교황청의 부패에 크게 기여하긴 했고, 결국 이게 이탈리아반도의 몰락에 어느정도 일조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이후 이탈리아반도가 어떤 꼴이 났는지를 생각하면 이탈리아에서 여전히 메디치 가문을 좋아하는것도 이해가 가죠. 다른 가문들하곤 다르게 그래도 사회 환원을 하긴 했으니 ...
이태리의 메디치 가문의 내력을 보니 문득 간송 전형필 선생이 생각납니다. 그분도 재력이 꽤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재 보존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은 점에서 비슷하죠. 그러기에 메디치 가문은 인재 발굴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 사라져가는 명작들을 지켜냈다는 사실을 이번 영상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영상 즐기고 갑니다~^^
메디치가문이 제일 큰 선물 받았던건 갈릴레오 갈릴레이한테 받은거였죠. 당시 메디치가문은 천문학에도 투자를 했는데 그때 갈릴레오가 목성의 4위성을 이름을 메디치 가문 4아들이름으로 따서 선물함.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 이걸 삼성가에 빗대어 보자면 별이름에 이병철별 이건희별 이재용별 이부진별 붙인거임
근데 당시 귀족 사교계 전체가 저런 분위기가 만연했죠 왕족 혹은 귀족으로서 그에 걸맞는 사치를 부리는 것은 의무에 가까웠기 오히려 이러한 파티나 공연을 즐기지 않으면 교양이 없는 무식한 인간이거나, 파티에 참석조차 못 할 정도로 가난한 몰락귀족으로 취급되어 무시당하는 경향도 있기 때문이죠 즉 본인이 검소하게 살고 싶어도 못한 케이스
메디치 가 얘기를 듣고 있으면 '예술은 가난하다'라는 말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걸 알아야합니다 가난 속에서 예술이 피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전폭적인 지지와 물적자원, 심리적 안정감 이 셋 중 두 개정도는 충분히 충족되어야 예술이 탄생합니다 하물며 평생 그림 한 장 팔아먹은 고흐조차 동생 테오에게서 매달 당시 4인 가족 생활비정도를 지원받고 살고 있었으니 그런 그림들이 나온 것..... 가난한 예술이란 말은 없어져야 해요...!
2015년에 피렌체(플로렌스) 혼자 여행갔었을때 정말 신기했던게 도시크기자체는 굉장히 작아서 걷기만 하면 반나절만에 다 돌아다닐수있었는데 역사적 관광지가 워낙에 많은 데다가 관광객이 거주민보다 훨씬많다고 느껴질정도로 바글바글대서 줄대기하는 시간이 여행 대부분을 차지했음...
스펙트럼 넓은 내용+상황에 맞는 일러스트+귀에 쏙쏙 박히는 딕션 짱인 네레이션+물 흐르는 듯한 개그코드 = 갓벽한 교양채널❤️항상 다양한 내용들을 쉽고 재밌게 설명해주셔서 즐겁게 잘 보고 있어요😊교양만두 덕분에 관심분야도 더 넓어지고,추천해주신 책들도 읽으면서 지식도 많이 쌓인거 같아요^^항상 좋은 컨텐츠 감사합니다👍🏻언제나 응원합니다 교양만두팀원분들!!!🥟💛
메디치 가문은 일개 금융집안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초기엔 금융업으로 성장한 건 맞는데 금융업으로 성장하고 얼마 안 지나서 피렌체 공화국의 세습 국가지도자를 역임했고, 16세기부터는 토스카나 대공국의 대공이 됩니다. 그러니까 메디치 가문은 마지막은 대공가였죠. 근데 마지막 토스카나 대공 세대가 무려 첫째 아들은 양성애자, 둘째는 한 술 더 떠서 동성애자였음. 첫째랑 둘째는 신나게 남자들이랑 하다가 성병걸려서 후손도 못보고 뒤지고.... 마지막 직계 혈손인 마지막 토스카나 대공(여자라서 대공인지는 모르겠음) 안나 마리아는 남편한테 성병이 옮아서 임신 못하고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