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다지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꾹꾹, 빼놓지 않고 눌러 담은 책이 나왔습니다:) 많은 여러분에게 작지만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 ▶구매처 예스24: bit.ly/403wpc8 교보문고: bit.ly/402XGLI 알라딘: bit.ly/3H5Y1F4
다음은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헤이트가 아니다. 조선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史記'이지만 그 때부터 이미 '燕'에 지배되고 있었다. 이후 수천년간 한반도는 중국의 속국이었다. 중국 연호를 사용하여 정기적으로 미녀를 선발하고 성노예로 중국에 헌상했다. 「공녀」라고 부른다. 때로는 중국 사신이 선택한 '공녀'는 모두 추악하다고 불평을 했기 때문에 재선발도 있었다. 조선은 일청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처음으로 독립했다. 서울독립문을 기념해 일본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식민지 압력이 높아지면서 조선은 일본에 보호를 요청했다. 그것은 1910년 한일 병합이다. 일본은 조선의 노예를 해방하고, 철도와 학교를 만들고, 음식을 충분히 유통시켰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자고 먹고 섹스를 했다. 그 결과 한반도 인구는 35년 동안 두배로 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일본 인구는 300만 명 줄었지만 조선 인구는 계속 늘었다. 일본인이 싸우고 있는 동안 조선인은 섹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에서도 위안부를 모집했다. 현재 가치로 1월 3000만원의 고급이었기 때문에 모집에 따른 위안부는 많았지만 조선인 브로커도 이에 주목해 시골 소녀를 속였다. 일본 경찰은 악덕 브로커를 체포하고 많은 소녀를 구출했다. 그러나 불행한 경험을 한 소녀도 있었다. 이 위안부 문제의 원인이다. 한국은 4.3사건으로 제주도 주민 6만명 학살하는 등 공산세력을 무차별로 탄압했다. 그러자 북한이 38도선을 넘어 남쪽으로 공격해갔다. 한국 부산까지 패주했지만 김석원 장군 등 일본군 조선인 병사의 참여와 일본 무기 공급으로 역전했다. 이때 한국은 자국의 소녀를 강제연행해 아군과 미군의 성노예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오해하고 있지만 위안부의 비극 대부분은 이때 생겼다. 일본은 한국의 국가예산의 2년분을 넘는 5억 달러를 지불하는 한일조약을 맺어 합병시대의 청산을 마치고 국민의 개인배상은 한국이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국과 합의했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빈곤 때문에 일본은 1997년까지 무상자금과 기술공여만 1조원이 넘는 원조를 실시했다. 또한 2009년에는 700억 달러의 통화 스왑에 응하고 있다. 이런 경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일본의 은혜를 잊어 청산이 끝난 징용공과 위안부 문제를 재제시하고 있다. 한국 부끄러움이지만, 한국의 많은 사람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
다음은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헤이트가 아니다. 조선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史記'이지만 그 때부터 이미 '燕'에 지배되고 있었다. 이후 수천년간 한반도는 중국의 속국이었다. 중국 연호를 사용하여 정기적으로 미녀를 선발하고 성노예로 중국에 헌상했다. 「공녀」라고 부른다. 때로는 중국 사신이 선택한 '공녀'는 모두 추악하다고 불평을 했기 때문에 재선발도 있었다. 조선은 일청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처음으로 독립했다. 서울독립문을 기념해 일본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식민지 압력이 높아지면서 조선은 일본에 보호를 요청했다. 그것은 1910년 한일 병합이다. 일본은 조선의 노예를 해방하고, 철도와 학교를 만들고, 음식을 충분히 유통시켰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자고 먹고 섹스를 했다. 그 결과 한반도 인구는 35년 동안 두배로 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일본 인구는 300만 명 줄었지만 조선 인구는 계속 늘었다. 일본인이 싸우고 있는 동안 조선인은 섹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에서도 위안부를 모집했다. 