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수기사 기계화 보병이었습니다.. 저희는 1년에 동절기, 하절기 완전군장 무박3일 200KM 2회 , 유격 완전군장 100KM 행군 유격기간 10일이었습니다,,... 그안에 특수전 3일 포함하구여그외 30~40KM는 자다가도 일어나 수시로 했고요 이유가..... 기갑장비 파괴되면 평양까지 걸어가야 하니까요..... 그래도 젊었을때니까 아무말없이 참고 했네요....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들 덕부네 지금의 대한민국이 건재한겁니다... 감사드립니다
84년~6년 수기사 1기갑 201대대 사병복무 200키로 행군 3번 했습니다(2박3일) 사단 전체 몽땅 전차 장갑차 조종수 운전병 얄짤없이... 동계행군후에는 전대대원 일주일 정도 작전불능 기계화 사단이 뭐하는 부대 인지도 모르던 5공화국 정치군인출신 사단장 수방사와 수기사를 구분도 못하던.... 후임 사단장 오자마자 제일먼저 폐지
그러게요...... 200km 행군은 흔히 특전사들이 한다는 천리행군 (약 400km)에 맞먹는 미친 행군이죠;;;;; 근데 행군 시기도 진짜 골때리네요.... 유격 훈련 + 유격 행군 자체도 사람이 지치는데 충분한 휴식도 없이 바로 그 지옥의 200km 행군을 했다니;;;;;;;;;
육군 17사단 방공중대에 입대한 제 조카 원일병은 극단적 선택으로 4개월째 혼수상태입니다. 패혈성 쇼크, 균혈증, 간질의 합병증으로 생사를 오가며 병상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고 있습니다. 24년 2월 1차 보도가 나가기 전까지 부대에서는 아무 문제 없다 일관하더니 뉴스나가고 나니 온갖 부조리와 비위를 먼저 공개하더군요... 3월 14일 2차보도가 나가고 난후 아직까지도 수사종결도 안되고 조카는 살가죽이 뼈에붙어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데 정말 데려갈때는 나라의 아들, 다치거나 죽으면 너네 아들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닌 대한민국 국방부입니다! 진지라는 고립된 환경에서 교육받지도 않은채 투입되어 선임들에게 욕설에 의한 폭언으로 가혹행위를 당했음에도 군수사관은 독대가 아닌 다수의 자리에서 훈육하며 혼잣말 식으로 한 욕이기에 형사입건은 어려울것 같다는 내용을 공유했습니다. 진지에서 욕설을 한게 식별됐다는 인원이 3명이라면서 어떠한 처벌이나 징계도 없고 이미 한명은 전역한 상태라는데 이게 군대 현실입니다. 진지투입전 복무적응도 검사에서 관심으로 나온 결과를 무시하고 투입하고 규정으로 명시되어 있는 3주간의 선행작전 직별 교육, 평가, 면담도 없이 투입해놓고 못한다고 가혹행위하고 그렇게 애를 미치게 만들어놓고 사단장 이취임식 있다고 보낼때는 지휘관 확인서와 병영생활전문 상담관의 의견서와 소견서에 정상적 군생활이 불가능하다 해놓고는 병심대 있는 애한테 중대장과 행보관이 병역기피로 옥살이 할수있다 겁박하고 회유하고 무엇보다 가장 천벌받을 자는 모든것을 주도하고 꼬리자르려다 공개정보청구에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 참모장입니다. 보낼때는 참모장 자신의 판단으로 행정적 조치가 필요하다며 병심대에 수시로 긴급입소 시켜놓고 18일간 있다 퇴소한 인원에게 군기피로 전역할수없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럴수 있습니까! 중대장과 행보관은 협박과 비위로 군검찰에 송치가 되었다는데, 진지에서 일대다수로 욕설하고 가혹행위한 부대원들과 참모장은 꼬리자르기 하는 겁니까! 