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금한 거? 구독과 좋아요만 눌러주면 우리가 알아서 약탈해줄게! 🦜 화폐가 등장한 이래 ‘가짜 돈’을 만드는 사람들은 항상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가짜 돈에도 진짜가 어느 정도 섞여 있어야 하는 법! 재료값 때문에 위조화폐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는데요. ‘지폐’가 등장한 이후 위조지폐는 아예 국가단위 전략무기가 되어버리게 되는데... #위조지폐 #베른하르트작전 #2차대전
@Osurkra ㅋㅋ 미국돈 중요한거 알겠는데 그럼 뭐 한국 원 없어야 하나? 미국 달러가 그렇게 중요하면 다 달러 쓰면 되는데 왜 나라마다 화폐단위가 있고 EU는 유로 단위를 쓸까? 기승전 IMF하기전에 나라 기본틀을 유지하는건 그 나라 화폐단위임 나라가 부국해지면 그만큼 화폐의 가치도 올라가는거고 미국 달러만 찬양하기 전에 왜 국가마다 화폐단위가 있는지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4:15 여기서 보시면, 숫자 2가 우리가 아는 모양이 아니죠? 여기에 대해 설명하자면 고대에 중국은 위조지폐나 문서위조를 방지하기 위해서 한자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옛날 중국인들이 장부 기록을 하다 가만보니까, 一,三,十,百,千, 이런 한자들이 너무 단순하게 생겼고 겹치는 부분이 많으니까 위조가 쉬워질 것 같은거에요. 그래서 새로 더 복잡한 모양의 한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갖은자라고 합니다. 이런 갖은자가 법제화된 것은 명나라 때의 일입니다. 다만 영상에서도 보이다시피 그 이전에도 갖은자는 계속 쓰여왔었습니다. 보통 위에서 설명했듯 원래의 모습을 복잡하게 만든 것이 갖은자가 되지만, 간혹 萬과 零처럼 원래의 자가 갖은자의 역할을 하고, 새로 만든 속자나 약자, 간화자, 이체자가 일반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이런 경우는 갖은자라고 말하지 않지만, 아래의 목록에는 그것이 정자라는 표기와 함께 갖은자로 적었습니다. 아래는 각 숫자들의 일반자(왼쪽)와 갖은자(오른쪽)입니다. 0 〇(속자) 零(정자) 1 一 壹 2 二 貳 3 三 參 4 四 肆 5 五 伍 6 六 陸 7 七 漆 8 八 捌 9 九 玖 10 十 拾 100 百 佰 1000 千 仟 10000 万(속자) 萬(정자)
송나라 시기 처음 만들어진 지폐는 처음에 송 정부에서 만들어 사용하던 것이 아니고 운하를 통해 전국적인 산업망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대상인들이 거대해진 상업조직을 각 지역에 거점을 두면서 장사를 하게 됩니다. 이들을 '행'이라고 칭하고 '행'은 현재 은행등의 단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건을 운반할 때, 상인들이 직접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고용해서 맡기게 되었는데, 구리로 된 동전의 무게가 너무 무거우면 물건을 옮겨주고 나서 물건을 또 옮기는 셈이었기 때문에 너무 무거우니까 어음의 형식으로 증서를 주게되는 것이 시초였습니다. 이것을 송정부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상인들에게 물품을 국가에 납부하라고 한 뒤에 그 대금으로 지급하게 된 것이 '교자'이고 이것이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행한 첫 지폐입니다. 기존에는 그 문서에 받은이의 이름이 적혀있었지만 이것에는 적혀있지 않고, 국가에게 받은 교자를 공식적으로 교환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같은 값을 받고 넘기면, 그 사람은 국가에 가서 돈과 교환하면 되었습니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이름을 적어둔 것이 아니기에 누가 가져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송의 경제력이 커질 수록 사례가 늘어나면서 지폐의 사용도 늘어나게 됩니다.
