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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창시자, ‘키에르케고르’ 

『인문교양심리철학』: 성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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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유럽 사람들은 인류를 전쟁의 재앙으로 몰아넣은 정의와 진보 같은 장밋빛 이념에 환멸을 느꼈다. 이념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며, 진정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삶과 자유임을 깨달은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이념에 대한 그릇된 확신을 거부하고 개인의 체험과 자유를 강조하는 새로운 철학이 유행하는데, 이것이 바로 실존주의이다. 그리고 이미 한 세기 전에 개인의 의지와 선택의 중요성을 외친 유럽 변두리의 한 철학자가 비로소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주목받았다. 이 사람이 바로 ‘신 앞에 선 단독자’, 키에르케고르(Soren. A. Kierkegaard)이다.
키에르케고르는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창시자로 추앙을 받았지만, 사실 그의 삶에는 그다지 극적인 장면이 없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 원해서(?) 실연을 당했고, 후에 이름난 작가가 되었다가 사회의 유명 인사들과의 끊임없는 논쟁에 휘말려 그 결과 과로로 쓰러짐.’
눈에 띄는 것들만 뽑아 본다면, 이 정도로 간단하게 정리되는 삶일 뿐이다. 그러나 내면을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면 그의 삶이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삶 전체가 엄청난 도덕적 갈등과 번뇌의 연속이었고 끊임없는 자기 반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합리론을 비판하고 신과 세상, 죄와 속죄 그리고 존재와 두려움에 대해서 고찰했다. 마침내 이러한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다.
키에르케고르는 1813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자수성가한 상인의 8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때 아버지의 나이는 쉰 일곱, 어머니는 마흔 세 살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고 한다. 키에르케고르가 후에 “내게는 어린 시절이 없었다.”라고 할 정도로 아버지는 그에게 신앙에 따른 엄격한 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엄숙함은 어떻게 보면 아버지 자신의 죄의식의 결과이기도 하였다. 그는 평생 죄의식에 시달릴 만한 일을 두 번 저질렀기 때문이다. 하나는 키에르케고르의 어머니와 결혼한 일이다. 원래 그의 어머니는 집안의 하녀였는데, 아버지와 혼인한 후 두 달 만에 첫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어떤 학자는 이를 강간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결혼이라고 보기도 한다. 당시의 교회 법은 재혼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이 결혼은 아버지의 두 번째 결혼이었다. 교회 법을 어기면서까지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리고 두 달 만에 낳은 아기는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을 남겼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자마자 신에게 저주의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그가 젊은 시절 서부 유틀란트의 황무지에서 한 가난한 소작인의 조수로 일을 할 때, 추위와 배고픔에 못 이겨 하늘에 대고 신을 저주한 일이다. 어느날 신이 자신의 고통과 가난에 무관심한 데 절망과 격분을 느껴 언덕 위에 올라가 준열하게 신을 저주했다. 아버지는 이 사건이 결국 그의 삶 전체를 ‘재앙’으로 가득 채우고 말았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무려 여든 두 살까지 살았고, 그 긴 생애 동안 두 명의 부인이 죽었고, 8남매 중 여섯 명이 죽는 것을 차례로 바라보며 괴로워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장수는 결코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코펜하겐에서 목재상을 하고 있던 삼촌에게 갔는데, 그때부터 사업이 번창하기 시작하여 죽을 때는 수도 코펜하겐에 5채의 집을 소유한 부자가 되었다. 1838년 아버지가 죽자 키에르케고르는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았으며, 그 덕분에 금전문제에 방해받지 않으면서 저술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후에, 코펜하겐 대학교의 신학과 학생이던 스물 두 살의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아버지의 비밀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를 원망하고 경멸하면서 방탕과 절망의 길로 빠져들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버지의 잘못으로 인한 신의 저주가 자신의 집안의 삶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고 확신하였고, 이 때문에 이후 그의 삶에는 ‘죄의 극복’이라는 과제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이러한 방황은 1837년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끝이 났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의 정신을 가다듬게 했다. 키에르케고르는 아버지와 목사가 되겠노라고 약속한 적이 있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시 건전한 생활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무렵 열 여섯 살의 소녀 레기네 올센과 사랑에 빠졌다. 2년 뒤, 그는 목사 시험에 합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레기네 올센과 약혼하였다. 방탕한 젊은이가 비로소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될 순간이었다.