제2의 채상병 사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024.04.14현재 원일병 사건 현황 진지투입전 교육지침과 규정이 있는데 그럼 위반사항으로 형사입건 되야 하는것이 당연한것이 아닌가? 왜 비위통보로 처벌을 축소하는가? 욕설과 폭언으로 피해자를 괴롭힌 부대원이 혼잣말이라고 했다고 형사입건이 아니고 비위통보되는게 타당한 것인가? * 내용요약 원일병 사고관련 관련자 군 검찰 송치 내용 1. 중대장 - 형사입건 항목 : 협박. (정상적인 군생활이 불가하다 의견서 제출하여 병심대에 수시로 긴급입소 시킨 인원에게 생활중에 연락하여 사회에서는 멀쩡했는데 군에서만 이러면 병역기피로 옥살이를 할수있다며 겁박하고 회유하여 원대복귀하도록 협박. 정확히 병심대에 보낸시기가 사단장 이취임식이 물리는 시기로 취임하는 사단장은 소장 진 이었음) - 비위통보 항목 1) 진지 투입 전 교육, 평가, 면담 미실시. 2) 진지 투입 전 복무적응도 검사결과 미조치. 3) 진술번복 가) 병심대에 입소 중인 원일병에게 연락한 적이 없다. 최초 진술을 차후 있다라고 번복. 나) 11월 1일 부대방문 전 부모에게 연락을 취한적이 있다라고 최초 진술 후 없다고 번복. - 11월 1일 이전 원일병의 상태에 관하여 안내를 했다라고 진술 후 번복한 내용. 다) 병심대 퇴소 후 가족들에게 현부심 진행했다며 안내했다라고 최초 진술 후 순번이 밀려서 안 된다(다른 인원들이 있어서 안 된다)라고 번복한 내용의 인정. 4) 진술내용 불일치 내용 통보 - 11월 1일 부모에게 원일병 휴가를 위해 면담차 부대를 방문하라고 안내한 내용에 대하여 중대장은 휴가 보낸다고 면담하러 부대에 방문하라는 내용이 아니었다(부대 방문요청의 취지)라고 진술. 번복한 내용은 없으나 피해자 가족이 제출한 통화기록과 중대장의 진술의 차이가 있어 비위 항목으로 통보된 사항. 2. 행보관 - 형사입건 항목 : 협박(상동) - 비위통보 항목 : 진지 투입 전 복무적응도 검사결과 미조치. 3. 욕설에 의한 폭언의 가해자 부대원 2명(전역자 제외) - 비위통보 : 혼잣말로 독대가 아닌 다수의 인원이 있는 자리에서의 훈육과정에서의 욕설로 형사입건 대상 아님. * 수사관 개인 결정이 아닌 수사대 법적 검토와 심사위원과의 토의에 의하여 결정된 사항 이라는 답변. * 수사팀장의 입회 하에 욕설의 가혹행위를 자행한 인원들의 면담 가능여부 문의결과 소속대에 하라마라 라는 지시를 내릴 수 없고, 본인들(가해자)의 의사도 중요하며, 수사 목적일지라도 불가능하다 답변. 출처 보배드림 m.bobaedream.co.kr/board/bbs_view/freeb/3083627
경기도 포천에 자대 갔더니 행군 엄청 사랑하는 여단장 덕분에... 1년 12달 중 40Km 행군 8번 있었고. 나머지 4달은 100Km 행군있었네요. 꼬박 24시간 만에 100Km 걸을 수 있다는 거 그때 알았네요. 얼마 뒤 여단장 바뀌면서 행군 없어져서, 저는 그 지랄같은 100Km 행군 2번만 겪었지만... 우리 선임들은 좀 더 걸었겠죠.... 새 여단장이 행군 없애버린 이유는.... 우리가 군단 포병이었기 때문입니다. ㅎㅎㅎ
27사 K-4(지게까지 약 40kg) 메고 40키로 혹한기 행군한거 생각나네요 ㅋㅋ 육사출신 중대장이 왜 대열 못 쫓아오냐고 해서 이거 메고 가보시라고 안 쳐질 수가 없다고 대들었는데 본인이 메고 속도 맞추면 넌 영창이다 해서 받아서 메자마자 무게 못 버티고 뒤로 굴러버린 능력은 없는데 목표만 높았던 중대장 아직도 군생활 하나 모르겠네요
이런 젠장 ㅠ.ㅠ 생각하지 말라고 다 끝난거자나 괜히 제 군생활도 생각나고 감정 몰입이 많이 됩니다 . 08년도 8사단 팔하나 출신입니다 . 행군하면서 차에 들이 받았으면 생각 진짜 많이 했던 기억이 나네요 . 특히 쉬다가 다시 행군 재개 할때 겪는 고통을 말할때 핵공감 했습니다 .