현재 가치로 1월 3000만원의 고급이었기 때문에 모집에 따른 위안부는 많았지만 조선인 브로커도 이에 주목해 시골 소녀를 속였다. 일본 경찰은 악덕 브로커를 체포하고 많은 소녀를 구출했다. 그러나 불행한 경험을 한 소녀도 있었다. 이 위안부 문제의 원인이다. 한국은 4.3사건으로 제주도 주민 6만명 학살하는 등 공산세력을 무차별로 탄압했다. 그러자 북한이 38도선을 넘어 남쪽으로 공격해갔다. 한국 부산까지 패주했지만 김석원 장군 등 일본군 조선인 병사의 참여와 일본 무기 공급으로 역전했다. 이때 한국은 자국의 소녀를 강제연행해 아군과 미군의 성노예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오해하고 있지만 위안부의 비극 대부분은 이때 생겼다. 일본은 한국의 국가예산의 2년분을 넘는 5억 달러를 지불하는 한일조약을 맺어 합병시대의 청산을 마치고 국민의 개인배상은 한국이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국과 합의했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빈곤 때문에 일본은 1997년까지 무상자금과 기술공여만 1조원이 넘는 원조를 실시했다. 또한 2009년에는 700억 달러의 통화 스왑에 응하고 있다. 이런 경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일본의 은혜를 잊어 청산이 끝난 징용공과 위안부 문제를 재제시하고 있다. 한국 부끄러움이지만, 한국의 많은 사람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
선생님 강의는 늘 '이름', '용어'의 뜻을 먼저 풀어주고, 그에 따른 스토리텔링으로 전개해 주시니까 정말 흥미롭고 이해가 잘 됩니다. 부디 많은 선생님들, 교수님들이 이다지 선생님 강의의 비법을 벤치마킹해서 좋은 강의로 가득한 우리나라가 되었으면...하는 바램, 진심입니다. 무지무지 배우기 싫었던 일본의 역사, 이제 어떤 책으로 공부해도 재미있게 할 수 있겠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공군은 없었다고 보면 되고 육군에 항공대가 있었고 2차세계대전 이후 분리가 됩니다. 해군과 육군만 있었다고 보면 되고 일본도 마찬가지였지요. 일본은 패망후 군대라는 명칭이 사라지고 공군이라는 이름 대신 항공자위대를 만듭니다. 두 나라 다 항공모함이 있었지만 미드웨이 해전을 계기로 일본의 항모와 항공기는 많이 손실되었는데 가미카제 같은 항공모함으로의 전투기 돌진을 미국이 먼저 했기에 가능했다고 보면 됩니다. 결국 태평양을 갖고 자국땅에서 전쟁을 막기위해서 그리고 미국은 자신의 영역인 태평양을 대륙세력들에게 빼앗기지 않게 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력을 다시 일으키게 하고 우리나라와 일본이 알아서 화해하기를 바라지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다지 선생님 연구를 많이 하시고 강의 하시는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우연히 알고리즘에 떠서 봤는데 정말 너무 재밌네요. 저는 수험생도 아니고 세계사 한국사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평소 역사에 관심도 많았고 특히 쪽국은 왜 그따위인지 항상 궁금했거든요 일본사 인강 두 편을 연달아 보면서 일본은 왜 항상 그 모양인지 인과관계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글고 쌤도 강의 진짜 잘하시고 쏙쏙 들어오네요 완전 꿀잼수업 감사합니다 전근대사에서도 연도료시나 세기표시도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ㅎㅎ 각 시대, 막부들이 각각 대략 얼마나의 기간동안 집권했고 언제쯤 시기였는지 궁금해서ㅋㅋ 아무튼 잘 들었습니다~
난 왜 아시아에 일본이 없다는 가정의 세계관이 일제의 통치보다 더 두렵지? 역사에 if는 없어도 인간은 상상의 동물이기에 상상을 해보면 일본이 존재하지 않거나, 일본의 통치기간이 없었을때, 조선왕조가 계속 유지되었을때 저기 저 해적질하는 소말리아가 연상되는데 내 착각인건 아니지?..
@@user-ww1xw1rb9j뭐 각국마다 역사관이 다르고 한국도 한국만의 역사관을 주입시키고 일본도 일본만의 역사관을 주입시키니 역사적인 문제로 사이가 좋을 수 없죠 21세기 역사는 모두의 입장,역사를 배우고 사건의 발단,이유등등 배울점만 흡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국민으로써의 역사관 안보관도 중요하지만 너무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지양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난 왜 일본이 청과 조선에게 서구세력을 몰아내기위해 동맹을 맺는 거를 안했는지 알것도 같기는 해... 중국과 조선은 오랫동안 일본을 무시해왔다. 그런 나라가 일본의 조건을 받아들이는것도 이상해 그리고 받아들인다해도 중국 중심이지 일본 중심이 아니거든 그리고 동맹을 받아내기위해 조공을 받쳐야겠지... 그리고 애초에 동양에서는 동맹이란 단어는 사라진지 오래고...