그러나 행복하고 안정된 삶이 시작하는 바로 그 시점에서 키에르케고르는 주저하며 물러섰다. 자신의 집안 내력과 방탕한 과거에 비추어 볼 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순결하고 명랑한 올센과 결혼할 자격이 없다고 결심한 것이다. 당시의 파혼이란 여성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는 것이므로 그는 최대한 그 책임을 자신에게 씌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일부러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자신이 굉장한 바람둥이인 것처럼 떠벌리고 다니고 공개적으로 올센을 모욕하였다.
3년 뒤 ‘피나는 노력’ 끝에 그는 올센과 파혼하였다. 그러나 그는 진정 그녀를 사랑하였는가 보다. 죽을 때까지 썼던 그의 일기에는 올센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헤어진 뒤에도 여전히 넘치고 있었으니. 2년 뒤 그녀가 자신의 친구와 결혼하였을 때 키에르케고르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결국 베를린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나 버리고 만다.
어떻게 보면 올센과의 헤어짐은 기이한 행동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실존 철학자로서의 키에르케고르의 면모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남들의 인정과 주어질 행복에 눈이 멀어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도덕적 의지와 결단에 의해 선택하는 삶,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도 그런 ‘실존적’ 자세로 대한 것이다. 사상가 키에르케고르는 파혼을 당하고 목사직을 사임한 뒤 재야학자의 길을 걸었다.
파혼당한 서른 살의 키에르케고르는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맹렬한 속도로 창작활동에 몰입하였다. 1843년 5월 그의 대표작이자 실존주의 철학의 탄생을 알리는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시작으로 실존의 영역들을 다룬 저작들을 발표하였다. 키에르케고르의 책은 거의 모두가 익명이나 각 저작에 어울리는 가명으로 출판되었다. 이것은 독자들에게 내놓는 사상을 권위자의 견해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독자들의 판단, 특히 선택을 위해 제시된 다양한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이것이 책 제목인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의미이다. 즉 이 책은 미적 인생관 또는 윤리적 인생관의 대안을 제시한다. 키에르케고르는 각 개인이 삶의 여러 길 가운데 하나를 완전히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믿었는데, 그의 이러한 생각은 모든 실존주의 사상과 저술에서 기초가 되었다. 같은 해에 출판된 『공포와 전율』·『반복』에서는 신앙이란 본질적으로 역설적이라고 결론짓는다.
1844년에는 『철학 단상』·『불안의 개념』을 발표했다. 그는 『철학 단상』에서 그리스도교가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모습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그리스도교가 자유의지를 전제로 존립하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자유의지가 없으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고 믿었다. 이것은 당시 유행하던 헤겔 철학에 대한 공격이었다. 키에르케고르는 헤겔 철학과의 대결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 전에 먼저 자유의 철학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심리학 분야로 확장할 필요를 느꼈다. 그 결과가 『불안의 개념』이었다. 비상할 정도로 통찰력이 번득이는 이 책은 아마 현존하는 최초의 심층심리학 저술일 것이다.
1845년 키에르케고르는 『인생행로의 여러 단계』라는 새 책을 준비했다. 이 책은 방대하며, 그의 저술 가운데 가장 성숙한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제목이 시사하듯이 『이것이냐 저것이냐』에 담긴 사상을 반복하는 면도 있지만 사실상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종교적 단계 혹은 종교적 영역은 미적 단계만이 아니라 윤리적 단계와도 구분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발전은 인간 윤리가 삶의 방식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 이전의 모든 저술들에 구현되어 있는 생각들의 논리적 결과였다. 따라서 『이것이냐 저것이냐』에는 미적 영역과 윤리적 영역 둘만 있었던 데 반해, 『인생행로의 단계』에는 종교적 영역을 포함해 세 영역이 있다.
그의 글은 간명하고 대중적이며 알아듣기 쉬운 편이어서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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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авг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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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1   
@user-sv5mw1nn6z
@user-sv5mw1nn6z Месяц назад
신앞에서는 단독자 교회와 싸우다 죽다
Дале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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