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슨배님. 첨언을 하자면, 전 야자시간에 '도대체 이 학교는 학생들을 얼마나 팰까?'라고 궁금한 나머지 이를 수치화하기 위해 야자 1교시 동안 오로지 시선은 책에 고정한 상태로 복도에서 들려오는 '3대' 소리가 몇 대 들리는지 집중해 본 바가 있습니다. 당시 야자 1교시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2~3시간 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반은 학교 2층 중앙현관 (학교의 척추부분) 바로 옆반 이었고, 교실의 문은 앞 뒤 모두 열려있었습니다. 그 시간동안 바를 정 자를 써서 소리만 듣고 셈 한 수치가 738대 였습니다. 한 학년에 630명 이상의 학생이 재학했던 것으로 기억했을 때, 단 하루 중 딱 2~3시간동안 들린 소리가 700대 이상을 상회했다는 겁니다. 이 학교에서는 연대책임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1천 대도 안맞은 분들은 그 연대책임의 희생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학생인권조례안 통과될 때 이 학교 다니던 사람입니다. 당시 저희 학년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었고 인권조례가 이를 통해 스무스하게 통과했었죠.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게 해당사건은 학생A가 쉬는시간에 피곤해서 자다가 수업시간이 된 것을 모르고 자고있었습니다. 다음 수업시간의 선생님 B는 수업을 들어왔는데도 계속 자고 있는 A가 탐탁치 않았고 깨웠음에도 정신을 못차리는 모습에 화가 나 체벌을 위해 앞으로 불렀습니다. 떡매라고 불리는 매로 3대씩만 때리는 게 룰이었는데, 이 룰을 어기고 무차별적으로 몇십 대를 때리게 되는데요. 문제는 학생 A의 부모님이 교육청에 다니시는 공무원이셨고, 이를 언론 제보 및 신고를 하게되서 맞아서 멍이 엄청 많이 생긴 엉덩이와 허벅지가 뉴스가 나올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이 일로 인권조례가 스무스하게 통과하게 되고, 해당 선생은 기간제 교사였으며 이 일로 짤리게 되었답니다
88년생인데 제가 다닐때의 고등학교에서도 말도 안되는 체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바로위 선배들이 교장에게 찾아가서 없애달라 요청했었는데 거절했었습니다. 그 이후에 체벌당해서 몸에 생긴 상처들 모두 사진으로 찍고 교장포함 선생님들에게 고소장날려서 학교 뒤집어진적 있었죠. 만약에 아직도 저러는 학교가 있다면 직접 나서지 않는한 바뀌지 않아요.
와... 저번에 오킹님 방송에서 수원에서 초중고 다니셨다고 하셨어서 제가 기억하는 그 사람이 맞나 싶었는데 진짜였네요. 제가 고3 때 방송 조회 시작 전에 한번 마술을 보여줬던 1학년 학생이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시간이 지나서 그 때 1학년 학생이 약간 준표님과 비슷한... 그때는 좀 말랐던 걸로 기억하는데 선생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 실제로 저 학교 다녔던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제가 1학년 때 9월에 경기도 학생 인권 조례가 나온 후 바로 10월 쯤 사건 하나 터져서 바로 선시행을 때려버렸습니다.(원래는 이듬해에 시행 예정이었음.) 그래서 학교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1. 등교 시간이 7시 10분에서 7시 40분으로 미루어져서 사실 상 0교시를 운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점심 식사 이전 1~5교시가 1~4교시로 줄어들었고 2. 모든 보충 수업들이 희망자에 한해서 진행이 되었고(정규 수업과 저녁 식사 사이의 2교시와 방학 때 있는 보충 수업들은 무조건 참여했었음) 3. 강제 야자(당시 1학년은 10시 30분, 2~3학년은 11시까지)가 진짜 야간 자율 학습이 돼서 희망하지 않는 학생들은 안 하고 갈 수 있게 되었고 4. 2주마다 있던 두발 검사에서 거의 6mm로 통일 되었던 두발 규정은 일반 학교와 다를 바 없이 파마 염색 등을 제외한 자유화가 되었고(걍 한마디로 기를 수 있게 되었음) 5. 야자 시간에 화장실 가려면 그 '떡매'로 2대 맞고 가는 등의 체벌들도 사라졌습니다. (6. 그 사건에 연루된 교사는 바로 짤렸던 걸로 기억하고, 교장도 그 해 취임했는데 바로 다음 해 바뀌었음.)
