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방송을 보다가 잠시 울컥했습니다. 지금 홍대역 광장이 있는 자리에 포차가 있던 시절 나는 고등학교 갓졸업하고 공장에서 일하던 그 시절쯤 한달에 한번 월급을 받으면 주머니에 만원짜리 하나와 양말있는 가방하나 들고 그 동네로 갔습니다. 몇명의 친구들이 그렇게 만원짜리 하나씩 들고 모여서 술은 포차에서 취하고 친구랑 그렇게 홍대앞거리의 밤을 보다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친구까지 합류하면 그제서야 클럽앞에가서 입장료 얼마를 내고 들어가는 것이 그 한달의 유일한 낙이였습니다. 그나마도 줄 못선날엔 언더 그라운드로,명월관으로... 마치 벽처럼 보이던 공연장 그런 콘서트장이 아니라 그냥 아무 생각 미련 같은거 없이 놀아도 되던 그시절 유일하게 남아주었던 우리들 70년 생들의 유일했던 놀이터... 잠시간... 설래이고 길게 울다 잠든 밤이였습니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들에게 직접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운것 세가지가 있는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옛날 벽돌길과 종로서적의 쾌쾌한 이단 책장냄새... 그리고 홍대 정문앞 클럽들의 가슴만 가지고 들어가 놀수 있었던 그 클럽들의 소리... 그걸 유산으로 꼭 남겨주고 싶었노라고....
분명 우리나라도 다양한 장르의 락음악이 주류시장에서 활약하며 가요프로 순위에 들던때가 있었음. 펑크쪽에서는 세기말 크라잉넛을 시작으로 00년 중반까지 노브레인, 타카피, 레이지본, 슈퍼키드가 있었고, 모던쪽에서는 자우림, 럼블피쉬, 넬, 익스가, 코어쪽에서는 밀레니엄때 울트라매니아를 들고나왔던 서태지의 영향력이 이후 라이브와이어때까지 계속되며 피아, 스키조, 아레스, 바닐라유니티, 내귀에 도청장치 같은 밴드들이 메이저씬에서 활약을 했었지. 여기에 락을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방송가의 힘까지 합쳐지면서 락이 시대적 흐름을 타게 되는가 싶었는데 카우치가 생방송에서 바지 한번 내리면서 모든게 날아가 버렸음. 그 때 그 사건이 아니었어도 세계 음악시장 추세에 맞춰서 결국 락은 시들해졌겠지만 그 시기는 훨씬 늦출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후에도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 장미여관, 혁오 등의 밴드들이 인디와 메이저를 오가면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고 락의 명맥을 잇고는 있으나 저 시절과는 비할 바가 못됨. 나도 저 시기에 맞춰 04년부터 09년까지 홍대에서 인디밴드를 했던 사람인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밴드음악이 처한 현실과 어쩔수 없는 한계를 보고 있으면 씁쓸하기 그지없음. 더군다나 지금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옆동네 쪽국의 락을 보고 있으면 더더욱...
2003년 Gate in Seoul 때 처음 본 노브레인 2004년 이듬해 뉴질랜드가서 장재운이란 동생과 서로 가장 가까운 추억을 나눔, 드러머 황현성군 얘기 많이 들었슴.. 노브레인을 보면 재운이 동생 항상 떠오른다. 어디서 잘 지내는지 궁금타.. 계획 모두 이루어졌길 바래
내가 인디밴드에 대해서 논하기는 좀 그렇지만 노브레인도 그렇고 크라잉넛도 그렇고 뛰어난 곡들이 많고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충분히 지속적으로 공중파에서 나왔어야할 밴드들이고 지금이야 힙합이 힙합씬이다 뭐다 하면서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좋아하지만 사실 원조는 인디밴드 사람들이지 하지만 2005년 인디밴드 그 방송사고 때문에 모든게 다 망해버렸지... 이번 아카이브를 통해서 조금더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람..
노브레인도 크라잉넛도 그렇고 어릴 때는 몰랐는데 지금 그들 음악을 들으면 마냥 건강하고 명랑하고 순수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ㅋㅋㅋ 아주 어릴 땐 이 형님들 참 거칠고 무서운 느낌이었던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던거죠. 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젊음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팀들인것 같아요. 물론 비판하고 해체하고 건설하려는 요즘의 음악과 사조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야말로 이런 음악이, 이런 분위기와 에너지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