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실님 응원 합니다. 저도 엄맞착한 치매로 6년째 모시는데 작년에 폐렴에 패혈증 쇼크와서 병원에 계시다가 담당의사 말 듣고 요양병원에 2달 모셨는데 문안갈때마다 보고 있기 너무 맘이 아파서 집으로 모시고 왔는데 솔직히 힘은 많이 들고 저만의 시간은 없는데 친정엄마 볼때 마다 엄만 내가 어렸을적 지극정성으로 키우고 내가 아프면 우시면서 간호 했는데 난 이거하나 못 하냐하는 맘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오영실님 말씀처럼 엄만 젊은 시절을 받쳐 날 키우셨으니 난 내 중년을 받쳐서 엄마랑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응원 할게요.
저도 착한치매에걸린 친정엄마랑 18년을 살았는데 전 어릴때받은것 다돌려 드린다 생각했어요 엄마 머리감겨드릴때 목욕시켜드릴때 빨래할때 똥치울때 모든것을 내가 어릴때 받은것 다돌려드린다는 생각이 엄청들었습니다 돌아가실때도 집에서 가셨습니다 지금은 너무많이 마음이홀가분하고 내가 지금요양보호사로 일하다보니 많은 생각이듭니다 집에서 끝까지 모시길 정말잘했구나 혼자많의 뿌듯함이있슴니다 끝까지 집에서모셔보세요 가시고 나면은 덜 후회습럽께지요 내어릴때 받은것 다돌려 드린다고 생각하면 할만합니다
저도요... 아버지 뒷처리 불편하실까.. 배고프신가 혹시 마음이 무거우실까 그냥 오늘도 말벗해드리고 아버지의 삶을 그어떤 위인보다 위대하고 열심히 잘 사셨고 우리 7남매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매일 얘기해드려요~~ 어머니 가신지 3년 우리아버지는 깔끔하고 부지런하고 솔직하신성격이라 저도 나의 어린시절 받은걸 돌려드린다 생각하며 매일 웃고 장난치고 응석부린답니다 딸집에 와계신동안 매일매일 웃으라고 춤도 춥니다~~~ 사랑해요 고*선~ 나의 아버지 그대를 존경합니다♡
오영실님..어쩜 저랑 똑같은 마음을 갖고 계시네요.. 저도 그렇게 엄마가 가여워서 내새끼마냥 보살펴드렸어요.. 마지막엔 대소변까지 다 치워드려야했지만 그냥 애기로 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뽀뽀도 쪽쪽해주고 수시로 안아주고요.. 지난 1월에 99세로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는데요.. 그립지만 여한은 없어요.. 얼마나 걸릴 지는 모르겠지만 치매시라면 그 진행되는 과정들을 미리미리 공부해두시면 좋아요.. 꼬옥 안아드리고 싶네요❤
어린 딸 가진 입장에서 내 자식이 치매걸린 나를 모시면서 고통 받는게 싫네요… 그냥 병원에 두고 가끔씩 찾아와서 얼굴 보고만 가도 좋을거같아요. 자식은 자식 인생 살아야한다고 생각해요… 치매걸린 할아버지 자식들이 돌보면서 몸과 정신이 망가지는 모습 너무 절실히 봤어요.. 오랜 간병이여서 결혼도 못하고 혼자 남는 사람도 봤는데… 맘대로 되진 않겠지만 치매 안걸리도록 내 건강 내 노후는 자식위해서 노력해야겠네요.. 오영실씨를 비롯해 부모간병을 하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맞아요. 자식된 도리라고 집에서 간병하는거 절대 말리고 싶네요. 지나고보니 누구나 나이들어 병 걸려 돌아가시는건데.. 요양원에서 계시는거 맘 아파서 집에서 10년 간병하다 골병들고 회복이 안되어 삶이 피폐합니다. 처음부터 10년 해야되는 거라고 누군가 알려줬다면 시작도 못했을텐데...그렇게 망가진 내 삶이 너무 안타까워요. 모시는 당시 사람들이 니 삶을 살아라 말해줘도, 모르고 그냥 고생하며 모셨는데..지금 돌아보니 괜히 했다는 후회만 듭니다. 각자 알아서 할일이지만, 제 경우를 돌아보면 집에서 독박 간병 정말 말리고 싶어요.
양가 5남매중 막내이지만 저희도 마지막엔 양가 어머니를 다 모시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님은 요양원1년 생활에 뼈만 앙상하시구 밖에 나와서 생활하고 싶다 하셔도 아들딸 며느리 다 외면해서 막내며느리인 제가 우겨서 집으로 모셨지요. 친정엄마도 치매가 오셔... 또 모시게 되었지요. 올케도 있구 언니도 둘이나 있어도,...