이런거 보면 중국은 민간에서 굉장히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문화와 기술 시스템이 발생하는데 중앙에서 항상 아예 그런 것들을 싹다 통제하고 심지어는 모두 없애버리니까 발전이 없는거 같음. 문자의 옥, 청나라의 지배,분서갱유, 문화대혁명, 그리고 지금의 시진핑까지 자국의 경제와 문화,기술의 발전을 항상 중앙에서 조져놓음
2:23 고대 금화에서도 갈려있는 부분을 최대한 막기 위해 테두리에 쩜무늬를 넣었긴 했죠. '이 이상 갈아버림 가만 안둬!' 라는 경계표시랄까...근데 그거로도 한계가 있어서 뉴튼의 그거 이전까지는 못막았는데 그 이유가...이전엔 주조 방법이 아니라 프레스 내지는 도안이 새겨진 망치로 금속을 때려(압력줘서) 만든 방법이라...테두리 쩜무늬가 그나마 최선이었던거죠. 3:32 신용화폐의 초기적인 형태는 ... 사실 최초의 초기적인 형태의 신용 화폐는 야프섬의(미크로네시아에 있음) 돌 화폐를 치죠. 정확히 말하자면 돌 화폐중에서 '잃어버린 거대 돌'인데 야프섬은 원래 돌이 나지 않아서 다른 '돌이 있는 섬'에 가서 돌을 '야프 섬에서 인정하는 화폐 형태'로 가공해서 가지고 와야 하는데 그 운반 난이도가 높아지면(돌이 크면 클수록) 가치가 컸습니다. 그런데 야프섬에서 가장 큰 부자들은 돈(화폐로 인정받는 돌)을 안가지고 다녔습니다. 돈(돌)을 만든 사람의 마당에 그 돈(돌)을 놓고 소유권의 이전 형태로 거래를 했고, 이 과정에서 심지어는 이 섬의 가장 큰 부자는 집 마당에 돈(돌)이 없어서 그 섬의 화폐를 연구하는 미국 학자가 알아보니 돈(돌)을 만들어서 야프 섬으로 가져오다가 폭풍을 만나 그 돈(돌)이 바닷속에 가라앉았는데 워낙에 그 돈(돌)을 본 목격자가 많았기 때문에 ㅇㅇ 그 돈(돌) '실제로 있음' 으로 인정해서 '그 섬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돈(돌)을 인정하는' 형태로 해서 실거래가 됩니다. 이게 최초의 초기적인 신용화폐 형태로 인정되고 있습니다만...이 영상에선 다뤄주지 않았네요. 미크로네시아라는 태평양의 잘 알려지지 않은 특정 섬의 예라서 소개를 안하신거 같습니다.(이거까지 소개하면 너무 길어지니까요) 5:25 위조지폐 만들어서 뿌렸는데 안망하고 되려 중앙정부에서 돈 더 찍어내 버려서 스스로 인플레를 일으켜버린 나라가 있습니다. 중일전쟁때의 중국...일본이 40십억 위안의 위조지폐를 만들어서 뿌려댔는데 장개석정부가 일본이 뿌린 위조지폐양보다 더 법정화폐를 만들어서 뿌려버리는 방법을 써서(무려 1890억 위안을 뿌려댐...) 국가경재를 셀프 멸망으로 가버렸던 껀수가 있긴 합니다만...오죽하면 그 작전을 책임진 일본 정부관리가 질려버렸다고 하죠. 베른하르트 작전의 경우는...영상에 소개한 것 외에도 영국의 화폐 제도 자체를 바꿔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의 영국의 화폐 단위는 파운드와 펜스인데 2차대전때만 해도 중간에 '쉴링' 이라는 단위가 있었지요, '80일간의 세계일주'등 그 당시에 나온 소설들에서 나오는 단위요. 베른하르트 작전으로 나온 여파로 아예 화폐단위 자체를 손봐야 했던 '리셋'까지 했지요. 이 '리셋'을 1960년대에 했는데도 구권>신권 교환 문제로 인해 더 오랫동안 영국 경제를 괴롭힌 겁니다. 말이 1980년대까지지 실제로는 1990년대가 되서야 이 부분을 겨우 수습했다고 하니 원... 특이한 사례로는 위조지폐가 진짜 지폐보다 품질이 좋아서 위조지폐가 더 잘 통용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이런 '실패' 상태를 만든건 프랑스 정보국...아 진짜 얘네들 2차대전때부터 제대로 이긴 전쟁이 없는게 여기서도 드러나는...