저도 10년 8월 군번이였는데 제보자분 저랑은 완전히 딴 세상에 살고 계셨었네요..전 운이 좋았던건지 유격도 한번도 안 뛰고 100km 행군을 하긴 했는데 약식으로 말만 100km고 실질적으론 많이 줄여진 상태로 했고..비흡연자인데 흡연하는 맞선임 따라서 전우조활동때문에 같이 가긴 했는데 꽁초 버리기 등등 이런 악습같은거 전혀 없었는데.....그저 감사할뿐...ㅜㅜ 고생하셨습니다.
14-7군번 자대 60사단 배정 받았는데, 제가 당시에 근무 할 때는 연간 합산 행군을 100키로도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무래도 동원사단이며 사단장이 준장 계급이라 그런지 진급 욕심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당시 복무 소문에 의하면 60사단이 장교들의 무덤이라고 할 정도로 말이죠.. 부대 특성상 부대정비 및 작업으로 악랄한 곳입니다ㅋㅋ..
1년에 두 번, 극한상황체험훈련이라고 해서 무박 200Km 행군한 나 같은 선배들 보고 위안 삼으시길... 7월에 한번, 1월에 한번... 1월 행군 때는 수십명이 발가락 동상 걸려서 절단 한 후 제대했음(이 내용은 언론에 보도 된 후 보안사 요청으로 기사 줄줄이 삭제됐음). 3박 4일 잠 안 자니까 헛 것이 보이고, 헛 소리 하게 되고... 알보병은 물론이고 전차병까지 행군을 했으니 그때는 참으로 무식한 군대였소. 40Km, 100Km는 애교 수준이었고... 200Km만 4번하고 85년 11월에 제대했소. 그래도 사단장 김진영 소장은 하나회 소속이라서 그 후에도 승승장구 육군참모총장까지 했소. 물론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옛날 얘기요. 그 때 같이 고생한 맹호부대(수기사) 전우 여러분, 건강하게 잘 사시오. 지금도 발가락 절단된 전우들 만나면 눈물이 납니다. 후배님들 미안합니다. 그냥 늙은 용사의 넋두리로 들어주소. 맹호!
그정도면 그냥 특전사라고 하셔도 될듯... 진심이고 진심입니다 국대 육상 종목 다 휩쓸고 다니실것 같네요 ㅠㅠ 참고로 군대랑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데 그냥 200km랑 박격포 보는 그 순간부터 느낌이 뭔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리고 사단장님 아무튼 2010년도 당시 국방 뉴스를 엄청 보겠다라는 쓸모없는 오기가 생기고 있어요
05군번 5개월 지오피, 유격2번 혹한기2번 중대전술(미니혹한기)4번 대대전 2번 연대전(호국이) 1번 kctc 1번 (과학화 도입 초반이라 빡쌤이 상상초월) 대대장이 진짜 지 진급 때문에 훈련 개많이 했음 걍 한달에 훈련 무조건 1개씩 (지오피 있던 시간 빼고 ) 말년 나가기 이틀전에도 사격 나갔다옴 (이 당시 말년이면 이게 말이 안된다는걸 아시는분은 아실듯 ) 저 진짜 고생 많이 했습니다 ㅋㅋ 참고로 15사단 38연대 2대대 출신입니다
박격포하니 저희 아버지가 생각나네요. 저희 아버지는 60년에 논산훈련소 입대해서 박격포 주특기 받고 그때당시 악명높은 강원도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로 유명한 곳에서 복무했는데 그땐 행군때 박격포를 사연처럼 들고 행군을 해서 행군하다 줄는줄 알았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연배(81세) 중에 키가 큰 180이라 힘쓰는 주특기를 받은듯 합니다.
2010년 7월 60사단 161연대 사연 내용 훈련을 다 체험해봤네요 그 당시엔 전방부대가 더 힘들겠지하며 버텼는데 제가 정말 운이 안좋았네요 60사단은 2011년도에 부대가 축소되면서 저는 수방사로 전출을 가게되었는데... 거기서 100키로를 한번 더 뛰었네요 군생활하면서 200키로 한번 100키로 두번 그래도 다친곳없이 전역해서 지금은 사회생활 잘 하고 있습니다 ㅎㅎ
24시간 100km 무박 행군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습니다. 옛날 30사단 보병 대대는 당연했지요.... (80년대) 행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달동안 야외 종합 훈련하고 부대로 복귀할 때는 당연히 24시간 100km 행군으로 복귀합니다. 융통성 있는 대대장은, 중화기 중대의 90미리 무반동총, 81밀리 박격포는 4분의 5톤으로 보내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대대장은 완전 군장에 90미리 무반동총, 81밀리 박격포를 군장에 짊어지고 행군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중화기 중대는 주로 근성 있는 거친 친구들이 많았지요. 신병 훈련소 마지막 수료 과정이 24시간 100km 행군이었습니다. 낙오하면, 신병 훈련 유급... 그 때는 왜 그렇게 걷고 또 걸었는지 모릅니다.