친정어머니 일년모시다 코로나로 돌아가셨는데 이제 일년 넘었는데 아직 매일웁니다 95세에 가셨지 만 정말 지금도 안타깝고 슬퍼요 옆에서 안모신 언니 와 동생은 슬프지 않다네요 3년만 더 사셨어도 이렇게 안타깝진 않았을텐데 아쉬 운게 너무많아요 집에서 돌아가시게 모셨는데 이게 옳은건지 차라리 요양병원 에 모셔 가끔봤으면 덜슬픈 건지 모르겠지만 아직 3년이안되어그런지 매일 울게하네요 70세가 가까워 오는데도 친정엄마 아버지 가 제일 보고싶네요 혼자 애둘 다키워놓고 이제 살만 한데 부모님한테 잘할 시간이없었던게 아쉬워요
공감가는게 많네요 냉면 못드시게하신거 말씀하시면서 우시는게 정말 공감가네요 저는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몇달전에 식사를 잘 못하셔서 공진단을 사드렸어요 다 드시고는 이거 괜찮다고 또 사다달라시는거에요 그래서 아버지 간암이시라 한약 많이 드시면 안좋아요 그랬거든요 돌아가신 후에 그게 너무 생각이 나더라구요..제가 너무 생각이 짧고 못났던거죠 드시고싶은거 다 드시게 해드릴걸..
경험자들 말씀이 맞아요 그냥하는거다 초5학년~중2까지 할머니를 간병했었는데... 나에게는 당연한거였어요 저도 가끔은 할머니에게 큰소리로 제발 그만 나 밥 좀 먹게... 심부름시킬때 한번에 시키라고 왜 꼭 내가 먹을때 그러냐하면서 소리질렀던게 지금도 그게 슬퍼요 송도순선생님처럼 톤도 그랬어요 똥 오줌 다 받아냈었답니다 더럽다 생각해본적은 없지만 정신은 멀쩡하고 깔끔하신할머니 40kg밖에 안되는 나 매일 침대시트까지 바꿔야해서 힘들었고 일주일에 4일은 머리까지 감겨 드렸어요 침대에서 누운상태로... (몇달씨고 학교도 못가고... 할머니 일어나서 걷지를 못하셨어요) 진짜 냄새에 익숙해져야합니다 아무리 깔끔 떨어도 냄새납니다 똥으로 난을 치지는 않았지만... 돌아가시기전 며칠전에 목욕시켜드리고 손발톱 짤라드리고 화장품발라드리고... 내가 피곤해서 잠들었는데 서걱서걱 소리가나서 눈을 떠보니 생일선물로 옷을 제가 사드렸는데 그걸 막 갈기갈기 자르고 계셨어요 왜그러냐고 말렸는데 이거 5만원인가 돈을 제게 던져주면서 계속 옷을 찢었어요 제가 울고불고하니깐 나 죽으면 너보러갈께 그러셨어요 그런말하지말라고했는데 며칠뒤 진짜로 내꿈에 내이름만 불렀어요 누군지 보이지도 않고 까만배경에 누워있는모습 진짜 그날 새벽에 돌아가셨답니다 찢었던 옷이 마지막생일선물이였어요 지금도 더 잘해드리지 못한걸 후회합니다
인간 심리가 묘한게 그래도 자기 혈육이면 적어도 그다지 더럽게 여겨지거나 심하게 비위가 상하진 않아요 그저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들 뿐이죠 오영실씨 결정 잘하셨어요! 다만 현명하게 하시길 바래요 알아서 잘 하실 테지만 혼자 독박 간병은 안되시는거 아시죠? 그러다 병 얻습니다 부디 형제자매간에 서로 분담 및 시간제 간병인 도움 협력 하에 진행 하셔야 잘 버틸수 있어요 평생 마음에 남을수 있는 일이라 차마 마다하지 못하시는건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몹시 힘이 드실땐 예전 좋았던 추억이나 기억들도 떠올려 가며 어머님을 바라보시면 그나마 마음이 진정 되실 겁니다 저도 나름 애를 썼지만 그럼에도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 부분이 많더군요 때론 그 분이 그립고 또한 죄송하고 안타까운 짠한 마음이 평생 갈것 같습니다 부디 힘내시길 바랍니다
처을 각오와는 달리 화도 많이 나고 억울 할때도 있을 수 있고 나쁜 습관 같은 걸 고쳐보려고 애쓰지 마세요. 꼭 아무리 얘기해도 무시하고 안듣 것 같이 보여서 울화통 터질 수도 있고요 단지 잊어버리기 때문에 똑 같은걸 반복허신다는걸 시간이 흐르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그냥 다 받아 주니 편안해지고 어머니가 예뻐보이기 시작 하더라고요
그런가 보더라구요 귀엽고 예뻐 보이는것 그렇지 않으면 못하지요 제남동생 엄마 아파서 간호할때 50넘은 남자가 엄마 얼굴 감싸안고 뽀뽀 하더라구요 저는 뽀뽀까진 아니고 똥이 더럽다는 생각 하나도 안들고 시원 하시겠다란 마음만 들더라구요 내여동생,언니는 입 삐죽거리며 짜증내며 마지못해 간호 하더군요 그건 애정이 있나 없나 차이예요 제남동생은 엄마한테 막내로서 사랑 엄청 받았고 아직까지도 사랑 받고 있네요 저도 제기억에 엄마한테 사랑을 좀 받았다 생각드니 엄마가 애처롭고 성심껏 보살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부모한테 사랑받은 기억이 없거나 잊은사람은 요즘 같은 세상에 병간호 하려하지 않아요 내몸도 힘들다...부모가 이기적이다...왜자식 고생시키느냐 하는 소리 합니다