중학교에서 강화시공된 하키채로 맞았었는데 진짜 뒤지는 줄 알았음. 한방만 풀스윙으로 맞아도 맞은 부위 핏줄 다터지고, 얼마안가 보라색으로 부어오름. 보통 맞으면 1~3대 정도, 정말 많이 맞는 경우에는 10대 이하였는데, 10대는 거의 몇주동안 멍이 남아있고, 안지도 못하는 수준;; (보통 때리면 엉덩이 아님 허벅지)
그 시절에는 뭐 빌런과 무기가 넘치던 시절이였죠ㅋㅋㅋㅋㅋ 중학생 시절에 중간 고사, 기말 고사 치기 1주전부터 점심 시간에 수학 선생님께서 아령으로 전완근과 이두 삼두 운동 하시면서 씨익 웃으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빨래방망이(살짝 굽어 있어서 엉덩이에 촥촥 감깁니다)로 우리를 패기 위해서... 100대 맞을경우 일시불로 맞을래 하루에 10대씩 10일 할부로맞을래 하시던... 자율 학습 시간에 누가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교실 문에 달려있는 유리를 쳐다보면 위에 등장하신 수학선생님 얼굴이 똭! 아 .. 소름 아 ...
준표님이 말씀하신 고등학교가 제가 졸업한 학교겠네요.. 그 학교.. 과거 떡매로 유명한 학교였고 입학하고 다니면서 느낀바로는 야자 1,2학년땐 죽어도 안 빼주는곳 이었죠..ㅋㅋㅋㅋㅋㅋㅋ 입학전에 예전에 신체포기각서를 썼다고 들었고.. 야자시간에 선생님들이 복도를 돌아다니면서 조는 사람 있으면 책이나 막대같은걸로 창문 치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졸업한지 3~4년 됐지만 오래된 이야기같네요 ㅋㅋㅋ
고등학교 체벌 경험하신 분들보다 나는 좀 몇년 늦게 태어났으니 중학교 다닐때가 체벌이 유독 심했던 때였는데 마찬가지로 점차 사라지던 분위기 였기때문에 선생들도 쉬쉬하는 분위기 였지만 제가 다니던 학교는 ㅈ도 없었어요 그런거 그냥 이유없이 개처맞고 그냥 이유를 만들어서 팼는데 입학때부터 때리겠다고 학부모들한테 공지를 하고 그딴식으로 나오는 거라 사실상 반 강제로 허락 안할거면 학교 옮겨라 식이였어서 맞았는데 이때 당시 저랑 친한 10년지기 친구가 있었습니다 둘 다 조금 노는 무리였었고 저는 가정에서 맞을바엔 때려라 단 3번까지는 참고 사람을 죽이든 뭘 하든 그때부턴 맘대로 해라 대신 3번은 참아라 였기에 숙제를 안해오거나 점수가 낮게나와 맞는 것 수업시간에 졸아서 맞는 건 다 이해했지만 인사를 했는데 90도로 제대로 안했다고 친구랑 둘이서 개처럼 맞은 날이 있었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항의를 했더니 선생님한테 개긴다고 교무실에서 나가자마자 둘이 따로 불려가서 또 맞았습니다 이후에 학교 끝나고 나서 남으래서 둘이 갔더니 오늘 때리고 뭐라 했던 건 사회생활 잘 하라고 미리 알려준거라고 윗사람에게 말대답 하면 안되는 거라는 둥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해댔습니다 그래서 2번 참았었기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참자 하고 죄송합니다 하고 나갈려 했는데 야! 라고 하더니 표정이 띠껍다? 