역사를 알면 알수록 재밌는게.. 일본은 이미 중국야욕을 품고 조선을 침략하는 임진왜란을 일으켰죠. 이순신장군이 잘 막았기 때문에 지금의 역사로 흘렀지만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아시아의 역사기 비뀌었을겁니다. 중국도 영국과의 아편전쟁으로 휘청했고 참 진짜 역사는 국내 뿐 아니라 세계사를 함께 알아야 연결고리가 생겨 더 이해를 잘 할수 있게 되는거 같아요
자민당의 장기집권의 경우에는 사실 자민당이 겉보기엔 거대한 당이지만 내부적으로 계파가 워낙 다양합니다. 내세우는 공약과 정책이 꽤 많이 다른 경우도 있어요. 혐한시위대를 적극 지지하는 계파도 있고, 적극 반대하는 계파도 있고, 혐한을 반대하고 비판하되 역사문제 청산에 있어서는 적극적이지 않는 계파도 있는 등, 다양합니다. 그래서 일본 국민들은 다른 계파가 집권하게 되면 그걸 정권교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입장에서, 과거사는 껄끄러울 수 밖에 없고 전쟁범죄로 점철되어 있는 근현대사는 우리나라가 식민지와 암울한 시기였던만큼 한국사에서 제일 재미없는 파트인 것처럼 일본인 입장에서도 흥미가 있지도, 굳이 찾아볼려 하지도 않는 역사입니다. 일본사는 전국시대가 제일 재미있고, 드라마나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지고 그런만큼 대중적으로도 관심이 많은 역사입니다.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3명의 영웅이 3파전을 펼치는 전국시대와 사카모토 료마/사이고 다카모리/메이지 천황 등이 등장하는 막부파와 천황파가 붙는 메이지 유신 시기가 일본사에서 제일 재밌는 파트이고, 일본인들도 제일 관심 있어하는 파트인게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삼국시대/후삼국시대/임진왜란/여말선초 같은 느낌인겁니다. 제일 영웅이 많이 등장하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게 무궁무진하죠. 그런 역사를 놔두고 자신들의 치부인 근대사와 2차세계대전사는 관심이 없을 수 밖에 없을겁니다. 특히나 일본 정치권에서는 자신들의 과거를 인정하고 사과를 해버리면 결국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불합리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니, 정치권에서는 더욱 더 과거사를 부정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시대가 많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보면, 이 악물고 과거사를 인정할 수 없는 일본을 상대로 우리가 사과를 부르짖기만 하는게 옳은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역시, 힘이 약한 시기에 외세의 침략을 허용한건 분명 잘못한거고. 일본제국이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 아시아 일대에서 벌인 짐승만도 못한 행동들도 잘못된게 맞습니다. 아시아의 역사는 잘못의 방향이 다르지만 일본제국과 그 후신인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서로가 생산성이 전혀 없는 혐오만 하는것보단 과거사가 잘못됐지만서도 과거에 얽메이는것보단 서로 친한과 친일을 자연스럽게 하고 미래를 위해 한일관계를 개선시키는게 맞지 않을까요?
재팬 인사이드 아웃을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긴 한가요. 책의 내용 대부분은 그당시 이미 미국에서 출판된 다른 책들의 인용이 대부분이고 중반부에 미국의 평화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승만은 1918년 호형호제하던 독립운동가인 박용만을 배신하고 "박용만이 호놀룰루에 일본 군함을 파괴할 것"이라고 음해해서 법정에 세운 뒤 자신은 평화주의자라서 박용만의 무장투쟁에 반대한다며 자신의 배신을 합리화했는데 그런 사람이 미국의 평화주의자들을 비판한다? 자신은 평화주의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가장 가까운 동지도 팔아먹는 이가 할 소리는 아닐텐데. 이승만은 온갖 핑계로 자신의 욕망만 채우려 했던 기회주의자의 표본이죠. 당시 자신보다 지지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박용만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음해공작해서 자신의 권력을 키우기 위함이었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절친한 친구도 팔아먹는 짓도 꺼리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의 책이라면 읽을 가치가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