어머님께는 무조건 잘 해드려야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건 하늘의 명령입니다 저는 친정어머니가 64세에 당뇨,고혈압 합병증으로 간뇌 손상이 되어 반신마비, 언어장애, 삼키는 기능이 안 된 상태로 처음에는 3년 동안 병원에 계셨고 간간히 위급시에는 입원도 하셨지만 7년 전 30년 투병 후 94세에 천국에 가셨습니다 어머니를 모시는 건 간단히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 따지고 복잡한 일이 아닙니다 저렇게 누워계신 분은 얼마나 힘드실까 그 생각을 하면 건강한 자식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주신 사랑을 만 분의 일이라도 갚는다고 그 마음이면 되지 않을까요 저는 크리스챤이라 늘 일어서실 거라는 희망을 갖고 기도하며 지냈어요 사랑하는 어머니가 우리 집 예수님이라고 생각했지요 우리 친정은 딸이 많아 그것도 결혼 안한 동생들이 있어 나누어서 어머니를 돌보았습니다 후에는 건물을 지어 한 층씩 나누어 살며 어머니와 가까이서 지냈고, 살림을 합쳐 같이 살기도 했습니다 다행이 가실 때까지 치매는 안 왔어요 남편도 부모님이 우선 순위라고 도와주었습니다 ㅜ 어머니가 100세 까지만 우리 곁에 계시길 기도했지만 점점 약해지시며 94세에 천국으로 가신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친정 아버지는 96세에 2년 전 떠나셨는데 코로나로 입원 중 갑자기 가셔서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부모님을 향해서는 모든 것이 잘못 한 것이 많아서 사랑을 다드리지 못해서 아쉽고 죄송함이 늘 마음을 짓누릅니다 저는 부모님이 편찮으셔도 한 번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도 요즘은 입원할 때마다 퇴원을 종용하고 구박을 받고 나가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욕심인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시설의 장점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사랑이 있는 가족이 돌보는 것이 뭐래도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부모님이 계신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아무리 불러도 정답고 그립고 보고싶은 부모님입니다
잘했어요. 많은 사람이, 받을 때는 좋아하지만, 감사함을 표현하는 데는, 극히 소극적이죠. 너무너무, 잘 하시는 거에요. 좋으 줄, 알면서도 실천을 잘, 못하는게, 인간인듯 . . . 모두 다, 인생을 잘 살아 낼수는 없죠. 모두, 못하는 걸, 하는 당신이, 훌륭한거죠. 언젠가, 하나님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주시겠죠. 사랑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이여 !
미국 이민 1 세로 미국서 결혼했다가 1 년 반 만에 “ 맘에 않든다는” 이유로 서울대 나온 시어머니 때문에 이혼 당했죠 . 7 개월 짜리 아들을 데리고 미국 온지 7 년만에 나이 26 살 부터 홀로 서기 해서 정신없이 살다보니 제 나이는 60. 친정 어머니 87 세 가 옆에 계시는데 미국에 좋은 양로원도 많은데. 자신은 절대 안간다고 하고. 제 인생만 돌아봐도 너무 억울한데, 어머니도 모셔야 한단는 게 서럽게만 느껴졌읍니다. 하지만 일제말, 육이오, 미국으로 이민, 역풍을 동력으로 삼아 살아남아야 했던 어머니 세대를 생각하면 인생의 선배 이심을 알게됩니다 . 포기하지 않고 살아오신 그 의리 , 저도 배워서 그 의리 지켜보겠읍니다.
