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라는 이름으로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여기 내가 살았다." 철암,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 철암 탄광역사촌은 대한민국 석탄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생활사 박물관입니다. 과거 석탄산업의 잊혀져 가는 산업의 유산, 생활상, 역사의 흔적들이 검은 도시 철암에서 되살아납니다.
60년대말 태백 정확히 장성에서 태어나 공부를 너무 잘해(?)79년에 서울로 유학하고 결혼후 미국 이민..해외에 살아서 그런지 태백이 늘 그리웠는데 영상 감사합니다.태백국민학교 다닐때 황지 장성 철암에 있는 모든 국민학교 심지어 삼척진주 국민학교에서도 참가 했던 김효영(그당시 삼척군국회의원)기쟁탈 축구대회,경북봉화에 사시는 할아버지댁에 갈때 철암역앞에 있는 철암시장에서 어머니는 생선,소고기 등등 장을 봐서 5시정도에 강릉에서 영주까지 가는 완행열차타고 가던 기억 등등 옛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 나네요..한 2년뒤 한국가면 꼭 가볼 생각입니다.다시한번 영상 감사드립니다
얼마전 철암에 다녀왔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기차여행에서 너무 많은걸 얻고 왔습니다 대한민국 산업의 역군으로 많은 고생을 하셨을 노동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그 짐을 이제 저희 후대에서 이어받아 더 열심히 살고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추천드릴게 있는데..백두대간 협곡열차 정말 추천드립니다 저는 영주에서 출발해서 철암까지 갔는데 경치가 정말 좋습니다 그리고 종착역인 철암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꼭 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1962년 음력11월 추운 겨울날 강원도 삼척군 장성읍 철암3리에서 태어나 유소년 시절을 오롯이 철암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이 잠들어 계시는 곳 철암을 그때 좋았던 시절의 모습을 유튜브로 보다니~ 지금은 입학생이 점점 줄어들어~ 그래서 소멸 위험이 있는 나의 모교 철암 초, 중학교를 바라보면 애처롭습니다😢
뭄은 고생 되어도 내 사랑 하는 가족 부양 하기 위해 위험 무릅쓰고 어두운 탄광 에서 작업 했던 산업 역군들. 저녘 이면 목에낀 탄가루 제거 하려 집집 마다 삼겹살 구워 고생 하신 아버지 양껏 드시게 하고 더불어 한점 먹게 되니 그 구수함에 뿌듯해 했던 아이들 ㅡ. 강아지 돈물고 다닌다 했을 만큼 풍요로 왔던곳 태백 장성 사북 고한 영월 #양삿갓티비 씀
80년부터 82년까지 철암에서 공무원생활 환경은 열악해도 주민들과 친하게 지낸 기억이,, 강원도 이면서 경상도 분들 많이 계시더군요 광산 근로자분들과 친목계도 하고 술도 많이묵고 떠날때 고마웠던 분들 다들 철암을 떠나셨겠지요 역 기차소리에 밤잠도 설치고 그러나 적응되더군요 아뭏든 좋은 추억이있습니다
웃고울던 광산촌 우리동내도 광산 촌이였다 말 그대로 강아지도 만원짜리 물고 다니던 그시절 바람난 아주머니 들로 ~갑 을 병~ 3교대가로 이어지다 보니 탈선의 온상이 될수 놀다 남편 퇴근 하기전에 집에 와야 했기에 늦은밤 새벽 버스도 없고 오로지 택시 부르는게 요금 난 다 알지요
우리 외가집이 동네에 진짜 부자인 지주들보다는 아니지만 일반 농민들보다는 조금 잘사는편에 속했다는데 70년대 후반인 우리 엄마 초등학교 3학년때 흑백 텔레비전이 들어오고 냉장고도 엄마가 중학교때 들어왔다는데 집에 전화기는 당연히 없었고 저때 전화기가 집집마다 배치하고 있을정도면 옛날에 태백에 살던 광부들이 그 희생대가로 생각보다 많이 풍족하게 살았다는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