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존 브라이온 시리즈' 두번째 영화는
아마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 작품, [이터널 선샤인] 입니다.
실험적인 연출로 유명한 프랑스 감독 미셸 공드리와
[존 말코비치 되기]의 극작가 찰리 카우프만의 작품이죠.
그 사람과 만났던 시간을 송두리째 도려내고 싶다,
이별을 겪어본 분들이라면 한번쯤은 해보셨을 생각일 것 같은데요.
아픈 기억을 모두 지우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영화는 이러한 물음을 던지며 시작합니다.
주인공 조엘(짐 캐리)은 아픈 사랑의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라쿠나’에서
사랑했던 연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과의 추억을 지우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시술이 시작되고 지난 연애를 실시간으로 돌아보면서
조엘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나쁜 기억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소중한 추억의 일부분이었고,
힘들었다 여겼던 기억이 돌이켜보니 가장 좋았던 순간이었다는 것을요.
사랑의 끝에서야
조엘은 다시 한 번 그 사랑을 지켜내기 위한 고군분투를 벌입니다.
하나둘 무너지는 기억의 시공간 속에서,
흐릿하게 바래가는 옛 연인을 붙잡으며 말이죠.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은 왜 무 자르듯 구분할 수 없을까요.
좋다, 나쁘다 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도 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질까요.
둘은 어쩌면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함께 오는 감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땐 이 영화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예정된 미래를 알면서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조금 막막하고 안쓰럽게 느껴졌죠.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아픔을 가시처럼 전부 발라낼 수 있는 그런 사랑은 없다는 것을요.
모든 종류의 선택에는 기쁨과 아픔이 함께 찾아오고,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기꺼이 그 길을 걷기로 결심하는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아름다운지도요.
제가 좋아하는 신형철 평론가의 칼럼 한 구절을 소개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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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로를 미워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또 사랑을 시작해야 할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이 질문에 힘겹게 답하는 순간이다.
그들이 바로 “OK”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잠시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좋아졌다.
이 ‘OK’는 메리의 결단을 잇는, 보다 더 심오한 인간적 결단이다.
정말이지 달콤하기만 한 시간은 이내 끝나고 아프게 서로를 견뎌야 하는 날이 또 올 것이다.
뻔히 알면서 또 그 길을 가는 이들을 바보라고 말해야 할까.
돌이켜보면 기억 삭제 장면에서 조엘이 뒤늦게 애원해도 삭제는 중단되지 않았는데
그 시술의 논리가 ‘전부 아니면 전무’이기 때문이다.
아픔은 제거하고 기쁨만 남길 수는 없다는 뜻이고,
달리 말하면, 아픔이 두려우면 기쁨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선택지는 둘이다. 아픔이 두려워 기쁨을 포기할 수도 있고, 아픔을 각오하고 기쁨을 선택할 수도 있다.
전자를 택하는 이들이 더 지혜로운 것인지는 몰라도, 후자를 선택하는 이들이 내게는 더 눈물겹다.
...
인생이라는 식탁에서 콩을 골라내듯 아픔만 골라낼 수는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대상이 누구건 사랑에는 기쁨만이 아니라 아픔도 따르기 마련임을 안다.
그런 사람에게 사랑은 언제나 [이터널 선샤인]의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 장면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가 언제나 ‘OK’라고 답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리석고 아름다운 대답이다. 다시 말해,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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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터널 선샤인 OST (2005): Jon Brion
🎞 [이터널 선샤인], 2005, 미셸 공드리,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 NETFLIX / WATCHA / WAVVE / TVING / 쿠팡플레이 / 네이버 시리즈온 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이터널선샤인 #eternalsunshine
9 апр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