본인이 군생활한 곳이 가장 힘들다는 그런 말들이 돌아다니던데...가슴에 손을 대고 곰곰히 생각해봅시다. 본인이 군생활한 곳이 가장 힘들다는 기준은 본인 현역때 보병(수색대,특공연대, 중화기중대 등)과 바꿔도 자신이 있는 보직이면 인정합니다만....아무리 세월이 많이 흐르고 그랬다고 해도 보직에 따라 경중이 분명있습니다. 대한민국 어느 보직이든 중요하지 않은 보직이 없고 다 열심히 군생활했지만. 같은 예비역들끼리도 그런 부분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군생활 한 곳이 가장 힘들다"란 말로 같이 묻어가려는 분들 계신거 같아 한말씀 드립니다. 저도 예비사단 출신이라 TS 천리행군, 공지합동훈련 200키로, 동계,하계,훈련 각 100키로 유격훈련 3회 연대 RCT,대대ATT 각 2회 공중기동강습훈련 100키로,중대ATT 2회, 등 30개월내내 훈련의 연속이었지만., 전방의 8사단 예비시단이나 중동부 전선 2사단,11사단, 27사단 등에 비하면 편한 군생활했다 생각합니다. 중년을 훌쩍넘겨 허리드스크 무릅관절 어깨 어디 하나 성한데 없다는 점이 정말 속상해서 몇글자 적었습니다. 일단 육체적으로 무리가 안가는 보직은 전역 후 후휴증이 덜하잖어요? 저는 전역 후 신체검사에서 24살 젊은 나이에 척추측만증,무릎 연골연하증 판정받았습니다(보직 박격포) 이,이거 어디다 하소연 해야하나요? ^^;; 단적인 예로 행정병 병과도 취침시간도 적고 스트레스 무지 심한 보직이지만 저 같은 후휴증은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이상한것인가.. 댓글보니 훈련 명칭을 다 기억하고들 있으신게... 신기하고 부럽습니다. 수기사 포병 07군번인데.. 위의 영상에 벽면 보면서 '아.. 복무신조라는게 있었지.. 뭐였더라..'라고 생각할만큼 군대 생각이 잘안나는데..ㅠ 연대훈련 대대훈련 등 이름들을 다 기억하신다는게... 대단합니다. 뭔가 기억에.. 다른부대를 겪어보지 않았으니 훈련이 많았던건지 기준은 없지만.. 기억나는 훈련은 하나 있긴합니다. 새롭게 도입하는 훈련이라면서 시범훈련으로 걸렸던 건데.. 아침 07시에 상황이 걸리고 그때부터 상황종료될때까지 방독면과 풀방호복까지 입은 상태로 모든 훈련을 받는것인데 너무 힘들었던 지라 저 훈련만큼은 두번다시 하고싶지않았던 훈련이라 기억에 남네요.. 실전과 같은 훈련이라면서 한여름에 그 두꺼운 방호복과 방독면을 쓰고서 산도타고.. 진지 점령하고.. 부상자 발생하면 산꼭대기에서 자주포까지 나르고... 곧 상황종료되겠지.. 되겠지.. 되겠지... 했는데 그 상황이 16시에 종료되어.. 총 9시간동안 방독면과 방호복을 입고있던게 기억납니다. 제일 최악은 군화위에 신는 방호화(?)가 최악이였네요..제가 다한증이라.................... 암튼 상황이 종료되고 방독면 벗고서 가쁨 숨을 고르다가 조금 떨어진 후임얼굴이 눈에 들어왔는데 모공까지 보일정도로 땀구멍이 열려있던게 뇌리에 사라지질 않네요.. 물론 부조리도 많았고 편한 곳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좋았던 추억도 많았는데 기억이 잘안나는게 아쉽네요.
육군은 전후방 불문하고 대대장 이상 지휘관이 진급을 앞두면 훈련량이 엄청나게 늡니다. 지금은 없어진 동원사단인 70사단은 사단장 및 197연대장이 진급하고 싶어서 별의별 훈련 다 했고 훈련강도도 빡셌으며 전투력 측정 결과도 최상이었지만 효자손님 방송에 나왔던 추석날 탈영사건 때문에 결국 사단장과 연대장은 모두 진급 못해서 각각 3사관학교 교수부장과 서울의 모 대학교 학군단으로 좌천 후 전역했다고 하네요.....