3:56 근데 이게 나중에 원나라와 그 건너편에 있던 식민지 였던 고려와 왜국에게 큰 타격을 주고 말죠. 특히 고려와 그 고려의 뒤를 잇는 조선이 사농공상에 빠지게 만드는 악영향을 끼치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징기스칸 사후 몽골은 유럽을 정벌하기 시작했고 정벌 과정에서 몽골군에 의해 유럽과 중동 지역에 퍼진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국가들이 하나둘씩 무너졌고 이일로 몽골제국, 즉 원나라는 그렇게도 원했던 유럽과의 무역을 하지 못하는 동시에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던 국제무역루트 이자 국제 커뮤니케이션 역할을 하던 실크로드를 영원히 잃고 마는데 수천년동안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던 실크로드가 흑사병으로 파괴 되면서 유럽 & 중동과 실크로드를 통한 국제무역을 하던 원나라의 경제는 하루아침에 무너짐. 그리고 원나라 조정에서는 그 피해를 수습한다며 그 당시 달러급으로 위상이 높던 지폐인 교죠를 마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라이히마르크 & 짐바브웨의 짐비브웨 달러 처럼 찍어대다 결국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오면서 당시 원나라 처럼 해상무역과 국제무역으로 먹고살던 고려와 일본에겐 크나큰 재앙과도 같았음. 당장 먹고 살아야하는데 무역로가 끊어진 동시에 국제화처럼 사용한 교죠가 휴짓조각이 되어 재정이 바닥나고, 이에 생계인 무역이 휘청 이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음. 이해 못하면 지금 코로나 시국으로 무너진 경제와 휘청이는 기업 & 자영업자들을 보면 알죠. 더군다나 고려는 옆나라 일본에서 잦은 내전과 무역로가 끊여서 바닷가 어민과 농민들이 뭉쳐저 생겼다가 그후로는 군대급 으로 커진 왜구와 원나라의 부마국 고려가 꼴같이 여긴 한족 중심 홍건적 같은 연쇄적인 외세의 침략으로 벽란도 같이 국내의 최대의 무역로 역할을 한 항구와 그 인근 도시들을 파괴하고,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팔던 상인들과 장인들이 죽거나, 외적에게 포로가 되거나, 본업을 버리고 유랑생활을 하는 등 공중분해 되는 총체적인 재앙으로 공업과 무역이 파괴되고 그동안 상업으로 국고를 채웠던 고려는 재정 파탄으로 붕괴 직전으로 갔음. 이때 당시 사태의 해결이 바로 농업공동체를 주장한 신진사대부들이 정계에 부상하게 되고 후일 이들이 이성계를 추축으로 조선을 건국하면서 과거 고려가 상업 중심의 경제 인프라가 양날의 검으로 돌아가 고려를 파탄난 것을 두 눈으로 본 성리학자들은 상업에 투자하는걸 꺼렸고 농업 위주의 자급자족적 정책을 내세웠고 결국 조선은 사농공상이 들어서게 되죠. 여담이지만 원나라가 무너지고 세워진 명나라도 조선과 똑같이 자급자족을 하는 사회로 돌아갔으며 왜구들 때문에 해금령을 내려 해상무역은 축소 할수밖에 없었음. 설사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상업을 양성할 마인드가 있었다해도 해금령과 주변국의 쇄국정책 때문에 못했음. 그리고 조선 조정에서는 흩어진 이들 장인들이 또 다시 흩어지는걸 사전에 막고 이들 가업을 잇기 위해 이들을 국가에서 보호하기 위해 관에서 이들 장인을 운영하는 관영수공업을 채택함. 물론 조선 중기에 성종 제위기에 가면 민간수공업이 되살아나지만요.
7:27 나치 독일의 전전 영토를 정확하게 표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방송국 보면 저기고 여기고 나치 독일 얘기할때 현재의 독일영토로만 표기하는거 보고 정말 기가 찼었는데 말이죠 얼마나 수준이 떨어지면 방송국에서 그 모양인지 참.. 역시 믿고 보는 지식해적단입니다.
현대 금융의 주식은 모르겠지만, 유한책임, 즉 limited liability 의 개념은 네덜란드 동남아시아 무역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서 태어난걸로 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막 검색해보니 이런 저널도 나오네요 "A new understanding of the history of limited liability: an invitation for theoretical reframing" (Harris, 2020) 확실히 유한 책임에 대한 역사는 아직도 누가 먼저다 얘기하는거 보면 계속 역사적으로 발굴되는게 있는가 봅니다.
국내의 경우 고액권을 안만드는 이유로는 위폐로 인한 수지타산의 이유보다는 세금징수 및 암흑경제를 조장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폐의 금액이 커질수록 현금 보관효율이 두배이상 높아지기 때문에 양은 적지만 금액은 커서, 시장에 풀리는 돈에 비해 회수율이 적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또, 금액이 크면 추적이 가능한 수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됨으로 돈의 출처와 사용처를 밝히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큰 거래를 현금으로 할 가능성이 높아짐으로 국가에서 세금을 징수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한때, 한국은행에서 10만원권 발행을 계획했으나, 5만원 발행이후 위와 같은 문제가 너무나도 많이 발생하고(마늘밭 사건 등) 우려하여, 현재 발행계획을 미추진하고 있습니다.