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며 좋게 얘기해줬더니 내 말에 불만 있냐는 식으로 욕설을 하며 갑자기 또 폭행을 했습니다 여기서 아 더이상은 못참아주겠다 싶어 때리는 거 그냥 맞으면서 일어나서 등으로 맞으면서 친구 막아주고 손으로 잡고 일으켜 세우고 친구한테 내가 책임 질테니까 당하지 말자 라고 말을 했고 친구가 무슨 소리냐 해서 넌 가만히 있으면 된다 하고 선생이 들고 있던 나무 막대기를 뺐어서 선생님을 후려 치고 발로 떨어트리고 친구 손 잡고 그대로 나와서 학교 나갔습니다 여차저차 해서 그때 당시에 아무리 부모 동의를 받았다고 해도 저희가 신고하면 그때 당시엔 사회에서 체벌 쉬쉬하던 시대니까 무서웠나봐요 전화 오더니 학교로 돌아와라 용서해주겠다 라는 개소리 해대더라구요 그냥 친구랑 얘기하면서 자퇴 하기로 하고 전화로 좋게 자퇴 시켜주면 넘어가겠다 합의보고 자퇴하고 다른 학교로 1년 꿇고 같이 들어가서 성인이 되서도 함께 지내는데 이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서럽네요 중학생 때는 성장도 덜되서 아직 애였을 때인데 같은 학생들 제외하면 그 누구도 우리의 심정을 이해해 주지 않았으니까요 준표님도 그런 때가 있었다니 생각나서 글 써봤네요 체벌이 지금은 거의 없어져서 다행입니다
아...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고등학교 때 남자 반만 있던 과가 있었는데. 물론 학교는 남녀공학 이였죠. 기름을 먹이고 말렸다가 몇 차례 기름 먹인 후 전기 테이프와 청 테이프로 감긴 전설적인 대 걸레 나무 막대기가 있었지요. 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 막대기는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거길 졸업하고 나서는 벌점 제도 나오고 나서는 그 ' 신성한 무기 ' 가 사라졌지요.
왜 제일 최악일 때 못 들어갔냐 하면은 대대적으로 언론에 까엿죠. 시작이 수원시민신문에서 사진 찍어가고, 그때 맞아서 다친 학생의 학부모가 좀 끝빨이 있었죠. 연합뉴스를 바로 기사를 내고, 저녁에 MBC 뉴스까지 방송으로 내버리고. 신체포기각서에다가 체벌까지 묶어서 언론으로 때리니까 교육청도 화들짝 감사관 내리고. 그 뒤로는 체벌을 세게 못했죠. 선생도 다 물갈이하고.
90년대 초반생인데, 저런 학교 많았음. 특히 민족학교니, 사립학교니 하는 곳은 선생님 로테이션이 안되고 고이기 때문에 더 심했음. 나만 해도 내 담임이 교대 졸업하고 군대 갔다가 막 부임한 초임 교사였는데 그 당시 버스 손잡이 기둥을 하나 떼와서는 블랙봉이라고 이름 짓고 애들 패고 다녔음. 그때 당시 우리 반 전통이 뭐였냐면 중간+기말을 봐서 떨어진 점수만큼 맞았어야 했음. 지금이랑은 많이 달랐지. 우리 때만 해도 부모님들이나 선배들이 손수 몽둥이 만들어서 선생님들한테 선물하고는 했으니까.
준표님 동문이였네요. 해당 고등학교를 01년도 입학해서 04년도에 졸업했습니다. 말씀하신 최악일때에 해당할까요? ㅎ 누군가에게는 추억이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매우 큰 교육방식이였기에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런 교육은 더 이상 부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재미있게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날 가득한 하루 되세요.
옛날에는 가뜩이나 못살았던데다 자원도 없다보니 사람을 강화기 넣고 돌리듯 갓챠를 돌려 사람으로 인적자원을 만들어 내야 했죠.. 그래서 사람의 인권을 팔아서 지금의 인프라를 만들어낸겁니다.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과 요즘 세대가 마찰이 생기는건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