치매부모님 간병은 너무 힘듭니다. 저는 진심으로 이겨내고 싶습니다. 평범한것도 부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버겁고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하게 나를 챙기며 미래를 준비하는 게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긴 글 싫으시면 넘겨주세요❌️ 저는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수면장애 무기력증을 1년째 대학병원에서 치료중이었는데 증세가 변하면서 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치고 아프고 삶을 놓고싶습니다. 약을먹어도 잠에 들기가 힘들고 잠에 들어도 악몽에 잠이 깨버립니다. 저에게 상처를 입힐까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까 저도 제가 무섭습니다. 조울증 진단이후 너무너무 우울합니다. 아버지께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받았고 폭력가정에서 생존한 생존자입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는 폭군이었고 밖에선 호인셨습니다. 집에선 엄마와 저에게 🔪을 휘두르지만 밖에선 선비셨습니다. 저에겐 너무 무서운사람 이었지만 밖에선 착한사람 이었습니다. 목을조르고 머리를 벽이나 땅에 찧고 머리를 발로 밟으며 폭행했습니다. 저를 죽이려고 하셨던 분 입니다. 저는 부모님에 소모품으로 자랐고 지금은 홀로 남겨져 저를 챙기고 있습니다. 세상 중심이 부모님셨고 이제 제 세상을 살아야하는데 낮설고 힘들고 버겁습니다. 버려진 기분이었습니다. 이해가 안가실겁니다. 아버지는 끝까지 당당하셨고 "내가 그럴리가 없겠지만 만약 내가 그랬다면 니가 맞을짓을 해서 내가 때렸겠지 나는 이유없이 때릴사람이 아니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원망도 안하고 싶지만 용서도 안하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 많이 아픕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늘 열심히 하고 잘 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간호사로 시작했지만 집 안 사정상 부모님 케어 때문에 이렇다할 커리어를 쌓지 못하고 간호조무사로 일 하다가 부모님 간병하며 요양보호사까지 섭렵했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나이차이가 많이 납니다. 폭력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생존한 생존자이고 아버지는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휘두르셨고 어머니와 저는 생존했습니다. 아버지는 끝까지 당당하셨습니다. 너무 사소한 일에 무지막지한 폭력이 이어졌습니다. 하루하루 불안했고 무서웠습니다. 이제 어머니가 제 뒤로 숨으실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이제는 이해합니다. 어린나이에도 어머니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나 봅니다. 아버지가 워낙 무서우셨으니까요. 차라리 제가 세상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하고 빌었습니다. 자살시도도 여러번 하고 자해도 많이 했었습니다. 미래가 무서웠고 내일이 무서워서 였습니다. 자해는 버릇이 됩니다. 충동을 자해로 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서 17년전 알츠하이머와 신경성치매에 걸리셔서 두분 모두 요양등급 3등급이셨습니다. 두 분을 혼자 모시기엔 저를, 제 삶을 잃는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식에 도리를 했고 제 선택이었습니다. 나중엔 직장도 그만두고 부모님을 동시에 식사챙기고 씻기고 재활까지 두 분 모두 동시에 대,소변을 받아가며 독박간병하고 이젠 홀로 남아 1인가구로 살고있는 무남독녀입니다. 그리곤 제가 무너져내렸습니다. 두통과 건망증으로 검사를 했다가 뇌동맥류를 3개나 발견하고 6.4mm만 응급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계속 다른 혈관문제가 생기며 몸이 도미노처럼 무너졌습니다. 아직도 제 머리속엔 뇌동맥류 2개가 남아있고 갑상선저하증도 갑자기 생기더니 《52kg 에서 73kg》20kg이상이 늘었습니다. 몸이 버겁고 아픕니다. 삶이 전쟁터 였고 지옥었던 제가 이제는 살고싶습니다. 죽고싶지만 살고싶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부모님을 챙기면서 저도 같이 챙겼을겁니다. 제 힘듦을 속으로만 삼키고 털어내지 못햇습니다. 그래서 아팟습니다. 교수님이 제 모든 병에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했습니다. 몸은 도미노처럼 빨리 무너지지만 다시 세우려면 오랜시간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그러니 미리미리 본인 건강을 챙기세요. "나"부터 챙기세요❤ 이기적인 게 아닙니다. 제가 건강해야 저와 가족을 돌볼수 있습니다. 이런 저라도 제 삶이 도움이 될까해서 책도 읽고 다른 분 영상도 많이 보고 사회복지사 공부도 시작했고 같이 성장하며 치유되고 싶습니다. 저도 아직은 계속 무너지지만 손 잡아주신 분들에 소중함과 고마움을 압니다💖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나눔과 소통에 소중함을 압니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되려 위로와 힘을 얻고있습니다💝 이런 저 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방은 하지마세요❌️❌️❌️❌️ 제 삶이 제 인생이 하소연이 아닌 누군가에겐 진심으로 위로나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