어유. 진짜 동전 무게. 이거 몇천원 정도 까지면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도 있겠지만,... 몇만원 어치쯤 되면 양도 양이고 묵직해서 웬만한 주머니에 넣었다간 찢어지는 게 이상하지도 않을 정도죠. 몇번 어른 남성 머리크기쯤 되는 양을 담을 수 있는 자루에 가득 담은 동전 들고 은행 가서 지폐로 바꾸려고 했을 때. 자루가 얼마나 묵직했던지. 이거 휘둘러서 사람 머리 맞으면 뼈 부숴지지 싶은 무게감을 느꼈습니다... 괜히 돈자루 휘둘러서 강도 퇴치 했다는 게 설득력이 없는 게 아니었어요. 무게의 문제 때문에 등장할 수 밖에 없었던 지폐지만,... 사기는 진짜 참 더 많아졌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류와 떨어질 수 없게 되었죠... 전자 화폐가 이 위치를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부작용이 금새 드러난 이상. 이 방법도 뭔가 기술적으로 더 나아지기 전 까진 소용이 없겠죠.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항상 재밌게 보고 있는 어른이 입니다. 중학생인 아들하고 같이 봤는데 평소엔 이런 주제에 관심도 안 갖더니 이 영상은 아주 열심히 보더군요. 그러면서 도중에 인플레이션이 뭐냐고 물어보는데 제가 한마디로 설명을 해 주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는데 인플레이션에 관한 영상 한번 부탁드려도 될지요. 마침 전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인데 시의 적절한 영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울러서 우리 아들도 지식해적단 영상을 열심히 보고 있으니 공부도 될 것 같고요. ^^
님이 궁금해 하시는건 정확히는 인플레이션인 아닌 QE(Quantitative Easing) 인거 갔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우리가 알다 싶히 양이 많아져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QE는 연준의장 앨랜 그린스펀이 제시한 해결책으로 2008년의 경제위기 여파를 타파하기 위해 태어난 정책입니다. (앨랜 그린스펀도 이 정책이 어떻게 미래에 반영될지 모르는건 안비밀.) QE란 간단히 말하면 경제 상황이 좋아질때 까지만 계속 돈을 뽑고 그 돈으로 회사들을 구제하자 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였지요. 그래서 맨처음에는 미 연준이 '내가 돈을 언제까진 뽑아야될지는 모르지만 물가상승률이 2.3%가 최적이니깐 그게 넘을 때 까지는 회사 부채들을 사야겠다' 라면서 회사 부실 채권들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미연준이 기대하고 있던건 '내가 이렇게 제내들이 실수를 만회해주면 그 돈으로 정신 차리고 다시 자신들의 회사들을 살리겠지? 그러면 투자를 할거고, 그러면 그 투자로 돈이 민간에 들어가니깐 이게 잘 먹히면 물가상승률에 반영이 되겠지?' 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왠걸? 돈을 쏟아부워도 인플레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회사들은 자기네 주주들한테만 잘 보일려고 했고 (share holder value maximization theory에 영향이 큽니다.) 그래서 그 돈들을 자기 주식을 사서 자기네 주식 가격을 올리거나 아니면 다른 회사에 투자 혹은 회사 높으신 분들은 자기네들 주머니로 돌아가서 냠냠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일들이 일어날걸 예상해서 이미 경제학자들은 "회사 그만 처 구제해주고 이 돈들은 시민들 한명 한명에데 돌아가야 경제가 산다. 일어다가는 나중에 주식시장/채권시장에 있는 돈들이 다 민간에게 풀어지게 되면 우리 모두다 죽어!" 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10년동안 쌩 깠습니다. (물론 코로나 이전에 유럽은 잠시 QE를 멈춘적이 있지만... 코로나때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죽 돈을 쏟아 부웠으면 미국이 2차대전때 찍어버린 돈의 액수가 넘을 때 (정확히는 코로나의 경제적 여파을 막기위해 다시 QE를 꺼냈을때) 몇몇 경제학자들은 우린 지금 전시 경제체제에 있다고 했지요 QE는 약 13년동안 지속이 되었는데요, 나머지 3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미정부가 (정확히는 트럼프 시절) 나서서 직접 민간에게 돈을 뿌리기로 결정했지요. 