제가 있을때가 가장 좋았을때인것 같네요 98군번이고 70사단출신입니다 아시는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99년도애 영국여왕님이 안동에 오신적 있죠 그당시에 근무를 하고 있을떄라 그당시에는 나름 힘들지 않게 복무 했습니다 참 70사단은 국도길에 있는 상황이라 다른부대는 모르겠지만 항상 민간인을 볼수 있다는것이 좋은점이죠 부대에서 나와서 집까지 그 당시 4시간도 안 걸릴정도이니 좋았음 참고로 집은 부산입니다^^
특히 이런 부대들은 진급에서 밀린 고위 장교들 전역준비장소처럼 활용되는 부대라서 진급에 욕심이 많은 대대장이 지휘하는 곳에 배치가 된다면 자신이 군인인지 건설 노동자인지 헷갈릴 정도로 작업이 많다. 수방사에 100km 행군을 연례 훈련화 시킬 뻔한 주 원흉의 사단이다. 이걸로 만족 못 해 200km 행군까지 하다가 사단장 변경 후 사라졌다. =나무위키 출처
90년 8월 군번 2사단 32연대 rct때 3박4일 240km 걸었음. 나는 화기소대 주특기 105라 m60 말뚝으로 들었음.(예비총열, 삼각대 포함) 강원도 인제 양구 해발 1300m 대암산 두 번 왕복했음. 그리고 유격 무박 100km 행군 우리 대대가 약 20시간 만에 주파했음. 8월에 해떨어지고 출발해서 다음날 4시쯤 자대 도착했음. 근데 rct랑 비교하면 유격 무박 100km는 소풍 수준으로 느껴졌음.
난 포병인데 훈련 때마다 32연대랑 같이 놀았음... 902도로, 광치령, 대암산 등등... 32연대와 같이 돌아다녔음... 한번은 RCT로 구암리에서 출발해서 광치령을 넘어 17연대 앞까지 왔는데... 그게 반 온 거였음... 계속 걸어서 가리산 옆으로 해서 귀둔까지... 그래도 포병은 장비가 무전기와 나침의 밖에 없지만, 81미리는 정말 지옥... 우린 81미리를 보고 버틴듯...
우연히 메인에 떠서, 04군번 7사단 출신인데 40km 넘는 행군 한적 없음, 구타 당한적 없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조리없었음. 자대배치 후에 가위바위보 져서 이등병때 혼자서 PX갔다왔는데 심지어 본부중대를 관통해서 갔다 옴. 그렇다고 땡보였나? 그냥 흔한 1112 보병대대 땅개 그 자체였음. 나중에 부대개편으로 지오피에서 좆뺑이치긴 했지만 덕분에 군번풀려서 군생활 자체는 편했음. 1년 넘게 민통선 안에 있다보니 총보다 삽드는 날이 많았고 내가 분대장 11개월했는데 그 전에 기관총사수여서 기관총 후임에게 물려주고 후임 총 받은거 전역할때까지 영점사격이 없어서 영점도 못잡고 전역함. 2년동안 큰 훈련 뛴게 3개도 안될 듯 , 4년(?)마다 한다는 호국이는 얼굴에 분칠만하고 끝났는데 나중에 개편때 헤어진 후임말로는 화천에서 홍천까지 갔다왔다나 뭐래나 ㅋㅋㅋ
18년에 50사단에서 6월중순에 입소를 했고 행군할 시기가 딱 7월이었다. 그 시절 대구는 7월쯤 되면 기본 35도 이상을 찍었고, 신교대 대대장이 35도? 이상이면 행군을 하지 않겠다고 선포를 했다. 하필 전날 온도가 32도 즈음 되었기에 우리보다 일주일 먼저 입소한 병력들은 행군을 하였고 그 다음 3일 뒤(?) 우리들의 행군이 시작 되기 전 대구는 37도를 찍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행군을 하지 않았고 내가 간 501 여단은 대구에서 예비군 훈련을 조교 하기 때문에 행군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군생활 동안 행군을 하지 않았다. ㄹㅇㅋㅋ 50사단 501여단 여름 군번중에 행군한 사람은 손에 꼽음 p.s 아 유격도 안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