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는 저런 논두렁에서 잡은 거머리는 세균감염의 우려가 있어서 치료용으로는 쓸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극히 제한적으로 거머리 치료를 하지만 멸균된 양식 거머리를 씁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세균의 존재를 아예 몰랐기 때문에 소독이라는 것도 애당초 존재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마 저런 거머리를 치료에 사용했을수도 있지만 세균감염으로 사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치료법입니다
실제로는 저런 논두렁에서 잡은 거머리는 세균감염의 우려가 있어서 치료용으로는 쓸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극히 제한적으로 거머리 치료를 하지만 멸균된 양식 거머리를 씁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세균의 존재를 아예 몰랐기 때문에 소독이라는 것도 애당초 존재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마 저런 거머리를 치료에 사용했을수도 있지만 세균감염으로 사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치료법입니다
실제로는 저런 논두렁에서 잡은 거머리는 세균감염의 우려가 있어서 치료용으로는 쓸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극히 제한적으로 거머리 치료를 하지만 멸균된 양식 거머리를 씁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세균의 존재를 아예 몰랐기 때문에 소독이라는 것도 애당초 존재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마 저런 거머리를 치료에 사용했을수도 있지만 세균감염으로 사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치료법입니다
@@만사형통-n5n 한국은 님이 생각 하는 개족보는 고려 때 동족 금혼 조치 이후로 사라졌음. 저 때 당시는 아직 근대적인 화학적 항생제가 등장 하지 않아서 각종 감염병이 잘걸릴 수밖에 없었고 왕족 자체가 언제 숙청 당할지 모르는 존재들이라 스트레스가 현대인에 비할 수 없이 심했음.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이 38세 정도였습니다 거의 대부분 운동부족에다가 과식으로 인한 영양과잉 당뇨 과도한 성관계 등으로 조기사망했습니다 왕의 몸에 종기가 많은 것은 목욕을 안했기 때문에 생긴 피부질환인데 이것또한 당시 의술수준의 미개함 덕분에 사망의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세조가 바로 이 종기때문에 사망했지요 온몸에 부스럼이 났는데 그게 치료가 안되서 결국 사망했는데 원인은 목욕을 자주 안했기 때문입니다 조선25대 왕 철종의 경우 강화도에서 나뭇꾼으로 살던 18세의 건강한 청년을 궁으로 끌고와서 임금을 억지로 시키는 바람에 과도한 스트레스와 음주 성관계 등으로 불과 33세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효종의 이마에 난 종기에 침을 잘못 놓는 바람에 사망에 이르게 한 어의 신가귀는 곧바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의원들의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아 중인에 불과한 미천한 신분이어서 시골양반들도 동네의원들에게는 불문곡직하고 반말을 했는데 이는 아마 당시 의술수준이 워낙 낮아서 완치율이 낮았기 때문에 의원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사실 한의학은 의학이라고 하기는 너무나 낮은 수준이지요 오죽하면 조선후기 박지원의 소설 호질(虎叱)에서는 "의자(醫者)는 의야(疑也)"라는 말까지 했겠습니까 의원을 거의 사기꾼과 동격으로 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