그리고 이 정책은 바이든 임기 초기 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일은 터졌지요....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8.5% (2021 3월부터 2022 3월까지) 이고 이건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물가 상승률이 였지요. (항상 물가 상승률의 적정 상승률은 2% ~ 2.3%) 즉 경제학자들이 맞았습니다. 금융시장에 돈을 뿌리면 뿌릴수록 금융시장에 있는 사람들만 핵이득 이고, 그리고 그 돈들은 민간한테 직접 풀지 않는 이상 계속 주식시장, 채권시장, 부동산 시장에 돌아다닐거라는 학자들의 예측이 정확했던거지요. 지금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은 주식시장/채권시장/부동산시장에 묶여 있는 돈이 민간경제로 풀어져서 더 큰 인플레이션을 만드는 겁니다. 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인플레이션에 대해 해결책이 있을까요? 화폐개혁이나 리도니메이션을 해야되는데 둘다 경제적 타격이 많이 큽니다. (그와중에 어떠한 이유로 시민들이 그 화폐를 쓰지 않는다면 ㄷㄷㄷㄷ) 그리고 이미 2019년에 부자들은 (뭐 정확히는 모건 스탠리 그리고 다른 투자 은행들) 이미 10% 이상 상당을 금이랑 은 현물로 바꾸어 놓아서 그들은 솔직히 걱정 없고요.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고 있지 않은 걱정스러운 사실이 있는데 바로 13년동안 정부의 QE짓으로 투자자들이 투기꾼 성향으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회사의 fundamental (기반)을 보고 회사의 리더쉽, 그 회사의 브랜딩과 competitive edge 그리고 미래의 가치가 높아질수 있는 계획들을 보고 사람들이 투자 했는데.... 지금은 wall street bets 처럼 yolo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즉 예전에는 어느정도 주식의 방향이 예측 되었지만, 거의 도박장으로 바뀐 주식시장은....... 즉 투자자들에게 더 큰 아노미를 불러왔지요. 앨런그린 스펀은 지금 노후를 아주 편하게 보내고 있겠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 저사전에 그렇게 썼거든요). 한마디로 2008년의 경제 여파를 어떻게던 딜레이를 해서 미래에 해결방안이 마련될수 있도록 시간을 벌수 있게 한 정책이 QE입니다. 2008년때 세계는 경제 여파를 그대로 받아드려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QE라는 진통제를 전세계 경제에 처방하여 모든게 괜찮다고 느껴지게 했지요 (솔직히 13년도 굉장히 길게 간겁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우리는 2008년의 여파를 뒤집어 쓰게 될겁니다. 아, 물론 그걸 해결할것은 밀레니얼세대랑 GEN Z 세대입니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나때는 말이야"를 비웃고 서양에서도 OKAY BOOMER (여기에서 부머는 베이비 부머 세대를 뜻합니다) 라고 무시하기도 하지요. 왜냐하면 부머들은 자신들의 현제 경제 사정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이 저지른 경제 실수를 미래 세대로 떠밀었기 때문이지요.
‘베른하르트 작전이야기’ mbc 서프라이즈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또 보니 새롭네요. 그리고 미국달러 위조이야기를 보니 홍콩영화 ‘영웅본색’이 생각나네요. 영화 첫 장면에서 주윤발과 적룡이 비밀아지트에 가서 미국달러 위조지폐를 가져가는 장면이 나와요. 여기서 주윤발이 위조지폐로 담뱃불을 부치는 장면이 나와요.
2천년대 초반, 국내의 모 은행사는 한국인 위조지폐 감별사가 수백장의 100달러 중에 슈퍼노트가 숨어있는걸 찾아내는 광고로 홍보효과를 봤지요. 실제로 그 분은 30년 넘게 위폐감별사 업무를 하면서, 시각적인 감별은 물론이고 후각과 촉각까지 이용한 감별법을 터득해왔기 때문에 FBI와 시크릿 서비스에 여러번 정보교류 요원으로 활동했지요. 이 활동들 중에 레전드는 '미 연준이 위폐로 감정한 지폐가 사실은 진짜 지폐였다'는 것으로 이는 미 의회가 청문회를 따로 열어서 그걸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를 물어봤을 정도였다 하네요. 근데? 청문회 열던 당시에 그 분은 이미 은퇴하고 몇 안되는 후계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