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께서 HID 초창기 간부셨고요. 북한에 침투하셨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가족들은 다 기자인줄 알았는데 수십 년 행방불명 됐다가... 노무현 정부 때 정보 공개로 돌아가신게 밝혀졌습니다. 정말 황당한 일이죠. 제 외삼촌도 군에서 작전중에 돌아가셨는데. 뒤늦게 저는 군 면제 받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미 군 제대 얼마 안 남은 때였죠. 국가 혜택으로 저한테 취업 우선 대상자로 10급 공무원 혜택을 준다고 했는데 일 없어서 거절했네요. 매년 현충일마다 참배하러 가면 커다란 비석에는 이름만 남은 애국 용사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그 가족들의 고통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존속하기 위해서 알게 모르게 많은 분들이 크게 희생하고 있다는 점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제 사촌형이 hid에 전역하셨습니다. 4년근무하셨으며 할머니 장례식에도 휴가를 못받으셨습니다. 지금은 공무원으로 근무하시구요. 주변에 hid이야기를하면 구라라고 말합니다. 저도 hid복무하고싶었지만 그때당시는 지원이아니라 논산에서 착출이었습니다. 정말 훈련 괴롭고 힘들다고합니다. 지독한훈련 처절한응징 이라는 사촌형의 군복의 글짜가 생각나네요. Hid근무하신분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분이 제 사촌형이랑 비슷한 시기에 생활하신거 같습니다.
남다른 곳이고 가고 싶어도 못가는 정보부대에 복무를 했고 비록 공무원은 되지 못했지만 앞으로 열심히 정직하게 잘 사실거라 믿습니다. 내 군생활 90년 초반에 모 사령부에 했지만 실제 정보부대원을 몇 명을 봤는데 장발에 사복을 입고 눈빛은 살기로 빤짝빤짝 빛나는 그모습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군요. 고생 많이 했습니다.
2006년인가 HID. UDU. OSI가 정보사로 편입되며 해상,육상 두개의 특작부대로 나뉜걸로 알고 있어요. 예전의 특작부대들은 생존률도 낮았고 보상도 안되서(뉴스엔 안 알려졌지만 정당한 보상을 위한 집회같은것도 많이 했어요.) 제대 후 용역쪽 일 많이 하셨습니다. 나라를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바친 분들께 존경심과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경찰은 원래 고등학교 기록부도 많이 보고 담임평가도 보고 정보과에서 다 뜯어 보고 특히 벌금형 등 범죄조회 상 뭐가 나오면 임용에 사실 “실질적으로 상당히” 불리하다고 보면 됩니다... 자기 길이 아니면 다른 길 가면 되죠! 개인적으러 군인들 중에선 특수부대 부사관들만은 일단 존경하고 보는데 수고하셨습니다.
해군UDU 지원하는부대 병사로 전역했는데 첩보부대원분들 고생많으십니다. 보면 채대나온 동네형 느낌인데 훈련하는거보면 저래서 UDU하는구나 하고 느껴지더군요 ㅋㅋㅋㅋ나름 군생활하면서 일반적으로 보지못한걸 봐서 새로웠습니다. 아직까지 전쟁이 정말 끝나지 않았구나 라고 확실히 느꼈던것 같습니다 ㅋㅋㅋㅋ 대한민국 육해공 병 부사관 장교 화이팅입니다.
옛날에는 돼지부대라고도 불렀습니다. 고성쪽에서 군생활 하신분들은 기억 하실거예요. 가끔 훈련소 기수들중에도 행군중에 돼지부대 사람들과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뭐랄까.............이 사람들은 우리랑 근본부터 다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죠. 살기라는게 이런걸 말하는거구나 하는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김김 4분인가 사복입고 회관 회식하러 왔다고 오셨는데 우리 어차피 조회해도 안나와~ 하시는데 계속 안나와서 같이 회식하시는 중령분 입구로 오셔서 같이 가셨어요 상급 기행 부대 있으니 707특임대 보고 정예부대 많이봤는데 707 특임대는 키 188 가까이되고 몸이 살인병기더라구요
제 지인 분이 경찰특공대 초기 멤버신데 북파 공작원 출신이셨다고 하더군요 복싱 하셨다가 신검 가니까 스카웃 제의 받고 입대 하셨는데 제대할 때까지 집에 연락 한번 못 해서 제대 후 가니까 가족들은 죽은 줄 알았다고 .... 훈련이 너무 가혹 해서 나이 드시니까 온몸이 골병 드셔서 거길 가셨던 걸 후회하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