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의 그레고르 잠자가 정말 웃픈 것이 자신이 거대한 흉측한 벌레로 변신했음을 발견하고도, 벌레로 변한 몸을 제대로 가누는 것도 힘든데, 출근이 늦어져 직장상사가 직무태만으로 나쁘게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 심지어 벌레 몸으로 출근할 생각까지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카프카가 환상과 현실을 뒤섞어 정교하게 그려낸 그러한 모습, 쳇바퀴 돌듯 관성에 의해 굴러가는 일상의 비본래적 삶이 바로 인간 실존의 조건이기도 하다는 걸 포착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이러한 세계관이 확장된, 카프카가 [성]에서 보여준 실존조건으로서의 관료적 세계는 너무 섬뜩한데, 너무 낯설어서 섬뜩한 게 아니라 도무지 아무런 거리가 느껴지지 않는 기시감이 들어서 입니다. 의식이나 생각이 너무나 멀쩡하지만 한발짝 물러나 보면 그레고르 잠자나 가족들은 외부에서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자기와 타자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벌레로 변신한 몸은 기왕에 있어온 가족관계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 간에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고정된 형식 안에서만 기능적으로 가족들은 서로를 위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성적 인간의 자기이해나 타자이해가 집단적으로 규정된 배치의 연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카프카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은혜롭거나 기발한 탈출구는 전혀 없습니다. 은행에 전화를 걸면 자동응답시스템으로 들려오는 친절한 목소리에 따라 목줄을 한 강아지처럼 한참 동안 미로 속을 이리저리 끌려다닐 때, 내가 바로 카프카적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가끔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